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메르스의 변명

김자겸 K-water 해외사업 PM
김한결 기자 eco@ecomedia.co.kr | 2015-07-12 12:11:55

세상에 이런 것이 있다니…
지난 6월은 전에 겪어보지 못한 공포와 우려로 보낸 한 달이었다. 예전에도 그랬듯이 정부가 잘 하리라고 믿
었고, 걸리면 죽는 바이러스가 중동에서나 있지 설마 여기까지 와서 기승을 부릴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확고한 믿음과 안이한 생각은 한순간에 무너졌고, 서로가 서로를 못 믿는 상황에서 모두가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는 가지 않으려고 했다. 심지어 학교에서의 ‘메르스 왕따’는 우리의 민낯을 보여주는 사회적인 문제가 되었던 한 달이었다.


메르스의 정체가 하나씩 밝혀지자 원인 분석을 시작했고, 여러 원인 중에서 최악의 실패원인은‘ 초기대응의 실패’였다. 그렇다면 초기대응을 잘 했다면 메르스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는 말인데, 과연 줄일 수 있었는지, 그리고 이런 일이 상수도 서비스에서 일어난다면 어떻게해야 하는지 한번 생각해 보자.


우리의 진정한 현실
메르스를 대응하는 기본 시스템은 정부가 자국민의 안녕과 복지를 위하여 제공하는 공공서비스이다. 공공서비스의 이론적 기반은 과거 경험(통계)과 경제원칙이라고 본다.


게다가 국정감사 등 서비스 효율에 대한 평가시스템까지 작동하고 있다. 따라서 메르스에 대해 정부가 잘했느니 못했느니 따질 것이 아니라, 과연 정부가 가지고 있는 공공서비스 제공시스템이 이런 종류의 재난에 대응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었는지 알아보는 것이 사안의 핵심이다.


경험(통계)기반의 결정구조
만약 메르스가 일본이나 홍콩에서 먼저 발병했다면 정부는 지금과 같은 결과로 이어지도록 놔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메르스가 중동에서 발병했기 때문에 우리와는 너무나도 먼 나라 이야기로만 생각해, 현재와 같은 심각한 피해를 주리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따라서 우리 모두가 대응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중국과 일본은 우리나라 때문에 조기 차단하여 메르스 환자가 거의 없지 않은가.


이와 같이 공공서비스에 대한 의사결정은 사실(데이터)을 기반으로 한다. 즉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현재와 미래의 방향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 따라서 과거의 데이터가 없거나 적절하지 못하면 미래에 대한 결정을 내릴 수가 없다.
왜냐 하면 실행에 대한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단순한 예측만으로 수많은 사람과 기관에 실질적인 피해가 발생
할 수 있는 의사결정을 하기는 힘들다.


마찬가지로 첫 번째 메르스 환자가 발생된 시점에서 앞으로 엄청난 전파가 예상되므로 즉시 병원을 폐쇄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면, 우선 제기되는 질문이 “무슨 근거로 그런 결정을 하느냐”인 것이다.


근거나 사실은 의사결정에 있어 가장 강력한 무기이다. 하지만 이렇게 근거를 기반으로 하는 의사결정시스템은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사안에 대해서는 오히려 해결을 방해한다. 전에 없었던 사건이고, 적기에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피해는 시간이 갈수록 커지는 법인데, 자꾸 근거와 과거의 경험만을 찾는다.


경제원칙 (최소비용의 최대 효과)
돈에 관한 우리의 체계는 ‘최소비용으로 최대효과’라는 경제원칙을 따른다.
메르스의 대응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앞으로의 평가를 떠나서 우선 눈앞의 사안을 경제적으로 처리하고 싶은 것은 우리 모두가 가진 기본적인 욕구이다.


정부 정책담당자 뿐만 아니라 어느 누구도 별것도 아닌 것에 무조건 돈을 펑펑 쓰고 싶은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비용의 규모를 결정할 때, 과거의 경험에 의존한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경험이 없는 초유의 사태에 대하여는 얼마가 적당한지 몰라 우왕좌왕하게된다. 게다가 나쁜 상황을 피하고 싶어 하는 인간 본연의 ‘손실회피 편향’까지 작용한다. 이렇게 경제원칙에 길들여진 우리가 불확실한 상황에 대해 근거도 없이 과도한 대응이라는 결정을 내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미래에 대한 검증 불가능 구조
공공서비스는 일반적으로 대응에 엄청난 비용을 수반한다. 따라서 소요되는 비용에 대해 책임을 지게 된다.
만약 초기에 과도한 대응으로 잘 처리된다면 큰 피해 없이 재난은 넘기겠지만, 문제는 그런 과도한 대응이 적절했는가에 대한 의심이 끝없이 제기될 것이다.


어차피 벌어지지 않은 미래를 가본 사람은 없으니까 무책임하게 질타해도 잘 했다는 것을 검증할 길이 없다. 그렇다고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대응하면 오늘과 같은 재난에 빠져 천문학적인 사후비용이 소요된다.


과연 의사결정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 것일까? 따라서 6월 한 달 정부의 대응은 피할 수 없는 수순이었던 것이다. 우리나라 누구도 경험해 본 적도 없었고, 인근 국가에서 발병한 적도 없다.


낯설은 사안에 대해 과거 경험에 기반을 둔 공공서비스 의사결정체계를 넘어서서 ‘이것은 과거와 다르다’라고 누가 말할 수 있을 것이며, 또한 일어나지도 않을 수 있는 불확실한 사안에 대해 과도한 비용을 써야 된다고 누가 감히 주장할 수 있겠는가?


상수도 서비스도 공공서비스인데...
만약 메르스 같은 사태가 수돗물에 발생하다면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재난대응 시나리오에 없는 사태가 발생한다면, 예를 들면 소독약에 죽지 않는 슈퍼박테리아가 수돗물에 나타난다면,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치명적인 병을 일으킨다면, 과연 우리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무조건 끊어 버리면 전파는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가구의 상당 부분(57%, 2010)이 집단 거주시설에 살고 있기 때문에 씻고 먹는 물과 화장실 용수가 없는 생활을 생각한다면 얼마나 지옥 같은 삶이 될 것인가.
진짜 문제는 우리가 이런 사태를 상상조차도 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메르스 사태의 핵심은 지금의 공공서비스 시스템에서는 또 다른 새로운 사태가 발생하면 같은 혼란을 겪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상상할 수도 없는 사태에 대한 상수도 서비스의 대응을 메르스에서 얻은 교훈을 활용한다면 가장 필요한 사항은 무엇보다도 사고의 유연성과 원활한 소통, 그리고 초기에 과도한 대응을 용인하는 시스템의 구축에 있다고 본다.
어떻게 보면 오늘의 메르스 사태가 주는 교훈은 미래를 준비할 시스템을 이제는 꾸려야 한다는 것이 아닐까?

-김자겸 K-water 해외사업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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