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디어= 황원희 기자] 직장 구내식당에서 육류 중심의 점심을 식물성 메뉴로 전환하면 식사의 탄소발자국을 크게 줄일 수 있지만, 실제 직장 구성원들의 상당수는 이러한 변화에 거부감을 보인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특히 식물성 식단에 대한 조직의 수용성이 높은 직장일수록 실제 제공되는 점심의 탄소발자국도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덴마크 코펜하겐대학교 식품·자원경제학과 연구진은 구내식당·케이터링업체 Jespers Torvekøkken과 함께 수도권 62개 사업장을 대상으로 식물성 점심 도입에 대한 조직의 준비도와 실제 식단의 탄소발자국을 분석했다. 연구 결과는 npj Climate Action에 발표됐다.
연구진은 직원들의 인식과 조직문화를 분석해 사업장을 식물성 식단 전환에 대한 ‘준비형’, ‘혼합형’, ‘저항형’으로 구분했다. 분석 결과 식물성 점심 확대에 비교적 적극적인 직장은 전체의 13%에 불과했다. 반면 42%는 변화에 저항하는 조직으로 분류됐으며 나머지 45%는 다양한 수준의 수용성과 저항이 혼재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직의 태도는 실제 식탁에도 반영됐다. 변화에 저항하는 직장에서는 고기를 주재료로 사용하는 전통적인 덴마크식 메뉴가 상대적으로 많이 제공됐다. 반대로 식물성 전환 준비도가 높은 사업장에서는 육류 중심 메뉴의 비중이 낮았다.
이에 따라 점심의 탄소발자국에도 상당한 차이가 발생했다. 연구논문에 따르면 변화 준비형 사업장의 점심식사 탄소발자국은 변화 저항형 사업장보다 28% 낮았으며, 혼합형 사업장보다도 21% 낮았다. 연구진은 조직문화와 구성원의 변화 수용성이 실제 식생활과 온실가스 배출에 연결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라고 설명했다.
식단 자체를 바꿨을 때의 감축 잠재력은 더욱 컸다. 코펜하겐대 연구진이 케이터링업체가 제공한 메뉴의 기후 영향을 계산한 결과, 채식 점심의 평균 탄소발자국은 육류가 포함된 점심보다 약 60% 낮았다. 영국의 대규모 케이터링 시설을 대상으로 한 다른 연구에서는 일부 육류 메뉴를 채식 또는 비건 메뉴로 바꿀 경우 식사의 탄소발자국을 80% 이상 줄일 수 있는 사례도 확인됐다.
하지만 탄소감축 효과와 실제 수용성 사이에는 상당한 간극이 존재했다. 2024년 덴마크 성인 89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별도의 전국 조사에서는 직장 점심제도를 이용하는 응답자의 약 40%가 식물성 식단 확대에 ‘짜증이 날 것’이라고 답했고, 22%는 ‘화가 날 것’이라고 응답했다. 약 절반은 자신의 음식 선택 자유가 제한된다고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조사는 이번 npj Climate Action 논문의 직장 62곳 분석과는 별도로 진행됐으며, 연구 프로젝트 ‘Normplant’의 덴마크 보고서에 수록됐다.
조직 특성에 따른 차이도 있었다. 서비스·지식집약 산업의 직장은 식물성 점심에 상대적으로 개방적인 반면 1차 산업이나 생산직 중심 사업장에서는 저항이 더 강했다. 평소 고기를 적게 먹는 직원이 많은 직장 역시 전환 수용도가 높았고, 남성 직원 비율이 높은 직장에서는 저항이 상대적으로 큰 경향이 나타났다.
흥미로운 점은 식물성 음식에 대한 사전 거부감이 실제 식사 만족도 저하로 그대로 이어지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전국 조사에서 식물성 메뉴를 제공하는 직장의 직원들이 그렇지 않은 직장 직원보다 구내식당 음식에 뚜렷하게 덜 만족하는 경향은 나타나지 않았다. 다만 채식 메뉴만 제공하는 날이 주 1회를 넘어서는 경우에는 차이가 나타날 가능성이 있었다.
연구진은 이에 따라 식물성 식단에 대한 일부 반발이 실제 경험에 근거한 불만이라기보다 음식 선택을 제한받는다는 인식에서 나타나는 즉각적인 심리적 저항일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연구 공동저자인 메테 와인라이히 한센 부교수는 식물성 요리가 맛과 외관, 만족도 측면에서 매력적으로 제공되고 회의적인 직원이 긍정적인 식사 경험을 하게 된다면 태도 역시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구내식당과 외식·급식업계의 메뉴 개발 역량이 식생활의 녹색전환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연구는 식품 부문의 탄소감축이 단순히 ‘고기를 줄이고 채소를 늘리는’ 기술적인 문제만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식단의 탄소발자국을 낮출 수 있는 잠재력이 크더라도 구성원이 이를 강요로 받아들인다면 조직 차원의 전환은 쉽지 않다.
연구진은 따라서 모든 직장에 동일한 식물성 식단 정책을 적용하기보다 조직별 준비도와 저항 수준을 파악하고, 맛과 선택권을 확보하면서 단계적으로 메뉴를 전환하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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