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티 한 장의 신화(神話) - 이봉주

‘2018환경페스티벌&환경마라톤대회’서 함께 달린다
김명화 기자 | eco@ecomedia.co.kr | 입력 2018-09-06 13: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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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티 한 장의 신화(神話) - 이봉주
그가, 쉬지 않고 달리는 이유

 

▲ 2001년 보스턴마라톤대회 출전 모습
“가능하면 40세까지 달릴 겁니다.” 20년간 41번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한 이봉주. 10년 전 은퇴를 선언하는 자리에서 그가 한 말이다. 10년이 지나 48세인 지금도 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오는 10월 27일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펼쳐지는 ‘2018환경페스티벌&환경마라톤대회’에서 참가자들과 함께 뛰게 될 그를 미리 만나보았다.

운명의 마라토너

환경전문지 환경미디어가 주최하는 ‘2018환경페스티벌&환경마라톤대회’는 소년소녀가장돕기 자선행사로 치러진다. 이를 위해 지난 7월 20일 환경미디어(발행인 서동숙)와 전국소년소녀가장돕기시민연합(중앙회 사무총장 이영훈)이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특히 뜻깊은 이번 행사에 함께하는 이봉주는 지금도 다양한 행사에서 건장한 마라토너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선수로서 은퇴하면 대부분 색다른 사업을 하거나 방송에 출연하면서 가볍게 쉬는 게 일반적인 스포츠 선수들의 모습이다. 그러나 그는 매년 20회 이상 마라톤대회에 참가해 이웃들을 격려해 주고, 다양한 분야에서 변함없이 마라톤의 영웅으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마라톤처럼 꾸준하고 길게 성공적인 여정을 이어가고 있는 그에게 근황을 물었다. “현재 마라톤 기술위원장직을 맡고 활동 중이다. 선수들 뒤에서 지원 역할을 한다. 현재로선 후배를 양성하는 일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해 집중하고 있다.”  

 

팬티 한 장이면 가능한 스포츠 마라톤. 이봉주는 과거 마라톤보다 축구나 야구를 더 좋아했다. 그러나 가정형편 때문에 마라톤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달랑 팬티 한 장이면 할 수 있는 마라토너였기에. 운동을 좋아했던 그의 형도 레슬링을 했지만 선수로 성장하지 못했다. 더구나 혼자만 잘 뛰면 되기 때문에 팀워크가 필요치 않은 스포츠에서 오랫동안 두각을 보이기란 쉽지 않다. 이러한 배경에 대해 원망하는 마음도 있으련만 그는 유연한 사고의 긍정맨이다. “어려서 달리기를 좋아했다. 좋아서 선택했다. 마라톤이 친구고 지난한 자기와의 싸움이 고된 스포츠지만 후회는 없다.” 

 

이봉주는 집안 사정을 잘 알기에 농사일을 하겠다고 맘먹고 천안농업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거기서 마라톤 실력을 인정받아 삽교고등학교로 전학, 그 후 광천고등학교로 옮겨 마라토너로서 본격적인 기량을 닦았다.

▲ 2001년 보스턴마라톤대회 시상 모습
국민 마라토너
지금까지 이봉주가 달린 거리는 20만km쯤. 지구 한 바퀴 둘레를 약 4만km로 어림하는데, 그는 무려 다섯 바퀴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거리를 뛴 셈이다.

이봉주는 10년 넘게 한국 마라톤의 마지막 보루였다.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조시아 투과니(2시간12분36초)에게 3초 차로 뒤져 은메달에 그친 게 가장 아쉬운 순간이었다. 이후 이봉주는 2000년 시드니올림픽(24위), 2004년 아테네올림픽(14위), 2008년 베이징올림픽(28위)에서 금메달에 도전했으나 끝내 아쉬움이 되고 말았다.  

 

특히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24위의 부진한 성적으로 골인했을 때, 몇몇 언론에서는 4년 전 애틀란타 올림픽에서 3초 차이로 은메달을 딴 기대주의 ‘추락’이라고 혹평을 내놓기도 했다. 이때 무릎부상까지 겹쳐 반년 정도 달리기를 멈춰야 했다. 그는 “신기록을 세우기 위해 욕심을 내다가 슬럼프가 왔다. 6개월 이상 침체기에 접어든 자신을 달래기 위해 별별 고민을 다 했다. 다른 운동으로 바꾸고 싶기도 했고, 감독이나 코치를 찾아가 하소연도 해 보았지만,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다른 사람들의 말은 들리지 않았다. 잠시 쉬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지금까지 잘 살아왔다고 스스로 칭찬하며 견디었다. 더 이상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이대로 포기하면 쉬울 듯한 유혹에 빠지기도 했다”며 당시를 회상하는 그의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그만큼 힘든 시간이었으리라.  

 

그러나 그의 저력은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과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에서 연달아 우승하며 입증됐고, 2001년 보스톤마라톤에서 1위를 차지하며 세계 무대에 그의 이름을 알렸다. 아직도 동경마라톤(2000년)에서 세운 2시간7분20초의 한국 최고기록은 9년째 깨지지 않고 있다. 이봉주에게 슬럼프는 도약을 위한 움츠림의 다름 아니었다. 잠시 뒤로 물러나 발돋움하는 개구리처럼.
팬들은 슬럼프 때마다 성실함으로 극복한 이봉주에게 ‘국민 마라토너’라는 자랑스런 애칭을 달아주었다. ‘국민 마라토너’라는 애칭은 그의 남다른 면모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돌아가신 아버지 장례식에서 조문객도 받지 못하고 미국 보스톤으로 날아갈 수밖에 없었던 건 국가를 대표하는 일이기에. 가장 열악한 환경에서 소속된 팀도, 후원기업 하나 없는 무소속으로 보스톤마라톤대회에 출전했으나 1등의 영광을 아버지 영정에 바치므로써 불효를 달랠 수 있었다.

▲ 2001년 보스턴마라톤대회 결승 골인 모습
겸손한 마라토너
마라톤선수들은 30km 지점까지는 함께 달린다. 그리고 이후부터 속력을 내기 시작한다. 함께 뛰는 선수들끼리 눈치를 살피며, 또 몸을 부딪혀 가며 달리다가 10km가 남은 지점부터 목숨을 걸고 달린다. 마라톤에서의 전략이라면 이 정도다. 나머지는 선수가 훈련을 통해 체득한 몸의 반응에 온전히 의지하는 것. 구간별 지형에 따라서 몸이 익힌 대로 완충을 조절한다. 울퉁불퉁한 길과 평평한 길, 강가를 돌아갈 때, 높은 언덕을 넘어갈 때, 혼자서 뒤처져 무조건 따라가야 할 때 등. 그때마다 발걸음을 옮기는 속력이나 숨 고르기가 달라진다. 과거의 슬픔이나 패배, 미래의 두려움은 생각할 겨를도 없다. 그저 앞만 보고 달릴 뿐.

 

결승선을 넘는 그 순간까지 온전히 견뎌내야 하는 외로운 싸움에서 그는 인내와 노력으로 극복해냈다. 인생도 그와 마찬가지라는 생각에서일까. 많은 사람들이 그를 인간승리의 상징적인 모습으로 지금도 다양한 분야에서 찾는다. “바쁜 게 좋다. 스케줄이 비는 날이 거의 없을 정도다. 인터뷰나 강연, 기부활동 등을 하고 있고, 국내외에서 열리는 각종 마라톤대회에도 2주에 한 번 꼴로 참가하고 있다. 10월에 장애인선수들과 함께 암스테르담 마라톤대회에 단장으로 출전하는 것을 비롯해서 하남마라톤대회, 환경마라톤대회, 김제마라톤대회 등도 예정돼 있다. 하고 싶은 거 마음껏 할 수 있는 지금이 행복하다”며 해맑게 웃어보인다. 

 

그러면서도 갈수록 마라톤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고, 후원하는 기업이 없는 상황에 대해 안타까운 내색을 했다. 그는 “돌이켜보면 어떻게 그런 상황을 견뎌내며 훈련했는지, 다시 하라면 절대 못할 것 같다. 추운 날에도 팬티만 입고 뛰었다. 마라톤에 미쳐서. 그건 어떤 절실함이었던 것 같다. 그런 상황이 기록을 세우게 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오로지 메달을 따겠다는 일념. 마라톤은 결코 쉽지 않은 스포츠다. 피나는 노력 없이 절대 할 수 없다. 오랜 시간 훈련이 필요한 만큼 어린 선수들을 키워야 한다. 마라톤재단을 설립해 영광의 바톤을 넘겨주고 싶다”며 바람도 내비쳤다.  

 

한 나라를 대표하는 마라토너 양성은 거시적인 안목이 필요한 만큼 국가적인 관심과 지원이 절대적이다. 다시 한 번 이봉주 같은 훌륭한 마라토너가 세계 무대에서 대한민국의 이름을 드높이게 되기를 바라본다, 아울러 ‘2018환경페스티벌&환경마라톤대회’의 성공적인 개최를 통해 마라톤이 전 국민이 즐기는 생활체육으로 자리매김하길 고대해본다.

[환경미디어= 김명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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