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있다가 천안에 내려온 지 팔 년째입니다. 대학에서 강의도 하고, 창작 작업에 전념하며 살았습니다. 그런 것 다 정리하고 내려왔지만 대학에 있을 때도 전임이 되겠다는 생각은 안 했기에 미련이 없습니다. 저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껴 있는 다는 것이 정말 힘들더라고요. 장례식장에서 공석인 전임 자리를 두고 동료들이 서로 다투는 것을 보며 여긴 내가 있을 곳이 아니구나 하고 느낀 적도 있습니다.”
어머니의 권유로 초등학교 때 그림을 시작한 채수용 작가는 중ㆍ고등학교에 다닐 때도 그림을 그렸다. 그러다 우연히 찾아간 미술관에서 본 진사도자기의 붉은 색깔과 투명성에 반했고, 결국은 대학도 도예과를 진학하게 되었단다.
“대학 진학 한 후에는 1, 2학년 때 전국 공모전에서 상도 타며 나름 이름도 얻게 되었습니다. 대학에선 작가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았지만, 살아오면서 작가보다는 생활인이 되어야 된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도예를 보는 것만으로 만족하는 예술에서 벗어나, 생활용기로도 만들 수 있겠구나 하는 현실적인 생각을 대학원 다닐 때부터 고민했으니까요.”
도예란 흙으로 만든 모든 것
그가 대학원 다닐 때는 은사이신 정담순 작가의 작업실에 머물며 2년여의 수련을 쌓았다.
정담순 작가는 한국 도예계의 거목으로, 홍대 1회 졸업생, 단국대 교수, 청주대 대학원, 숙대대학원, 홍대대학원 등에서 강의를 하는 선생님이시다.
“도예란 장르 불문하고 흙으로 만든 모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생활 속에서 쓰이는 그릇까지 포함해서 말입니다.” 채수용 작가의 도예에 대한 정의는 이렇게 간단명료했다.
“저는 결과물은 중요하지 않고 만들 때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흙 만지는 거 싫고, 끈적끈적해서 손에 달라붙고 그런 건 싫지만, 흙이 말라서 뒷정리하며 칼로 깎아 정확히 형태가 나올 때 일반인들도 무척 좋아합니다. 일반인이 쉽게 입체를 통해서 작품을 만드는 게 도자기 밖에 없거든요. 회화나 조소 같은 경우는 배우거나 힘이 많이 들지만 도자기는 그냥 흙을 가지고 논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도자기에도 생명이 있냐는 본 기자의 질문에 채수용 작가는 이렇게 대답을 했다.
“많은 분들이 그런 질문을 하는데 도자기의 생명은 만드는 본인이 불어 넣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학원 졸업할 때 물고기나 새머리를 가지고 작품을 많이 했는데 그것들의 눈을 만들 때 생명력이 확 느꼈습니다. 어떤 작업을 하던지 간에 작품의 생명력을 느끼는 그런 포인트가 있는 것 같습니다.”
도예는 흙과 물의 조화로운 배합과 더불어 불때기의 기술이 매우 중요함이 다른 예술과의 차이점이다. 도예작업에서 불과의 다툼은 매우 긴 시간이 필요한 부분이다. 초벌 12시간정도, 재벌 15시간 정도의 시간을 불을 지피며 긴 시간을 기다려야 흙이 익어 비로소 도자기가 되게 된다.
“아무래도 불 때는 시간에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가마 속의 불구멍을 바라보고 있으면 불이 지나다니며 가마 속의 그릇들을 치고 다니는 게 보이는데, 그때 묘한 감정과 생명력이 불어넣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채수용 작가는 보통의 흙보다 더 거친 흙을 사용한다. 유약도 분청유약 하나만 쓴다고 했다. 그만큼 자기 자신의 작품에 대해 깊이 있는 연구와 관찰, 그리고 작품세계가 깊어져 있다는 것이다. 가난이 숙명처럼 따라 다니는 작가라는 이상세계와 먹고 살아야 하는 현실 생활인과의 괴리에 대해서도 그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 삶이 있을 뿐이죠
“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도자기를 시작했을 때는 아버지 건물의 10평 남짓한 작업실을 얻어 작품을 만들다 결혼을 했고, 그 때 만든 작품들은 인사동에 공급해 위탁판매를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집사람이 쌀이 없다고 해서 한동안은 1주일 내내 강의를 한 적도 있지만 돈은 안됐습니다. 그 후로는 강의가 끝나면 바로 작업실에서 생활용기를 만들어 팔았습니다. 인사동의 첫 집부터 끝집까지 돌아다니다 인연을 맺은 곳이 경인미술관이었고, 그 곳의 계약 작가로 시작해서 생활용기부분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지요. 하지만 저는 돈을 많이 벌 생각도 없고, 많이 벌어본 적도 없습니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요? 그런 거 없습니다. 삶이 있을 뿐이죠.”
그의 개인전에서는 순수 도예 작품을 볼 수 없다고 한다. 고가의 도자기를 쌓아놓는 것이 싫어서 장식과 실생활 모두 쓰일 수 있는 접시 작업을 많이 하기 때문이다. 작품으로도, 생활용기로도 다 쓸 수 있는 것들을 만든다고 했다.
“공예대전 시작은 천안에 와서 부터였습니다. 처음은 천안시 공예대전, 다음은 충청남도, 그 다음에는 전국공예대전에 출품에서 상을 다 받았지요. 전 상복이 참 많은 사람입니다. (웃음)”
본 기자가 만나 본 도예가들은 이구동성으로 “도자기는 노력한 만큼 얻는다.”라고 이야기 한다. 채수용 작가에게도 그 말이 통용되는 것일까?
“상명대 박석우교수님이 월드컵 때 귀빈 선물로 드릴 도자기를 만들었는데, 그 때 그 분을 도울 사람이 필요했고, 제가 도와드린 인연으로 인해 ‘한국민예’라는 도자기벽화 만드는 회사를 알게 되었습니다. 도벽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그때부터 한 것이죠. 처음 시작할 때는 도자기 벽돌을 만들었습니다. 벽돌로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보려고 도전해봤지만 실패했죠. 그래서 기초부터 배운다는 자세로 대리석 인테리어 하는 사람들을 따라다니며 대리석 붙이는 법을 배웠고, 혼자 할 수 있다고 느낄 때쯤 선배들이 시공을 모두 맡기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도벽을 통해 “친환경도예가”라는 호칭을 얻기까지에는 수많은 시행착오와 노력이 뒷받침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저는 관공서 홀에 몇 천, 몇 억짜리 작품하나 가져다 놓고 예술이라 하는 것보다, 사람들이 모두 느끼고 참여할 수 있는 작품이 진정한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충남외국어고등학교 미술선생님과 얘기해서 저의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에게 흙을 주고 만들고 싶은걸 만들라고 한 다음, 모아서 불을 때서 학교 복도에다 붙여주었더니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었습니다.”
혼자하는 작품보단 같이할 수 있는 작품선호
그는 혼자서 큰 작품을 하는 거 보다 같이 할 수 있는 작품을 좋아한다. 예를 들면 청계천 벽면을 장식한 도벽과 천안 서당초등학교 벽에 만들어 논 학생들의 자화상이 그렇다. 채수용 작가는 이런 게 진정한 도벽이라고 생각한다. 완벽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라면 비용을 2배라로 들여서라도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장인으로서의 근성도 그의 명성에 한몫을 했다.
“그동안 직접 설치한 도벽작품은 청주 내수성체성당, 증산동 생활금고, 상명대 실내수영장 등이 있습니다. 이제는 국가시설에 저의 작품을 한번 남기고 싶습니다. 돈을 안 받아도 좋으니 우리의 문화유산으로 남을 수 있는 그런 큰 작품을 하나 하고 싶습니다. 전 도자기를 하면서 겁이 없어졌습니다. 지금 바로 국회의사당을 도벽으로 밀어줘라 해도 할 자신이 있습니다.”
그의 목소리에서는 자신감이 흘러 나왔다. 요즘 제일 듣기 싫은 소리가 “공예 하는 사람들은 못 먹고, 힘들고, 열악한 환경에 고생하고, 배고프다”라는 고정관념을 가진 사람들의 우려와 걱정이란다. 채수용 작가가 활동하고 있는 충청남도에서는 1년에 10개 업체를 선정해 개발지원금을 지원하고 있다며 자랑하기도 했다.
“도자기를 만들 수 있는 흙이라는 게 우선 친환경적이고, 좋은 물을 써야 하므로 환경을 지키고 보존하는 것에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도자기 자체가 친환경이라 생각합니다.”
좋은 흙과 맑은 물, 나무연료를 대신하는 가스 사용, 유해한 유약을 전혀 사용을 하지 않고 도벽작업에 전념하고 있는 채수용 작가의 작품제작 방식은 친환경 도예가로서의 명성뿐만 아니라 조상들의 예술혼을 이어가는 문화지킴이로서 굳게 자리 잡을 것이다.
“수요는 별로 없지만 도벽을 계속 할 것입니다. 생활용기로 남기는 것보다 작품으로서 남기고 싶은 작가의 자존심이 있기 때문이죠. 천안시청 앞에 옹벽을 쳐서 53만 천안주민의 손도장을 찍어 도벽을 만들고 싶습니다. 무료라도 좋으니 꼭 하고 싶습니다.”
동료작가 공수진의 말
“채수용 작가는 천재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작품을 쉽게 쉽게 만든다. 창의성 쪽에 관하여 나는 그를 천재라고 생각한다. 작품 제작 기법에 대해선 고민하지 않는 작가다. 그에게 도예란 천직인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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