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디어= 김한결 기자] 가을이면 단풍이 물들어야 할 들판에선 벚꽃과 아카시아꽃이 다시 피고, 논에서는 수확하지 못한 벼가 싹을 틔운다. 10월 중순, 맑은 하늘보다 흐리고 비 내리는 날이 더 많아진 요즘의 풍경은 이상기후가 더 이상 먼 이야기가 아님을 보여준다.
이창석 국립생태원 원장은 “기후가 무너지고 있다”며 “이는 단순한 날씨 변화가 아니라, 생태계의 근본 질서가 흔들리는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실제로 국립공원 등 자연보호지역에서도 단풍과 새싹이 동시에 나타나는 등 계절의 경계가 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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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후변화로 인해 봄이 아닌 가을에 벚꽃이 피는 현상이 발견되곤 한다.(자료사진) |
에너지 전환의 역설… 줄지 않는 탄소, 줄어드는 생태공간
국제사회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탄소중립’을 약속했고, 한국 역시 이 목표를 향해 달리고 있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높다. 신기술 발전과 산업 확대로 에너지 수요가 계속 늘어나면서, 신재생에너지 보급 속도보다 이산화탄소 배출이 더 빠르게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원장은 “이제는 배출을 줄이는 것뿐 아니라, 흡수원을 확보하는 전략이 필수적”이라며 “숲, 습지, 하천 등 자연이 가진 탄소흡수력은 단순한 ‘탄소 저장고’를 넘어 생태계 서비스 전반을 복원하는 핵심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국내 첫 Tier 3 수준 탄소흡수 평가
이 원장은 서울여자대학교 재직 시절부터 국내 주요 식생의 탄소흡수능을 정량화하는 연구를 꾸준히 이어왔다. 그는 충북 청주와 전남 여수의 산림에 표준지를 설정해 산림식생의 흡수능을 평가했으며 (Atmosphere, 2022), 수변식생을 대표하는 버드나무 군락과 폐경 논의 복원지를 대상으로 흡수능을 분석해 탄소농업의 가능성까지 제시했다 (Climate, 2024; Sustainability,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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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버드나무는 탄소흡수원으로서 높은 기능을 지니고 있다. |
또한 생태연못과 옥상녹화지의 탄소수지를 실측해, 도심 속 녹색 인프라가 얼마나 기후완화에 기여할 수 있는지도 과학적으로 입증했다 (Ecological Engineering, 2025; Forests, 2024).
최근에는 국립생태원 김남신 박사 연구팀과 함께 위성영상과 기상자료를 통합 분석해, 우리나라 전체의 탄소흡수량을 Tier 3 수준에서 정밀 평가한 첫 연구 성과를 국제저널 Sustainability에 발표했다. 이는 국가 탄소중립정책 수립의 과학적 근거로 활용될 수 있는 실질적 연구로 평가받는다.
| ▲ 이창석 국립생태원 원장 |
탄소흡수원 확보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
이창석 원장은 “이제 기후위기는 특정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일상 그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며,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기술만큼이나, 자연이 스스로 회복할 수 있는 기반을 복원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국제사회가 주목하는 ‘자연기반해법(NbS)’과 ‘UN 상처입은 지구 치유 프로그램’처럼 우리도 흡수원을 과학적으로 관리하고 강화하는 국가적 체계를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연구는 탄소중립 사회로의 전환 과정에서 ‘배출 저감’ 중심이었던 정책 패러다임을 ‘자연 복원’과 ‘흡수력 강화’로 확장하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숲이 바로 지구의 폐"라는 말처럼, 기후위기 시대의 해답은 기술이 아닌 자연 그 자체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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