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길을 걷는 생태보도여행

SHN | eco@ecomedia.co.kr | 입력 2009-08-06 14:5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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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예쁘거나 멋있는 길이 아니라‘길을 걷는 것’이 선풍적인 인기다. 선풍적(旋風的)이란 회오리바람처럼 돌발적으로 발생하여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거나 관심의 대상이 될 만한 것을 말한다. 정말 회오리바람처럼 걷는 열풍이 전국을 휘감고 있는 이때 생태도보여행이 그 바람을 주도하고 있다.

■ 생태와 문화보전에 힘쓰는 한국의 뉴관광패러다임
그 동안 한국관광은 지역의 가치를 찾아 가꾸기보다는 대규모의 물량적 시설개발(리조트, 골프장 등)에만 치중해 온 결과 지역관광 생산의 가장 기초적인 원료인 지역생태와 문화가 관광개발에 의해 왜곡됐다. 이로 인해 관광은 관광객과 지역사회로부터 유리되고 관광이 오히려 관광을 파괴하는 역설을 초래하고 말았다.
자연 고유의 생태와 지역문화는 관광으로부터 보호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관광을 위해서 지켜져야 하는 지역가치다. 경제적으로도 생태와 문화가 지역관광의 품격을 높이고 이익을 창출하는 원동력이며, 대상지를 찾는 사람들 역시 그것을 보고 느끼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좀더 다양한 정서와 온갖 삶과 문화, 역사를 지닌 관광자원의 보고이자 단절된 인간관계와 공동체 가치를 복원하는 생태체험장이 떠오르고 있다.
환경, 시민단체들이 생태 체험학습 프로그램을 잇달아 내놓고 이것이 시민들의 호응을 얻자 점차 정부와 지자체에서도 새로운 관광정책을 수립하고 있다. 이러한 지속가능한 관광개발 패러다임을 위해서는 진정으로 대상지의 생태와 문화를 보전하면서 주민주체의 개발을 실현하기도 해야 한다. 하드웨어 중심형 관광개발에 비해 그 실천이 다소 힘들고 시간이 걸린다고 하여 생태·문화를 축으로 하는 관광을 포기한다면 미래의 관광산업이 어두울 뿐 아니라 우리나라 각 지역의 자연보전에도 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 생태도보여행의 열풍을 주도하는 제주올레
걷는 열풍을 선도한 것은 2년 전부터 시작된 지리산길과 제주올레다. 그 중에서도 제주올레의 파장은 매우 크다. 올레란 제주어로 거릿길에서 대문까지 집으로 통하는 아주 좁은 골목길을 뜻하는 말로, 진정한 간세다리(게으름뱅이)로‘놀멍 쉬멍’걸으라는 것이다. 올레폐인(olleholic)이란 신조어까지 등장할 정도로 열광적인 호응을 얻고 있으며 올레꾼들로 특수를
누리고 있는 관광업체들도 생겨날 정도다. 이것은 10여 년전부터 Slow Tourism이나 EcoTourism이 제주관광의 대안으로 추진해온 결실이라 할 수 있다. 제주올레는 세상에서 가장 평화롭고 아름다운 길로 제주의 본디 모습에 가깝고 친환경적이며 자동차와 적게 만나고 느릿느릿 걷기 좋은 길로 소문이 나 있다. 또 놀고, 쉬고, 걸으면서 제주를 보고 느끼는 것이 얼마나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지 보여준 획기적 생태도보여행이며, 한국 관광패러다임의 변화 가능성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는 좋은 사례가 되고 있다. 제주올레는 지난 2007년 처음 낸 1코스 시흥길이 이어져 광치기~온평~표선~남원~쇠소깍~외돌개~월평~대평~화순~하모~무릉~한경~용수~저지까지 현재 13코스 길이 열렸고 천천히 여유롭게 걸으면 코스당 평균 5~6시간 정도 걸린다. 이 올레길을 전부합하면 약 245km 정도로 이 길을 다 걸으면 제주섬 둘레의 절반 이상을 거치게 되며 지금까지도 꾸준히 다음 코스를 발굴 중에 있다.

■ 제주도 숲길 시리즈
올레와 더불어 또 하나의 길이 제주에는 만들어지고 있는데 한라산숲길이 그것이다. 올레가 제주해안을 한바퀴 도는 해안길(바다길)이라면, 한라산숲길은 말 그대로 한라산을 한바퀴 도는 산길이다. 이 길은 자연공원법의 적용을 받는 한라산국립공원 경계 밖인근 해발 6백에서 8백미터 고지에 입지하며, 일제시대에 구축된 병참로(兵站路)인 하치마키도로와 표고
재배장길, 임도 등으로 이뤄졌다.
현재 산림청의 발주로 (사)나를 만나는 숲은 전국 7개
권역의 전국산림문화체험숲길 조성 기본계획 수립연구를 진행 중에 있다. 올해 하반기 이 기본계획이 완료되면 제주 한라산과 중산간 경계에 또 하나의 환형(環形) 트레일이 만들어지는 셈이다. 동시에 (사)지역희망디자인센터의 부설 세계유산연구소에서는 이 산과 바다의 두 환형길을 연결하는‘중산간 숲길’을 만들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최대 12개의 라인을 연결시키되 우선 올해는 2개의 노선만 선보일 예정이다.
하나의 라인은 한라산 숲길에서 여러 시종점 중 하나로 설정하고 있는 절물자연휴양림에서 시작하여 북촌바다(너분숭이 4.3기념관)까지 연결시키는 노선이다. 큰포인트만 보면 절물자연휴양림~교래자연휴양림~거문오름 세계유산지구~선흘 동백동산~북촌 노선이 된다. 이 노선은 제주인의 생명수 지하수 함양지대이자 제주생태계의 허파인 곶자왈 숲을 경이롭게 체험할 수 있는숲길로서 (가칭)생명의 곶자왈길로 명명됐다.
다른 하나는 거문오름에서 지선으로 뻗어나와 거문오름~아부오름~동거미오름~용눈이오름~은월봉~말미오름까지 이어지는 노선이다. 제주 신화 신들의 고향이자 제주섬 사람들의 삶의 숨결이 진하게 배어있는 곳, 평화와 제주 선(線)의 미학을 느낄 수 있는 오름의 왕국을 관통하는 노선으로 (가칭)평화의 오름길로 정해졌다.

■ 폭신한 자연을 선사하는 절물 장생의 숲길
곶자왈 숲길 노선의 시작점인 절물휴양림은 굳이 소개하지 않아도 제주도민은 물론 관광객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삼나무 숲이다. 제주시 봉개동 소재 절물오름 기슭에 1997년 7월에 개장한 제주 절물자연휴양림은 산림청소관 국유림으로 총 300ha의 면적에 40~45년생 삼나무가 수림의 90% 이상을 차지하여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이른바 제주에서는 최상의 피톤치드(phytoncide)체험 산림욕장으로 소문난 곳이다.
그런데 이곳에 최근 또 다른 명소가 생겼다. 산림문화 휴양관을 신축해 숙박동을 마련하고 물 흐르는 산책로, 자연 그대로의 삼나무데크 산책로를 매표소에서부터 약수터까지 확충하고 자연림과 삼나무 등 휴양림을 산책하며 정신적 피로와 신체적 건강을 치유할 수 있는 왕복8㎞‘장생의 숲길’도 조성한 것이다.
이 길은 지난 5월 중순 한라산숲길 시종점 연결 노선조사차 절물오름을 찾다 우연히 발견된 길이라고 한다. 사실 삼나무숲 자체만을 보면 그다지 새로울 것도 없지만 이 길이 새롭고 경이로운 것은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이 길은 다른 숲길과는 달리 최상의 쿠션(?)을 자랑한다는 점이다. 사실 목재데크만 깔려 있어도 걷기에 좋은 길이라 불리는데 여기는 그냥 흙길인데 딱딱한 감촉 대신 폭신함이 느껴진다. 오랫동안 쌓인 부엽토가 오름 특유의 송이(스코리아)와 어우러져 부드러운 쿠션을 제공해 주는 것이다. 이렇게 다리관절이나 허리에 전혀 무리를 주지 않는 길이 수킬로미터가 이어지고 있으니 결코 흔하지 않은 길인 셈이다. 벌써 알음알음 소문이 났는지 이길을 걷는 사람들 중에는 아예 신발을 벗고 맨발로 다니는 이들도 있다. 맨발로 걷는 숲길은 편안함을 선사한다. 이 숲길의 또 다른 볼거리는 산수국길이다. 꽃이 아니라 그리움 그 자체라고 불리는 산수국은 보통 제주에서 6월 장마의 시작을 알리는 꽃으로도 유명하다. 산수국의 쪽색자태는 걷는 이들을 한껏 반겨준다. 원예용 수국이
지나치게 화사하다면 제주 들판의 산수국은 헛꽃(무성화: 꽃 주변에서 꽃가루 수정을 위하여 곤충을 유인하는 가짜 꽃)이 그다지 많은 꽃잎을 피우지 않아 오히려 소박함속에 청초함을 보여준다.
또 다른 황홀감을 맛볼 수 있는 것은 때죽나무꽃 융단이다. 숲길 몇몇 구간이 하얀 꽃융단으로 덮이는 광경은 그야말로 절경이다. 때죽나무라는 이름은 열매의 모양이 마치 스님의 머리를 닮았다고 하여‘때가중(중대가리)나무’라고 부르던 것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에서부터, 열매껍질에 독성이 있어 이를 빻아 물고기를 잡는 데 사용해 떼로 죽이는 나무여서 때죽나무가 되었다는 설에 이르기까지 그 이름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다. 옛날 제주에는 물이 귀해 빗물을 받아 식수로 사용하는 일이 많았는데 샘물은 길어다 오래두면 썩어버리지만 때죽나무를 통해 받은 물은 석달 이상만 되면 샘물 이상으로 맑고 깨끗하며 물맛도 좋았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 서울의 한복판 북촌길로 생태도보여행
서울시내의 중심에 자리하면서 아직도 옛 서울의 모습을 전하고 있는 한적한 전통지역 북촌에서도 생태도보여행을 경험할 수 있다. 풍수지리설에 따르면 서울에서 최길지(最吉地)는 경복궁, 다음이 창덕궁(비원)이라고 한다. 이 지역은 이른바 북고남저(北高南低)의 형태로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하며 배수가 잘되고 앞쪽으로는 남산을 바라보고 있어 시야가 확 트였기 때문이다. 이 두 길지를 연결하는 지역, ‘양궁 사잇길은 꿈길에도 걸어보고 싶다’는 속담의 주인공이 바로 북촌인 것이다. 서울에서 아니 전국에서도 드물게 옛 골목길이 남아 있는 동네로 차가 들어가기 힘들 정도로 좁고 구불거리는 길이 많은 곳이다.
이곳은 물이 낮은 곳을 따라 흐르듯 자연적 지형을 그대로 살린 길이라 아늑하고 정감을 주는 곳이다. 그 정감은 즐비하게 들어선 자연을 가장 많이 닮고, 우리 건강에 제일 알맞은 집 한옥을 통해 배가된다. 이 한옥을 따라 걷다보면 조선 후기의 명문가 박영효, 이상재, 손병희 선생의 저택과 지방문화재인 친일파의 거두 한상용의 옛집 한옥, 천연기념물 8호인 재동 백송, 전통 공예방과 장신구, 한국불교, 닭문화, 민화 등의 조그만 전통 박물관들이 만날 수 있다.
우리네 선조들의 개화의지를 보여주는 근대 한국의 역사를 조명하고 그 시대의 문화예술을 감상하고 만져볼 수 있는 장소와 분위기가 살아 있는 생태여행도 새로운 관광패러다임에 한 몫을 차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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