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아프리카 사헬 지역의 식량 위기로 인해 1,800만명 이상의 주민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다. 이 위기의 중대한 원인은 가뭄도, 식량 부족도 아니다. 곡물 가격이 두 배 가까이 상승하면서 외부적 충격에 대한 아무런 보호막이 없기 때문에 가장 취약한 가구가 위기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국제구호개발 NGO 세이브더칠드런(Save the Children)과 월드비전(World Vision)이 공동으로 펴낸 전략 보고서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식량위기란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서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일이며, 우리나라의 현실이 될 수도 있는 심각한 문제다.
식량가격 폭등으로 1억 5,300만 명 빈곤위기
역사상 가장 높은 국제 곡물가격을 기록한 지난 2008년과 2011년 식량가격의 폭등으로 전 세계에서 1억 5,300만명이 빈곤선 아래로 전락했으며 아동 40만 명의 삶이 위험에 내몰린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식량가격 고공행진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보여 식량가격 폭등에 취약한 저개발국 최빈곤층과 아동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세이브더칠드런이 발표한 보고서 ‘값비싼 대가(A High Price to Pay)’에 따르면, 전 세계 아동 발달지체의 90% 이상이 집중돼 있는 36개 국가 중 무려 33개국이 식량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영양실조 비율이 높은 국가일수록 식량 가격 급등에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지난 7월 UN식량농업기구의 식량가격지수가 6% 상승하는 등 식량가격 불안정성이 지속되자 이들 36개 국가 중 말라위와 모잠비크에서는 옥수수 가격이 각각 174%, 129% 급등했다.
이처럼 취약계층을 위협하는 식량가격 급등은 세계 인구 증가와 이에 따른 곡물 소비량 증대 외에도 기후 변화, 국제유가 상승으로 인한 운송비용 상승, 식량 수출국의 식량 안보 강화, 국제 금융자본의 투기, 낮은 재고율 등 복합적 요인에서 비롯되고 있다.
기후변화에 휘둘리는 곡물생산량
2050년 전 세계 인구는 91억 명에 이를 전망이다. 91억 명에 이르는 인구의 식량수요를 담당하기 위해서는 2050년까지 지금보다 70% 이상의 생산량 증가가 필요하다. 특히 중국, 인도 등 신흥국가의 소득 증가와 식량소비 고도화로 곡물 수요가 더욱 급증할 것으로 보인다.
수요는 증가하는 반면, 최근 기후변화에 따른 기상이변이 증가하면서 곡물 생산 피해로 인해 공급에는 차질을 빚고 있다. 2010년 기상이변이 곡물 생산지역에 집중돼 농작물 생산에 큰 피해를 입었으며, 기상이변으로 작황이 악화된 생산국들이 수출을 제한하는 등 곡물의 공급량이 제한되고 있다.
2009년과 2010년 겨울, 지구 북반구에는 한파와 폭설로 인한 피해가 발생했으며 남반구에는 극심한 무더위와 홍수로 인한 피해가 증가했다. 특히 러시아는 기상 관측이 시작된 이래 가장 더운 여름을 맞아 130년 만에 최악의 가뭄 피해를 입었으며, 이로 인해 2010년 소맥 생산량이 전년 대비 26% 가량 줄었다.
같은 해 캐나다, 유럽 등지에서 가뭄, 홍수와 같은 기상재해가 발생하면서 생산량 감소가 예상돼 곡물 가격이 급등하는 일이 일어났다. 이러한 기상이변으로 2010년 8월 소맥 가격은 2010년 저점 대비 약 84% 상승했으며, 남미 지역의 라니냐에 따른 기상재해 우려로 인해 소
맥에 이어 대두, 옥수수 가격도 연쇄적으로 상승했다.
이처럼 기후변화로 인한 곡물생산량과 가격의 변동은 식량이 단순한 먹거리를 넘어 무기화 되어가고 있음을 시사한다.
국내 곡물자급률 26.7%, 역사상 최저 수준
국제 곡물시장은 곡물 메이저 회사가 장악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그 영향력이 막대하다. 중국 대두 수입의 80%, 브라질 수출의 90%를 곡물 메이저가 점유했으며, 미국의 식량 생산부터 판매까지 곡물과 식품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곡물 메이저는 WTO 협상에서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현재 미국, 호주 등 주요 생산국 수입의존도가 80% 이상이며, 4대 곡물 메이저 의존도는 50% 이상으로 국제적인 곡물 가격 변동성에 매우 취약한 상황이다.
또 선물거래보다는 최저가 입찰의 현물거래 위주여서 가격 위험에 상당히 노출돼 있다. 2009년 국내 식량자급률은 51.4%, 곡물자급률은 26.7%로 역사상 최저 수준을 기록하는 등 쌀을 제외한 자급률이 매우 낮은 상황이다.
즉 국민이 소비하는 식량 가운데 절반가량이 외국에서 수입해온 물량이라는 것이다. 또 주식인 쌀의 재배면적과 생산량은 예전에 비해 크게 하락하고 있으나 쌀 소비량 감소와 수입물량
증가로 쌀 재고량은 최고 수준이다.
반면 유럽과 북미 선진국들은 대부분 100% 이상의 식량 자급률을 확보했으며 이미 식량안보 정책을 강화하고 있는 추세다.
유럽의 선진국들은 높은 곡물자급률을 달성하기 위해 대규모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으며, 농지보전 및 생산성 제고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EU는 1960년대부터 대규모 예산이 투입된 공동농업정책(CAP)을 도입함으로써 가격보조와 생산보조를 통한 식량자급률 확대를
추구하고 있다.
육류 생산 위한 ‘사료곡물’ 수요 폭발적 증가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식량으로 쓰이는 곡물의 수요가 단지 인간이 먹는 데에만 국한 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곡물은 바이오매스의 원료, 축산 사료 등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는데, 특히 축산 사료에 사용되는 곡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국 등 개도국들의 식품소비 형태가 급속히 서구화됨에 따라 육류생산을 위한 사료곡물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로 곡물 위주의 탄수화물 섭취에서 육류 및 유지류 등 고단백 식품 섭취로 식생활 형태가 변화하고 있다. 국내 쌀 영양공급 비중은 1980년 48.9%에서 2008년 30.9%로 감소한 반면, 육류의 영양공급 비중은 1980년 3.7%에서 2008년에는 7.8%로 증가했다.
결국 육류 섭취가 증가하면서 수요를 맞추기 위해 많은 가축이 공급되어져야 했고, 이는 곧 사료의 수요도 함께 증가시키는일이 됐다. 사료뿐만 아니라 대체에너지로 급부상하고 있는 바이오매스의 주원료가 되는 것 역시 곡물이다.
미국의 바이오에탄올 생산은 주원료인 옥수수 수요를 급속도로 확대시키는 큰 원인이 되고 있다. 2005년, 2007년 바이오연료 의무사용 정책이 도입되면서 옥수수 수요가 급증했기 때
문이다. 심지어 2010년에는 미국 옥수수 생산량의 약 3분의 1이 바이오에탄올 원료로 사용되기도 했다.
‘농업은 곧 환경’ 공감대 형성 필요
그렇다면 지금까지 우리나라가 식량안보를 위한 대책마련에 이토록 지지부진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는 예산 문제가 빠질 수 없다. 현재 국내 식량 관련 예산은 매우 부족한 상황이다. 정부의 테마성 예산 즉, FTA와 구제역 등 화제가 되고 있는 현안에 대한 예산은 크게 늘었으나 정작 기본적으로 필요한 예산들은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농업용수 이용료 부과정책을 다시 시행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다시 이 같은 정책을 시행했을 경우 가장 먼저 용수를 절약할 수 있게 되며, 외국과의 무역협상에서 우리나라는 조금 더 유리한 자리에 설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그동안은 농업용수를 무료로 제공하는 정부에 대해 과도한 혜택을 주는 것 아니냐는 등의 이유로 협상에 어려움이 존재했으나 이용료를 부과할 경우 이에 대한 문제가 깨끗하게 해결되기 때문이다.
물론 현재 농업과 농촌이 매우 어려운 실정이므로 농업용수 이용료는 부과하되 농민에 대한 추가적인 다른 지원이 있어야 농민에게도 수용될 것이다.
한국농어촌공사 농어촌연구원 이승헌 책임연구원은 현 상황에서 안타까운 점에 대해 “‘농업은 환경’이라는 부분의 공감대 형성이 없다는 점”이라고 일축했다.
생산과 배출의 불균형은 곧 환경 파괴로 이어진다. 국내로 반입된 식량들은 들어오는 만큼 밖으로 배출돼야 균형이 이루어지지만 외국산 식품을 수입하는 것으로 인해 유기물만 잔뜩 들어오고 정작 우리나라 안에서만 배출이 이뤄지기 때문에 배출물질이 우리나라에 쌓이게 되는 것이다.
이는 넓게 봤을 때 일부 토양이 수용가능 하지만 결국은 수자원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즉 환경보존 차원에서 봤을 때에도 식량자급은 국가적인 책무인 것이다.
식량안보에 친환경 농산물은 독이다?
식량안보를 위해 좀 더 현실적인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우리나라의 상황부터 살펴보자. 우리나라는 모두가 알다시피 땅은 좁고 인구는 밀집돼 있다. 농림수산식품부의 2012 주요통계에 따르면, 국내 국토면적 1,001만 5,000ha 중 농경지로 사용되는 면적은 169만 8,000ha로 약 17%를 차지한다.
이중에서도 식량작물이 재배되는 면적은 105만 4,000ha인데, 이 역시 2005년 이후 계속해서 줄고 있는 추세다. 이처럼 우리나라는 농사지을 땅이 한정돼 있기 때문에 단위면적당 생산량을 크게 늘리는 것이 급선무다.
단위면적당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서는 곡물 등이 잘 자라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하며 당장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비료에 대한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자연은 정직하기 때문에 공급하는 만큼 생산하고, 생산하는 만큼 소비한다.
따라서 농사를 지었으면 그에 합당한 비료를 제공해 영양분을 공급해줘야 하고,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비료사용에 대한 관리체계, 연구개발 등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요즘 농산물 시장은 비료를 줄이고, 소규모로 생산하는 친환경 농산물이 트렌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08년 국내 친환경 농산물 시장 규모는 3조 2,000억 원으로 2007년 대비 47% 증가했으며, 내년에는 5조 955억 원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처럼 너도 나도 친환경 농산물을 앞세우고, 소비자 역시 생활수준이 점차 높아짐에 따라 친환경 농산물을 선호하고 있는 상황에서 식량안보를 위해 이것이 잘못됐다고 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적절하다고도 할 수 없는 것이 친환경 농산물에는 한계가 따르기 때문이다. 세계 친환경 농산물 시장에서 선두를 차지하는 유럽의 경우도 30% 정도가 한계점이니, 국내 농산물 시장 전체를 100%로 놓고 봤을 때 친환경 농산물이 차지하게 될 비율은 10% 정도가 한계점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친환경 농산물이 갖고 있는 10%는 계속 끌고 가되 나머지 90%는 최대한 많이 생산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관리 시스템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농어촌공사, ‘해외농업개발 종합계획’ 추진 중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김한호 교수는 우리나라가 식량위기로부터 벗어나는 가장 좋은 방법에 대해 “해외에서 식량을 직접 생산해서 조달해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외식량조달 즉, 해외농업개발은 국내 기업이나 기관, 또는 개인이 직접 해외에 나가 농사를 짓고 수확한 작물을 국내로 들여오는 것이다. 물론 이 방법 역시 위험이 따른다.
김 교수는 “농사를 짓고 있는 나라에서 농산물 관련법을 바꾸면 언제든지 투자가 곤란해질 수 있고, 대부분 개도국에서 사업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그만큼 제도가 불안정하다는 어려움이 있다”면서 “막상 생산을 했다고 하더라도 국내에 반입하기까지 어떤 변수가 생길지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농산물을 외국에서 수입해오는 것보다 안정성 면에서 더 신뢰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현재 국내 100여 곳에서 이러한 해외농업개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2008년부터 시작된 사업이라 아직 초기단계이며, 큰 성과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외에도 곡물 메이저로부터 수입하는 농산물에 대한 시스템을 변화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직접 나서서 곡물을 사는 방법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곡물 거래라는 것이 상당히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에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라면서 “국제곡물시장에서 활약할 수 있는 선물 전문가를 양성해서 해외에 직접 뛰어들어 가져오는 것이 필요하다”고 곡물 관련 전문가 양성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이에 농어촌공사 해외농업개발지원센터에서는 해외농업개발에 대한 융자사업 등의 보조사업을 지원하고 있으며, ‘해외농업개발 종합계획(2012~2021)’을 수립해 추진 중이다.
또 국내 기업이 국제곡물시장에 진출해 곡물을 수입해오는 방식 역시 이미 종합계획에 반영돼 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서 주도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국민, 식량안보에 대한 심각성 인식해야
현재 농산물에 대한 인증제도는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에서 운영하고 있는 농산물우수관리인증(GAP), 유기농산물, 무농약농산물 정도가 있다. 그나마 이 인증마크를 받은 농산물의 비중은 매우 낮은 수준이다.
인증마크를 받지 않은 나머지 농산물에 대해서도 소비자들이 믿고 먹을 수 있도록 소비자의 인식을 전환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일은 민간이 나서서 할 수 있는 일이다. 예를 들어 농산물 관련 시민단체에서 소비자와 정부의 중간다리 역할을 해줌으로써 정부-시민단체-소비자 간의 네트워크가 구축되는 것이 중요하다.
또 수입산 농산물과 국내산 농산물을 비교해서 소비자가 직접 보고 살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도 필요하다. 이러한 비교 시스템을 통해 국내산 농산물이 안전하고, 맛있고, 건강에 좋다면 수입산보다 가격이 조금 비싸다고 하더라도 극빈층을 제외한 소비자들 대부분은 국내산 농산물을 구입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조금씩 소비자와 생산자의 신뢰가 구축되면 국내 생산자는 판로를 보장받을 수 있어 좋고, 소비자는 더 좋은 농산물을 먹을 수 있게 돼 서로 윈-윈(Win-Win)할 수 있게 된다.
이처럼 국내 식량안보를 위해 정부의 관리정책도 매우 시급하지만,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국민의 인식이 변화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승헌 책임연구원은 “식량은 곧 남북의 문제가 될 수 있다”면서 “그러나 현재 많은 사람들이 현실 안보에 둔감한 상황이며, 예전부터 식량안보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언급돼왔으나 아무도 그 심각성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식량부족은 국가의 기반을 흔들 만큼 큰 파괴력을 갖고 있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에너지, 천연자원에 대한 정책마련은 서두르면서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한 국민의 먹거리에는 소홀한 우리나라. 아무리 돈이 많아도 식량을 구하지 못한다면 그 어떤 것도 소용이 없음을 인지해야 한다.
가장 먼저 우리부터 식량안보에 대해 관심을 가질 때 비로소 우리나라를 하나의 위험으로부터 지켜내는 첫 발을 뗄 수 있을 것이다.
[저작권자ⓒ 이미디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