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즈넉한 겨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주말 오후 서울 광화문. 금방이라도 눈이 쏟아질듯한 날씨는 마치 하얀색과 까만색을 섞어 만든 물감으로 온 거리를 덧칠한 듯했다. 북악산에서 내뿜는 칼날 같은 바람을 등에 엎은 채, 광화문 한복판을 걷다보면 유독 파란물과 붉은불이 뒤엉켜 하늘로 솟구치는 형상의 색감이 눈에 뛸 것이다. 우뚝 솟은 조형물은 바로 청계천의 시작을 알리며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주제로 만들었다는 스프링(spring)이었다. 일명 소라탑이라고 더 잘 알려진 이 조형물은 높이 20m, 지름6m, 중량 9톤을 자랑하는 청계천의 상징물로 자리 잡은지 오래다. KT가 작가비 60만불을 비롯 총 340만불의 제작비를 전액 기부한 청계천 조형물 ‘스프링(Spring)'은 스웨덴 출신의 세계적인 작가미국 팝아티스트 클래스 올덴버그와 그의 부인인 쿠제 반 브르겐이 공동작가로 참여하여, 2005년 10월부터 1년여간의 복잡하고 치밀한 제작공정을 거쳐 2006년 9월초 청계광장에 설치된 것이었다. 물론 시민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매우 이국적이다’라는 긍정적 평가와 함께 ‘주변환경과 어울리지 않는다 의미만 부여했을 뿐이다’라는 부정적 의견이 공존했다. 하지만, 중요한건 우리 곁에 이미 청계천은 자연이며, 휴식의 공간이며, 삶의 물줄기로 숨쉬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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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의 역사
청계천의 원래 이름은 개천(開川)으로 서울의 서북쪽에 위치한 인왕산과 북악의 남쪽 기슭, 남산의 북쪽 기슭에서 발원하여 도성 안 중앙에서 만나 서에서 동으로 흐르는 연장 10.92km의 도시 하천이다. 청계천 유역은 총 면적 50.96㎢로 서울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으며 1394년 서울이 조선왕조의 도읍지로 정해진 이후 도성 안을 지리적으로 구분했을 뿐 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적으로도 구분하는 상징적인 경계선으로 작용했다.
한편 개천은 최적의 자연적인 하수도이기도 했다. 조선초기 그 용도를 둘러싼 논쟁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세종대에 개천의 용도는 하수도로 낙착되었다. 이는 조선 후기 인구의 증가와 자연재해 빈발이라는 상황에서 개천이 존재의 이유를 잃게 되는 근본적인 배경이 되기도 하였다. 1908년 대한제국 정부에 의한 마지막 준설이 시행된 후 1918년까지 10여 년간 준천은 한번도 시행되지 않았다. 일제가 청계천을 악의적으로 방치했다가 다시 손을 대기 시작한 것은 조선 지배의 중추를 과거 조선과 대한제국의 중심부로 이전할 준비가 구체적으로 진행되면서부터였다. 천변에서 특히 심각했던 것은 위생문제였다. 장마가 지면 침수되는 가옥이 부지기수였고 전염병이 돌면 바로 전 시가를 휩쓸었다. 집중호우라도 내리면 청계천 하수가 주거 밀집지역으로 바로 역류하였다.
도심 한복판을 흐르면서 경관면이나 위생면에서 심각한 악영향을 끼치는 개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가장 간편한 방법은 '복개'였다. 개천을 복개하려는 최초의 계획이 수립된 것은 대한제국기의 일이었다. 1895년 내부령 제9호로 종로 가가의 철거와 도로확장계획이 발표되었고 곧 종로에 전차부설공사가 시작되었다. 1909년에 황토형 절개공사로 얻어진 토사를 이용하여 황토현 구간 일부를 메운 일이 있었지만 이것이 청계천의 본격적인 복개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청계천의 전면 복개 구상은 1935년 최초로 발표되었다. 당시 경성부의 마치다 토목과장은 청계천을 전면 복개하여 도로로 만들고 그 위로 고가철도를 놓는 구상을 발표했다. 대경성 계획으로 영등포를 비롯한 1군8면이 새로 경성에 편입될 경우 당시의 시설만으로는 늘어나는 교통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그러나 민간의 교통수단보다 더 중요하게 고려된 것은 군부의 교통수요였다. 청계천의 전면 복개안은 1940년 일제가 확정해 놓은 것이었지만 전쟁에 쫓기던 일본이 이를 완수하기란 불가능했다. 이후 청계천에 대한 본격적인 복개공사는 1958년 5월 25일에 착공하여 1961년 12월에 완공하였다. 오늘날 마장철교까지의 복개구간은 1978년에 완성되었다.
1967년 청계고가도로 건설에 앞서 이 일대에 대한 대대적인 정비가 진행되었고 그 자리에 거대한 건물군이 들어섰다. 바로 세운상가였다. 1976년에는 동대문운동장 주변의 월남민 밀집지대에 대한 재개발이 단행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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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문제
고밀 도시개발은 원활한 바람흐름을 차단하여 오염물질의 대기 정체를 통해 대기환경이 악화되는 간접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으나, 이를 개선하는 방법으로서 바람길을 만드는 것이었다. 특히, 청계천 지역은 청계고가 및 노면도로 이용 교통량의 집중, 도로 주변 상업 및 업무시설 집중, 불투수 토양피복 등에 따라 도심온도가 높게 나타나는 도시 열섬(Heat Islands)현상이 관찰되고 있었다. 청계천복원사업은 수변공간을 만들고,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효과를 가져다주기 때문에 도시열섬의 진행을 완화시키는 대안으로서 기대효과가 있다. 청계천복원 전후 바람길 변화분석에 의하면, 청계4가의 경우 전반적으로 복원전에 비해, 복원후에는 풍속이 다소 빠르게 나타나고 있으며 이는 청계천 도로변이나 청계천 수변 모든 지역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평균 풍속은 최소 2.2%, 최대 7.1%가 증가한 것으로 분석됐다. 그리고 청계8가 바람길 변화에서는 평균 풍속은 최대 7.8%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같이 청계천 복원전에는 고가도로 및 노면도로로 활용되었으나, 새롭게 청계천이 열리면서 찬공기(cool air)덩어리가 이동하는 수변 바람길이 나타났다.
청계천복원사업에서 시작된 서울시의 하천복원사업은 성북천과 정릉천의 복원으로 이어졌고, 홍제천에 대한 정비도 구체화됐다. 또한 서울시에 있는 모든 하천을 복원하기 위한 본격적인 연구에 들어가 하천의 복원으로 친환경성이 강화되고 해당 지역의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자 지역 주민들도 이 사업에 대하여 긍정적인 관심을 갖고 협조하려는 의지를 보이게 되었다.
청계천복원사업이 도심하천정비에 미친 영향은 비단 국내에 머물지 않고 외국의 주요도시로 확산될 기미도 보인다. 동경시의 경우, 시부야 강을 복원하기 위해 많은 관계전문가와 시의원 등이 청계천을 방문했고, 오사카시에서도 시민단체, 전문가, 행정공무원 등이 오사카시의 하천, 강, 바다 등을 활용한 "물의 도시"사업에 참고하기 위해 청계천 사업을 모델로 활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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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패러다임의 대변혁
청계천복원사업은 하나의 지방자치단체가 일구어 낸 단순한 하천복원사업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부분에 있어 패러다임을 변화시키면서 대한민국의 얼굴인 서울시가 자연과 인간 중심의 환경도시로 거듭나는 사업으로 자리매김 하였다. 또한 서울시는 이 사업 성공을 통해 동북아 거점 도시, 동북아의 금융허브도시로서의 위상을 선점하는데 한 걸음 더 다가갔다는 취지를 가지고 사업에 돌입했다. 복원사업이 끝난지 3년이 경과한 지금 청계천의 주변엔 어떤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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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청계천 주변에는 유명 언론사를 비롯하여 수많은 기업의 마천루가 양쪽으로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2005년 10월 복구 초기, 거대 자본을 앞세운 외국 먹거리 문화의 무분별한 유입으로 자연과의 조화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도시적이며, 이국적인 분위기에 작은 개천은 힘을 쓰지 못하는 듯 했다. 수많은 비판이 쏟아지는 화살처럼 내리 꽂아졌지만, 일순간 사라졌다. 봄이 가고 또 겨울이 오길 세 번. 청계천은 서서히 흐르는 물속에 쪽빛 물감을 풀어 넣기 시작했다. 상막한 주변 환경이 친환경적인 모습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바로 청계천의 힘이었다. 물론 주변 건물과 간판 등은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단지 회색빛 건조한 도심 속에 쪽빛 물감이 조금씩 번져 나가고 있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주변 건물에 초록의 물결이 점차 넓게 번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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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중후반, 구공탄 굴뚝 연기 속을 날던 성북동 비둘기. 그 비둘기 색을 닮은 현대 문명의 차갑고 딱딱한 콘크리트 마천루의 상징이었던 청계천 일대. 상막했던 주변 환경에 새로운 싹이 피어 오른 것이다. 1시간여 남짓 걷고 또 걷다보면 건물들은 온통 초록 목도리를 두르고 얼어붙은 도시에 작은 생명의 입김을 내뱉고 있었다. 거추장스런 플랭카드 대신 친환경적인 조형물 역시 자연적인 이미지와 잘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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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과 건물 사이엔 동화속에서나 나올 법한 작은 공원들이 조성되어 있었고, 세월에 지친 사람들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키작은 소녀의 작은 호주머니 속처럼 따뜻해 보이는 공원들. 길거리 벤치 역시 나뭇잎 모양의 친환경적 디자인으로 꾸며져 있었다. 건물 주인을 닮은 기존의 딱딱한 직사각형의 벤치 보다는 너무나 대조적인 형상이었다. 한 잎 주워 책갈피에 담아 두고 싶은 욕심이 생길만큼 자연적인 모습에 가슴까지 포근해짐을 느꼈다. 틈틈이 자리 잡은 소나무숲 군락도 도시의 수채화를 그리는데 일조를 하고 있었다. 텁텁하고 무겁기만 했던 수묵화에서 맑고 싱그러운 수채화로의 변신. 그 가운데 청계천이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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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의 변화 못지 않게 인근 주변 건물의 내부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현대적인 감각에 친환경적인 녹색 디자인이 부쩍 많이 눈에 뛰었고, 특히 1층 로비에 푸른 상록수가 즐비하게 놓여 있어 마치 식물원 한가운데에 서있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바닥은 나무로 마감하여 따뜻함을 더하였고, 손으로 만든 벽돌을 하나하나 쌓은듯한 느낌의 벽장식 역시 살아 있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친환경적 이미지는 보통 그린을 많이 쓰고 나뭇잎, 이슬, 물방울, 자연스런 곡선, 나뭇가지모양 등으로 표현된다고 한다. 건물 내부 장식 하나하나에 이런 친환경적인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하로 내려가도 마찬가지였다. 어두컴컴하고 음침했던 분위기와는 달리 곳곳에 조성된 작은 화원과 정원들. 일본의 잘꾸며진 정원 뒷뜰을 연상시키는 모습이었다. 물론 각 상가마다 마케팅 차원에서 손님 끌기에 열을 올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코어에 환경이란 이슈가 존재한다는건 대단히 큰 혁명이 아닐까한다. 2006년 파리 시가 선정한 올해의 디자이너 상을 수상했고, MoMA 뉴욕과 샌프란시스코에 작품이 영구 소장돼 있는 친환경 웰빙 디자이너 마티외 르와뇌는 “자연은 하나의 기능적인 대상에 가깝지 내 디자인이 환경보호나 자연에 대한 염려 등의 거대한 명제를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라고 말했다. 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는 “사람과 그 주변 환경과의 관계” 이는 곧 “생태”인 것이고 나아가 웰빙 디자인으로 접목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건물 내부가 친환경적으로 변화한다고해서 반드시 자연이 보호되고, 환경이 좋아지는것만은 아닐 것이다. 다만 그런 실천주의적 관점에서 움직임이 있다는 사실. 그런 작은 움직임이 미래의 어느날 큰 결실을 기대할 수 있는 시금석 될 수 있다는 사실엔 누구도 이견이 없을 것이다. 일례로 미국, 캐나다 등 북미 지역 사무실 환경은 우리나라와 사뭇 다르다고한다. 대부분 사무실에서 배출하는 쓰레기의 33%가 오렌지 껍질이나 샌드위치 빵조각 같은 유기물이라고 한다. 이런 쓰레기는 사무실에서 수거한 뒤 멀리 떨어진 쓰레기 처리장으로 보내진다. 버려진 유기물은 처리 과정에서 이산화탄소 보다 더 유해한 메탄가스를 뿜어낸다고한다. 많은 회사에서 사무실에 비료기를 놓아 유기물을 줄이려는 시도가 늘고 있다. 캐나다 토론토에 있는 디자인 전문 회사 쿨러 솔루션(Cooler Solutions) 등에서 이런 비료기를 디자인하고 만들어 낸다. 이런 비료기는 사무실에서 유기물을 분리해내는 역할을 하며 내부는 진공처리돼 벌레가 꼬이거나 냄새가 나지도 않는다고 한다. 비료기를 통해 사무실에서 모아진 쓰레기는 최종 비료로 전환된다. 친환경이란 주제가 과학이나 기술이라는 거창한 범주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생활 속 작은 변화로부터 시작된다는 의미를 되새겨 봐야할 시점이 아닌가한다.
청계천의 변화 역시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청계천 자체의 구조적인 변화에만 포커스를 맞추는 시점은 이미 지났다고 할 수 있다. 무심코 지나쳐 의식하지 못 했을뿐, 도심의 사무실 환경 및 건물 내,외부 구조의 변화 등 친환경의 변화는 청계천의 일상 속에 파고들고 있었다. 정부의 저탄소 녹색성장이라는 패러다임에 호응되는 부분이기도 했다. 청계천 녹색물결이 다만 주변 건물이나 환경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전 국토에 녹색물감을 칠하는 그날을 손꼽아 고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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