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에 선 환경과학, 환경소송의 숨은 승부처 ‘기술감정’

토양·지하수 오염부터 환경설비 하자까지…재판 결과 좌우하는 기술의 힘
김한결 기자 | eco@ecomedia.co.kr | 입력 2026-07-01 13:3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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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디어= 김한결 기자] 환경오염과 환경피해를 둘러싼 분쟁이 복잡해지면서 법원의 ‘기술감정’ 역할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특히 토양오염, 지하수오염, 폐기물 불법매립, 환경설비 하자, 악취·소음 피해 등 환경사건은 전문적인 과학·기술적 분석 없이는 원인 규명과 책임 판단이 어려워 법원이 지정한 감정인의 의견이 재판 결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다.


환경 분야 전문가들은 “환경소송의 상당수는 결국 기술감정 결과가 승패를 좌우한다”고 입을 모은다. 법관이 토양·폐기물 처리기술, 오염물질 이동 경로 등을 직접 판단하기 어려운 만큼 감정인의 분석 결과가 사실상 판결의 기준점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법원 지정 기술감정은 소송 과정에서 법관이 판단하기 어려운 전문 분야에 대해 외부 전문가 또는 전문기관에 조사를 의뢰하는 제도다. 환경 분야에서는 오염 발생 원인과 피해 규모, 오염물질 이동 경로, 환경설비의 적정성, 복원 가능성, 정화비용 산정 등이 주요 감정 대상이다.

최근 환경소송에서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분야는 토양 및 지하수 오염 사건이다. 공장이나 주유소, 폐기물처리장 부지에서 오염이 발견될 경우 오염 발생 시점과 책임 주체, 정화비용 규모를 둘러싼 분쟁이 발생한다. 이 과정에서 토양 시료 분석과 지하수 흐름 분석, 오염원 추적 등의 기술감정이 진행된다.


폐기물 불법매립 사건도 대표적이다. 매립 폐기물의 종류와 규모, 처리 비용을 산정하기 위해 시추조사와 지하탐사, 성상분석 등이 실시된다. 감정 결과에 따라 수십억 원에서 수백억 원 규모의 손익차이가 발생하기도 한다.

실제 기술감정 현장에서는 단순한 오염 여부를 넘어 토지 거래와 개발사업 과정에서 발생하는 경제적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토지를 매입한 후 토양오염이나 폐기물 존재를 이유로 잔금 지급을 미루거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반대로 감정 결과 오염 사실이 확인되지 않아 소송을 제기한 원고 측이 오히려 잔금을 지급하고 소송을 취하하는 경우도 있다.

매년 환경설비 관련 분쟁도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분야는 폐수처리시설, 소각시설, 음식물처리시설, 건조설비, 악취방지시설 등으로 설계·시공·운영 과정의 하자를 둘러싼 소송이 이어지고 있다. 일부 사건은 10년 이상 장기화되기도 한다. 업계에서는 한 음식물처리시설 분쟁이 대법원 파기환송을 거듭하며 18년 가까이 이어진 사례를 대표적 장기 소송으로 꼽는다.

악취와 소음 피해 소송에서도 기술감정은 핵심 증거로 활용된다. 축사나 폐기물처리시설, 산업단지 주변 주민들이 제기하는 피해 소송에서는 악취 확산 모델링과 기상자료 분석, 소음·진동 측정 결과 등이 법원의 판단 근거가 된다. 최근에는 풍력발전시설 저주파 소음 문제와 산업시설 주변 생활환경 피해도 새로운 분쟁 영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환경영향평가의 적정성을 둘러싼 행정소송 역시 증가 추세다. 산업단지와 대규모 개발사업 추진 과정에서 환경영향평가서의 조사 방법과 결과의 신뢰성, 생태계 영향 등을 검증하기 위한 전문가 감정이 이뤄지고 있다.

최근에는 PFAS(과불화화합물)와 같은 신종 환경오염 물질 관련 소송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PFAS는 체내 축적성과 환경 잔류성이 높아 세계적으로 규제가 강화되고 있으며, 향후 국내에서도 오염원 특정과 위해성 평가를 둘러싼 기술감정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문성 부족·감정인 편중 논란 여전…“객관성과 현장 경험이 핵심”
매년 규모가 커지고 있는 기술감정 시장을 둘러싼 문제점도 적지 않다.
우선 감정인의 전문성 편차가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환경 분야는 수질, 대기, 악취, 토양, 폐기물, 생태, 화학물질, 환경설비 등 세부 분야가 매우 다양하다. 하지만 실제 법원 감정시장에서는 특정 분야 경험이 부족한 감정인이 참여하거나 현장 경험보다 이론 중심의 전문가가 감정을 맡는 사례도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업계 관계자들은 “환경 기술감정은 책으로 배운 지식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현장에서 환경설비를 운영하고 환경설비를 직접 설계시공한 경험이 감정의 정확성을 좌우한다”고 말한다.

감정인 부족 문제도 풀어야 할 과제다. 환경 분야 기술감정은 전문성이 높고 책임 부담이 크기 때문에 감정을 기피하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실제 일부 사건은 적합한 감정인을 찾지 못해 선정 과정에만 수개월에서 1년 이상이 걸리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감정시장 구조에 대한 문제 제기도 이어진다. 일부 전문가들은 과거 특정 감정인 그룹이 법원 감정시장을 사실상 독점하거나 서로를 추천하는 방식으로 시장을 형성해 왔다고 주장한다. 이 때문에 신규 전문가의 진입이 어렵고 감정의 다양성과 객관성이 저해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환경소송에 대한 대형 로펌과 기술전문가 간 역할 차이에 대한 지적도 있다. 환경소송은 법률적 논리뿐 아니라 기술적 사실관계 분석이 핵심인데, 일부 소송에서는 일부변호인들이 방대한 감정서 속 기술적 이슈를 충분히 검토하지 못한 채 절차적·행정적 쟁점에만 집중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결국 환경소송에서는 변호사와 기술전문가의 긴밀한 협업이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소송당사자들이 겪는 감정 비용과 기간 역시 큰 부담 요인으로 작용한다. 현장조사와 시료채취, 분석, 계절별 모니터링 등이 필요한 환경사건은 감정에만 수개월에서 수년이 소요될 수 있으며 비용 또한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에 달한다. 특히 대규모 토양오염 사건이나 폐기물 매립 사건은 감정비만 수억 원 규모에 이르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환경소송의 본질적 어려움이 ‘과학적 불확실성’에 있다고 지적한다. 법원은 최종적으로 책임 유무를 명확히 판단해야 하지만 환경과학은 확률과 개연성에 기반해 설명되는 경우가 많다. 동일한 자료를 두고도 감정인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는 이유다.

그럼에도 기술감정의 중요성은 앞으로 더욱 커질 전망이다. 기후변화 대응과 탄소중립 정책 확대, 산업단지 개발 증가, 순환경제 전환, PFAS 등 신종오염물질 관리 강화에 따라 환경분쟁 역시 다양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환경법 전문가들은 “기술감정은 단순한 사실 확인 절차가 아니라 과학적 분석 결과를 법적 판단으로 연결하는 핵심 과정”이라며 “전문성과 독립성을 갖춘 감정인 양성과 감정제도 개선이 환경사법의 신뢰성을 높이는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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