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저울은 양심의 저울 (주)카스 김동진 사장

전자저울로 지구의 무게를 단다 ‘CAS’
편집국 | eco@ecomedia.co.kr | 입력 2004-08-31 23: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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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에서 비행기까지 무게를 다는 토종 글로벌기업
세계 120개국 판매망 갖춘 중소기업으로 견고한 개척정신 돋보여

송추계곡을 지나 광적으로 달리면 광산공장과 흔히 볼 수 있는 그만그만한 공장이 들어선 경기도 양주군 광적면 가납리, 농업용수가 담겨진 저수지 못 미쳐 유럽풍의 박물관 같기도 한 심상치 않은 공장 아닌 공장을 만난다.
정육점이나 시장 어디에서든 흔히 볼 수 있는 파란 글씨에 전자저울, 그 제품하나로 세계를 석권하고자 하는 야심찬 목표를 세운 중소기업 CAS.
지난 '83년 4월 창립해 올해로 21년째를 맞고 있는 CAS는 벤처캐피탈 투자 기업으로 선정된 우리나라 벤처 1세대이다. 그리 먼 역사도 아닌 벤처 22년사 가운데 유일하게 생존한 기업 1호로, 중소기업으로서는 드물게 세계 시장개척까지도 성공해 CAS의 생존은 더욱 의미가 깊다. 김동진 사장(57세)은 과도기 벤처기업을 이끌어 가는 벤처투자협의회 회장을 7년간 역임하기도 했다.

‘모든 것이 내 손안에 있다’는 신념과 부친시절부터 이어 온 기독교적 정신을 기본으로 김동진 사장은 전자저울의‘CAS’, 건강을 진단하는 네트워크 체중계 ‘nBODY’, 계측기기 토탈 브랜드 ‘CAS갈릴레오’라는 3가지 테마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를 통해서 김동진 사장의 끝없는 열정을 감지할 수 있다. 그 열정은 ‘We weigh the world’란 모토를 내걸고 세계의 무게를 자사의 전자저울 위에 올려놓겠다는, 그리고 CAS 전자저울 브랜드로 세계화를 이뤄내겠다는 꿈을 현실 속에 당당히 펼치고 있다.
좀처럼 인터뷰에 응하지 않는 김동진 사장(실제로 해외시장개척을 위해 반년이상을 외국에서 보내기에 사실상 한치의 짬이 없다)이 어렵게 시간을 내어 자신이 기초 설계한 공장 집무실에서 말문을 열기 시작한다.



“신뢰있는 상거래 문화를 만듭시다”로 거리캠페인
12만근 에밀레종의 실제 무게 CAS 전자저울로 확인
저울로 세계 1위 브랜드가 되겠다는 포부를 가진 김동진 사장은 “무게에 민감해 저희 아내의 몸무게의 변화도 금방 인식해냅니다. 처음만난 사람의 몸무게도 오차범위 500g내로 인식이 가능합니다.”라고 이야기한다. 이런 전문가다운 매서운 눈썰미를 가진 그에게서 저울과 무게에 관한한 나름의 자신과 확신을 엿볼 수 있다.
CAS가 전자저울 하나로 국내 시장 점유율 70%, 세계 시장 점유율 25%를 차지하며 세계 120개국에 지사와 현지법인만도 16개국에 이르는 한국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세계적으로 그 가능성을 인정받기까지 김 사장이 겪어 온 우여곡절은 한 편의 소설과도 같다.
과거 바늘식이나 추를 이용한 방식의 저울은 소비자로 하여금 불신이 컸던 것이 사실이다. 시장에서 물건을 살 때 ‘저울을 속인다’는 사실이 공공연하게 떠돌았다. 지금도 바늘식 저울은 신뢰도에서 낙제점으로 쇠고기, 돼지고기 뿐 아니라 생선 등 많은 품목이 저울을 통해 거래되고 있는 상황에서 저울의 눈속임은 전 세계 동서고금에서 비밀 아닌 비밀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저울 눈속임은 장사꾼의 기본으로 여겨져 서양에서는 자식들에게만 대물림하여 저울을 ‘속여야 만’하는 이유를 유산처럼 말해준다. ‘다른 장사꾼이 가격을 내려서 경쟁력을 상실할 경우에는 형평성의 측면에서 우리도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해야 한다’는 논리 아닌 논리이다.
“저울 속임이 공공연했던 당시도 그랬지만 아마 지금까지 국내 계량법으로 처벌된 적은 단 한번도 없을 겁니다.” 라며 계량법의 진실을 이야기한다. 옛날에는 도둑질하면 손목을 잘라버렸다 하는데 무게의 속임은 눈을 빼야 하는 것일까.
섬진강 화계장터의 하동 땅이 고향인 김동진 사장은 저울사업인 CAS를 창립하기 전 '70년대 당시 부국정밀기계라는 회사를 설립해 한국과학기술원으로부터 산업용 로봇제작 프로젝트를 수주 받고, 무게를 감지하는‘로드셀(Load cell)’이라는 장치를 개발했다. 이 기술을 토대로 바이러스에서 비행기, 기차의 무게를 측정해낼 수 있는 제품들로 개발됐다. 현재 로드셀(Load cell)과 스트레인 게이지(strain gage)를 핵심기술로 한 CAS의 전자저울 제품들은 각 국의 기술적·문화적 특성을 뛰어넘어 세계 곳곳에서 경쟁력 있는 전자저울로 거듭나고 있는 상황.
“전자저울로 신뢰있는 저울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욕심을 갖고 개발한 로봇 내 무게감지센서를 이용해 전자저울을 개발했지만 처음 6개월 동안은 한 대도 팔지 못했습니다. 특히 생선가게나 재래시장에서는 세밀한 단위까지 측정이 가능한 저희 회사의 전자저울 사용을 꺼려했죠. 생선가게의 경우 소금끼 때문에 저울이 망가진다는 등의 핑계를 대기도 했을 정도니까요.”
6개월 동안 판매실적이 전혀 없었던 당시 김 사장에게 ‘포기’라는 단어를 안겼을 법한데 그는 오히려 국내시장의 전자저울 여건조성과 활성화를 위해 저울을 속여 문제가 되는 종합상가 정육점 공략을 위해 지하철이나 버스정류장 등에서 몇 명의 직원과 혹은 홀로 거리의 캠페인 시위를 했다. ‘전자저울로 정확하게 무게를 잽시다.’라는 캠페인이다. 정확한 상거래를 위한 사회분위기를 조성하고자 스스로 직접 거리로 나선 것이다.
6개월 간의 판매고 제로에 김 사장은 서울소재 구청의 말단공무원을 찾아간다. 눈속임하는 정육점 상인들을 지도 단속할 권한이 있는 공무원에게 전자저울로 상거래를 회복시키자는 취지의 하소연을 늘어놓으며 한편으로 계도성 부탁과 또 다른 한편으로는 경영자의 입장에서 한대라도 팔고픈 필사의 몸부림이었다.
결국 담당공무원은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정육점에 “문제발생을 많이 일으켰으니 정확한 전자저울로 소비자의 신뢰를 얻도록 하라. 준수 여부를 감독을 철저히 하겠다”는 반 협박성 권고를 한다. 비로서 고집불통의 정육점에 전자저울 1호를 판매하게 된다. “전자저울을 처음으로 공급했던 그 정육점을 두고 모두가 망할 것이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그 가게 양옆에 있던 정육점에는 손님이 하나도 없고, 전자저울을 구입한 정육점은 오히려 장사가 이전보다 더 잘 됐지요. 거기서 희망을 얻었습니다.”
고기살점이 옆집 고깃집보다 많은데 손님이 몰릴 수 밖에. 이것이 현재 국내 어지간한 곳에 가도 익숙하게 만날 수 있는 파란글씨의 전자저울과 소비자들의 눈 맞춤을 하게 된 최초의 계기가 됐다. 지금이야 퇴직했지만 용감하고도 실행력 있는, 지금은 이름도 가물거리는 그 공무원이야말로 김동진 사장에게는 은인이 아닐 수 없다.
국내 상거래에서 ‘전자저울’이라는 새로운 문화를 정착시킨 그는 역사적으로도 저울의 한 획을 긋는데 동참하게 된다. 전자저울에 대한 풍부한 경험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누구도 실시한 바 없는 에밀레종의 실제 무게를 측정한 것이다.
AD 742년 신라 경덕왕이 부왕인 성덕대왕을 기리기 위해 구리 12만근으로 하사, 제작하기 시작해 AD 771년(혜공왕 7년)에 이르러서야 완성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 에밀레종, 이 1,200년의 세월 뒤인 '97년 8월 CAS의 매달림 저울로 측정한 결과 18.9톤으로 밝혀져 전자저울도 없던 과거 시절 어떻게 그리도 정확히 계측되었는가가 또다시 신비로움으로 남겨지게 된다. “통상적으로 20여 톤으로 알려졌던 에밀레종의 실제 무게가 예상보다 작게 나온 것은 아마 그동안 풍화작용 등으로 그 무게가 다소 소실되지 않았나 생각된다”는 그의 설명을 듣고 나니 그 의미가 이해가 간다.



20여년만에 세계 3∼4위로 세계적 기업들 속에 서다
외국계량법 개정 등 해외시장 개척해 세계를 CAS곁으로
현재 세계 저울시장의 1위 기업은 스위스의 메틀러톨레도(Mettler Toledo)로 메틀러社와 톨레도社가 합병되어 이뤄졌다. 이 밖에 사토리우스(Satorious), 에버리 버켈(Avery Berkel), 일본의 디지(Digi)와 이시다(Ishida)기업 등이 세계적 기업으로 손꼽히며 2∼300년의 오랜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이런 쟁쟁한 기업들들에 비하면 카스는 20년이란 짧은 역사를 갖고 있지만 이제 브랜드 이미지만으로는 세계 4위를 차지하는 세계적 기업으로 우뚝 섰다.
전자저울의 정확도를 기반으로 한 신뢰도가 오늘날의 카스를 탄생시킨 것이다.
김 사장은 “규모면에 있어서는 아직 세계적 기업에 비해 부족한 면이 있지만, 시장경쟁력이나 이미지에 있어서는 3∼4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현재 350여종의 저울을 전 세계에 공급하며, ‘저울분야의 사관학교’라고 불리고 있죠.”라고 말한다.
CAS의 전자저울은 OIML(국제계량규격), NTEP(미국계량규격), TUV, CSA(캐나다표준규격), NSC 등 세계 주요 계량규격을 획득하면서 세계 어디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 세계적 경쟁력을 기반으로 상해, 미국, 뉴델리(인도), 이스탄불(터키), 모스크바(러시아) 등 16개 현지법인을 두고 있으며, 전 세계 200여개 국가 중 120개국에 수출하고 있을 정도로 시장규모가 광범위하다. 러시아의 경우 시장의 65%를 점유하고 있으며, 폴란드 60%, 터키 40%, 루마니아 60%의 시장을 차지하는 등 다수의 동구권 국가 심장부에서 카스는 미세한 먼지까지 무게를 잰다.
“동구권이 과거 공산권이던 시절 저울로 측정한 물품 배급에 대한 불신이 상당했습니다. 그래서 이미지쇄신을 위해 ‘전자저울을 사용하는 믿을 수 있는 가게’를 표방해 러시아, 폴란드 등에 작은 상점 개점시 해당국에서 센세이션을 일으킨 바 있지요.”
CAS는 동구권이 무너질 무렵, 유통 중이던 러시아 300여 개의 저울회사가 몰락하는 상황에서 현지에 전자저울의 가치를 심어주며 첫발을 내딛었다. “당시 러시아의 경우 전자저울에 대한 개념이 아예 없었지요. 저희는 그러한 척박한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러시아인들을 직접 교육하기도 했습니다.”
러시아의 추억은 정치적으로 외교의 절묘함을 안겨주기도 했다. 前김대중 대통령이 러시아를 첫 방문, 옐친 대통령을 만났을 때의 일이다. 옐친은 “몇년 전 러시아가 모라토리움을 선언했을 당시 한국 기업의 상당수가 철수했었다”며, 김 前대통령에게 씁쓸함을 전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당시 김 前대통령의 수행비서인 산자부 장관이 “당시 더 적극적으로 사업에 임했던 파란글씨의 저울이 있습니다”라고 답해 위기를 모면했다는 비화가 있다며, 김 사장은 “덕분에 김 前대통령과 식사를 할 수 있는 영광을 얻었죠”라고 설명한다.
이처럼 CAS는 당시 러시아 모스크바에 저울학교를 세우는 등 현지인을 대상으로 8년이 넘게 전자저울 사용법과 수리기술의 보급관리 교육도 실시해왔다. 사실 예민한 무게를 다루는 저울이기에 상당수의 국민이 CAS 전자저울이 국산이 아닌 다국적 기업 제품의 외국산으로 알고 있다.
“초창기 러시아에 진출할 때 현지 마피아 조직들의 터줏대감 행사에 위협도 많이 당했지요. 지금에서야 웃으며 이야기지만 위험을 무릎 쓴 현지 산업시장 개척사를 쓰면 책 한 권은 족히 나올 겁니다.”라는 그는 이런 험난한 과정 속에서 현재 동구권에서 ‘저울 하면 카스’로 통할 정도가 됐다.
CAS 전자저울의 외국진출은 단순히 수출시장의 개척으로만 여길 것은 아니다. CAS가 해외시장을 개척하고자 했을 당시, 산업용 저울의 경우 기술적 수준에 따라 국외로 수출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상업용 저울은 일종의 ‘계량법’으로 그 나라의 고유의 법, 즉 전통적 모법으로 여겨져 국외 판매와 수출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불가능한 일이나 다름없었다.
“제가 상업용 저울을 해외로 수출한다고 했을 때 주위에선 다들 ‘미쳤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사업 초기부터 해외진출 모색에 대한 구체적인 방향설정이 뚜렷했기 때문에 수출루트를 확실하게 만들었고 지금에 이르렀던 것 같습니다.”
7남매 중 막내인 그는 기독교장로회인 가족들 사이에 성장하면서 일찍이 세계선교에 남다른 관심이 있었다.
“지금도 기도를 하면서 사업적인 아이디어를 얻지만 아마 해외선교에 대한 확고한 의지가 있었기에 전자저울을 통한 해외진출이라는 엉뚱한 발상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한 나라에 있어 자국의 계량법과 다른 외국이 저울을 수입한다는 것은 자존심의 문제와도 같기에 긍정적으로 생각해볼 여지조차 전무했던 것이 사실이다. “미국내 51개 주도 서로 무게에 대한 계량단위가 각기 달라 상호 저울교환이 안될 정도이니 국내 저울로 외국수출을 꿈꾼다는 것이 당시로는 얼마나 무모하고 어이없는 행동이었겠습니까?”라며 스스로 쓴웃음을 지어 보인다.
이처럼 불가능할 것 같던 일을 가능하게 하여 해외시장의 문을 열게 한 것은 카스의 초창기 시절인 18년 전 금전등록기 장사를 하던 한 포르투갈인과 함께 1년 8개월에 걸쳐 포르투갈의 계량법을 바꾸면서부터다.
“포르투갈 인이었던 그는 일본 전시에서 전자저울을 보게 됐고, 한국에 잠깐 착륙한 사이 yellow페이퍼에 실린 CAS 카탈로그를 보고 저희에게 직접 연락을 해왔습니다.” 포르투갈 인은 당시 일본의 1/4의 가격대인 CAS 전자저울을 20만 불 정도의 컨테이너 1개 분량을 구입했고, 그것이 CAS의 첫 외국수출이었다.
“우리는 그 때 감격의 도가니로 잔치집 분위기였죠. 그런데 알고 보니 전자저울이 포르투갈 계량법에 저촉되어 수출이 무산될 위기에 봉착한 것입니다. 그때서야 저도 전자저울이 계량법에 저촉된다는 것을 알게 됐지요. 제가 직접 포르투갈로 날아가 몇 날 밤낮을 고민해 그 포르투갈인과 함께 포르투갈 계량법을 바꿔 수출의 벽을 뚫었습니다. 그 때 소요된 시간이 1년 8개월로 저는 그런 방법으로 전 세계를 무대로 1개 국가씩 진출했습니다.”
이런 그의 발걸음은 계량미터법의 원조국인 프랑스에까지 미치게 된다. “1m를 열등분으로 나누고 그 한 조각을 10cm로 하며, 가로세로 10cm의 규격의 무게를 1kg으로 한다는 개념이 프랑스에서 나온 것입니다. 10여년 전 CAS의 기술력을 검증하기 위해 CAS의 1kg샘플을 프랑스 연구소에 검사를 의뢰했었습니다. 프랑스 관계자는‘계량법의 원조인 프랑스에 상업용 저울을 수출하려고 하는 이상한 사람이다, 어디 한번 만나보자’라는 심정으로 저를 초청하기까지 했었죠.”라며 김 사장은 당시를 회상한다.
가장 계량법이 까다로운 프랑스에 전자저울을 수출하겠다고 나섰으니 당시로서는 얼마나 어이없는 일이었겠는가. 그 후 7∼8년간 CAS의 저울은 프랑스의 높은 벽을 넘지 못하다가 EC로 유럽이 통합되면서 OIML(국제계량규격) 국제법적기구를 통과, 국외 수출시장의 본격적 공략을 시작했다. 그전에는 저울이 아닌 산업용 계측기는 수출이 가능했지만 상업용 저울은 유통되지 못하는 것이 관례였기 때문에 이는 한 마디로 큰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CAS는 그런 프랑스에 5∼6년 전 CASFrance를 설립하기까지 이르렀다. 김 사장 스스로도 이를 ‘매우 상징적인 일’이라고 평가했다.
시장을 하나씩 개척해온 스스로를 ‘돈키호테’라고 칭한 그는 이 모든 일이 가능한 이유가 직접 외국을 발로 뛰고 직원들과 연구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활발한 활동은 '85년 센서개발로 석탑 산업훈장수여, '88년 100만불탑 수상, '91년 상공부 장관상 수상 및 500만불탑 수상, '92년 벤처기업가상 수상, 무역의날 1,000만불탑 수상, '96년 제2회 세계화 우수사례경진대회 대통령상 수상, '97년 통상산업부 장관상 수상, '98년 모범 중소기업 대통령 표창, '01년 정밀기술 대상 수상, '03년 글로벌 경영대상 최고경영자상 수상, 일본능률협회 최우수경영자상 수상 등의 화려한 수상경력을 통해 드러난다.
김 사장은 한국센서연구조합 이사장을 역임하고, 현재 한러경제협회 이사, KTB n-Club 회장, 아이들과 미래 부이사 등 왕성한 외부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그 어떤 수상보다 공정거래, 정확거래에 따른 믿을 수 있는 상거래 조성을 이뤘다는 훈장을 받았으면 하는 것이 개인적인 바램입니다.”라고 호탕하게 웃으며 여전히 갈 길이 멀고, 할 일이 많다고 말한다.



카스의 수출 공략, 김동진의 마케팅전략
정부의 도움은 그 어떤 것도 받지 않았다
이와 같이 CAS가 세계시장에서 품질을 인정받고 경쟁력을 갖추기까지 실현 가능했던 것은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기술력과 함께 김동진 사장만의 독특한 마케팅기법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물품을 수출입하는 경우 박스에 넣어 해당국으로 공급하지만 저희는 좀 다른 독특한 마케팅방법을 취하고 있습니다.”고 설명하는 김 사장은 현지에 지사를 두고 현지에서 직접 영업을 하는 그만의 독특한 영업 전략을 펼치고 있다. 예를 들어 터키만 하더라도 240∼250개의 판매조직을 갖고 판매는 물론 서비스, 교육, 현지 시장조사 등 모든 것을 현지에서 조달하고 있다.
터키의 시장공략은 과거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김 사장의 과감한 해외시장 개척기를 다시금 상기시키게 한다. 당시 MBA를 졸업한 터키인을 스카우트하여 2년 반 동안 한국에서 기숙사 생활을 같이 하면서 서강 한글학당에서 한국말을 배우게 하고 카스의 문화를 익히고, 한국인의 정서를 익혀 13년 전 터키에 회사를 설립하게끔 했다.
김 사장이 건네준 5천불을 가지고 고국으로 돌아간 터키인은 보따리 장사처럼 10대나 20대씩 팔리는 데로 한국에서 물품을 가져다가 팔았다. 처음에는 자신의 집에 팩스와 전화를 두고 판매를 하기 시작한 것이 이후 한국인의 파견으로 터기시장의 45%를 점유했고 이후 러시아, 폴란드, 인도, 방글라데시, 베트남, 파키스탄으로 시장이 이어지게 된 동기가 됐다.
CAS의 국내·외 성공기는 삼성, LG, 현대와 함께 KOTRA에서 초청한 성공브랜드세미나 CEO강의에 초청되어 대단한 호응을 얻기도 했다. 그는 “저희 CAS가 중소기업으로서 세계 시장공략에 성공했다는 사실이 대기업의 성공과는 다르게 국내 중소기업들에게 많은 공감대를 불러일으켰던 것 같습니다”라며, 국내 산업에 있어 중소기업들의 미래를 함께 걱정한다.

종합계측기기사업 CAS갈릴레오 & 엔바디
무게에 관한 종합적 온·오프라인 기반 구축
인하대 산업공학과 출신인 김동진 사장은 어느 덧 세계적 영업맨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더욱더 세계로 뻗어나가기 위해 최근 CAS 전자저울의 기술력을 중심으로 한 큰 계획을 세우고 있다. 바로 ‘CAS갈릴레오’와 ‘nBODY’이다.
‘CAS갈릴레오’는 무게에 관한 모든 것을 해결하는 ‘Total solution for weighing’구축사업으로 종합 계측기기 사업이라 할 수 있다. 온도계, 압력계, 각종 시험장비 등 시판모델만 3만여 개에 이른다.
브랜드마케팅으로 국내 벤처상품을 국외로 수출하는 것이 현 국내산업의 과제인 가운데 그는 CAS갈릴레오 사업을 통해 온라인과 현지의 탄탄한 오프라인 조직을 연결하는 마케팅으로 현지에서 상품전문가와 지역전문가가 만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CAS의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서비스와 정보를 소비자들에게 제공함으로써 계량계측관리의 세계적 브랜드화를 꿈꾸고 있다.
저울에 대한 판매와 서비스에 대한 기본 인식을 바탕으로 계측기에 관한 한 전 세계 모든 정보를 제공하는 ‘Total solution’을 구축하고자 하는 것이다. 따라서 온라인 인터넷 상담을 통해 세계 어떤 제품이나 기술에 대한 공급이 가능한 전 세계 판매조직의 네트워크 구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
‘nBODY’는 CAS가 새롭게 투자하고 있는 웰빙브랜드 이름으로‘net-BODY’의 약자이다. 이는 각각의 전자저울을 USB로 컴퓨터에 연결, 상시교신을 통해 측정된 몸무게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몸무게의 변화과정을 분석할 수 있는 사업이다.
엔바디 체중계는 국내 최초로 50g 단위까지 측정이 가능하며, 측정한 데이터들을 가지고 체중의 정기적인 변화추이를 그래프로 확인할 수 있다. 거기에 나이, 성별, 키와 같은 개인별 정보를 입력해두면 체중을 비롯해 체질량, 체지방, 비만도, 근육량, 체수분량, 기초 대사량과 하루 에너지 요구량 등 다양한 정보들도 알아볼 수 있다.

저울은 양심의 거울, 노조가 없는 카스
경기도 양주공장, 이후 저울박물관건립 추진
기자가 취재하던 날은 소낙비가 간간히 내리는 시간 종업원들은 매우 생기발랄했다. 옷차림은 다양한 평상복을 입고 근무하고 있었으며 중요 부서인 연구실과 실험실만 흰 가운을 입은 직원이 바삐 움직이고 있다. 또 다른 사실은 200여명의 직원이 근무하는 곳이고, 20여년이 넘는 탄탄한 기업인데 노조가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의 기업인들은 한국은 썩은 정치, 무지한 공무원, 그리고 무모한 노조로 인해 사업하기 어려운 나라라고 말한다.
그러나 카스는 같은 대한민국 땅 아래에서 건실히 기업을 키워가고 있다. 종교적 커텐 속에 맹목적 충복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이곳이 종교적 틀 속에 강제성을 지니지 않은 곳임을 알게 된 것은 식당 옆 혹은 잔디밭 어느 그늘막인가에는 반드시 휴지통과 함께 흡연실이 마련되어 있었다.
다만 그들에게 불만적 요소가 일어나지 않게끔 미리 사장이 회사경영의 현주소를 매월 정례 월례 기도회에서 외부 목사를 초청 설교를 듣고 회사운영실태를 보고하기 때문이다.
전도유망한 CAS에도 과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2∼300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스위스 등 세계 유수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서는 초정밀저울 및 화학의료각종분석기 등을 위한 기술력 심화와 이를 기반으로 닫혀있는 새로운 시장의 개발여부가 CAS의 미래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김 사장은 “국내 유통되고 있는 무게관련 기술은 100% 국내 기술입니다. 하지만 저울 하나만으로도 기술개발을 하기가 벅찬 것이 사실입니다. 따라서 다른 pH기계 등의 국산화가 아직 힘이 들지요. 이는 많은 계량계측기들이 국산화됐지만 시장개척의 한계와 소량다품종생산이 이뤄지는 현실은 중소기업의 생존을 위협하는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라며, “하지만 품질이 인증된 품목, 그리고 기술력은 있으나 소규모인 기업제품의 경우 저희가 사용하는 마케팅 공략법을 통해 연계한다면 세계 진출의 가능성을 꿈이 아니라 현실로 다가갑니다.”라고 말한다. 이처럼 김 사장이 밝히는 현실의 장벽은 국내 여타의 업계들이 모두 인정하는 현실이기에 CAS의 그간의 선전이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생명과 같이 여기는 전자저울에 대한 신뢰도 유지와 600억원이 넘는 매출에 10∼15%는 R&D에 투자하고 있는 CAS, 카스의 연구소 인력은 40여명을 넘고 있다. 수출 기업답게 끊임없는 유통망 개척노력과 연구의 병행은 세계를 향한 국내 대다수 중소기업들이 깊이있게 통찰해야 할 기업시스템이다.
마지막으로 김 사장은 “현재 위치한 양주군의 공장은 이후에 저울학습·역사박물관을 세울 것입니다”라며, 자신이 직접 유럽 티토 건축물을 스케치해 지은 경기도 양주군 공장지대에 대한 청사진도 그려 보인다.
‘저울은 양심의 거울’이라는 실체를 실천으로 보여주고 있는 김동진 사장, 하동 땅 준엄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한때는 과거 유신시절 도시선교회 활동으로 젊음을 던지기도 한 그의 정신은 20대의 젊은 패기가 감돌고 있다.
불가능을 가능함으로 이뤄낸 그만의 원동력인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모험, 그리고 진보적 생각과 자신감을 기반으로 앞으로의 장벽을 넘어 향후에는 또 어떤 새로운 역사를 쓸 수 있을지 그의 총천연색 자유분방한 그림에 자못 기대되는 바 크다.
언젠가 본 취재팀은 카스와 동행하여 세계 오지에서 카스의 저울위로 팔려가는 장터를 심층취재할 계획을 세워보면서 건실한 기업 속에는 노조는 없다는 진실적 현실론에 눈을 뜨게 한 취재였다.

취재 / 김동환 주간, 사진·정리 / 이정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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