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이 발달하면서 우리의 생활도 빨라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우리의 생활양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아침에 일어나 서울에서 밥을 먹고 점심은 부산에서, 저녁은 일본에서 먹고 다시 서울에서 친구들과 밤늦도록 술자리를 가져도 된다.
좁아진 세계는 우리의 식탁을 이전과는 다르게 풍요롭게 꾸밀 수도 있다. 조금만 주의 깊게 보면 이미 세계는 우리 코앞에 있다. 당장 자신 앞에 차려진 식탁을 보자. 그 안에는 온 지구가 들어있다. 하지만, 맛있게 먹기에 앞서 ‘우리는 과연 안전한 음식을 먹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해 볼 필요가 있다.
먹을 것이 없다
이것저것 따지자면 먹을 것이 없어진다. 건강을 생각해 먹는 과일, 야채도 사실 한번쯤 의심해야 하는 음식이 된지 오래다. 아침에 식사대용으로 오렌지를 갈아 만든 주스와 바나나를 먹는 사람이 있다. 이 간단한 식탁도 위험하다.
먹을거리를 걱정하던 엄마들이 안전한 먹을거리와 식습관을 위해 공부하다 써낸 책이 있다. 이 엄마들이 자료를 모으고 공부하다가 안 사실은 놀라웠다. 믿고 먹을 음식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책 제목은 이 엄마들의 마음을 고스란히 대변한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차라리 아이를 굶겨라(다음을 지키는엄마모임 지음, 시공사, 2000)’라고 말이다. 이 책에 보면 열대 수입과일에 대한 재미있는 사실이 나온다. 바나나와 오렌지만을 살펴보면 바나나의 경우 우리가 먹는 대부분은 필리핀에서 생산된다.
단일작물을 한 곳에서 집중적으로 재배하다보니 병충해에도 취약하고 연작장애도 일어난다. 또한 필리핀 토종 바나나는 크기가 작은 바나나였는데 우리가 먹는 바나나는 필리핀 사람들에게는 외래종인 큼지막한 바나나다. 이처럼 단작, 연작, 외래종까지 겹치니 다량의 농약 사용이 불가피하다. 바나나 경작지는 비행기로 엄청난 양의 농약을 뿌려 재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거기에 장거리 유통 때문에 필연적으로 화학물질들이 사용될 수 밖에 없다. 자연 상태에서 바나나는 사과나 배보다 쉽게 상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시장에서 판매하는 바나나는 국내산 과일보다 더욱 싱싱하다. 자연에서 이런 일이 불가능하다. 결국은 많은 방부제와 살충, 살균을 위한 농약이 살포되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수출하는 바나나는 현지에서 덜 익은 상태로 수확한 후, 고농도의 살균제에 푹 담근 뒤 살충제를 뿌리고 박스에 포장해서 수출한다. 수입농산물이 우리나라에 도착하기까지는 대략 4~6주정도 걸리는데 그 동안 농산물이 전혀 썩지도, 벌레도 먹지 않는다는 것은 엄청난 양의 약품으로 처리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오렌지 역시 마찬가지다. 미국산 오렌지의 경우 농가의 호당 경지면적이 엄청나게 넓어서 농약에 의존하지 않고는 농사를 지을 수 없다. 또 대부분이 수출을 목표로 하는 것이어서 수확 후의 저장과정에서도 막대한 농약이 살포되고 이 농약이 씻겨 나갈 기회도 없이 밀봉되어 배에 선적된다.
이 오렌지 처리과정을 살펴보면 먼저 처리장에 들어온 오렌지를 솔질한다. 이때 오렌지 껍질에 붙은 연한 갈색의 상처 딱지 등이 깎여 나가 깨끗한 상태로 된다. 이 처리를 거치는 동안 오렌지 껍질에는 많은 상처가 난다.
세포막이 파괴되었기 때문에 이 상태로 두면 얼마 되지 않아 곰팡이가 생긴다. 그래서 곰팡이가 피지 않도록 처리한다. 살균제를 뿌려 흰곰팡이를 죽이는 OPP(오르토페닐페놀)가 들어간 왁스를 바르고, 열풍 건조시킨다. 그러고 나서 녹색곰팡이를 죽이는 물질 TBZ, 아미자닐을 뿌린다.
오렌지의 껍질이 깨끗하고 윤기가 나는 것은 바로 농약에 포함된 왁스 때문이다. 욕실의 검은 곰팡이를 지워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락스로 곰팡이를 아무리 씻어내도 조그만 지나면 다시 곰팡이가 생긴다. 이렇게 독성이 강한 약재에도 견뎌내는 곰팡이가 다시 생기지 않는 식품이 오렌지다.
책에서는 대부분의 수입과일이 이런 과정을 거쳐서 공급이 된다고 밝히고 있다. 다시 정리해 보자면 지금 우리가 먹고 있는 대부분의 수입과일들은 수입유통 과정에서 화학약품에 절여져 들어오는 것들이라고 보면 된다.
수산물은 안전 할까? 유감스럽게도 아니다. 이와 관련한 흥미로운 조사 결과가 발표되었다. 지난 2008년 12월 12일 환경부와 국립환경과학원은 공주대학교 연구팀에 의뢰하여 실시한 제2차 ‘국민 생체시료 중 유해물질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 가운데 수은만을 살펴보면 우리나라 사람의 혈중 수은(3.80㎍/L) 농도는 독일 인체모니터링 위원회(CHBM)가 민감한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수준으로 권고하는 HBM II 기준(15㎍/L)을 초과하는 사람이 4.9%로 조사됐다.
지리적으로 해안인접지역이 62%를 차지한다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혈중 수은은 주로 어패류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때문에 보고서는 “혈액에서 수은농도가 상대적으로 높아 식습관에 대한 연구조사가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하고 있다.
그렇다면 곡식이나 야채, 육류는 어떨까? 지난번 광우병 파동에서 보이듯 대량 생산으로 길러낸 가축들은 성장촉진제나 항생제가 길러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기에 사료의 문제로 넘어가면 더욱 복잡해진다.
곡물의 경우 대규모 단일 경작은 과다한 농약 사용을 피할 수 없게 만든다. 거기에 GMO로 일컬어지는 유전자 조작 식품의 경우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정확한 위험성에 대해 지금 당장은 알 수 없다. 알기 어렵기는 식품에 사용되는 화학첨가물도 마찬가지다.
GMO나 화학첨가물에 대해 일부에서는 아직까지 위험이 발견되지 않았으므로 안전하다고 주장하지만 그 위험은 ‘아직까지 발현 되지 않았을 뿐’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MSG다. MSG(MonosodiumL-glutamate)는 버섯, 육류, 김, 토마토 등 단백질의 일부분으로 자연 식품에도 존재한다. 이러한 자연 식품을 섭취했을 때 부작용이나 병적 증세가 보고된 예는 없다.
하지만, 식품 첨가제로 만들어진 화학조미료의 경우 독성을 나타낸다. MSG의 구성물질인 글루탐산은 흥분성 신경전달물질로 과량의 글루탐산이 신경조직에 흡수될 경우 신경 세포막을 파괴한다.
이러한 유해성 논란으로 많은 제품에서 MSG는 제외되었지만 사용이 금지되기 이전까지 많은 시간동안 ‘아직 위험성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각종 조미료 등에 사용되어 우리의 입맛을 길들여 왔다는 사실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풍요로운 식탁에 가려진 빈곤
세계화된 식탁이 가진 문제는 비단 우리의 먹을거리로 국한되지 않는다. 단일경작을 위한 대규모 농장 농업은 재래식 농업을 빠른 속도로 밀어냈고 이 과정에서 농민들의 희생은 필수적이었다. 여기에 환경파괴의 문제는 두말할 나위도 없다. 기업화된 농업과 세계의 다국적 농업회사는 이러한 파괴에 가속 페달을 제공한다. 지난 2008년 4월 MBC에서 방영된 ‘W’ 에서는 이러한 문제점의 단면을 잘 설명하고 있다.
이 방송에서는 14살 소년이 태국현지 임금의 1/7에 불과한 급여를 받으며 하루 15시간 이상을 일하는 모습이 나온다. 또 새우 식장에 뿌려진 다량의 항생제와 화학비료가 어떻게 땅을 황폐화 시켰고 동남아시아 해안의 망그로브 숲이 파괴되고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내용은 최근 출간된 ‘내가 먹는 것이 바로 나(2008, 허남혁 지음. 김종엽 그림, 책세상)’라는 책에서도 잘 보여 진다. 저자는 “전 세계에서 굶주리는 사람이 8억5000만 명에 달하는 현실에서 전 세계 곡물의 3분의 1을 소가 먹어치우고 있고, 전 세계에서 물 부족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10억 명에 달하는 현실에서 선진국의 부유한 소비자들이 즐겨먹는 쇠고기 1킬로그램을 생산하기 위해 곡물 재배에 필요한 물의 50배가 소비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2000년부터 8년간 유엔 인권위원회 식량특별조사관이었으며 유엔 인권위원회 자문위원으로 일하는 전 제네바·소르본 대학 사회학 교수 장 지글러는 ‘탐욕의 시대(원제: 수치의 제국)’에서 이러한 문제를 정면 비판했다.
그는 “인류가 이제까지 만들어낸 것들 중에서 가장 앞서 가는 첨단기술과 막대한 자본, 강력한 연구소들로 무장한 민간 다국적기업들”이다. 그들이야말로 “정의롭지 못하고 치사한 질서를 고착시키는 주역들”이라고 비판했다.
이와 관련해 지난 2008년 12월 9일 유엔 산하 식량농업기구(FAO)가 발표한 ‘2008 세계 식량불안 상태’ 보고서는 많은 점을 시사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기아로 고통 받는 인구는 9억6천300만 명이다. 또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생활하는 절대빈곤층은 20억 명에 달한다. 하지만 현재의 농업생산력으로도 120억 명은 정상적으로 먹여 살릴 수 있다.
또한 이러한 농업은 열대우림을 급속히 감소시키고 있다. 2008년 8월 30일 브라질 국립환경연구소(INPE)가 발표한 것에 따르면 지난 2007년 8월부터 올 8월까지 약 8147㎡에 달하는 숲이 벌채되었다. 그 원인은 바로 작물 재배를 위한 벌채였다.
‘느림’에서 희망 찾기
헬레나 노르베르 호지는 그의 유명한 저서 ‘오래된 미래’에서 비록 가진 것이 없지만 생태적 지혜를 통해 천년이 넘도록 평화롭고 건강한 공동체를 유지해온 라다크를 이야기한다. 그는 책에서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지 우리에게 묻는다.
빠름과 풍요로 대변되는 현대의 이면에는 환경오염과 질병, 가난 이라는 인류의 자기파괴적 모습이 담겨져 있다. 우리가 편하게 먹는 저 수 많은 음식들은 우리 모두의 미래가 담보된 결과물일 수도 있다. 이제 더 이상 빌려올 미래가 없다면 우리는 무엇을 먹어야 할까?
이에 대한 해답은 없을까? 많은 사람들이 이에 대한 해답을 ‘느림’에서 찾고 있다. 빨리 만들어 빨리 먹는 대신 느리더라도 조금 더 안전한 음식을 찾아 소비하는 것이다. 물론 경제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의 몸과 건강한 지구 환경을 생각했을 때 결코 값비싼 댓가라고 여길 수 없다.
그런 면에서 최근 일고 있는 ‘슬로 푸드’운동 이나 ‘로컬 푸드’운동은 주목해 볼 만하다. 슬로 푸드 운동의 주창자이자 이탈리아의 언론인인 카를로 페트리니는 이러한 세계화의 문제점을 해결할 대안으로 ‘좋고, 깨끗하고, 공정한’ 먹을거리를 제안했다.
그는 국내 한 일간지(2008년 11월 08일 한겨레 “덜 먹으면서 더 좋은 먹거리로”)와의 인터뷰에서 슬로 푸드 운동에 대해 “슬로푸드는 그저 유기농이 아니다. 슬로푸드 운동의 슬로건은 ‘좋고, 깨끗하고, 공정한’ 먹거리다. ‘좋음’은 감각적으로 맛있어야 함을, ‘깨끗함’은 생산 과정이 환경을 파괴하지 않아야 함을, ‘공정함’은 생산·유통이 사회 정의에 맞아야 함을 가리킨다. 슬로푸드는 ‘식탁 위의 민주주의’다.”라고 설명했다.
지금 그 느림의 철학들이 ‘지속가능한 미래’를 안고 조용하지만 빠르게 우리 곁으로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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