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웠던 시절의 한국여인상을 화폭에 고집해 온 작가

박남 화백
편집국 | eco@ecomedia.co.kr | 입력 2011-11-30 10: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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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남동 어느 길가에서 처음 만난 그는 매우 정정한 멋쟁이 노신사였다.

"보통 가장 궁금해 하는 ‘행상여인’을 왜 그리기 시작했는지에 대해 먼저 말해드릴게요”라며 말문을 여는 박남 화백. 그가 들려준 얘기들은 어느 것 하나도 버릴게 없는 삶이 담긴 드라마였다.

‘행상여인’ 통한 표현주의적 양식 추구

박남 화백은 1954년 광주에서 사범고를 졸업하고 초등학교 교편을 잡았지만 1년을 채우기도 전에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교직에서 물러난다. 이어 1957년 광주 YMCA에서의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작가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이후 사범동기이자 중고교시절 함께 그림공부를 했던 정영열의 권유로 서라벌예대에 몸을 담아, 1961년 조선일보 현대작가초대전에 출품하게 된다.

1963년 현대작가전을 마지막으로 잡지사 등에서 일을 하다가 9년이 흐른 1972년이 돼서야 다시 붓을 잡게 되는데, 그러면서 구상미술에 정착하여 1983년 ‘시장여인’을 시작으로 ‘행상여인’ 시리즈 작품을 통해 표현주의적 양식을 추구하기에 이른다.

또한 현재 한국미술협회 고문, 서울미술협회, 한국전업미술가협회 고문, 무진회고문, 자유표현전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일반 감상자들은 남루한 옷에 자배기를 이고 있는 여인, 즉 사실적으로 그려도 되지 않냐고 얘기할 수 있겠지만 그런 것은 시대적으로 1800년대 후반이나 1900년대 초반의 양식으로 머물기 때문에 싫어요. 좀 더 감각적이고 화면의 질감 등을 이미지로써 살리고 싶기 때문에 형태를 왜곡시키기도 하고, 과장시키는 것이죠. 미술사에서는 이런것들을 표현주의라고 하는데 저 역시 아직까지는 표현주의의 기법과 양식을 고집하면서 작업하고 있어요.”

그는 일제강점기 때 초등학교 시절을 보내고, 중학생 때 6.25 한국전쟁을 겪었다. 이렇듯 역사의 고난기와 함께 학창시절을 보낸 그는 그 속에서 살아가던 어머니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고 당시를 회상한다.

그래서 우리의 어머니라는 느낌을 연상하고, 지금의 여성 속에서도 그러한 힘이 숨어있을 것이라 기대하며 그림을 그린다고 한다. 박 화백을 대표하는 작품은 ‘행상여인’ 연작이다.

현대미술에 접어들면서 한 가지 테마만 다루는 경향이 많이 생기게 됐다. 물론 작가의 개성 있는 독창적 세계라고 긍정적으로 말할 수 있지만, 반대로 그 사람이 그 속에만 빠져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미술계의 전반적인 입장에서 볼 때 작가가 한 가지 소재만 갖고 그림을 그리는 것은 딜레마에 빠지게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박 화백은 “한 가지 테마로만 그림을 그리는 것이 때로는 내가 내 것을 리메이크하는 것 같아서 다른 것을 해보려고 하면 또 자신의 색깔이 나타나지 않을까봐 두렵고 그런 것 같아요. 저는 그보다도 훗날 어려웠던 시대의 여인상을 다룬 작가로서 남기를 희망하기 때문에 하나만 고집하고 있죠”라며 한 가지 테마를 다루는 이유에 대해 설명한다.

단순한 ‘서민의 애환’ 아닌‘삶의 집념과 의지’를 상징하는 ‘여인’의 모습 담아

위기에 봉착했을 때 여자는 더 강해진다. 박 화백은 그런 모습을 몸소 느끼고 봐왔다. 아주 어려운 시기를 겹겹이 거쳐 오면서 극복해 가는 여성, 소위 어머니의 강인한 정신과 의지. 그런 것들이 행상여인이라는 테마로 잡혀진 것이다.

과거는 오늘날과 달리 여성이 생존을 위해 일할 수 있는 것들이 한정돼 있었다. 박 화백은 자배기를 이고 골목을 누비며 다니는 여인들의 모습, 가난을 극복해 나가는 가정의 힘을 묘사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어려운 시대의 역사성을 그림 속에 담아내고자 하는 것에 의의가 있는 것이다.

여인들이 머리에 자배기를 이고 있는 모습은 새로운 소재라고 할 수 없지만, 여인의 모습을 옛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서정적인 대상이 아닌 생존을 위해 거침없이 강하게 살아가는 모습, 삶의 집념과 의지를 상징하는 인간상으로 바라본 것은 다른 화가들과 박 화백의 가장 큰 차이점이기도 하다.

“그래서 정면성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어요. 측면성은 객관적으로 떨어져서 그리는 것이기 때문이에요. 자배기를 이고 가는 여인은 생존을 위해 고통스럽게 가는 것일지도 모르는데, 보는 입장에서 아름답게만 보려고 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있는 자와 없는 자의 간극을 덮은 채 보려는 시각인 것 같아요.”

순수함을 상실한 예술계와 대중들의 인식 아쉬워

그는 다른 분야와 달리 예술관에 대해서는 보수적인 편이다. 작가가 자신의 세계를 지키고, 고집하다 보면 현실과의 괴리감으로 인해 인정받지 못할 수 있지만 그렇더라도 인내하고, 예술가는 고독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며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박 화백은 “요즘은 미술과 대중의 통로가 잘 연결되어 있잖아요. 그러나 그만큼 미술계가 혼탁해졌어요. 서양미술관에 대해 제대로 지식이 쌓인 후 우리의 초기 미술가부터의 감상과 지식 위에서 미술이 받아들여져야 하는데, 입시미술의 경쟁성에서 소외되어버린 미술가들을 아무렇게나 보다가 아무런 밑거름이 없는 상태에서 맞이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이런 상황 속에서 그림을 그리는 작가들 또한 고민이거든요. 그런데 요즘은 이런 고민보다는 그림의 가격에 대해서만 정신을 쏟고 있는 시대가 된 것 같습니다”라고 순수함을 상실한 예술계의 상업주의와 대중들의 인식에 대해 아쉬움을 나타낸다.

제자가 스승의 그림을 마지못해 사는 것은 ‘비극’

박 화백은 마포아트센터에서 서양화 취미생들과 주 한 번씩 마주하는 생활을 하고 있다. 그림을 가르친다기보다 그림을 그리며 생활하는 길의 선도역을 맡고 있다고 여기고 있다.

그래서 평생을 취미생활로써의 문화생활을 할 수 있도록 기본을 강조하면서 가르친다고 한다. 때문에 성급한 공모전에 출품하는 것을 말리는 편인데, 이유는 날조되는 작가양산 보다는 참된 미술애호가가 더 옳은 길이라는 생각에서이다.

그는 “문화시민으로써의 소양이 중요한 것이지, 그림 좀 배웠다고 금세 출품하고 작가되겠다고 하는 것은 반대입니다.

노래방에서 노래 좀 부른다고 가수 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죠”라며 “문화센터에 초창기부터 현재까지 있으면서 제자들에게 그림 좀 팔았을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제자에게 그림을 파는 것은 ‘비극’입니다.

자신이 그린 작품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감동해서 사는 것이 작품으로써 진가를 발휘하는 것이지 제자가 스승의 그림을 마지못해 보답의 의미로 산다는 것은 그림에 대한 가치 외에 다른 욕망이 개입됐다고 할 수 있어요.

또 전시회를 하면 회원들이 마지못해 사는 모습을 유도하는 것 같아서 개인전을 자주 열지 못했어요 그런 저를 보고 가난하게 산다고 타박하는데 정 돈이 필요하면 붕어빵장수하면서 그림 그리는 것이 훨씬 편하지 않겠냐고 농단 반 진담 반으로 얘기합니다”라며 자신의 소신을 밝힌다.

여전히 먹을 것, 입을 것 절약하며 작품에 몰두하는 작가들이 많이 있다며 마치 위대한 작가들 속에 자신을 포함시키는 것 같다고 겸손하게 말하는 그.

순수한 작가들은 역사적으로도 일부에 불과하다. 이렇듯 박남 화백은 예술가로서의 순수함을 간직한 이 시대에 몇 안 되는 화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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