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산업 방향 잡지 못한 원인 하나 우수원천기술 부족 탓

개발도상국 위한 저급기술 선입견 버려야
온라인팀 | eco@ecomedia.co.kr | 입력 2014-04-09 09:5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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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자겸 K-water 해외사업처 PM
일요일, 늘상 쓰던 막대형 TV 리모컨을 찾다가 TV 뒤에서 허옇게 먼지를 뒤집어 쓴 커다란 원조 리모컨을 발견했다.

 

 

4년 전 평면 TV를 구매할 때 건전지를 끼워 넣은 후,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아 제대로 작동이 될까 했는데 다행히 TV가 켜지고 채널도 별 이상 없이 돌아갔다. 

 

그런데 이 시커먼 리모컨에 뭔 버튼이 그렇게 많은지, 하나하나 세어보니 45개다. 늘 쓰던 리모컨은 전원, 소리, 채널, 메뉴 등 네 가지 버튼밖에 없어도 전혀 불편 없이 4년을 사용했다.

 

TV회사는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쓰지도 않는 복잡한 리모컨을 돈 들여서 만든 것일까? 누가 이런 리모컨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만들었을까, 꼭 필요한 기능만 넣어서 팔면 TV가 안 팔리는 것일까 등 쓸데없는 궁금증이 몰려왔다. 동시에 최근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적정기술로 생각은 이어졌다.

 

적정기술, 기본에 충실한 기술

 

적정기술이라고 하면 대부분은 저급한 기술, 저개발국 원조를 위한 기초 기술이라 생각하고, 좀 아는 사람들은 저에너지 저비용기술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생각 뒤에는 적정기술을 좀 만만하게 보거나 낮게 깔보는 태도가 있는 것 같다.

 

만약 이 생각이 사실이라면 깔보는 사람들의 생각 뒤에는 에너지가 많이 소비되고 가격이 비싸야 앞서가는 좋은 기술이고 최신기술인 것으로 생각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내가 직접 현장에서 접한 적정기술은 기본에 충실하고 많은 노력과 아이디어가 접목되어 효과를 보는 기술로 단순하지만 현지의 수요에 맞춘 기술이라 하겠다.

 

또한 우리 모두는 복잡한 것이 좋은 것이라고는 하지만 실제로 복잡한 TV 리모컨의 45개 버튼을 다 사용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대부분 쓰는 기능은 전원, 소리, 채널조정 버튼 세 가지면 충분하지 않은가. 차라리 쓸데없는 기능을 없애고 가격을 내리는 것이 낫지 않을까.

 

△ 적정기술의 대표적인 성공사례인 Deere & Company의 트랙터.

 

 

실제로 이런 생각을 반영시켜 시장에서 성공한 많은 사례 중 세계적인 농기구회사인 Deere & Company는 잘못된 고정관념을 극복하고 현지의 수요에 맞는 제품으로 성공을 거둔 예다.

 

Deere & Company는 John Deere라는 브랜드를 가진 세제적인 농기구 회사로, 세계 2위의 농업생산국이자 최대의 트랙터 시장인 인도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다양한 기능을 가진 600마력짜리 트랙터로 인도 시장을 두드렸다.

 

그러나 첫 번째 도전은 실패로 돌아갔다. 이후 그들이 파악한 인도시장의 요구는 가격과 성능이었다.

 

GNP가 US$3000밖에 안되는 나라의 소작농이 고객이니 당연히 가격은 소득수준에 맞추어야 했지만, 그보다 더욱 어려웠던 것은 가격과는 맞지 않는 성능이었다.

 

미국 농부의 사용시간인 150시간/년의 10배인 1500시간을 요구했으며, 사용연한은 15년 정도 그리고 현재 8km/L인 연비를 12km/L로 올려 달라는 것이 농부들의 요구사항이었다.

 

가격은 내리면서 내구성은 10배로 늘리고 성능은 50% 올리라니 모두들 무리한 요구라고 생각했지만, 세계 최대시장을 포기할 수 없었던 John Deere 기술자들은 가격을 낮추고 성능을 맞추기 위한 수술에 들어갔다.

 

우선 제거한 것이 에어컨, GPS, 그리고 미국 농부들도 자주 쓰지 않는 고급 부가기능을 배재했다.

 

순전히 트랙터 본연의 기능만을 남겨 최적화 시킨 결과 35마력의 신제품인 Krish가 출시됐다. 물론 이 제품은 인도에서 불티나듯 팔려 나갔고 대성공을 거둔 히트상품이 됐다.

 

이에 만족하지 않고 John Deere는 이 제품을 주변 시장인 중국과 터키 시장에서도 런칭, 성공을 거두었고 거꾸로 미국 시장에서도 ‘누가 저 허접한 트랙터를 사겠냐’는 일부의 의구심을 종식시키고 대성공을 거뒀다.

 

국내 물산업 적정기술위해 노력해야

 

위의 사례와 같이 우리 주변에는 기본적인 기능보다 편의성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빈도도 낮은 것에 과도한 비용과 에너지를 요구하는 제품들이 많이 있다.

 

결과적으로는 약간은 편할지 모르겠지만 언제 사용할 지도 모르는 기능을 위해 지나친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 셈이다.

 

혹시 이런 경향이 과거 대량소비시대의 패러다임이 아닌지 의심해볼만 하다. 이제는 뉴노멀이라는 저성장시대라고 하는데도 실제 관행은 여전히 고성장시대의 흥청망청한 분위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과거의 기술이 공급자의 시각에서 때로는 공급자의 편의를 위해 강요하던 기술이었다고 한다면 적정기술은 수요자의 입장에서 수요자의 요구를 최대한 수용한 고객맞춤형 기술이라고 하겠다.

 

또한 적정기술은 철저하게 현지 여건에 맞는 기술이어야 하기 때문에 쓸데없는 거품이 빠진 진짜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바로 이런 개념의 기술이 우리가 필요한 기술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우리나라 물 산업이 방향을 잡지 못한 채 어려운 원인의 하나로 많은 사람들이 우수원천기술의 부족을 꼽고 있다.

 

실제로 많은 돈을 들여 개발된 기술이 현장에서 거의 쓰이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 말은 결과적으로 우수하지 못하다는 말이다.

 

개발 당시에는 획기적인 기술이라는 평가를 들어가며 개발된 기술인데, 실제는 왜 아무도 쓰려고 하지 않을까.

 

원인은 수요자의 요구가 제대로 반영이 안됐거나, 수요와 관계없이 기술이 개발됐기 때문이다. 혹시 지금도 이와 같은 전철을 밟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제 우리 물 산업의 기술이나 제품개발도 몇몇 사람이나 기관의 공급자 주도적인 패러다임에서 철저한 시장조사에 따른 수요자 지향적인 방향으로 바뀌어야 생존할 수 있다.

 

만약 국내에서 이런 시도를 할 수 없다면 인도와 같은 개도국 시장에 진출해 아주 낮은 소득수준을 가진 그들 국가의 소비자가 바라는 성능과 가격을 맞추려는 피나는 노력이 필요하다.

 

악조건에서 성공한 적정기술은 국내에서도 통하는 시대가 됐다. 적정기술이 더 이상 개발도상국을 위한 저급한 기술이라는 잘못된 선입견을 버려야 한다.

 

지금과 같은 저성장시대에는 가격은 싸지만 기본기능에는 충실한 Krish 트랙터 같은 고객지향적인 혁신 제품이 제공되어야 하고 기술개발도 이를 위한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 적정기술은 수요자의 요구에 부응하는 고객지향적 맞춤형 기술이다.

 

김자겸 K-water 해외사업처 해외사업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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