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정' 조복성 선생을 기리며

어려운 시절 우리나라 첫 곤충학자...'곤충기' 등 남겨
김한솔 기자 | eco@ecomedia.co.kr | 입력 2018-05-28 10: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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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쌀했던 날씨가 엊그제 같은데 비가 한차례 지나가고는 여름이 부쩍 다가왔다. 대구기상청에 따르면 4월 21일 대구의 최고기온은 32도로 기상관측 이래 가장 높은 4월 기온을 기록했다.

 

아스팔트는 뜨거운 아지랑이를 내뿜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고, 땅속의 매미도 누가 먼저 밖으로 나갈까 눈치를 본다. 뜨거운 햇살아래 나무에 매미 한 마리 없는 여름은 상상할 수 없다. 동네의 꼬마 곤충박사들은 참매미, 말매미, 애매미 등의 다양한 매미를 쫓아다니고 도감을 찾아보느라 정신없을 것이다.

 

그 중엔 어린 시절의 필자도 있었다. 당시 매미이름을 외우며 누가 이런 이름을 붙여 주었을까 궁금해 했던 기억이 있다. 그 이름 속에 우리나라 곤충학의 역사가 담겨 있단 걸 생각이나 했겠는가. 대한민국의 학자 조복성이 ‘기생매미’를 ‘애매미’로 그리고 ‘씽씽매암이’를 ‘털매미’라 이름 붙였다.

▲ 사진출처=한국중앙연구원


관정(觀庭) 조복성, 그는 누구인가?

 

그는 을사늑약이 체결되던 1905년 평양에서 태어났다. 유년시절 외가에서 꿩과 두루미 등 여러 동물을 길렀던 것에 영향을 받았다고 그는 회고했다. 보통학교와 고등학교에서 평생의 은사인 도이 선생과 모리 교수를 만나 곤충을 단순한 취미가 아닌 학문으로서 받아들였다. 식민지의 한 학생을 편견 없이 키워낸 일본 학자에 대해서도 재평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가 해방을 맞이하기 전까지 그는 백두산, 울릉도, 만주, 고비사막, 대만 등에서 연구하며 곤충학자로서의 실력을 키웠다. 후에는 한국인 교원이 거의 없는, 아니 없을 수밖에 없는 경성제국대학의 조교수로도 활동한다. 인종적, 환경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한국 최초의 나비도감과 50여 편의 논문을 발표하던 그는 중국 출장길에 잠깐 들른 한국에서 조국의 해방을 맞게 된다. 선생께서 일본학계에서도 인정받았다고는 하지만 그의 뿌리는 한국인이다.

 

몇 없는 조선인 생물학자들과 힘을 합쳐 조선인들에게 과학의 중요성을 전파하고, 조선어학회와 함께 한국 토종 곤충에게 순우리말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 대표적 예가 1948년 출판된 ‘곤충기’ 이다. 대한민국 최초의 이 곤충기는 토종 곤충의 생태를 꼼꼼히 분석하고 직접 그린 삽화와 함께 당시의 문화상까지도 따뜻하게 녹여 이해하기 쉽게 만들어졌다.

▲ 사진출처=그린기자단 김현구,한림대학교

꿈에 그리던 해방을 맞았지만 민족의 비극은 6.25 한국전쟁으로 이어졌다. 그의 소중한 논문과 자료, 표본들이 이때 불타거나 유실되었다. 조복성 뿐만 아니라 많은 우리나라 학자들이 피땀 흘려 일군 자료를 찾기 힘든 이유가 이 때문이다. 필자 또한 조복성 곤충기의 원본을 찾기 위해 수년간 헤매었다.

 

그러나 사는 것이 늘 그러하듯이 훗날 생각지 못한 곳에서 인연을 찾게 된다. 고서적 무더기에서 한뼘 남짓한 곤충기를 찾아내고 조복성 선생과 조우했던 기분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이 어떠한 세월 속에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중간중간 불에 그슬리고 얼룩진 자국들이 전란의 풍파를 짐작케 해준다.


 뜨거운 여름 햇살 속 울어대는 매미들에게서 관정 조복성 선생님의 향기를 찾을 수 있다. 선생께서는 부친이 소주를 즐기는 바람에 장수하지 못하였다며 본인은 맥주로 바꾸었다고 하였다. 여름 한 조각과 맥주 한잔에 조복성 선생을 그려보는 것은 어떨까?

[그린기자단 김현구, 한림대학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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