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 밖으로 나오니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나와 방황하고 있다. 평소 지하철로 1시간 거리를 출퇴근하는데 이제는 집에 가는 길이 막막하다.
신호체계 역시 마비된 상태여서 차로 이동하는 것도 불가능해 결국 걸어서 가기로 한다. 집에 가니 집안이 찜통이다. 가뜩이나 더운데 냉장고마저 꺼져서 모든 음식이 다 상해 먹을 것이 없다. 정부는 지금 어떤 조치를 취하고 있는지 TV, 컴퓨터 모두 켜지질 않으니 알 수가 없다.
이 내용은 정전이 났을 경우의 시나리오다. 과연 이 일만 있을까. 모든 보안체계가 마비되니 각종 범죄에 노출되는 것은 물론이고, 모든 산업체의 운영이 정지 되니 피해금액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이 모든 일은 이제 상상 속의 일만이 아니다.
최악의 블랙아웃 사태, 올해는 과연 무사히 넘어갈 수 있을까.
예비전력은 급감하는데 수요는 여전히 증가
지난 9·15 대규모정전사태의 후폭풍이 거세다. 여름이 채 되기도 전에 전력공급에 빨간 불이 켜졌고, 곳곳에 전력난이 예상돼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지식경제부에 의하면 지난 5월 전력판매량은 전년 동월대비 2.6% 증가한 363억 9,000kWh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용도별로는 전년 동월대비 산업용 4.2%, 교육용 2.8%, 주택용 0.6%, 일반용 2.5%, 농사용 12.3% 증가했다. 전력시장 거래량 역시 전년 동월대비 2% 증가한 364억 5,000kWh를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철강 등 주요 업종의 수출 증가와 월 평균기온 상승에 따른 전력수요 증가로 분석하고 있다. 이로 인해 예비전력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400만kW 이상 급감했으며, 지난 동계보다도 악화된 상황이다.
따라서 5월부터는 산업체 수요관리로 150~200만kW의 수요를 감축하고 있으며, 민간 발전기 최대가동으로 50~100만kW의 공급능력을 확보하고 있다. 본격적인 하계휴가가 시작되는 7월부터는 산업계 휴가조정을 통해 100~200만kW의 예비전력을 추가 확보할 계획이다.
그러나 예비전력 확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예비전력이라고 해서 어제 만들어 놓은 전력을 오늘 그대로 사용할 수 있게 축적되는 것은 아니다. 매일 새로운 예비전력을 구축한다는 것은 결국 그만큼의 비용이 발생한다는 의미이다.
게다가 최대부하는 보통 휴가철이 끝난 뒤 8월 3주부터 일어나기 때문에 이 시기에 맞춰 예비전력의 양을 맞춰야 하는데, 이미 6월 초부터 ‘관심 경보’가 발령됐으니 전력거래소 입장에서는 예비전력을 많이 확충해놓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적정 예비전력은 보통 15%의 여유분인데 그만큼을 늘 대비시켜놓으려니 비용이 많이 발생하는 것이고, 그것은 결국 국민의 몫으로 고스란히 돌아온다.

정전에 따른 피해 비용 11조 6,845억 원 + α
9·15 정전사태 때 한국전력공사 실무자의 순환정전 대응으로 뭇매를 맞기도 했으나 결국은 이러한 대응이 최악의 블랙아웃 사태를 막을 수 있었으며, 정작 원인은 전력산업민영화를 위한 조직분할에 있었다는 것에 의견이 모아졌다.
국가 차원의 더 큰 피해가 있을 수도 있었으나 이를 막은 점에 대해서는 실무자를 비난할 여지가 없으나 그 전에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하지 못한 것에 대한 징계처분은 피할 수 없었다.
블랙아웃은 대규모 정전사태를 말한다. 만약 우리나라 전체에서 정전이 발생했을 경우 발생되는 피해는 실로 어마어마하다. 정전복구 소요시간에만 원자력 제외 일반발전기가 24시간 이내, 원자력은 최소 5~6일이 소요된다.
이에 따른 피해 비용은 11조 6,845억 원이며 이는 경제활동 중단으로 인한 단순 GDP감소를 계산한 수치일 뿐, 정전으로 인한 국가보안 및 기간시설의 가동중단, 산업 생산시설의 피해 및 복구비용 등을 감안하면 실제 피해비용은 보다 클 것으로 예상된다.
해외 정전사례를 살펴보면 2003년 8월 14일 기온이 33℃되던 날 미국(8개주), 캐나다(2개 주) 등 오대호 및 동부지역에서 수목접촉에 의한 송전선로 고장 및 발전기 탈락으로 6,180만kW 규모의 정전이 발생했었다.
이로 인해 미국은40억~100억 달러(약 11조 5,000억 원), 캐나다는 23억 달러(약 2조 6,000억 원)의 피해비용이 발생했으며 공항, 지하철 등 교통수단 마비로 대국민의 불편을 초래했다.
심지어 뉴욕의 경우 교통수단 마비로 대부분의 시민이 귀가하지 못하고 노숙하는 상황까지 발생했으며 수도, 가스, 교통신호 등 공공기반 시설 마비로 사회적 불안을 야기시켰다.
뿐만 아니라 은행 등 금융기관의 전산망이 마비되거나 생산 활동이 중단되는 등 경제적 피해, 그리고 세인트클레어강 (미시간 주)에서 수영하던 20명 가량이 오·폐수유출로 인해 매스꺼움과 통증을 호소하는 일도 있었다.
전력공급 확대만이 답은 아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정전사태를 미리 예방하는 길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수요와 공급을 조절해야 한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먼저 공급적인 측면에서 볼 때 정부는 발전소 건설을 통해 공급을 늘리면 된다.
정부는 지난 시간동안 전기의 공급확충이 어려웠던 이유를 지자체·주민 등의 민원과 님비현상이 심화되면서 발전소 건설이 지연된 이유가 컸다고 밝혔다. 2006년 수립된‘3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을 기준으로 올해 준공예정이었던 450만kW 설비의 준공이 지연되거나 취소된 것이다.
또 낮은 전기요금, 전력 다소비형 산업구조 고착 등으로 수요가 급증됐고, 안정적 전력공급의 가장 큰 역할을 담당하는 원전에 대한 안전기준 강화 등으로 원자력 발전소의 정비기간이 증가했던 것도 이유 중 하나로 지목했다.
2009년 이후 연중피크가 여름·겨울 2회 발생하면서 봄·가을에는 많은 발전기들이 예방정비에 돌입하여 공급능력이 부족하나, 봄·가을의 이상기온으로 전력수요는 오히려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지식경제부는 단기적인 대책으로 기존 전력수급 기본계획을 변경해 단기간에 준공 가능한 신규 발전소를 건설하고, 폐지 발전소 연장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2014년부터는 대형 발전소 준공으로 전력 수급위기가 어느 정도 해소될 전망이다. 즉 전력공급능력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많이 만들고 이에 따른 소비를 하면 문제될 것은 없겠지만 ‘저탄소 녹색성장’을 필두로 앞장서고 있는우리나라에서 정작 수요관리는 뒷전이고, 온실가스 문제와 직결돼 있는 전력을 확대 공급한다는 것은 문제의 여지가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약 96%에 달하는 에너지 빈국이라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된다.
전기는 ‘비싼 에너지’라는 인식 제고돼야
이에 전문가들은 수요관리에 중점을 두고 정책을 펼쳐야한다는 데 입을 모으고 있다.에너지경제연구원 관계자는 “강제적으로 전력수요를 줄이는 조치보다는 인센티브제도 도입 등으로 가정과 회사가 적극 참여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해야한다”면서 “공급이라는 것이 한계가 있기 때문에 수요관리가 필요하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전기요금 현실화를 실현해야 한다. 따라서 국민으로하여금 전기가 편리한 에너지원이면서도 비싼 것이라고 인식할 수 있도록 정부차원에서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물가상승에 따른 소비자의 반발에 대해서는 “통신요금 올리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면서전기요금은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인식 자체가 다소 문제가있다”며 “생각을 다르게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 일각에선 ‘서머타임(summer time)’의 재도입을 주장하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이외에도 전력수요를 조절하는 방법은 많지만 먼저 전기요금 현실화가 정착된 뒤에 차근차근 실현되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정전대비훈련으로 500만kW 절약
정부는 지난 6월 21일 오후 2시부터 20분간 전 국민이 동참하는 ‘정전 대비 위기대응 훈련’을 실시했다.
이 훈련은 모든 경제주체가 절전행동에 동참하는 전국단위의 훈련으로서, 실제 전력수급이 비상상황에 돌입할 경우 실시하게 되는 ‘전 국민 수요 감축’을 사전에 연습하고, 만일의 단전사태 시 발생할 수 있는 국민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실시됐다.
이번 정전 대비 훈련을 위해 정부기관은 산업체, 일반빌딩, 가정 등을 상대로 행동강령에 대한 지침을 공고하는 등의 대국민 홍보에 나섰다.
그리고 훈련당일인 6월 21일 오후 2시 민방위 사이렌과 함께 20분간 실시된 ‘정전대비 위기대응 훈련’을 통해 모든 국민이 전기 모으기에 동참한 결과, 화력발전소 10기에 해당하는 500만kW의 전력을 절감한 것으로 분석됐다.
이에 따른 국민의 반응도 ‘항상 켜놔서몰랐던 회사 조명을 전부 켜지 않아도 불편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는 의견, ‘전기 절약의 필요성을 절감했다’는의견 등 대체로 긍정적이었다.
단 20분의 노력으로 화력발전소 10기에 해당하는 전력이 절감한 것은 충분히 메리트가 있었다. 그러나 앞서 에너지경제연구원의 관계자가 말한 강제적 조치보다 국민의 인식제고가 필요하다는 말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예비전력이 350만kW 이하를 밑돌아‘관심경보’가 발령되고, 9·15정전사태를 제외한 역대 최저 예비력인 316만kW(4.9%)를 기록해 전력 위기상황을 맞았던 것이 불과 한달도 채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명동, 강남 등 번화가 일대의 상점들은 여전히 가게 문을 활짝 열어놓은 상태서 에어컨을 풀가동한 채운영되고 있다. 이것은 7월부터 개문(開門)냉방 영업이 금지됨에 따라 과태료가 최대 300만원까지 부과된다고 하니 지켜볼 필요가 있겠다.
블랙아웃, 있어서는 안될 일이지만 충분히 현실이 될 수있기에 지금부터라도 전기를 아끼기 위한 실천이 필요하다.
실내온도는 26℃ 이상으로 유지하고, 전력피크시간대인 오후 2시부터 5시 사이에는 전기사용을 최대한 자제하는 등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들을 실천할 때 블랙아웃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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