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중에서 음식은 생명과 가장 직접적으로 관련 있는 요소이다. 음식을 섭취한다는 것은 단순한 생명 유지에서 더 나아가 건강을 유지하고 지금보다 더 건강하고 싶다는 욕구를 드러내는 또 다른 행위이다.
이러한 우리의 삶에서 필수적인, 생명을 유지할 권리와 함께 존중받아야 할 위해한 식품을 섭취하지 않을 수 있는 권리가 점차 침해당하고 있다.
지난 2008년은 식품 안전에 비상이 걸린 한 해였다. 언젠가부터 중국산 식품의 위험이 제기되기 시작했고 급기야 ‘멜라닌 사태’까지 일어났었다. 중국발 식품 안전성 문제뿐만 아니라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는 우리 국민들이 얼마나 건강 관련 문제를 민감한 것으로 받아들이는지를 사회 전체적으로 보여줬다.
어쩌면 세계화의 시작과 함께 이런 결과는 예견된 것일지 모른다. 지금 2009년의 앞에 서 있는 우리들에게 식품 안전의 문제는 바로 우리가 먹으려는 눈앞의 식품들을 ‘누가, 어디에서, 어떻게’ 생산한 것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당신은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기 위해 집 앞 마트로 장을 보러 왔다. 음식을 만들기 위한 재료를 사기 위해 진열된 식품들을 손에 든다. 그 식품은 지금 당신의 눈앞에 있지만 과연 어디에서부터 왔을까. 포장지 위 작은 원산지 표기만이 그 식품의 정체성을 전해준다.
이제껏 아무런 생각 없이 먹었던 식품들, 무의식적으로 우리나라에서 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많은 것들이 글로벌푸드의 하나이다. 오징어는 당연히 동해에서 나는 것인 줄 알았지만, 언뜻 본 포장 위에는 페루라는 낯선 나라명이 있다. 축산물 코너에 섰다. 삼겹살을 보니 프랑스, 아일랜드 등 흔히 알고 있는 미국과 호주뿐만이 아니었다. 이렇게 당신이 오늘 가족과 함께 먹을 한 끼는 세계 곳곳에서 누군가들이 만들어 낸 재료들을 사용한 것이다.
1990년 초 ‘신토불이’라는 말이 캠페인으로, 유행가 가사로 전국적으로 유행했었다. 우루과이라운드로 쌀시장이 개방되고 수입 농산물이 밀려들어오기 시작할 때 우리 농산물을 지키기 위한 일종의 마케팅이자 전국민적 캠페인이었다.
우리 땅에서 나는 농산물이 우리 체질에 맞다는 의미의 신토불이는 단순히 한국 것이기 때문에 좋다는 일종의 고슴도치 사랑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나 1990년대의 신토불이 운동이 식품안전과 관련해 현재의 전세계적인 로컬푸드 운동의 일환이었으며, 식품안전을 위한 최선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푸드마일리지 - 생산과 소비의 공간적 거리 진단
지구촌이라는 말은 이미 오래된 말이 돼버렸다. 세계화는 우리 삶 깊숙한 곳으로 파고들어 식품에서까지 이뤄졌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우리나라의 식탁 위의 식품들의 원산지로 작은 세계지도를 그릴 수도 있을 만큼이다. 이런 식품의 세계화에 따라 ‘푸드마일리지’라는 새로운 개념이 등장했다.
푸드마일리지는 1994년 영국의 환경운동가 팀 랭이 제시한 것으로 식품이 생산되는 곳에서 수송되기까지의 거리를 나타내는 용어이다. 즉 푸드마일리지는 생산돼 운송된 후 소비되는 과정의 모든 거리를 말한다.
생산지별 식품량에 수송거리를 곱하는 푸드마일리지는 식품의 이동거리를 드러내는 것 뿐 아니라 식품이 소비되기까지 발생하는 이산화탄소에 초점을 두고 있다. 식품 수송 거리가 증가할수록 그 수송을 위해 화석에너지가 쓰이고 이산화탄소가 많이 발생돼 지구온난화에 그만큼의 악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푸드마일리지닷컴(http://www.food-mileage.com)에서 푸드마일리지 캠페인을 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푸드마일리지를 이산화탄소 배출량으로 환산해 poco라는 단위를 사용한다. 이 단위를 사용해 일상에서 많이 소비되는 식품들에 대한 푸드마일리지 정보를 홈페이지 상에서 제공하고 있다.
푸드마일리지는 싱싱한 식품을 선택할 소비자의 권리와 지구온난화를 막을 생존자의 의무가 결합된 식품 소비를 제안하는 개념이다. 기본적으로 소비지와 가까운 곳에서 생산되는 식품이 안전하며, 수송하는 거리가 줄어듦에 따라 지구의 온난화도 막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하나의 척도로 볼 수 있다.
푸드마일리지라는 개념을 통해 우리는 식탁의 건강이 곧 자연의 건강으로 이어져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가 보다 더 신선하고 안전한 식품을 섭취하고자 하는 것은 생명을 이어나가기 위한 우리의 본능이다.
그리고 우리가 자연을 보호하자는 것 또한 자연이 우리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인지했기 때문이다. 식품안전은 사소한 문제가 아니며, 환경보호는 거창한 문제가 아니다. 이 모든 것이 우리들의 삶을 이어나가고자 하는 하나의 맥락 안에 있다. 모든 것이 생존의 문제이다.
로컬푸드-공간적 거리에서 나아가 사회학적 지역
푸드마일리지라는 개념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면 로컬푸드 운동이 있다. 로컬푸드는 ‘지역 먹을거리’이며, 1990년대 신토불이와 이어진다. 신토불이가 ‘한국인은 한국의 것을 먹어야 한다’는 민족적 특수성을 띠었다면 로컬푸드는 ‘모든 사람은 자기 지역 가까이에서 나는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일반성을 띤다.
또 푸드마일리지가 단순히 공간적인 개념만을 얘기했다면, 로컬푸드는 공간적인 거리를 넘어서 생산자와 소비자와의 사회학적 거리 단축까지 말한다. 푸드마일리지는 식품의 이동거리를 제시함으로써 소비자가 이를 보고 판단하게 하는 하나의 척도였다.
로컬푸드는 소비자와 생산자가 서로 알고 있는 상태에서 식품과 함께 신뢰까지 구축하는 시스템을 가진 것이다. 사실 여러 가지 식품 안전 위기가 발생하는 원인을 살펴보면, 세계화와 대량생산 체제가 있겠지만 그보다 더 세밀하게 들어간다면 생산자와 소비자와의 무관계이다. 생산자는 자신이 만드는 이 식품을 어느 나라의 사람이 먹을지 알 수 없다. 소비자를 전혀 알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생산자의 윤리가 상실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앞서 말한 식품 안전 위기에 가장 근본적인 대책이 로컬푸드로 제시되고 있다. 로컬푸드는 가장 먼저 소비자들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식재료나 가공식품을 확보하기 위해 해당지역에서 친환경농법으로 만들어지는 농산물을 활용하자는 것이다.
로컬푸드 운동을 통해 소비자들은 안전하고 신선한 먹을거리를 구입할 수 있고 생산자들은 지역에 안정적인 판매 통로를 확보함으로써 농산물을 지속적으로 생산할 수 있다. 글로벌푸드의 확산을 통해 먹을거리들은 오랫동안 저장할 수 있게 방부제를 첨가하고 원재료에서 가공을 많이 해 패스트푸드, 인스턴트, 냉동식품으로 발달했다. 지역 내 먹을거리를 소비한다면 지역의 특산물과 특유의 식생활을 보존할 수 있다.
무엇보다 위해식품이나 식품에 들어있을지 모르는 위험한 물질에 대한 가장 좋은 방어가 될 수 있다. 또 지난해 발생했던 세계화에 따른 전세계 식량공급 위기가 왔을 때 위험성도 감소시킬 수 있다. 이런 점들과 함께 궁극적으로는 환경을 보호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곡물자급률은 OECD 30개국 중 26위로 25%이다. 급격한 산업발전과 도시화의 이면에는 농사를 지으며 살던 나라가 어느새 전세계에서도 손꼽히는 곡물수입국이 되었다.
로컬푸드 운동은 해외에서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일어나고 있다. 미국에서는 ‘100마일 다이어트’라는 이름으로 로컬푸드 운동이 일어났다. 원래 캐나다에서 시작됐지만 미국 뉴욕에서 활성화됐다. 자신이 사는 지역에서 100마일 이내 나오는 먹을거리만 먹자는 운동이다.
처음 100마일 다이어트를 시작한 것은 캐나다의 프리랜서 작가 부부였다. 이들은 보통 음식 재료들이 생산지로부터 평균 1500마일 떨어진 곳에서 생산된다는 사실을 안 이후 장거리 운송에 따른 환경오염과 지구온난화 문제를 인식하게 됐다. 환경오염을 막고 동시에 신선한 음식을 먹기 위해 100마일 다이어트를 2005년 1년 동안 진행했고 이것이 점차 사람들 사이에 퍼져 나가 하나의 움직임으로 나타났다.
이탈리아에서 진행된 슬로우푸드 운동은 빠르고 편리한 대량생산 체제의 식문화가 스며들어오는 것에 반해 일어났다. 1986년 이탈리아에서 식품첨가물 문제에 휩싸인 지역와인이 이전의 명성회복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슬로우푸드협회가 출발됐다. 슬로우푸드 운동은 대량생산, 규격화, 산업화, 기계화를 통해 전세계적으로 미각의 동질화가 심화되고 있다는 것을 문제로 여겼다. 이 때문에 나라와 지역의 특성에 맞는 음식문화를 보존하자는 운동으로 세계 약 40개국에서 회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영국에서도 로컬푸드 운동이 진행됐다. 농업이 기업화되고 국제화되면서 전세계적으로 운송되는 먹을거리들이 가까운 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식품을 원료로 만든 지역먹을거리에 비해 신선도나 영양 측면에서 떨어진다는 인식이 퍼졌다. 이런 인식과 함께 식품의 안전성을 위협하는 요소들 대문에 영국 등지에서 로컬푸드에 대한 관심이 일어났다.
로컬푸드는 건강 뿐 아니라 비만, 아토피 등 식품이 원인되는 질병의 예방에도 효과가 있다. 환경적인 측면에서는 생물다양성의 증진과 지구온난화 방지에 기여한다. 농촌 지역사회 유지와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긍정적이다. 또 농사체험에서 생태교육, 학교급식, 먹을거리교육이 연계되는 효과가 있고 농산물 음식의 지역성과도 있다.
일본의 지산지소 운동은 지역 소비자의 기호를 반영한 농업생산과 생산된 농산물을 지역에서 소비함으로써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계하는 활동이다. 자신이 사는 곳에서 4리4방 이내에 생산된 것을 먹으면 건강해진다는 말에서 유래했다.
지역에서 생산한 농산물을 지역에서 소비한다는 과거 한국의 신토불이와 비슷한 내용이다. 일본의 농민과 소비자의 90%가 지산지소 운동을 알고 있고 정부차원(농민수산성)에서 지산지소 운동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지방자치단체와 단체급식소를 중심으로 로컬푸드 운동이 실시되고 있다. 완주, 춘천 등 로컬푸드 운동을 전개해나가는 데 학교급식에서부터 시작하고 있다. 친환경 쌀을 학교에서 소비해 엄청난 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상지대 구내식당은 2005년부터 같은 지역 내 원주생협 등에서 공급받은 친환경 쌀과 유기농 김치 등으로 식단을 짜고 있다. 경북 의성농민회는 대구지역 초등학교에 급식용 친환경 농산물을 판매하고 있다.
전북 완주군은 10년 내 로컬푸드 유통비율을 50% 이상 올렸다. 완주군은 로컬푸드사업단을 개소했다. 안전한 먹을거리 확보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완주 지역자활센터 내 로컬푸드사업단을 만들었다.
강원 원주시는 국내 최초로 로컬푸드인증제를 추진한다. 로컬푸드인증제는 해당 지역에서 생산된 안전한 먹을거리라는 사실을 지자체와 농협 등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인증해주는 제도이다.
이처럼 로컬푸드는 지금 식품안전과 관련해 하나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여러 가지 의문점을 가질 수 있다. 가까운 곳에서 생산되는 식품을 먹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면 당연한 일인데 우리는 왜 지구 반대편에서 나는 식품을 먹어야 하는 것일까?
이곳에서 나는 식품이 왜 저 멀리까지 가야만 하는 것일까? 이런 당연한 물음과 함께 또 한쪽에서는 식품 소비의 경제성을 문제로 제기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식품이 좋다는 것은 누구나 알지만, 이보다 중국의 것이 싸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것이다.
당장의 경제성을 말한다면 로컬푸드 운동의 흐름이 세계화를 역행하고, 경제적인 소비를 방해하는 것으로도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식품에 있어서 ‘지속가능성’을 떠올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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