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상(吉祥)-매듭으로 만드는 상서로움

동림매듭박물관장 심영미
편집국 | eco@ecomedia.co.kr | 입력 2011-05-01 18:2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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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과 현대가 공존 하는 그 곳
전통과 현대가 서로 공존하며 독특한 서울의 풍경을 만들어 가고 있는 북촌 한옥마을. 그 한옥마을 초입에 ‘동림매듭박물관’이라는 이름의 명패가 붙어 있는 아담한 매듭박물관이 자리 잡고 있다.

한옥마을 골목 입구에서부터 보이는 고즈넉한 한옥 처마와 돌담, 오래된 나무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흘러간 세월의 예스러움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작은 한옥 내부에 수많은 매듭장신구들이 전시되어 있는 ‘동림매듭박물관’ 이 나들이 나온 관람객들과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을 반갑게 맞아준다.

장식, 실용 따위에 응용하는 여러 가지 방법 및 그 공예(工藝)를 지칭하는 단어다. 실생활에 사용되던 각종 노리개와 허리띠, 주머니, 선추(부채고리장식)와 유소( 깃대장식) 등이 모두 매듭과 관련된 장식품들이다.

전통매듭 보존에 평생을 바쳐온 심영미 동림매듭박물관 관장을 만나 그녀의 매듭 인생이야기를 들어본다. “열아홉 살 때부터 매듭을 했는데 벌써 40여년을 넘게 이 일만 하고 있네요. 매듭 외에는 한 것이 없는데...”

심영미 관장이 매듭을 접하게 된 것은 우연히 아니라 선조 때부터 이어온 가업이라고 한다.
“조선 왕실에 계셨던 왕고모님을 통해 왕실에 필요한 매듭을 만들었던 아버님으로부터 매듭을 배웠습니다. 원래 왕십리 시구문 지나서 매듭 제작하는 장인들이 모여 살던 마을이 있었는데, 그 장인들이 매듭 만드는 걸 보고 따라 해보았더니 예쁘게 잘만든다고 예뻐 하셔서 결국 이게 제 업이 되었습니다. 매듭을 배우다가 술하는 사람이 필요하면 술을 배우고, 끈을 짜는 사람이 필요하면 끈을 배워서 하다 보니까 매듭의 모든 것을 익힐 수 있었습니다. 하는 거마다 칭찬을 받았지요.”

우리나라에는 매듭으로 유명한 매듭장인이 4분이 계셨는데 그 중 한 분이 바로 심영미 관장의 부친이셨다. 그녀가 가진 전통매듭의 기술은 이런 장인들의 전수를 통해 그녀에게 고스란히 전해진 것이다. 심 관장의 매듭 인생은 6.25 전쟁통에 피난을 가서도 그 끈을 놓지 않을 정도로 매듭에 남다른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

“저는 전통매듭으로 전승자가 됐기 때문에 매듭을 가르치고 복원하고, 전통을 그대로 재현하는 부분에 많은 신경을 씁니다. 특히 제가 하는 매듭은 순수매듭 쪽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전통매듭 보급과 전수위해 나서다
우리나라 매듭 전수자로는 4번째인 심영미 관장은 전통매듭의 보급과 교육에도 많은 노력을 쏟고 있다.
“마포에서 운영하는 공방은 교육과 제작을 동시에 하는 곳 입니다. 그동안 수많은 제자들을 길러 냈고, 많은 작품들을 만들어 국내는 물론 해외까지 한국 전통매듭의 아름다움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곳 동림매듭박물관은 세계각국사람들을 가르치는 곳입니다. 일일체험을 통해서, 혹은 한국에 장기간 머무는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장기교육도 합니다. 그분들은 외국인이지만 한국 매듭에 굉장히 관심이 많아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분들 정도만 관심을 가진다면 정말 좋을 것 같습니다. 그분들은 3개월 매듭을 배우고 나가서 보름 뒤에 또 한국에 옵니다. 매듭을 배우기 위해서, 그렇게 열심히 하는 분들이에요.”

심영미 장인의 제자들은 전국적으로 있다고 한다. 숫자로 헤아리기에는 어려울 정도 많은 제자들을 평생 가르쳐 온 것이다.

“처음에는 먹고 살기 위해서 매듭을 했다면, 지금은 전통매듭을 전수하는 일에 더 마음을 씁니다. 그래서 제자가 더 많아 지는 것 같습니다.”

중국제 저가의 매듭이 국내 시장을 잠식하기 전까지만 해도 심영미 장인의 매듭공방은 전국 70%의 점유율을 자랑하는 큰 공방이었다. 하지만 저가의 중국 제품을 선호하는 업자들의 경제 논리 때문에 자연스럽게 일거리가 줄어들게 되고, 전통매듭의 맥마저 끊길 위기에 몰린다. 그래서 그녀가 발 벗고 나선 사업이 바로 전통매듭에 대한 홍보와 교육사업이다.

“안방극장에서 보는 드라마는 한국의 전통 매듭을 알리기에 아주 좋은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많은 드라마에 저희 작품을 협찬하여 주인공들이 매듭 장식품을 사용하게 했습니다. 물론 제가 직접 한 건 아니고 한복디자이너 분들이 저희 매듭을 가져다 쓰는 것이죠. 대표적인 작품이 황진이입니다. 매듭을 안 달고 나온 기녀가 없었으니까요.”

한국 전통매듭은 정교함이 특징
세계적으로 매듭공예는 다 있지만 차이점은 분명하다. 외국 매듭은 여러 가닥의 끈이 엮어서 어떠한 형체를 만들어 내는데 우리나라는 하나의 끈만 사용하여 모양을 만들어 낸다. 특히 우리 매듭은 밑에 술이 달려있고, 그 끝부분 이 매우 정교하게 처리가 되어 있다.

“윗대에서부터 내려온 전통매듭의 기술은 우리 며느리가 이어 받고 있는데 이제 10년째입니다. 저는 손끝으로 일을 해왔다면, 며느리는 매듭에 대한 지식을 쌓고, 역사 적인 전문성을 접목해 발전시켜 나가는 일을 할 겁니다. 그러다 보니 요즘은 유물 복원작업을 더 많이 하게 된 거예요. 유물 복원하는 게 며느리가 공부해온 거와 맞아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철종, 정몽주, 최제공 이런 분들의 초상화에 다는 매듭제작을 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매듭을 현대적으로 발전시켜 앞으로 나가야 할 것이고, 저는 몇 백 년 전의 유물들을 재연을 하는 거죠. 평생을 해온 것을 일부분이라도 보여주고 싶어요. 현 대적이라는 것은 핸드폰 고리 말고도 양장에도 잘 어울리는 벨트라든지 브로치라든지 할 게 너무 많아요. 전통공예도 생활을 쫓아가야 하고, 그렇다고 나쁜 것은 아니잖아요. 전통은 전통대로 지키면서 현대에 맞는 매듭을 했으면 합니다.”

한국의 전통장인들을 위해 북촌 한옥마을에 장소를 제 공해 준 것은 정부의 좋은 지원정책의 결과다. 하지만 2년 마다 재계약을 해야 하는 규정 때문에 더 이상의 투자나 확장을 못하고 있다는 아쉬움도 있다. 장인들이 안심하고 작품을 계속 할 수 있게 지속적인 장소제공이 이루어지면 좋을 것 같다. 장인들이 만든 작품에 대해서도 정부차원 의 국가적인 소비처를 개발하여(예를 들면 국제행사의 기념품으로) 시장을 넓혀준다면 우리 것을 알리는데 큰 역할 을 하게 될 것이다.

“우리의 매듭은 다 의미가 있습니다. 달린 장신구나 매듭의 모양에 따라 환생이나, 무병장수, 부귀영화, 건강기원, 선비의 고고함, 인내와 고난을 이겨내라는 의미까지 담겨 있지요. 장식품으로서, 노리개로서 뿐만 아니라 한국의 전통 미학을 담고 있는 예술품으로서의 가치도 인정받고, 영원히 보존되었으면 합니다.”

심영미 동림매듭박물관장을 인터뷰하고 나오는 본 기자의 머리 속에, 한국 전통매듭의 예술적 생명력은 시대적 유행과 현대 과학적인 디자인이 새롭게 가미될 때 그 빛이 더 할 것이며, 문화의 기품이 명료하게 이어질 것이라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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