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이 곧 식량위기는 아니다…정부 대응력·조달 다양성이 충격 완충

황원희 기자 | eco@ecomedia.co.kr | 입력 2026-09-15 22: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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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디어= 황원희 기자] 홍수와 가뭄, 산불, 분쟁, 전염병과 같은 충격이 발생하더라도 반드시 식량위기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국가의 경제 수준이나 재난 노출 정도뿐 아니라 정부의 대응 역량과 식량 조달 경로의 다양성, 기술·금융 접근성, 사회적 연결망이 식량안보를 좌우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국제생물다양성연합·국제열대농업센터(Alliance of Bioversity International and CIAT)를 중심으로 한 국제연구진은 세계 수십 개국에서 10년 넘게 축적된 자료를 이용해 재난·충격과 식량불안의 관계를 분석했다.

연구 결과는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충격과 식량불안의 분리: 식량시스템 회복탄력성에 관한 세계적 분석’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됐다.

홍수와 가뭄 같은 기후재난은 농작물과 가축을 잃게 하고 식량 저장시설과 도로를 파괴한다. 물을 오염시키거나 지역사회를 고립시켜 시장과 식품에 대한 접근을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분쟁과 경제위기, 감염병도 농업 생산과 유통을 중단시키고 소득과 구매력을 떨어뜨린다. 이러한 충격은 일반적으로 식량 부족과 영양 악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연구진은 충격의 발생 자체와 그 결과로 나타나는 식량불안을 구분해야 한다고 봤다. 같은 정도의 재난을 겪더라도 국가와 지역사회의 대응 능력에 따라 식량안보에 미치는 결과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분석 결과 특히 아시아 일부 국가에서는 다른 국가보다 재난의 영향을 많이 받으면서도 장기적인 식량안보 지표가 개선된 사례가 확인됐다. 충격에 자주 노출된다는 사실만으로 식량위기의 정도를 예측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연구진은 이를 충격과 식량불안의 ‘분리’로 설명했다. 재난 발생을 완전히 막기는 어렵지만, 사전에 식량시스템의 회복탄력성을 높이면 충격이 기아와 영양실조로 확산하는 경로를 약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주저자인 국제생물다양성연합·CIAT의 수석과학자 겸 정책고문인 크리스토프 베네 박사는 기후변화와 분쟁, 감염병으로 충격이 증가하는 상황에서도 식량위기가 불가피한 결과는 아니며, 국가와 식량시스템이 충분히 준비돼 있다면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국가의 발전 수준과 소득뿐 아니라 재난의 빈도와 강도, 정부 역량, 기반시설, 경제적·사회적 결속력, 식량시스템의 구조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했다. 그 결과 국가가 얼마나 부유한지 또는 재난을 얼마나 자주 겪는지만으로는 충격 이후의 식량안보 변화를 충분히 설명하기 어려웠다. 정부와 공공서비스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식량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이 여러 가지인지, 가계와 지역사회가 충격을 견딜 역량을 갖췄는지가 중요하게 나타났다.

정부의 효율성은 재난 발생 전 위험을 예측하고 발생 이후 구호와 복구 자원을 배분하는 능력과 연결된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공공기관의 역할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식량이 있어도 필요한 지역으로 운송하거나 취약계층에 전달하기 어렵다.

도로와 항만, 저장시설, 전력과 통신 같은 기반시설도 핵심 요소로 꼽혔다. 한 지역의 농업 생산이 타격을 받았을 때 다른 지역에서 식량을 공급하려면 대체 운송망과 저장·유통시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농업기술과 정보에 대한 접근성, 금융시장 이용 가능성도 회복탄력성과 관련된 것으로 분석됐다. 농민과 식품업체가 자금과 보험, 기술을 이용할 수 있으면 피해를 복구하고 생산을 재개하기 쉬워진다.

연구진이 주목한 또 다른 요소는 식량시스템의 다양성과 중복성이다. 이는 불필요한 낭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공급 경로가 끊겼을 때 사용할 수 있는 대체 수단을 확보하는 것을 뜻한다.

특정 지역이나 작물, 수입국 또는 운송로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평상시에는 비용을 줄일 수 있지만 재난이나 분쟁이 발생했을 때 전체 공급망이 흔들릴 수 있다. 반면 국내 생산과 수입, 지역 유통과 광역 유통을 적절히 조합하고 여러 공급업체와 운송 경로를 확보하면 충격을 분산할 수 있다.

사회적 자본도 장기적인 회복탄력성을 높이는 요인으로 나타났다. 사회적 자본은 가족과 이웃, 지역단체, 협동조합 등 사람들 사이의 관계와 신뢰, 상호지원망을 뜻한다. 재난이 발생하면 공식적인 정부 지원이 현장에 도달하기까지 시간이 걸릴 수 있다. 이때 주민들이 식량과 물, 운송수단,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지역사회는 초기 충격을 더 잘 견딜 수 있다.

농민협동조합과 지역 식품조직, 마을 단위의 돌봄망도 식량 생산과 분배를 유지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반대로 사회적 갈등과 불평등이 심하고 공공기관에 대한 신뢰가 낮으면 지원이 필요한 주민을 파악하고 자원을 공정하게 배분하기 어려워진다.

공동저자인 비베로-폴은 식량시스템의 회복탄력성을 높이려면 정부와 개발기관, 금융기관이 충격을 예측하고 대응할 수 있는 공공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고 알렸다. 또한 공급망의 효율성만 높이기보다 다양성과 중복성을 확보하고, 가계와 지역사회가 영양과 생계자산을 보호할 수 있도록 인적 역량에도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국가 단위 자료를 이용한 분석은 한계도 있다. 국가 전체의 식량안보 지표가 개선됐더라도 저소득층과 농촌 주민, 여성과 어린이, 난민 등 특정 집단은 더 큰 피해를 경험할 수 있다. 국가 평균만으로 지역과 계층별 격차를 모두 파악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회복탄력성 평가는 재난 이후 식량 공급량뿐 아니라 식품 가격과 소득, 영양 상태, 취약계층의 접근성, 생산 복구 속도 등을 함께 측정해야 한다. 중앙정부의 지표와 지역·가구 단위 조사를 결합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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