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재난, 세금 내는 마음까지 바꾼다

황원희 기자 | eco@ecomedia.co.kr | 입력 2026-07-02 21:5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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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디어= 황원희 기자] 기후변화로 인한 재난이 단순히 생계와 인프라를 위협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시민들이 세금을 바라보는 태도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홍수, 가뭄, 폭염, 폭풍 등 기후 관련 충격이 반복될수록 정부에 대한 신뢰와 사회적 불평등이 흔들리고, 이는 자발적 납세 의향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다.

룩셈부르크대학 연구진은 최근 국제학술지 *The Journal of Development Studies*에 게재한 연구에서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 지역의 기후재난과 납세의식의 관계를 분석했다. 연구는 2011년부터 2021년까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25개국을 대상으로 진행됐으며, 아프로바로미터 조사 자료와 국제 재난 데이터베이스인 EM-DAT의 기후재난 기록을 결합해 분석했다.

연구진은 가뭄, 홍수, 극한 기온, 폭풍, 산불 등 다섯 가지 유형의 재난을 조사했다. 재난 발생 위치와 인터뷰 시점을 기준으로 응답자들의 재난 노출 여부를 매칭한 뒤, 통계 모델을 통해 기후재난 경험이 납세의식과 어떤 관련을 갖는지 살폈다. 특히 경제적 불평등과 공공기관에 대한 신뢰가 이 관계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도 함께 검토했다.

분석 결과, 기후재난은 유형에 따라 납세의식에 서로 다른 영향을 미쳤다. 가뭄과 극심한 기온은 납세의식 저하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홍수는 일부 사례에서 납세의식이 소폭 높아지는 결과를 보였다. 여러 유형의 기후재난에 반복적으로 노출된 경우에는 전반적으로 납세의식이 약화되는 경향이 확인됐다.

연구진은 특히 기후재난이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불평등이 다시 공공기관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며, 결과적으로 자발적 납세 의향을 약화시키는 경로에 주목했다. 세금은 단순한 경제적 의무가 아니라 시민과 국가 간 사회계약의 성격을 갖기 때문이다. 시민들은 정부가 공공 자원을 공정하게 사용하고 위기 상황에서 보호 기능을 수행한다고 믿을 때 세금을 더 기꺼이 낸다.

기후재난이 납세의식에 영향을 미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우선 재난은 생계를 파괴하고 소득을 감소시킨다. 가계가 식량, 주거, 의료 등 기본적 필요를 충족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세금 납부보다 생존이 우선될 수밖에 없다. 둘째, 재난 대응이 느리거나 불공정하거나 정치적으로 편향됐다고 인식될 경우 정부에 대한 신뢰가 약화된다. 재난 구호가 특정 집단에만 돌아간다고 느끼거나, 부패가 원조 배분에 영향을 미친다고 판단할 경우 납세 의지는 낮아질 수 있다. 셋째, 기후충격은 정부 재정에도 부담을 준다. 재난 복구와 긴급 지원에 필요한 지출은 늘어나지만, 경제활동 위축으로 세입은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재난 유형별로 보면 가뭄과 폭염의 영향이 가장 두드러졌다. 가뭄은 농업 생산과 식량 안보, 농촌 생계에 직접적인 타격을 준다. 폭염은 노동 생산성을 떨어뜨리고 건강 비용을 증가시켜 취약계층의 부담을 키운다. 반면 홍수의 경우 일부 지역에서 납세의식이 다소 높아지는 결과가 나타났다. 연구진은 이에 대해 홍수 발생 시 긴급 구호, 기반시설 복구 등 정부의 대응이 가시적으로 드러날 경우 국가의 역할에 대한 인식이 강화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후재난의 영향은 국가와 지역사회에 따라 차이를 보였다. 납세의식 저하는 상대적으로 가난한 국가와 농촌 지역에서 더 강하게 나타났다. 이들 지역은 농업 등 기후에 민감한 산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홍수와 가뭄에 노출될 가능성도 크다. 동시에 공공서비스 접근성, 재정적 보호 장치, 국가 지원 체계는 상대적으로 취약한 경우가 많다. 반복적인 기후충격은 정부가 취약계층을 보호할 능력이나 의지가 부족하다는 인식을 강화할 수 있다.

다만 제도적 대응 체계가 갖춰진 경우 기후재난의 부정적 영향은 완화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추가 분석에서 케냐, 베냉,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살폈다. 세 나라는 모두 기후재난에 취약하지만, 지난 수십 년간 재난관리와 기후 관련 법률을 도입해왔다. 분석 결과 공식적인 재난 대응 체계는 자연재해가 납세의식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상당 부분 줄였으며, 일부 경우에는 그 영향을 거의 제거하는 효과도 보였다.

이는 시민들이 단순히 재난 자체에만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재난을 관리하고 대응하는 정부의 역량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기후재난이 발생했을 때 정부가 신속하고 공정하며 투명하게 대응할 경우, 오히려 공공기관에 대한 신뢰가 유지되거나 강화될 수 있다. 반대로 대응이 불공정하거나 부실하다고 인식되면 납세 기반은 약화될 수 있다.

연구진은 기후 적응 정책이 단순한 인프라 보강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불평등을 줄이고 공공 신뢰를 강화하는 정책이 병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한 사회보호 제도, 공평한 재난 구호, 투명한 공공 지출, 기후 취약 지역에 대한 회복력 투자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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