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러기가 곧 도착합니다

온라인팀 eco@ecomedia.co.kr | 2016-11-03 10:34:34

여전히 조용한 구름, 현란한 임진강, 고요한 파주 민통선의 가을.
여름 내내 왕성하던 단풍잎돼지풀은 까맣게 타들어가고, 온 산을 뒤덮던 칡의 잎사귀에도 반딧불이가 내려앉은 것처럼 노란 반점들이 번지며 죽어가고 있다.
볕 잘 드는 산자락 어딘가 곳곳에는 햇살을 닮은 작은 산국들이 모여 큰 물결을 만들어 냈다.
꽃향유, 구절초, 쑥부쟁이.
언젠가는 겨울바람이 모든 것을 얼려버릴 것이 두려웠을까, 그렇게 각자의 색으로 따뜻한 가을을 만들었다.

 

△늦은 오전, 무리 지어 날아가는 큰기러기 떼 (10월 파주)

 

△칡의 잎이이 반딧불 앉은 듯이 노랗게 타들어간다.(10월 파주) 

가을꽃이 이렇게나 일렁이고, 땅바닥에 핀 작은 풀꽃 하나가, 손 뻗으면 잡힐 듯한 고추잠자리가 눈에 들어오지를 않는다. 여름날에는 미루나무가 우거진 초평도와 짠물, 민물 섞인 강물만이 임진강을 채웠는데 가을의 문턱에 들어선 오늘은 그렇지 않았다.
철새의 울음소리가 민통선의 고요함을 뚫고 강물처럼 밀려온다.
일 년 만에 다시 듣는 반가운 소리에 늘 보던 꽃들을 볼 수 없었다.
다행히도 카메라에 끼울 망원렌즈를 챙겨왔고, 이맘때쯤 보던 새라는 것을 내 몸이 기억한 것인지 내 옷도 겨울철새 관찰하기에 적절하게 입고 있었다. 겨울철새 관찰하기에 적절한 옷이라 함은, 주위 환경과 어울리며 눈에 띄지 않는 갈색이나 녹황색 계열의 옷이다. 물론 이렇게 입어도 새의 시력은 사람의 평균 시력보다 6~10배 이상 뛰어나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우리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보

△햇빛 잘 드는 들녘 곳곳에 핀 산국 (10월 파주)

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이것은 우리 곁을 멀리서 힘겹게 날아온 손님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다.
 
언덕 아래의 강에서 쉬고 있는 철새의 모습을 보기 위해서 언덕 아래로 내려간다. 물억새가 우거진 강변 가까이 가려고 하는데 여기저기 솟아있는 가시박 덩굴이 장벽처럼 나를 막아선다. 먼 나라에서 우리를 찾아온 것은 철새만은 아닌 듯하다. 멀리서 찾아오는 철새는 반갑기만 한데, 마찬가지로 멀리서 건너온 가시박은 달갑지가 않다. 철새는 전염병 확산과 관련된 문제와 엮이지만 않으면 가을, 겨울철 진객으로 꼽히지만 가시박은 다르다. 유독 올해 TV 뉴스나 신문기사에서 가시박 확산에 대한 문제를 많이 다루자, 가시박이 한반도 생태계의 새로운 천덕꾸러기로 언급된 것을 보았으니 말이다.
  

△강변 근처에서 무성하게 자란 가시박 (10월 파주)

그렇지만 이들도 영원히 이곳에서 우세할 수는 없다. 이들과 비슷한 도입종인 단풍잎돼지풀, 환삼덩굴 같은 식물과 왕성하게 번지는 칡도 너무 많이 번져서 걱정이 되다가도 곧 천이과정의 사이클에 의해 나무가 자라고 그늘이 생기게 되면 서서히 그 수가 줄어갈 것이다. 그래서 이 가시박도 비록 인위적으로 도입되었다고 해도 새로운 생태계를 형성시키는 일원일 뿐이고 우리의 힘으로는 없애기란 불가능하다. 이들도 한반도에서 90년대 이전부터 악착같이 정착해 왔다. 가시박, 단풍잎돼지풀 등 많은 외래식물이 우리의 손이 닿지 않는 곳까지도 자라나는데 과연 이들을 제거할 수 있을지 생각해봐야 한다.
분명히 철새 이야기를 꺼냈는데 식물에 관하여 이야기 한 이유는 우리나라를 찾아오는 철새의 삶의 질, 그리고 생존과 연관되기 때문이다. 환경부에서 유해식물로 지정한 단풍잎 돼지풀과 환삼덩굴조차 박새, 쇠딱따구리, 붉은머리오목눈이와 같은 작은 새들의 먹이터가 되어준다. 작은 풀

△가을이 되어 앙상한 단풍잎돼지풀. 작은 새들의 훌륭한 먹이이

기도 하다. (10월 파주) 

씨를 쪼아먹느라고 바쁜 아이들도 있고, 단단한 단풍잎돼지풀 줄기 속의 벌레를 손쉽게 파먹는 아이들도 있다. 이 식물들이 갑자기 사라진다면 이것을 먹이로 사용하는 작은 새들은 추운 겨울에 굶주릴 것이다.
 
물가에서 흔히 자라는 줄과 부들도 마찬가지이다. 그것들의 뿌리는 큰기러기, 쇠기러기 등의 기러기과 새들이나 큰고니의 주요먹이이다. 이들과 비슷하게 생긴 개리는 간혹 줄과 부들의 뿌리를 섭취하기는 하지만 주로 기수역 환경에서 서식하는 새섬매자기의 뿌리를 파먹는다. 이들의 습성은 다른 기러기과 새들과는 다르게 땅 속에 있는 먹이를 파먹는 습성이 있다. 그래서 주로 강가의 흙보다 부드러운 뻘흙 속의 먹이를 선호한다. 이들이 먹이활동을 할 때는 정신없이 뻘을 파느라고 머리에 새까맣게 진흙이 묻어 있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볼 수 있다. 
 

단풍잎돼지풀을 찾는 손님인 붉은머리오목눈이 (10월 파주)

특정 식물, 생물종 하나를 없애는 것도 매우 어렵거나 불가능한 일이지만, 이것을 없애려고 할 때에도 신중해야 한다. 작은 식물 하나가 없어져도 자연은 흔들릴 수 있다. 환경부 지정 유해식물인 단풍잎돼지풀을 없앤다면, 이것을 먹이로 인식해온 작은 새들에게는 별안간 주식 하나가 사라지는 셈이다. 작은 새들이 사라지면 최상위 포식자인 맹금류의 먹이자원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황조롱이나 매 같은 소형 맹금류는 큰 새를 사냥하지 못한다. 이들은 작은 새나 쥐를 사냥하는데, 작은 새가 없어졌다는 것은 소형 맹금류의 식사가 사라진 것이다.
  

 

우리가 유해하다고 여기는 식물들도 이미 짧지 않은 시간 동안 한반도 내에서 자신들이 살아가야 하는 생태계를 만

△뻘 속의 새섬매자기 뿌리를 골라먹는 개리(환경부 멸종위기

동물 2급). (2011년 12월 충남 서천)  

들어 놓았고, 그 나름의 균형을 찾아가는 한반도의 생태계에서 이들이 갑자기 사라진다면 균형이 흔들릴 위험이 있으며 어떠한 영향을 끼칠 지는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 그들이 없어지는 자리에서 또 무엇이 우세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니 위험하기도 하다.
한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은, 그것 이외의 다른 생명을 아끼는 마음에서 이루어지기도 한다는 것을 인식해야 새를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이들의 매개체 어느 하나 중요치 않은 것은 없다. 철새가 이동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기후 변화도, 기온의 변화도 아닌 먹이자원이다. 먹이 때문에 우리나라로 오는 것이고, 먹이 때문에 다시 제 살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 누구

△▲소형맹금류인 황조롱이(천연기념물 제323-8호)는 주로 작은

새나 쥐를 사냥한다. (10월 파주)  

도 그들의 한 끼 식사를 함부로 건드릴 수 없다.
이런 생각을 정리하며 결국 덤불을 뚫고 강변 가까이로 갔으나 큰기러기 가족 아홉 마리가 바짝 긴장하는 모습이 풀밭 너머로 보인다. 결국 멀찌감치 서서 관찰하다가 돌아섰다.
노랗게 익은 논 한 바퀴 걷고, 둠벙 한 바퀴 돌았다. 아마도 이 벼를 다 걷어내기 무섭게 기러기 떼가 매일 이곳에 앉을 듯하다. 요즘 대부분의 논 농사는 살충제나 제초제 같은 약물이 많이 사용되지만 파주 민통선 내의 많은 논은 그런 약품이 적게 사용되는 듯하다. 그래서 더 쉽게 사람과 다른 생명의 공존이 잘 이루어져 자세히 볼수록 아름다운 구석이 많다.
 
논의 젖은 흙에서는 물질경이 꽃이 피었고, 논의 마른 자리에는 고라니 네 마리가 쉬고 있다가 DMZ생태연구소 일행

△경계중인 큰기러기 무리 (10월 파주)

과 마주치자 겁에 질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근처 숲으로 달아난다. 비가 쏟아질 것처럼 어둑어둑하던 오전 하늘이, 오후가 되고 바람이 제법 따뜻해지니 거짓말처럼 파란 하늘이 열렸다. 그 순간만큼은 잠깐이지만 임진강에 떠 있는 초평도도 빛났고, 둠벙도 빛났다. 그리고 둠벙에서 가만히 떠 있는 금개구리도 그랬다.
 
DMZ 탐사 일정이 끝나고 이곳을 나간다. 자유로 옆 철책 너머로 쓰다듬어 보고 싶게 생긴 새섬매자기가 몽글몽글하게 모여있다. 그 주위에는 기러기들이 쉬고 있다. 철책으로 아무도 그곳에는 들어가지 못할 줄 알았는데 말이다. 지

△금개구리(환경부 멸종위기동물 2급). 눈동자 색마저 금색으로

이름에 걸맞는다. (10월 파주) 

난 봄부터 이 곳을 탐사하러 올 때마다 매번 이곳의 주인은 달라진다. 짧은 기간 동안이라도 그곳의 주인이던 그들은 항상 나를 깊이 생각하게 만들었다. 마치 그들이 내게 아주 어려운 질문을 한 것처럼 말이다.

▲ 철책 너머 새섬매자기 쓰다듬어본다면 얼마나 기쁠까. (10월 파주)
모든 것이 빛나던 짧은 순간, 날아다니던 기러기들이 다시 강으로 모여든다. 기러기들은 내년에도 우리를 찾을 것이다. 우리는 이들을 맞이해도 좋을까? 이들을 맞이해도 될만큼 우리의 강변은, 논바닥은, 사람들의 마음은 준비 되었을까?
누군가에게는 먹이가 될지도 모르는 식물이 생태계를 교란시킨다는 이유로 당연히 없애야 한다는 우리의 섣부른 판단. 물론 깊은 지식을 알지 못하여 그럴 수 있다는 점을 헤아리지만 환경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환경파괴의 만행을 보고 분노할 수 있는 시민의식을

△▲ 철책 너머 새섬매자기 쓰다듬어본다면 얼마나 기쁠까. (10월

파주)  

가진 사람이라면, 철새를 반갑게 맞이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그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에 대하여 재고해 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말이 통하지 않는 철새를 맞이하는 우리의 방법이기도 하다.

<글·사진 그린기자단 권순호, 이우고, newsnow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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