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보존가치 1000조, DMZ는 황금알을 낳을 수 있을까

인류 최대 설치미술 “개발이 능사 아니다”
김명화 기자 | eco@ecomedia.co.kr | 입력 2019-02-09 00: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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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원 생장리_운무로 가득찬 DMZ의 아침 <사진제공=철원군청>
지난 호에서는 우리나라 곡창지대인 철원평야에 축사가 대거 난립하면서 경관 훼손과 오염 및 폐수로 몸살을 앓는 모습을 고발했다. 이번 호에서는 철원을 포함한 한반도 생태보고인 ‘DMZ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해 함께 고민하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 이에 다양한 접근을 위해 DMZ 일대 환경생태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해온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었다.


동토에도 봄은 오려나
총성이 멈춘 자리에 탄생한 서글픈 평화의 공간 DMZ(Demilitarized Zone). 66년 전, 유엔군 사령관과 북한 및 중국 대표가 판문점에서 휴전에 합의한 이래 총성은 멈췄으나 승자도 패자도 없었다. 분단의 역사는 그렇게 철조망을 사이로 더는 다가갈 수 없는 동토(凍土)로 남겨졌다.
그렇게 오랜 세월 적막감만 맴돌던 DMZ가 일순간 거대한 굉음에 휩싸였다.

 

“쾅! 쾅! 쾅!”
‘9·19군사분야합의서’에 따라 지난해 11월과 12월에 남북이 마침내 DMZ 내 GP(감시초소) 10개소씩을 폭파했다. 이날 GP 폭파를 많은 이들이 ‘평화의 퍼포먼스’로 간주했다. 그러나 DMZ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해온 전문가들은 DMZ가 지닌 가치를 고려했을 때 부적절했다는 평가를 내놨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난 22일 열린 ‘DMZ의 평화적 이용’ 주제 학술회의에서 DMZ를 아우슈비츠, 킬링필드와 같은 ‘거대한 전쟁기념관’에 비유하며, “지금은 분단의 극단적인 장소지만 세계 평화의 상징이 될 잠재성을 내재하고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면서 “철거가 앞서면 DMZ의 여러 가치를 훼손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와 함께 ‘비무장화 로드맵’ 구축의 필요성을 제안했다.  

 

서재철 녹색연합 상근전문위원도 이날 학술회의에서 “남북 간에 상호 검증시스템을 도입하고 순찰을 하는 식으로 실질적인 무장 철거가 이뤄지면 GP를 굳이 폭파할 필요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또 DMZ를 한반도가 지닌 가장 중요한 자산의 하나임을 환기시키며, “생태학적 가치부터 분단의 역사까지 고스란히 담고 있는 DMZ를, 개발이 아닌 보존 차원에서 접근해야 하고, 절대적으로 건물부터 짓는 관광사업이 되어선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DMZ는 우리에게 냉전의 유산이지만
후손에겐 어떤 유산으로 물려줄 것인지
생각해야 할 시점이 됐다.

이데올로기 경계를 긋고
남과 북이 감시초소를 철거하고, 평화의 오솔길을 만들고, 도로를 내고, 공동유해 발굴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오랜 동면에서 기지개를 켜고 있는 DMZ는 과연 진정한 의미의 비무장지대로 거듭날 수는 있을까. 철도와 도로가 통과하는 지역, 역사·문화를 복원할 지역, 환경생태를 보존할 지역, 농업과 산업협력이 필요한 지역, 그야말로 비무장지대의 특성을 고려한 ‘평화적 이용’ 방안은 어떤 형태여야 할까.

 

한반도 허리를 휘감고 있는 DMZ의 녹슨 철조망. 70년 가까이 모양도 넓이도, 의미도 이제는 처음 모습과 다르다. 강원발전연구원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원래는 군사분계선을 기준으로 폭 4Km였지만, 지금은 DMZ가 남북 양측이 관측에 유리한 고지를 확보하기 위해 안쪽으로 밀고 들어가면서 4Km 폭을 지키지 못한 곳이 생겨났다. 지역에 따라서는 그 폭이 몇백 미터까지 축소된 곳도 있다.  

 

애초의 설정 범위와 달라진 것은 DMZ뿐만이 아니다. 민간인통제선 역시 초기의 범위와 달라졌다. 민간인통제선은 원래 군사분계선에서 남쪽으로 5~20Km 간격으로 설정되었으나 현재는 10Km 이내까지 범위가 줄어들었다. 민간인 통제구역에 마을이 들어서고 사람들이 모이면서 엄격했던 출입 제한과 각종 규제도 차츰 완화되고 있다. 철조망 너머 ‘알 수 없는 땅’은 ‘언젠가 한 번쯤 찾아가 봐야 할 땅’으로 우리 곁에 성큼 다가와 있다.

비무장지대 빗장 풀어
페루 환경전문매체 몬가베이는 지난해 8월 24일 영장류학 박사이자 전 세계자연보전연맹 부위원 러셀 미터마이어의 논평을 인용해 한반도에 평화가 찾아오면 DMZ의 동식물 등 생태계를 영구적으로 보호하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러셀 미터마이어 박사는 “DMZ 지역은 휴전으로 인해 70년간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식물과 동물에게 ‘낙원’이 됐다. 통일 이후에도 해당 지역을 보전해 생물종다양성을 지켜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러셀 박사는 DMZ를 보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생태관광지화’를 꼽았고, 그 이유를 콩고민주공화국의 비룽가국립공원을 사례로 인용했다.  

 

비룽가국립공원은 지난 1992년 르완다 내전 당시 피난민이 대거 밀려들어 삼림과 생태계가 심하게 훼손되자 1994년 유네스코가 세계유산 목록에 등재하고 제한적인 생태관광 투어로 경제가치를 전환했다. 러셀 박사는 “한반도가 통일되면 DMZ를 개발하려는 외부 압력을, 남과 북이 막아내는 노력을 해야 한다. DMZ는 국제평화, 문화, 역사, 협력의 상징을 가진 지역이 될 것이고 통일이 현실로 다가왔을 때 ‘자연보전’은 그 의미를 더욱 강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DMZ의 면적은 907㎢(약 3억평)으로 한반도 전체 면적의 0.4% 정도지만 생태적, 경제적 측면에서 활용가치가 많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지난 4월 판문점 선언이 이뤄지고 남북관계에 긴장이 완화되자 투자가치가 높은 ‘기회의 땅’으로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  

 

경기도는 2020년까지 600억 원을 투입해 파주와 연천지역을 DMZ 생태평화관광지구로 조성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파주권역에는 생태마을특구를 만들고, 연천권역은 두루미 서식지 보전 사업, 두루미 학습원 등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DMZ 내부에는 수백만 개의 ‘지뢰’가 묻혀 있고, 군사적 이유로 황폐화한 땅이 광활하게 존재한다. 70년 가까이 사람 손이 닿지 않은 곳이니만큼 해결해야 할 현실적인 문제도 많다.

DMZ의 철조망과 철조망은 현대적 의미의 성(城)
만리장성도 쓸모없는 고전적인 경계선이지만
후손에게는 보고(寶庫)가 된 것처럼
DMZ는 관광 자원화로서의 가치가 무궁무진


공존의 보물을 품다
정부는 철원을 DMZ세계평화공원 조성 후보지로 꼽았다. 평화 상징성, 환경성, 접근성 등이 적합하고, 다양한 생태 환경성도 갖췄다는 평가다. 한탄강, 토교저수지, 아이스크림고지 등 산지, 습지, 평지를 두루 갖춰 공원 조성에 적합한 것도 이점이다.

 

철원은 군사분계선(DMZ)의 3분의 1이 관할구역에 포함되어 있다. 비무장지대 안에는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후삼국시대 가장 넓은 영토를 지배하며 한반도 최강으로 떠올랐던 궁예의 태봉국 도읍지도 있다. 외성 12.5km, 내성 7.7km에 이르는 이 옛 성터는 잠시 밀봉해둔 역사책의 한 페이지로 비무장지대에 갇힌 채 통일 후 재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또 강원도 철원과 경기도 포천을 경유하여, 연천군을 거쳐 임진강과 합류하는 총 144km 물길 한탄강 일대는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등의 선사시대와 삼국시대, 고려, 조선, 근대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역사와 문화, 자연경관의 흔적과 신비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천혜의 보고가 아닐 수 없다. 현무암 절벽과 협곡으로 빚어진 주상절리(柱狀節理), 폭포수 등 천연기념물급 경승지로서 지질학적 가치가 뛰어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여 세계가 공동으로 보존하고 가꾸어야 할 유산가치가 높은 곳이다.  

 

DMZ 일대는 오랜 지구의 운동이 선사한 신비의 땅, 인류의 역사와 문화가 자연과 조화로운 땅, 인간의 전쟁까지 포용하며 오히려 천혜의 경관을 선사한 땅으로 존재한다. 생태환경 전문가들은 철원과 인근 DMZ 지역에 평화생태벨트 조성 등 한반도 통일 기반 구축에 필요한 사업들에 대해 의욕을 보인 바 있다.

 

이철우 전 국회의원은 “철책선은 인류 최대의 설치미술이다. 먼 훗날 철책이 벨트로 유지되고 있는 곳은 전 세계 아무 데도 없다. 실제 독일의 경우 갑작스러운 통일로 DMZ를 ‘하나의 벨트’로 보존하는 데 실패했다”면서 “DMZ의 철조망과 철조망은 중국의 만리장성에 비견할 수 있다. 현대적 의미의 성이다. 만리장성도 쓸모없는 고전적인 경계선이지만 후손에게는 보고(寶庫)가 된 것처럼 관광 자원화로서의 가치가 크다”고 말했다.

경제가치 그 이상
박용묵 국립생태원장은 DMZ 일원이 군 전술도로, 군사시설 확장, 진지공사 등의 영향으로 서식지가 훼손되고 있어 안타깝다며, “1953년 휴전 이후 자연 스스로 회복한 세계적인 생태계의 보고이자, 백두대간, 도서연안과 함께 한반도 핵심 생태축인 DMZ에는 전국 생물종의 23%(5929종)와 멸종위기종의 38%(101종)가 서식 중이다. 하지만 1993년, 1997년, 2008년 세 차례에 걸친 민간인통제선의 북상으로 보호 면적의 감소와 개발행위가 증가하고 있으며, 접경지역지원특별법으로 토지전용기준 및 개발조건이 완화되어 DMZ 접경지역 지역개발에 대한 열망이 매우 높은 상황이다. 향후 남북관계 개선 및 통일 시 DMZ 일원의 토지소유권 분쟁 또는 무분별한 토지이용이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20년간 임진강과 민통선에서 두루미를 관찰하며 사진을 찍어온 이석우 의정부양주동두천 환경운동연합 공동의장은 정부에서 추진하는 DMZ 생태관광 관련 사업에 의문을 달았다. “이전 정권에서도 DMZ 평화공원 조성사업을 추진하다가 중단됐는데 생태보전이 아닌 시설물 등 설치나 건설 등에 치우치는 경우가 많았다. 연천만 하더라도 임진강 주변의 두루미 서식지가 민통선으로 인해 그나마 보호되던 상황인데, 제한지역을 해제할수록 서식지 파괴가 뻔하다. 철원도 민통선 해제로 축사가 들어서지 않았나. 지자체가 앞다퉈 개발 계획을 내놓는 등 한시적인 정책이 남발하고 있다”고 우려되는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섣부른 개발로 다시 회복할 수 없는 문화유산이 파괴되지 않도록 개발제한 가이드라인부터 마련해야 한다. 그래서 천연기념물들이 자유롭게 남북을 왕래할 수 있는 터전으로 보존하고 가꿔야 한다. 생태체험 활동에도 관심이 많은데 위험한 발상이다. 사람이 아닌 동물들에게 우선권을 부여하지 않는 이상 생태환경을 보존할 방법은 없다”고 못박았다,

천연기념물들이 자유롭게
남북을 왕래할 수 있는 터전 되어야
사람 아닌 동물들에게 우선권 부여해야
DMZ 생태환경 보존 가능해


평화·생태의 출발선에서
세계 2차대전은 한반도의 분단을 남겼다. 155마일 휴전선은 엄밀한 의미에서 2차대전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한반도 DMZ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냉전시대의 아픔을 다시금 되새겨 볼 수 있는 공간인 만큼, 우리에게는 불행한 역사인 동시에 후세에 끝없이 이야기 되어져야 할 교육의 산실이다. 그것만으로도 DMZ의 활용가치는 충분하다.

 

그래도 희망적인 것은 2000년대 접어들어 DMZ 평화정책에 새로운 변화가 시작된 점이다. 이전까지는 ‘직접적인 평화정책’에서 자연생태를 매개로 한 ‘간접적인 평화정책’이 주를 이뤘다는 점이다. 우리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DMZ의 자연생태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2001년에 DMZ를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하는 방안이 추진됐고, 2004년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방안도 제안됐다.  

 

또 강원도의 강원평화지역인 철원, 화천, 양구, 인제, 고성을 2014년 국가지질공원 인증을 받고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인증에 한 걸음 다가갔다. DMZ의 자연은 차가운 냉전의 유물이 아닌 세계인이 아끼는 자연 유산으로 거듭나는 데 물꼬가 된 셈이다. 다만, 철원군 일대의 완충·전이 지역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 점이 지난해 4월 유네스코 국제자문위원회 검토과정에서도 문제점으로 지적된 부분은 우리의 고민이 필요한 부분이다.  

 

DMZ 일대가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되면 해당 지역은 자국 관련 법률에 따라 핵심지역, 완충지역, 전이지역으로 세분화되어 체계적으로 관리되며 무분별한 개발이 억제된다. 또한 생태관광, 환경보전과 병행한 개발, 생태계 변화 모니터, 전 세계 네트워크와 연결된 교류 등 유네스코의 다양한 지원이 뒤따라 보전과 개발이라는 목표를 동시에 추구할 수 있다.

 

2017년부터 통일걷기 행사를 진행하고 있는 이인영 의원(더불어민주당, 서울 구로갑)은 지난해 “민통선, 평화로 걷다”로 340km를 완주함으로써 DMZ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 의원은 “기성세대와 미래세대가 함께 통일걷기를 하면서 삶에 밀착되는 통일을 염원하고 있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평화통일의 바람을 다지고, 접경지역의 안보, 생태계 등에 대해 새로운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고 행사의 취지를 밝혔다. 그러면서 “민통선이 부디 민족통일로 가는 길이자 평화와 생태의 출발선이 되길 고대한다”고 덧붙였다. 

 

[환경미디어= 김명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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