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표범의 마지막 서식지, 러시아 연해주로 떠나다 (2)

그린기자단 김현구
김한솔 기자 | eco@ecomedia.co.kr | 입력 2018-10-02 16:5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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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스키노는 정말 조용한 도시였다. 크게 볼 것은 없지만 인근에 발해 성터가 있었다. 늪지 속에 있어 들어가지는 못하고 마을로 복귀하는 고고학자들만 보았다. 조금 더 내려가면 핫산(Хасан) 이라는 도시가 나오는데, 북한과 두만강을 경계로 두고 있다. 그 유명한 아오지 탄광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그곳엔 북한과 러시아를 자유롭게 왕래하는 늑대가 있다고 한다.

▲ 과거 핫산 지역에서 촬영된 늑대<사진=WWF>

크라스키노에서 다시 200km를 올라가면 우스리스크(Уссурийск)다. 우수리스크는 고려인이 많은 도시이다. 세계2차대전 당시 강제이주 당한 많은 한국인의 후손이 이곳에 살고 있다. 거리에 한국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종종 있지만 대부분 한국어를 하지 못한다. 우수리스크에는 고려인 협회가 있는데 이곳에서 태권도나 국악을 고려인 아이들에게 교육한다. 뿐만 아니라 이곳에는 헤이그특사 이상설과 최재형 선생 등 대한민국 독립운동의 자취가 남아 있다.


우수리스크에서 볼일을 마치고 A181번 도로를 따라 다시 160여km를 달리면 아르셰니예프(Арсе́ньев)이다. 지금부터는 아래의 지도를 보면 된다.


아르셰니예프는 러시아의 탐함가 이름을 딴 도시이다. 일전에 들렀던 블라디보스톡에도 그의 이름을 딴 박물관이 있다. 이곳의 박물관 이름은 ‘아르셰니예프 역사박물관’ 이지만 이 지역의 역사뿐 아니라 고고학, 생물학, 자연사, 그리고 우리 고려인의 자료까지도 남아 있다.

 

 

▲ 1.아르셰니예프 박물관 전경
2.아르셰니예프 관련 자료들
3.유리 진열장 안의 박제들
4.족제비류의 사슴사냥 디오라마

 

 

 

 

아르셰니예프라는 탐험가의 명성이 대단하기에 이 도시도 볼거리가 많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박물관과 군수품회사를 제외하면 굉장히 조용한 도시였다. 더 이상 볼 것도 없고, 시간이 많이 남기에 가볍게 200km를 달려 한카 호수(о́зеро Ха́нка)에 도착했다. 한카 호는 동아시아 전체에서 두 번째로 큰 호수이다.  


 

▲ 한카 호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

바다처럼 보이는 이 호수는 너무 거대한 나머지 호수 면적의 4분의3은 러시아에 있고, 나머지는 중국에 있다. 호수의 습지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자연보호구역이다. 러시아와 중국은 각각 이 호수를 람사르 협약에 등록했고 양국 정상이 공동보호조약을 체결했다, 이곳은 철새 도래지이기도 한데 두루미와 재두루미가 많이 온다고 한다. 또한 철갑상어를 비롯한 멸종위기 동, 식물이 서식한다. 무작정 지도를 보고 호숫가로 갔는데 이곳은 자연보호구라기보다는 해수욕장에 가까워 보였다. 좀 더 인적이 드문 곳으로 운전해 들어가려 하니 딱 봐도 불만 가득한 표정의 경찰이 불시검문을 했다. 이곳이 중국과의 국경지대라 그럴 것이다. 여권과, 국제면허증을 유심히 들여다보던 그는 험악한 러시아말을 줄기차게 외치기 시작했다. 영어로 소통을 시도했으나 단 한마디의 영어도 들어주지 않았다. 그래서 필자도 한국어만을 사용했다. 영어로 작성된 국제면허증을 사이에 두고 한카 호의 드넓은 하늘은 러시아와 한국어로 가득 찼다. 한참의 설전 끝에 결국 구글번역기로 영사관에 통역을 요청하겠다 하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Okay! Bye-Bye~’ 그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 영어였다. 앞으로 계속 가자 경찰관이랑 똑같은 표정을 지은 국경수비대가 나왔다. 바로 차를 돌렸다.


한카 호에서 400km를 가면 라조(Лазо) 라는 마을이다. 이 마을은 사방이 산과 숲으로 둘러싸인 오지이다. 마을까지 하루 종일 달려가는 길에 아스팔트는 10%도 되지 않았다. 가장 스릴넘쳤던 도로는 산을 끼고 달리는 절벽 길이었는데, 잠깐 내려 아래를 내려다본 후 다시는 쳐다보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바닥이 자갈로 가득하여 차가 좌우로 미끄러지는 체험까지 할 수 있었다.

 

▲ 1.아스팔트를 뚫고 자란 나무
2.로드킬 당한 고슴도치
3.여우가 뛰어간 숲
4.산속의 계곡


그나마 얼마 있지도 않은 아스팔트의 상태도 정상은 아니었다. 깨져있는 곳이 많았고 심지어는 나무가 아스팔트를 뚫고 자라나고 있었다. 도로에 차가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동물의 개체 수가 많아서인지 로드킬이 종종 보였다. 고슴도치 로드킬은 한국에서 보지 못했던 것이기에 차에서 내려 자세히 관찰해 보았다. 사고가 일어난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차가 빠르게 달릴 때는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는데, 내려서 가만히 숲을 응시하니 수많은 움직임들이 느껴졌다. 바로 길 건너편 숲에서는 붉은 여우가 쏜살같이 달려갔다. 라조 인근 지역에서 호랑이나 표범이 종종 발견된다는 말이 허튼소리가 아니라는 것이 느껴졌다. 숲길을 따라 조금만 들어가면 맑은 계곡도 볼 수 있다.


라조마을에 ‘Zov Tigra’ 자연보호지역 박물관이 있다고 해서 찾아가 보았다. 마을회관 정도로 보이는 허름한 건물이었다. 들어가니 직원 하나가 열심히 컴퓨터만 하고 있어 정말 동사무소인줄 알았다. 박물관을 찾아왔다고 하니 옆의 나무문을 열어 주었다. 작은 건물에 방 한 칸만 꾸며놓은 자그마한 박물관이구나 생각하며 발을 내딛는 순간 직원이 문을 힘차게 쾅 닫아버렸다. 문을 열어보려 했지만 밖에서 잠갔는지 열리지 않았다. 이렇게 된 이상 구경이나 하자는 마음으로 뒤돌았다. 그러자 놀라운 풍경이 펼쳐졌다.

 


문(1) 너머의 공간은 굉장히 넓었다. 곰(2)과의 아이컨택을 마치고 옆으로 돌면 러시아의 소형조류란 조류는 모두 모아둔 듯한 디오라마가 있다(3). 뿐만 아니라 옆에는 중대형 조류박제까지 있었다. 다양한 곤충(4)과 파충류(5)는 물론이고 이끼와 지의류(7)도 상세한 정보가 있어 놀라웠다. 호랑이 박제도 여럿 있었는데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아직 눈도 뜨지 못한 아기 호랑이였다(8). 거대한 원통형의 박물관은 천장 높이가 상당히 높았는데 그곳에도 박제가 있었다. 커다란 맹금류들 사이로 칠흑 같은 빛깔을 지닌 독수리 한 마리가 필자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 박물관은 내가 가보았던 그 어떤 자연사박물관보다 기억에 남았다. 규모가 다소 작을지는 몰라도 다양한 표본이 꽉꽉 채워져 있고, 그 곳을 다른 관광객이나 관리원조차 없이 혼자 거니는 일은 영화 속에서나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현실이 된다. 관리원이 잠갔다고 생각한 문도 알고 보니 무겁고 녹슬어서 잘 열리지 않는 것이었다.
박물관을 구경하고 인근의 작은 식당을 갔다. 메뉴판에 영어 한 단어, 사진 한 장 없어 주문하는데 상당히 애를 먹었다. 음식을 기다리며 식당 내부를 살펴보는데 이곳도 만만치 않다.
▲ 1.독수리 박제
2.올빼미 박제
3.멧돼지 박제
4.식당 요리

누가 쳐다보기에 천장을 보니 독수리가 있고 음료수 사이에는 올빼미가, 냉장고 위에는 멧돼지 머리가 있었다. 이쯤 되니 내가 먹고 있는 고기가 멧돼지고기가 아닌가 싶었다. 그래도 러시아에서 처음 먹는 쌀밥이기에 맛있게 먹었다.
다음 목적지는 라조 마을을 지나쳐 대륙 끝까지, 바다가 나올 때까지 달려야 나오는 해안가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페트로바 해안(Остров Петрова)이다. 페트로바 해안 역시 주변이 모두 철저한 자연 보호구이다. 해안가 지역만 보후구가 아니라 사전 허가 없이 출입이 가능하다. 그러나 땅 위의 동물들도 소금과 기타 미네랄이 필요하다. 그러기에 동물들은 소금이 있는 바닷가로 모이게 된다. 또한 소금을 섭취하러 온 동물들을 노리는 맹수도 함께한다.

 

▲ 해안가에서 보는 페트로바 섬과 난파선


그러나 페트로바 해안에서 해양생물들과 멋진 풍경은 많이 보았지만 아쉽게도 숲속의 동물들은 보지 못했다. 겨울이나 초봄에 자주 내려온다는데 시기가 너무 일렀던 것 같다. 아쉬운 마음에 이 해안에서 촬영된 사진을 찾아보았다.

 


1.겨울 라조해안-Toshiji Fukuda
2.해안 절벽의 산양-한국범보전기금
3.해안에 떠밀려온 북방긴수염고래뼈-울산저널
4.헬기에서 본 라조 숲-WWF


페트로바 해안을 마지막으로 블라디보스톡에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7일간의 탐험이 끝났다. 블라디보스톡으로 돌아가는 길은 450km의 여정이다. 출발시각이 해질 무렵이었기 때문에 밤샘운전을 해야 했다. 해안가에서 라조마을로 돌아가는 길, 지금까지 러시아에서 본 동물들을 모두 합한 것보다 더 많은 동물을 보았다. 가로등 하나 없는 숲길에서 양 옆으로 푸르게 빛나는 눈이 몇 분 단위로 계속 보였다. 어두운 숲속의 눈길을 벗어나자 더욱 칠흑 같은 밤하늘에 구멍을 뚫어놓은 듯 별이 빛났다. 덕분에 다음날 아침까지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일주일간의 여정동안 한국표범이나 호랑이를 마주치진 못했다. 그러나 곳곳의 자연사박물관에서 박제를 살펴보고, 자연보호구에서 표범과 같은 공간을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동물들을 만났던 것이 결코 의미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과거 우리나라에 서식했던 표범과 호랑이의 자손들이 멸종하지 않고 연해주에서 살아남은 것도 우리에겐 소중한 사실이다. 2000km를 넘게 달린 자동차에게도 심심한 감사의 말을 전한다. 끝으로 러시아에서 느낀 로드킬을 여담으로 짧게 풀고자 한다. 

▲ 라조 인근 타이가지대를 지나는 강에서 석양을 바라보며



러시아의 로드킬은 우리나라에서의 인식과는 상당히 다르다고 느꼈다. 우리나라에서는 정책적, 사회적 이슈가 되지만, 러시아에서는 너무 일상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대도시 한복판에도 동물의 사체가 종종 보인다. 뿐만 아니라 그 뼈를 장식품 삼기도 한다. 너구리나 고슴도치같은 소형 동물뿐만 아니라 표범이나 호랑이와 같은 대형 동물도 예외는 아니라고 한다. 멸종위기종 번식이 어느 정도 이루어진 후에는 로드킬에 대한 정책적 토의가 러시아 정부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 1.민가 주변에 내려온 호랑이-WWF
2.2년전 블라디보스톡 도로에 나타난 호랑이-한국범보전기금
3,5.표범로드킬-한국범보전기금
4.개홍역에 전염된 호랑이 로드킬-WWF 


[그린기자단 김현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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