동남아 대형 화재 84%는 여러 발화지점에서 시작됐다

황원희 기자 | eco@ecomedia.co.kr | 입력 2026-07-18 21:55:13
  • 글자크기
  • -
  • +
  • 인쇄

[이미디어= 황원희 기자] 동남아시아에서 발생하는 대형 화재 상당수가 한곳에서 시작돼 확산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지점에서 발생한 여러 화재가 번지고 합쳐지면서 재난 규모로 커진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싱가포르국립대학교(NUS)와 국제응용시스템분석연구소(IIASA) 공동연구진은 2015년 적도 동남아시아에서 발생한 화재의 위성 관측자료를 네트워크 방식으로 분석해 최초로 탐지된 기원지점과 화재 확산 경로를 추적했다.

분석 결과 연구 대상 화재 네트워크의 약 84%에서 두 곳 이상의 기원지점이 확인됐다. 화재 규모가 클수록 서로 독립적으로 발생한 여러 화재가 확산 과정에서 결합했을 가능성도 높았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Environmental Research Letters에 게재됐다.

2015년 인도네시아를 중심으로 적도 동남아시아에서 발생한 대규모 화재는 수백만㏊의 산림과 토지를 태웠다. 짙은 연무가 국경을 넘어 확산하면서 인도네시아뿐 아니라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등 주변 국가의 대기질과 주민 건강, 경제활동에 광범위한 피해를 줬다.

동남아시아 화재는 농지와 플랜테이션 조성을 위한 개간, 이탄지 배수와 소각 등 인간 활동과 밀접하게 관련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개별 화재가 실제로 어느 지점에서 시작되고, 작은 화재가 어떤 과정을 거쳐 대형 재난으로 발전하는지에 관한 공간적 분석은 상대적으로 부족했다.

연구진은 2015년 화재를 사례로 삼아 위성이 관측한 열점 자료를 시간과 공간에 따라 연결하는 네트워크 분석을 적용했다. 이를 통해 약 1만5천 개의 화재 네트워크에서 7만4,500~7만5천 개의 화재 기원지점을 식별했다.

연구에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난 결과는 화재 규모와 기원지점 수의 관계였다. 분석된 화재 네트워크의 약 84%가 복수의 기원지점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대형 화재가 하나의 불씨에서 시작돼 광범위한 지역으로 퍼지는 경우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여러 장소에서 각각 발생한 화재가 건조한 날씨와 가연성 높은 식생 조건에서 확산하고, 인접한 화재와 합쳐지면서 하나의 거대한 화재 권역을 형성할 수 있다.

연구진은 큰 화재일수록 기원지점이 많을 가능성이 높았다고 밝혔다. 이는 대형 화재에 대응하려면 규모가 커진 뒤 진압하는 것뿐 아니라, 여러 소규모 화재가 동시에 확산·결합하지 않도록 초기에 차단하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화재 기원지점의 분포는 인간 활동과 자연환경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분석됐다. 연구진이 검토한 변수 가운데 화재가 발생한 자연경관의 유형인 ‘생태지역(ecoregion)’과 대기 건조도가 화재 기원지점을 예측하는 가장 강력한 요인으로 나타났다.

연구를 이끈 아드리안 드위푸트라 NUS·IIASA 연구원은 “화재의 원인은 복잡할 뿐 아니라 역동적”이라며 “화재 위험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요인 가운데 인간과의 연관성은 기원지점에서 더 강하게 나타난 반면 자연환경과의 연관성은 화재가 확산하는 지점에서 더 크게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이는 동남아시아 화재 대부분이 인간 활동과 관련돼 있다는 기존 연구를 부정하는 결과가 아니다. 사람이 불을 놓거나 토지를 이용하는 방식이 초기 발화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지만, 발생한 불이 대형화되는 과정에서는 대기 건조와 식생, 토양 등 자연환경의 역할이 커진다는 뜻이다.

연구진은 특히 대기 건조도가 높아질수록 화재 기원 가능성이 커지는 현상에 주목했다. 기온이 상승하면 대기의 수분 요구량이 증가해 식생과 토양에서 수분이 더 빠르게 빠져나가고, 같은 양의 비가 내리더라도 불이 붙고 확산하기 쉬운 조건이 형성될 수 있다. 다만 이번 연구는 기후변화가 2015년 개별 화재를 직접 일으켰다는 인과관계를 규명한 것은 아니다. 기후변화로 고온·건조 조건이 심해질 경우 인간 활동으로 발생한 불이 확산하고 결합할 위험이 높아질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이번 연구는 대규모 위성자료를 이용해 화재의 시공간적 연결 관계를 추적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위성에서 최초로 포착된 열점이 실제 불씨가 발생한 정확한 장소나 시각과 일치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구름과 연무가 지표를 가리거나 위성 통과 시각 사이에 화재가 발생하면 최초 단계가 늦게 관측될 수 있다. 네트워크 분석만으로 방화와 농업 소각, 사고 등 구체적인 발화 행위의 주체와 목적을 확인하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연구진은 이 접근법이 화재 취약지역 관리와 예방·진압 정책, 장기적인 생태계 영향 평가에 활용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화재를 단일한 원인이나 하나의 발화지점으로 설명하기보다 인간의 토지 이용과 기후, 생태계 조건이 상호작용하는 사회·생태적 위험으로 다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이미디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카카오톡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 보내기
  • 글자크기
  • +
  • -
  • 인쇄
  • 내용복사
뉴스댓글 >

헤드라인

섹션별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

오늘의 핫 이슈

ECO 뉴스

more

환경신문고

more

HOT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