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융합·신뢰’ 키워드로 보는 과학기술의 미래

Interview _제19대 한국과총 김명자 회장
강유진 기자 | eco@ecomedia.co.kr | 입력 2019-06-05 11:2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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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간 ‘4차 산업혁명’이란 말이 유행어처럼 번졌다. 다양한 분야에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는’ 목표를 세우고 전에 없던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도입하려는 시도가 늘어났다. 본래 산업혁명이란 그랬다. 산업의 변화를 통해 삶의 모든 것이 바뀌는 혁명이 일어나는 것이었다.

 

특히 화두가 되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은 과학기술의 혁신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4차 산업혁명의 주요 기술적 동인은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드론, 로봇, 클라우드, 가상현실 등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김명자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이하 과총) 회장은 현 상황을 두고 “과총은 반세기 전통의 기반 위에 새로운 역사를 써야 하는 시대적 소명을 마주하고 있다”고 표현했다. 그리고 새로운 역사의 키워드를 ‘소통·융합·신뢰’로 꼽았다.

▲ 김명자 한국과총 회장

한국과총 소속이라는 자부심
소통은 곧 ‘찾아가고 싶은 과총’이다. 과총은 회원단체만 600여 개에 이르는 매머드급 조직이다. 과학기술계를 총망라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지만, 김 회장은 각 전문성을 적재적소에 잘 활용하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고 판단했다.

 

이에 대내외적 소통과 결속을 위해 취임 후 1년간 과총의 외연을 확장하면서 네트워킹과 체제 수립에 힘썼다. 그렇게 과총 조직을 정비해 각종 위원회와 포럼, TF 등 19개 신설 기구를 꾸려 가동 중이다. 김 회장은 “결국 해답은 어떻게 구성원들의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는가”라고 말하며 소속감과 사명감을 갖게 하는 것이 중요한 부분이라고 짚었다.

숙명적 문제 - 미세먼지, 플라스틱
그동안 과학은 우리 삶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국민들이 체감하는 정도에는 차이가 있었다. 과학은 경제나 기술발전에만 국한된 것이라는 인식도 있었던 것이다. 김 회장은 과학기술을 통해 국민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도록 ‘국민과 함께하는 과총’을 목표로 세우며 융합을 위해 노력했다.


지난해 과총이 선정한 ‘2018년도 과학기술 10대 뉴스’에서 ‘미세먼지와의 전쟁’과 ‘플라스틱의 역습’이 각각 1, 2위를 차지했다. 김 회장은 이를 두고 과학기술계의 역할과 사명에 경종을 울리는 국민의 엄중한 뜻으로 받아들이고 금년도 역점사업으로 ‘미세먼지 국민포럼’과 ‘플라스틱 이슈포럼’을 출범해 시리즈포럼을 개최하고 있다. 융합을 키워드로 둔만큼 포럼에서는 전문가와 국민이 소통할 수 있는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온라인 질문 접수와 유튜브 생중계, 현장 OX 퀴즈 등 다양한 방법으로 국민 참여를 적극 유도한다.


사실 환경부 장관을 지내온 김명자 회장에게 ‘미세먼지’와 ‘플라스틱’ 문제는 숙명과도 같았다. 장관을 역임할 당시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압축천연가스(CNG)버스를 도입했으며, 「수도권 대기질 환경 특별법」을 마련해 미세먼지를 효과적으로 저감했다. 또한 EPR 제도를 처음으로 도입해 시범사업을 추진함으로 재활용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열었다. 김 회장은 “장관시절 미세먼지와 재활용사업을 진행한 지 딱 20년 됐는데 과총에 와보니 그 문제가 다시 따라 왔다”며 마치 운명의 장난 같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이와 관련하여 어떤 해결책을 제시할까? 김 회장은 두 문제 모두 신뢰할 만한 답을 찾는 일은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분명 극복할 수 있는 재난이고, 모든 경제주체의 이해와 동참에 의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경제주체 전체의 공론화 자리를 마련한다는 것이 사실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려면 과학적 분석이 수반된 근거도 있어야 하기 때문에 전문가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해진다. 김 회장은 “산업계의 경우 단순히 제한이 아닌 실제 배출원에 대한 현장 지도와 단속 등을 통해 배출을 관리하는 게 열쇠다. 때문에 지방정부의 역할 정립 또한 매우 중요하다. 산업계에 그 책임을 넘기거나 무분별한 제한 정책으로 갈등을 키워서는 안 된다”고 언급했다.


플라스틱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는 1인당 연간 플라스틱 소비량이 132㎏으로 세계 최대 수준이다. 여기에 중국의 재활용 쓰레기 수입 금지 조치와 국내 재활용 폐기물 업체의 수거 거부 사태 등이 겹치면서 국내 플라스틱 폐기물 문제는 사회적·경제적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김 회장은 “정부는 ‘재활용 폐기물 관리 종합대책’을 통해 2030년까지 플라스틱 폐기물 발생량 50% 저감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여기에 플라스틱 대체 물질이나 고효율 재활용 기술 등을 개발하는 과학기술까지 더해져야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나설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고 전했다.

 
결국, 문제 해결의 핵심은 사회 경제 주체의 자발적인 참여와 실천, 그리고 실효성 있는 실행력에 달려 있다. “미세먼지 저감은 해외 사례를 봐도 최소 수십 년 이상이 소요되는 장기적인 문제다. 당장 효과를 보기 위해 무리하기보다는 근본적 문제 해결을 위해 사회 구성원의 소통과 협의가 충분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며 과총에서 각 분야 전문가를 모아 포럼을 개최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라고 전했다.

합리적 규제로 R&D 미래 열어야
최근 과총은 흥미로운 설문조사를 진행한 바 있다. 우리나라 R&D 예산이 20조 원을 돌파하면서 과학 연구계의 현주소와 나아갈 방향을 알아보기 위해 ‘연구개발 성과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국가 연구개발 예산 투입 대비 성과가 미흡하다는 지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연구계와 일반시민 사이의 인식 차이가 매우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총 응답자의 50.4%가 연구개발 성과가 높다고 응답한 가운데, 그중 연구계 53.6%가 연구개발 성과가 크다고 답한 반면, 일반 시민 37.7%가 연구개발 성과가 크다고 답했다. 한편, 보통이라고 답한 비율도 전체 응답자의 33.6%였다.

 

〈국가연구개발 성과가 미흡하다는 지적에 대한 원인〉에 대한 응답도 주목할 만했는데 ‘단기적, 경제 기여도 중심의 정량적 성과평가제도’가 21.7%로 가장 높았다.

 

또한〈향후 연구성과를 높이기 위한 개선 방안〉으로 ‘연구에 몰입할 수 있는 신뢰 기반 제도 구축(26.6%)’, ‘연구 분야 특수성/자율성을 고려한 성과 개념 전환(19.8%)’, ‘도전적 연구를 장려하는 성과평가 도입(18.3%)’ 순으로 나타났다.  

 

이 설문조사에는 많은 정책적 시사점이 담겨 있다. 앞으로는 보다 긴 호흡의 장기적인 연구를 추진할 수 있는 제도 개선과 현장 연구자들의 자율성이 실질적으로 확대될 수 있는 정책 지원이 필요해 보인다. 김 회장은 이를 ‘규제의 합리화’로 설명한다. “자율과 창의성이 연구의 핵심이다. 그걸 보장하는 관리의 틀을 만들어야 한다. 규제를 없애는 게 아니라 합리적으로, 선진국만큼만 규제하자.”


프론티어 개척의 과총
그런 의미에서 김 회장이 제시한 세 번째 키워드 ‘신뢰’는 ‘프론티어 개척의 과총’과 일맥상통한다. “역사 속에서 산업혁명의 핵심 성공 요인은 미래를 위해 리스크를 무릅쓰는 혁신적인 기업가정신이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실패를 용인하는 사회가 돼야 과학기술혁신과 기업가정신이 빛을 발할 수 있다. 그러려면 신뢰가 있어야 한다.” 신뢰가 바탕이 돼야 도전할 수 있다는 면에서 이 둘은 함께 간다. 반면 연구자를 잠재적 범법자로 여기고 과도한 규제를 하는 것은 불신이자 연구자의 자율과 창의성을 구속하는 것이다.


물론 지난 반세기 동안 경제성장의 수단으로써 과학기술은 놀라운 역할을 했다. 그 덕분에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하는 나라로 성장할 수 있었고, 국가의 R&D 투자도 그 방향에 집중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하지만 이제 과학기술계도 전환기를 맞고 있다.

 

김 회장은 “우리나라는 서양 기술을 받아들여 단기간에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가 됐다. 하지만 이제 추격자로는 안 된다. 개도국이 급속도로 따라온다. 이미 중국의 일부 기술은 한국을 추월했다. 선진국은 저만큼 앞서갔고, 이제는 우리가 개척자(first mover)가 돼야 한다”며, “연구자 중심 정책이 구호로 그칠 것이 아니라 체감할 수 있는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전했다. 물론 과학자들도 연구윤리 가이드라인을 시대에 맞게 재정립하고, 규정을 위반하는 경우는 일벌백계로 다스려야 한다고 언급했다.


R&D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연구뿐만 아니라 개발·상용화·기술이전·창업까지 되어 제품이 세계시장으로 나가는 것이다. 김 회장은 “기초연구 분야에서는 SCI 논문만 내면 훌륭한 과학자가 되는데 굳이 특허 내고 벤처 창업하다 보면 이런저런 논란에 휘말리는 일이 생기는 실정이라는 말이 나온다”며, “한국에서 만든 건 한국의 테스트베드에서 검증해야 한다. 세상이 복합화되면서 네트워킹이 중요해졌다. 하지만 정부의 역할이 너무 미약한 거 같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현재 한국 사회가 마주하고 있는 경제 문제는 신명 나는 연구 환경, 과학자가 존경받는 분위기 속에서 돌파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김 회장은 “대전환의 변곡점에서 신뢰를 바탕으로 한 규제 합리화로 연구개발과 기업 활동의 자율성이 담보될 때, 저성장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전했다.


[환경미디어= 강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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