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 미제라블과 파리의 하수도①

19세기 프랑스 파리 하수도에 대하여
글. (주)고비 호 부회장
김한결 기자 | eco@ecomedia.co.kr | 입력 2026-02-06 15:2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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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위고의 위대한 작품, 레 미제라블 속에 담긴 파리의 하수도
프랑스의 국민 작가인 빅토르 위고(Victor Hugo,1802-1885)는 영화와 뮤지컬로 만들어진 장편소설 레 미제라블(Les Miserables)의 작가로 유명하다. 정치적으로는 공화주의자로 이름을 날리다 1845년 상원의원이 됐고 1851년 나폴레옹 3세의 쿠데타에 저항해 19년간 망명 생활을 했다. 제정 붕괴 후, 민중의 갈채를 받고 파리로 돌아와, 83세의 나이로 사망했을 때는 성대한 국장이 행해졌다.

레 미제라블은 위고가 1845년에 착수하여 1860년까지 16년에 걸쳐 완성한 대작이다. 역사적으로는 1815년 워털루 전쟁에서 나폴레옹의 몰락에서 시작하여 산업화 초기의 빈곤‧아동, 여성 등 심각한 사회적 문제에 직면했던 1820년대의 왕정복고 체제 그리고 1832년 파리의 6월 봉기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어 19세기 프랑스 사회의 시대적 분위기를 잘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배고파 우는 조카들을 위해 빵을 훔친 죄로 감옥에 들어가 19년간이라는 긴 옥살이를 한 주인공 장발장이 미리엘 주교를 만나 깨달음을 얻고 참다운 삶을 살아가는 과정을 통해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과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인간애를 나타내고 있다. 이 대작은 사회의 비참상, 인간의 선함, 노력에 의한 사회의 개선을 호소한다.

소설 레 미제라블은 제1부 팡틴(Fantine), 제2부 코제트(Cosette) 제3부 마리우스(Marius) ,제4부 플뤼메 거리의 비극과 플뤼메 거리의 서사시(L'idylle rue Plumet et l'épopée rue Saint-Denis), 제5부 장발장(Jean Valjean)의 다섯 개의 큰 주제 아래 19세기 프랑스의 역사적 격변 속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인물들의 삶과 운명을 밀도 있게 그려낸 작품이다.

위고는 소설 중 하수도에만 대략 80~90쪽의 분량을 할애하고 있어 하수도는 이 소설에서 단순한 배경이 아닌 도시 문명론이라 할만하다. 특히 장발장이 파리, 6월 봉기에서 총상을 입은 양녀 코제트의 연인, 마리우스를 업고 도망쳐 들어간 파리의 하수도에 대한 지식을 제5부 제2편 제1장(바다 때문에 메마른 땅)에서 제6장(미래의 진보)까지의 6개 장에 쏟아부었다.

 


“파리는 지하에 또 하나의 파리, 하수도의 파리가 있다 ”
위고는 파리의 하수도를 '거기에는 가로가 있고, 네 갈래가 있고, 광장이 있고, 막다른 골목이 있고, 큰길이 있고, 흙탕물의 왕래가 있고, 없는 것은 사람의 모습뿐이다'라고 표현하듯 하수도로 대표되는 파리의 또 다른 지하도시의 얼굴을 그리고 있다.

위고는 19세기 팽창하던 파리라는 도시의 내부를 하수도라는 장치를 통해 해부한다. 하수도는 그에게 단순한 배수 시설이 아니라, 인간 사회의 부정적이고 어두운 현실과 동시에 구원의 가능성, 그리고 시대가 만들어낸 허상과 실상이 응축된 공간이었다. 이 때문에 《레 미제라블》에서 파리의 하수도는 배경을 넘어 하나의 핵심 주제로 기능하며, 작품 전체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이룬다.

위고는 소설 속에서 파리 하수도를 집중적으로 다룬 여러 장을 통해 도시 문명에 대한 자신의 사상과 비판을 드러낸다. 각 장의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1장 〈바다 때문에 메마른 땅〉
위고는 오니(汚泥)의 재이용 필요성을 강조하며, 인분을 비료로 활용하는 중국 농부의 사례를 소개한다. 그는 “파리는 사람에게서 나온 비료와 양분을 토지에 돌려주지 않고, 하수도를 통해 강으로, 다시 바다로 토해내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어 “파리는 매년 2,500만 프랑을 물에 던지고 있다”고 말하며, 도시의 ‘내장’인 하수도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 채 막대한 자원을 낭비하고 있음을 비판한다. 위고에 따르면 파리 하수도로 흘러든 분뇨는 센강을 오염시키고, 홍수 때는 오수가 역류해 거리 전체를 악취로 뒤덮는다. 그러나 이를 적절히 처리해 비료로 활용한다면 토지를 비옥하게 하고 식량 문제 해결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나아가 “세계가 잃고 있는 사람과 동물의 모든 거름을 바다에 버리지 않고 땅으로 돌려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세계를 먹여 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제2장 〈하수도의 옛 역사〉
위고는 하수도의 기원을 중세 이후 후기 로마제국과 동방 세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오수 구덩이와 하수도가 “뇌옥의 역할을 했고, 흑사병이 그곳에서 생겨났으며, 전제군주들이 그곳에서 죽었다”고 서술한다. 하수도는 오랫동안 ‘죽음의 신의 흉측한 요람’으로 인식되며 종교적 공포의 대상이었다.

파리의 하수도 역시 오래되고 공포스러운 공간이었다. 그것은 묘지이자 피난처였으며, 범죄자와 사상가, 사회적 항의와 신앙의 자유, 법의 추적을 피해 숨고자 했던 모든 것이 몸을 숨기는 장소였다.

위고는 이 지점에서 하수도를 “도시의 양심”이라고 정의한다. 모든 것이 그곳에 모여 얼굴을 마주하며, 어둠은 있지만 더 이상 비밀은 없다. 쓰레기 더미 속에는 거짓이 없고, 오히려 가장 솔직한 진실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

제3장 〈브륀조〉
위고는 하수도에 대해 서술하면서 브륀조의 보고서를 참고했음을 명확히 밝힌다. 브륀조는 실제 인물로, 누구도 엄두 내지 못했던 파리 하수도 조사를 수행해 개선의 기초를 닦은 인물이다.

위고는 “파리의 하수도는 중세에는 전설적인 존재였고, 16세기 앙리 2세의 조사 시도도 실패로 끝났으며, 불과 100년 전까지만 해도 방치돼 있었다”고 설명한다. 그 결과 하수도 범람은 잦았고, 문명의 ‘위장’은 소화불량에 걸려 시궁창이 도시의 목구멍까지 역류하곤 했다.

1805년 어느 날, 내무장관이 나폴레옹에게 “제국에서 가장 대담한 사람을 만났다”고 보고한다. 그 인물은 바로 파리 하수도를 조사하겠다고 나선 브륀조였다.

제4장 〈알려지지 않은 세세한 일들〉
브륀조의 하수도 조사는 위고의 표현대로 “무시무시한 작전이자, 패스트와 질식과의 야간 전투”였다. 동시에 그것은 미지의 세계를 향한 탐험이었다.

그는 20명의 작업원을 이끌고 진흙을 준설하며 동시에 측량을 진행했다. 하수도의 모든 구간을 점검해 지도를 작성했고, 때로는 기절한 인부를 밖으로 실어 나르기도 했다. 지반이 무너지고 하수도는 바닥을 알 수 없는 늪으로 변해 있었다.

1805년부터 1812년까지 7년에 걸쳐 파리의 지하 오물처리장이 전면 조사됐고, 하수도망은 소독과 정화를 거쳤다. 위고는 이를 두고 “구사회가 자신의 이중의 밑바닥을 청소하고 하수도를 화장한 것”이라 표현한다.

그가 묘사한 옛 파리의 하수도는 꾸불꾸불하고 깨지고 금이 가 있으며, 웅덩이와 굴곡이 이어지고, 구린내와 어둠이 가득한, 야생적이고 거친 공간이었다. 타일에는 상처가 남아 있고, 벽에는 흉터가 가득한, 말 그대로 문명의 상처 그 자체였다.

 

다음에 계속 (레 미제라블과 파리의 하수도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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