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도 32~43° 선상에 위치한 우리나라는 누에치기(양잠)에 적합한 지리적 범위 내에 속해 있다. 때문에 예로부터 양잠은 중요한 산업으로 육성됐다.
지난 1962년부터 시작된 잠업증산 5개년 계획에 따라 1975년경에는 우리나라 전체 밭 면적의 약 10%를 차지하는 약 9만ha에 이르는 뽕밭을 일굴 정도로 누에를 치는 양잠산업의 호황기도 있었다.
하지만 점차 경제성장에 따른 도시로의 이농 현상으로 인한 노동력의 감소와 보다 다양해진 농가의 소득원의 영향 등으로 1995년에는 3,000여ha로, 2004년에는 1,228ha로까지 줄어든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뽕잎을 먹이로 하고 있는 누에고치의 생산량도 1980년의 69만 5,000여 상자였던 것이 1994년경부터 현저히 감소해 2004년에는 3만 4,000여 상자 정도를 생산하고 있다.
최근 현황을 보면 작년 누에 사육농가는 1,090호, 뽕밭면적은 586ha, 사육량은 1만 5,199상자의 작황을 보였다. 이 통계는 2010년과 대비해 누에 사육농가는 9.6%, 뽕밭 면적 1.8%은 감소했으나, 지속적인 누에 사육 기술지도 등으로 사육량은 소량인 0.2%의 증가를 기록했다.
양잠, 입는 산업에서 건강산업으로 변신
이제 40대 이상의 중년층 세대가 고향의 향수로 기억하게 되는 누에산업 즉 양잠은 그동안 쇠퇴일로를 걸어왔다. 결국 예전처럼 섬유(비단)생산을 위한 양잠산업으로는 더 이상 농가소득원이 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그 결과 양잠은 웬만한 농가에서는 볼 수 없게 됐다. 그렇다고 우리 농업에서 양잠은 농가 주요 소득원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것인가?
21세기의 양잠산업은 새로운 활로모색에 나서야 한다. 그래서 국내 다수의 농가에서 손을 뗀 양잠을 소수이지만 일부 지역과 농가에서는 누에의 건강기능식품화 등을 통해 활로모색에 나서고 있다.
바야흐로 양잠은 소위 ‘입는 실크산업’에서 ‘기능성 건강산업’으로 탈바꿈을 시도하고 있는 것활성화이다.
양잠이 쇠퇴일로를 걷게 된 것은 서두의 언급에서처럼 농촌 일손의 감소와 농가 소득원으로서의 이점이 많이 쇠퇴해진 것에 있다. 특히 농가 일손의 감소는 인건비 상승을 부추겼지만, 누에를 통한 소득은 미미하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손에 쥐어지는 게 없다는 것이다.
농촌진흥청 류강선 연구관은 “양잠산업의 쇠퇴는 인건비 상승으로 인해 누에가 더 이상의 농가소득이 되지 못하게 됐기 때문”이라며 “이는 비단 양잠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한국농촌의 전반적인 현실이기도 하다”고 언급했다.
인건비를 제하고도 일정부분의 수익이 남게끔 소득이 나오는 형태의 선진국형 농업이 바람직하다는 류 연구관은 이 때문에 국내 양잠산업은 지난 1995년을 기점으로 섬유 양잠에서 건강기능식품으로 변화를 모색하게 됐다고 밝혔다.

버릴 것 없는 누에-고부가가치로 거듭나다
사실 세계 최고의 양잠 선진국 일본도 1990년대에 들어서며 누에를 포기하기에 이르는 등 누에의 가치가 하락한 것은 비단 국내문제로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지난 5,000년 동안이나 인간에 의해 순화되어온 누에를 그냥 내버리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곤충인 누에를 포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소수이지만 국내 관련 연구자들은 누에의 숨은 재주를 찾아내기에 몰두했다.
이들은 ‘인간의 삶의 질 향상’이라는 트렌드에 적합한 기능성 발굴에 연구 초점을 맞추고 누에의 숨은 재주를 찾아내려고 노력했다.
이렇게 해서 첫 선을 보인 것이 고의서를 토대로 소갈증 (消渴症) 즉 당뇨병에 특효인 누에분말 혈당강하제다. 누에가 혈당강하물질을 자기 몸속에 채우는 재능을 발견한 것이 계기가 됐다.
누에가 새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모았던 혈당강하물질은 결국 인간을 이롭게 하는 물질로 사용되게 된 셈이다. 특히 길거리의 군것질거리인 누에 번데기는 남성의 정력 증진에 도움을 주는 것임이 밝혀져 ‘누에그라’라는 스테미너약제도 탄생했다.
누에로부터 나오는 실크는 ‘세리신’과 ‘피브로인’이라는 두 가지의 단백질로 이뤄져 있다. 이 두 단백질을 각각 분리해 미세한 분말 및 액체형태로 만들어 여러 가지의 기능성물질로 이용할 수 있다.
이 두 가지의 단백질은 피부의 보습인자와 매우 유사한 구조를 갖고 있어 보습성이 탁월하고 상처의 회복효과가 좋아 피부보호 효과 등이 입증돼 화장품 또는 미용비누로 개발되어 매우 좋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
거기에다 최고의 고부가가치를 가지는 의료용 실크 인공뼈와 인공고막까지 개발할 만큼 누에의 잠재력은 무한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특히 누에의 똥(蠶糞)에서도 클로로필을 대량으로 분리해 이용하고, 폴피린이라는 광과민활성물질을 분리해 암치료제 등으로 이용하려는 연구도 진행됐다. 이제 잠분은 환경을 더럽히는 오염원이 아닌 오히려 요긴하게 쓰이는 소재이다.
환경지표곤충 누에, 환경감시자 역할 톡톡
누에의 가치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류강선 연구관에 의하면 누에는 대표적인 환경지표 곤충이다. 누에가 마을에 있다는 것은 그만큼 환경적으로 깨끗하고 살기 좋은 동네라는 것을 알리는 셈이다.
특히 상수원 지역의 환경관리는 체계적이어야만 한다. 무조건 출입통제만으로 환경관리를 다한다고 할 수 없다. 그런 측면에서 자연친화적인 방법의 상수원 관리가 요구된다.
여기에 누에의 필요성이 설득력을 얻는다. 누에는 농약을 비롯한 화학약품에 매우 민감하며, 그런 만큼 첨단의 과학 장비보다 더 예민하게 불량한 환경에 반응한다.
한마디로 상수원 지구 주위의 농약사용 등 화학적인 환경오염을 매일 감시하기가 실질적으로 불가능한 상태에서 상수원 중간 중간에 양잠 농가를 투입해 누에를 환경감시자로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뽕밭은 물론 뽕밭 근처에서는 아예 농약을 사용할 수 없는 만큼 뽕나무 오디를 활용하는 것도 권장할 만하다. 최근에는 오디만을 생산하는 전용 뽕나무가 육성되고 있다.
이러한 뽕나무 오디 생산 농가만도 작년의 경우 2010년 5,702호보다 4.1% 증가한 5,937호로 조사됐다. 알도 굵고 달아서 매우 인기가 좋다. 따라서 오디까지 어우러진 상수원지역을 좋은 테마농촌인 ‘누에마을’로 육성을 시도해볼 만하다.
류 연구관은 상수원지역에서 환경오염의 우려가 있는 농작물을 대신해 뽕나무를 심고 양잠으로 대체함으로 환경을 보호하는 방안을 환경적 측면에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가족 경영 가능한 누에로 억대 수입
충남 서산시 고북면 가구리에서 3대째 누에를 키우는 전문 양잠 경영인인 ‘성원누에농원(http://www.nuega.com)’의 윤성원 대표는 현재 연 300~400상자의 누에를 사육하고 있다.
윤 대표는 사실 ‘귀농인’ 출신이다. 서울에서 직장인으로의 삶을 살다 지난 1997년 고향 충남 서산으로 낙향한 그는 부친인 윤맹한 씨(71)로부터 누에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가족들의 반대와 실패를 거듭하는 서툰 농사일로 인해 어려움과 갈등도 많았다. 그러나 차츰 누에농사의 노하우가 쌓이고 마침 불어 닥친 웰빙 바람과 누에의 가치가 건강식품으로 자리 잡으면서 조금씩 활로가 보이기 시작했다.
현재 연 300~400상자의 누에를 통해 당뇨에 효과가 있는 동결 건조누에를 1,500㎏, 건조뽕잎 1,000㎏, 면역강화와 지구력 향상에 효과적인 동결건조 동충하초 30kg 등을 생산하고 있다.
누에 외에도 약 5ha의 뽕나무밭도 함께 가꾸고 있다. 그가 양잠산업으로 얻는 소득은 약 2억 원대에 달한다(농촌 토지대비 소득 1만 5,000~2만 원/3.3㎡). 그동안 양잠산업을 하면서 알게 된 거래 고객만도 6,000여 명에 달한다.
미국, EU, 중국 등과 FTA가 체결되면서 누에의 무궁무진한 시장이 열릴 것으로 기대하는 윤 대표는 “사실 벼농사의 소득이 2,000~3,000원/3.3㎡인 것을 고려하면 양잠산업은 상당히 매력 있는 작목임에 틀림없다”면서 “(성원누에농원의) 규모가 시골 영농규모로는 그리 넓지 않지만 노동 집약적인 양잠산업의 특성을 고려하면 한 가족이 경영하기에 적당하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현재 농촌에 보면 유휴지로 놀고 있는 토지들을 많이 본다. 이런 토지에 정부의 지원 아래 뽕나무를 심어서 도시의 잉여 노동력을 시골로 데려오게 되고, 소득만 보장된다면 귀농을 꿈꾸는 많은 사람들을 농촌으로 오게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나름의 해법도 제시했다.
검은 노다지 거둬들이는 ‘맑은숲오디’
전북 부안 주민들에게 뽕나무 열매인 ‘오디’는 주민들의 주머니를 두둑이 채워주는 ‘검은 노다지’가 되고 있다. 양잠업이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사라져갔던 오디가 이제는 이 지역을 부촌으로 거듭나게 했다.
이렇게 지역이 변화하게 된 것은 하서면 청호리 전 이장인 김진호 씨의 영향이 컸다. 김 씨는 현재 청호뽕사랑영농조합법인 ‘맑은숲오디(http://o-di.co.kr)’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지난 2008년 창의적인 마인드로 국내 최초로 오디 하우스 재배에 성공하는 등 계속적인 연구 노력과 새로운 기술보급으로 오디뽕 재배 농가의 소득향상에 기여했다. 전국 최초로 시설하우스를 통해 오디를 생산하고 있는데, 김 씨의 시설하우스 규모는 현재 6,600㎡(2,000평)에 이른다.
현재 부안군의 뽕 산업은 연간 1,000억 원대의 매출을 올리고 있지만 처음 김 씨가 뽕나무를 심기 시작할 당시 주민들의 동참을 권고했다가 정신 나간 사람 취급을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부안군에서 오디 생산에 동참한 농가는 800여 농가에 재배면적은 341ha에 이른다. 연간 오디 생산량만도 2,000톤이다. 이 중 60%는 금속냉동을 거쳐 생과로 판매하고, 40%는 오디주나 와인 등으로 가공해 판매한다.
현재 부안군은 이러한 누에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부안누에타운을 2005년 5월에 조성해 여기서 50여 가지 상품을 생산하고 있다. 또 인터넷쇼핑몰 부안몰(www.buanmall.co.kr)에서 누에기성식품 50여 가지를 출품했다.
작년 세계일보가 선정한 ‘세계농업기술대상’과 지난 4월 ‘부안군민대상’을 수상한 김 씨는 “앞으로 부안을 찾는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참뽕 수확, 가공 체험장을 원영해 농외소득 향상은 물론 새로운 품종 개발에도 주력해 부안이 세계 제일의 참뽕간업 메카가 되도록 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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