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눈물, 정글속 대한민국 구조할 수 있다면

김영민 | eco@ecomedia.co.kr | 입력 2014-05-20 09: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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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없이/어찌 대통령이 되랴/ 눈물 한 방울로/ 고귀한 진주가 되어/ 저 깊은 바다 눈물 닦고/ 새 울림이 되도다.

살며 맺히는/ 그 많은 아픔/ 그 많은 눈물을/ 한 사람이 어이 닦으랴.

무슨 말로/ 어떤 행동으로도/ 그들에게 꿈을 말하랴/ 희망을 노래하랴

나도 아프도다/ 함께 일어서자/ 새 빛으로 달려가자는/ 저 깊은 마음의 북소리. <시인 신호현 작>

 

눈물이 담긴 대통령 대국민 담화의 진정성을 놓고 왈가불가, 시끄럽다. 신뢰가 무너진 증거였으며 오래전부터 안전핀이 빠져있었음을 자인했다.

 

대통령의 눈물, 대통령의 이전에 여성으로써 복받쳐 오는 회한의 뜨거운 만감이 교체했을 것이다. 비록 대통령의 눈물이라고 해도 희생자들의 눈물과 맞바꿀 수는 없다.

 

대국민 담화에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대통령으로서 국민이 겪은 고통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살릴 수도 있었던 이들을 살리지 못했고, 대응 미숙으로 혼란과, 안전 문제가 예견됐는데도 바로 잡지 못한 점에 분노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국민을 위로했다.

 

또 "지켜 주지 못해 대통령으로서 비애감이 든다"며 "채 피지도 못한 많은 학생들과 마지막 가족여행이 돼 버린 혼자 남은 아이, 그 밖에 눈물로 이어지는 희생자들의 안타까움, 번민으로 잠을 이루지 못한 나날이었다"고 밝혔다.

 

그리고 내놓은 히든카드는 창립 61년 역사의 접겠다는 해양경찰 해체와 안전행정부의 분리 강화, 더불어 국가안전처 신설을 내놨다. 영화 '변호인'처럼 대담화 끝머리에선 희생자들의 이름을 부르며 눈물을 주루륵 흘렸다.

 

대통령의 눈물은 처음이 아니다. 과거 시국전환용으로 꺼내든 건 '눈물'은 박정희 전 대통령, DJ, 노무현, MB 까지도 눈물의 무기로 돌아선 국민들을 끌어안으려 했다.

  

눈물의 매개체만큼 큰 감동은 없다. 한마디로 말보다 한번의 눈물이 더 호소력이 짙다. 담화문속에는 또 하나의 숨겨진 우리의 무기력, 무능, 무책임의 현실이 고스란히 드러워졌음을 눈물은 대신했다.

 

지난 주말 세월호 참사와 5.18 민주화운동기념과 관련 정권퇴진, 책임자 처벌을 주장하며 수많은 시민들이 움집했다. 경찰의 신속하게 강제진압으로 해산했다. 경찰은 잽빠르게 집회참가자들을 진압하는 과정을 보며 "구조를 그런 식으로 하지,.."라고 다시 탄식했다.

 

아직도 국민들은 철권정치에 주눅이 들만 하건만 특별한 DNA는 변형되지 않고 늘 꿈틀거린다. 이를 두고 사회학자들은 "꿈틀거림을 키웠던 건 바로 대통령으로부터 만들어져왔다"고 단언한다.

 

잠깐의 눈물로 치욕의 역사를 지울 수는 없다. 그야말로 누구 할 것없이 만신창이로, 반복의 지난 34일 고통과 비극만으로 기억되는 이 땅의 주인, 대통령도 아닌 국민였기에 지도자의 눈물을 봐야 했다.

 

"곧 잊혀지겠지, 잊혀질거야, 잊도록 어떻게 공작정치가 필요해"라는 밀실정치도 더 이상 통용되지 않게 됐다. 어눌하든 하지만 사실은 빼앗긴 우리의 목소리, 권리의 큰 함성으로 산천을 흔들어 놓은 만큼 높고 거칠다.

 

개가 주인을 닮아간다고 한다. 정글속 대한민국이 닮아가고 있다. 분배의 균형이 무너진지 오래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과중한 경쟁을 부추기는 정치 경제에 등돌린 국민들이 배신한 뉴스로부터 돌아앉아 TV리모콘을 팍팍 누리는 그 심정은 꼴도 보기싫어졌을 만큼 식상해졌다.

 

4월과 5월이 빼앗긴 봄날도 부족해, 노골적으로 공안정권때나 있었을 법한 보도지침의 망령이 아직도 떠들고 있음을 또 한번 소름돋게 한다. 충견의 저널리즘이 얼마나 상업화가 됐는지 우리 사회는 마치 기형아의 자궁이였다.

 

일자무식 국민들이 많다고 대통령이 국민의 편이라고 생각했다면 큰 오산, 그 수가 얼마 쯤될까. 열과 성을 다해줄 것을 바랬건만, 소망은 갈기갈기 찢겨진 우산을 쓴 몰골이니 어쩌란 말인가.

 

실례로 참혹한 진풍경을 보여준 참담함과 비참함의 비수를 꽂은 현실, 대통령조차 감당하지 못한 부조리. 산술적으로 보면 대통령에게는 이번 담화문은 불행함이 담겨져있었다. 혹여나 등 떠밀려서 억지로 사과를 한 것으로 오해하지는 않겠다.

 

앓은 소리만 하고 관료주의, 일하지 않는 정치인, 대기업에 기생하는 정치, 이를 이용하는 공직자, 학문이 깨진 학교, 끼리끼리 계급조직, 속칭 꼰대들의 집합소 관변단체, 다 주워 담을 수 없을 만큼 국가는 국민 개개인을 버리고 있다. 희생으로 상처받은 이들에게 불합리하고 불공정함에 깊은 상처만 채워준 34일 내내 반복의 희생자만 늘어나는 카운터를 세는 이 나라였으니 말이다. 

 

굳이 GDP, GNP 수치에, FIFA 랭킹이 더 중요하게 작용됐던 나라가 아니던가, 안전핀이 빠진 원흉의 뒷골목에는 원가절감에만 목을 맺고, 정도(正道)는 없는 실적이 저조하면 비정규직으로 대체했고, 아파도 사직서를 못던지는 아버지, 찬값이라도 벌겠다는 파트타임에 뛰어든 어머니가 얼마였던지, 한편에선 이런 노동력을 착취해 얻은 부는 그 얼마나 권력으로 스며들었던지 이젠 알바가 아니다.

 

그뿐인가. 멀쩡하게 잘하는 조직을 흔들어놓은 기이한 규제의 올가미가 기존 정책을 파기하는 악순환 역시도 알고보면 관피아의 노골적인 밀착이 동맹의 끄나풀이 동여져 매여있었다.

 

그러면서 선진국 대열의 반석위에 올려놨다며 브랜드가치를 논하는 것도, 이제는 부끄럽다. 사회 구조는 경제적 관료사회의 체제가 역삼각형 기형아를 키웠던 죄값이 수많은 이들을 수장시키지 않았느냐 말이다.

 

대통령도 엉덩이에 뿔난 관료사회가 스스로 가면을 벗기를 기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작심했을 터, 남은 3년내 그 얼마나 개혁의 손질을 가할지 앞이 보인다.

 

만만치 않다. 호락호락한 그들이 아니다. 지도자 한 사람만으로 모든 부조리함을 솎아낼 수 있을 것이라면 오산이다. 사라진 서민정치로 이미 피골이 상접한 국민들은 살찌우게 하는 건 꿈결같은 미사여구다.

 

행복지수 낮은 나라에서, 세월호는 번번히 실패한 정치를 그대로 보여줬고, 낯익은 듯한 그 사람과 그 사람들의 권력의 사이에 국민들은 국가로부터 보호하는 채널은 고장나 있었다.

 

신뢰를 깬 정치에 기댈 곳 없어진 지금, 그 어떤 대안도 효력도 없어졌다. 자의적 타의적 응급한 국가, 불균형의 변태적임을 조롱하듯 조율하는 누구도 빠져 나오기 힘든 정글의 나라다. 일그러진 권력의 틈바구니에서 언론들이 공분에 대해 서서히 잦아들기를 왜곡한 앞잡이 노릇에 신물이 날 정도니 양심의 정치을 호소하는 건 과분할 수밖에 없다.

 

짚어보면 환경산업도 철저하게 변질되고 있다. 대통령에 대한 잣대가 아닌 공무를 빙자한 국민 위에 군림하는 공직자들의 도덕 윤리가 무뎌진 지금, 더 이상 용납해서는 안되며 올바르게 잡아야 한다. 한편에서는 언론길들이기식 폄하와 편가르기를 일삼는 환경관련 관변단체에 대한 끼리끼리 나눠먹는 앓는 소리에 강력한 매스를 필요해졌다.

 

지도자의 리더십 첫 번째 덕목인 덕치(德治)로, 대통령이 흘린 눈물이 정글속 대한민국을 구하는 마지막 보루였기를 바란다. 눈물의 씨앗이 싹이 터 환부를 도려내는 부정부패를 척결하는 양분이 돼 새로운 대한민국의 시작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내년 4월 16일 기억하며, 온국민이 감사의 손수건으로 지도자가 흘린 땀방울을 닦아 주는 날로 기억했으면 한다.

 

김영민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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