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산의 시시닷컴> 사랑이 시작된다는 건 - 유경희

김한결 기자 | eco@ecomedia.co.kr | 입력 2021-04-06 13: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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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ㅣ김석종 연세대, Southern Illinois University 사진학과 졸업, 개인전 17회

 

 

사랑이 시작된다는 건 

 

                                                                      유경희

사랑이 시작된다는 건 세상에 없는 색채와 소리를
잠시 보고 들을 수 있다는 것
사랑이 시작된다는 건 오래 전에 잉크로 그려 넣은 나무에
새가 한 마리 와서 운다는 것
사랑이 시작된다는 건 그 노래를 따라
숲의 가장 고요한 곳까지 가보는 것
사랑이 시작된다는 건 신들이 때로 질투를 하기도 한다는 것
이건 그의 것이 아니야 물론 내 것도 아니지
이건 당지 상황일 뿐
우리 생애의 한 지점에서 전생의 기억이 말을 걸어오면
웃으면서 인사를 할 일이다

사랑이 시작된다는 건 혼자 우는 시간이 많아진다는 것

『내가 침묵이었을 때』, 문학의 전당, 2016


사랑이란 신비 그 자체이다.
세상에 보고 들을 수 없는 색과 소리를 보고 들을 수 있는 것이 사랑이다.
사랑이 시작되면 그림 속의 나무에 새가 날아와 노래하고 그 노랫소리를 따라
숲의 가장 고요한 곳까지 가볼 수도 있다.
이처럼 불가능한 일이 가능해지는 게 사랑의 시작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랑이 마냥 행복하기만 한 건 아니다.
사랑은 때론 헤어질 위기를 맞기도 한다.
찬란했던 사랑 후에 찾아온 이별은 견디기가 어렵다.
사랑할 때는 꽃과 달, 해, 바다, 온 세상이 나를 위해 존재했는데
이별을 앞에 두곤 온 세상이 무너진다.
그저 그와 나의 이별인데 신들의 질투인 양 세상이 암흑으로 변한다.
그가 전생의 원수처럼 보이고
새의 노래가 노래로 들리지 않고 울음으로 들린다.
숲속 나뭇등걸에 기대고 앉아 생각해본다.
전생의 원수가 이생에선 사랑하는 대상이 되기도 한다지?
그와 사랑을 시작했다는 것이 내 생애를 빛나게 해주었으니
어디에선가에서 우연히 만나면 웃으면서 인사를 해야겠다. 

 

 

글ㅣ박미산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박사 졸업(문학박사)

시집 「루낭의 지도」, 「태양의 혀」, 「흰 당나귀를 만나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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