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교육의 새로운 접근법

-삶과 사회를 다시 디자인하기
편집국 | eco@ecomedia.co.kr | 입력 2007-11-19 16: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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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년 10월 1일 국회 본관 환경노동위 회의실에서는 ‘환경교육 진흥과 지원에 관한 법률(안)’에 대한 공청회가 열렸다. 이번 공청회는 환경교육에 관하여 제종길 의원과 이경재 의원에 의해 유사한 법률이 제안되었기 때문에 두 법안을 병합심의하기 위해 개최된 것이었다.

환경교육법에 대한 논의는 ’01년 말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이제 7년째 접어들고 있다. 16대 국회에서는 국회환경포럼과 한국환경교육학회를 중심으로 환경교육진흥법의 시안을 만들고 여러 차례의 공청회와 토론회를 거쳐 이정일 의원의 대표발의로 추진되었으나 본 회의에 상정도 되지 못한 채 폐기되고 말았다. 이번에는 꼭 통과되기를 희망한다.

한 나라의 환경교육을 태어나 성장하고 죽는 생명체처럼 비유하는 것은 일견 일리도 있고 쉬워 보이지만 그 구체적인 발달의 단계를 짚어내고 그에 맞는 처방을 내리기는 어려운 일이다. 우리나라에서 환경교육은 1970년대 초반 유네스코한국위원회를 통해서 자주 소개되기 시작하였다.

1973년 이화여자대학교에 환경교육연구회가 만들어져서 ‘환경학개론’이라는 단행본을 내기도 했지만, 그 이후의 활동이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반면, 유네스코한국위원회는 자신의 소식지를 통하여 환경교육에 관한 세계적 동향과 쟁점들을 꾸준히 알려주었다. 그로부터 30여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환경교육의 위기를 맞고 있다. 정체성도 약화되고 실천도 편협해졌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점에서 환경교육이 추구해야 할 중요한 원칙은 무엇일까? 필자는 두 가지 원칙으로 요약하여 제시하고자 한다. 우리가 지켜야 할 첫 번째 원칙은 학습과 실천의 실질적인 통합을 위한 획기적이고 구체적인 변화를 추구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통합성이야말로 지금 이 시점에 다른 어떤 것보다도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원칙이다.

특히 더 이상 다학문적 접근과 간학문적 접근을 비슷한 것인 양 뒤섞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한다. 만약 조금이라도 환경문제에 대한 통합적 안목과 깨우침을 추구한다면 지금과 같이 교과 단위로 생각과 실천이 분리고립되어 있는 상황에서 분산적 접근을 전제로 하는 다학문적 접근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다학문적 접근의 한계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이를 확실히 뛰어넘는 간학문적이고 나아가 탈학문적인 실험적 접근들이 시도되어야 한다. 아마 이러한 시도는 환경교육 내부에서 일어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환경교육이라는 알이 통합을 위해 스스로를 깨뜨릴 만한 그러한 내적 열망과 신념을 가지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따라서 어느 정도는 외적 권고와 충격, 강제가 필요할 것이다. 그렇다면 환경교육 영역 밖에는 이러한 통합을 추구할 집단이 형성되어 있는가? 이번 새교육과정에서 환경과의 내용체계는 여전히 단일교과적인 틀 위에 세워졌고, 간학문적 접근을 가로막는 어떠한 장벽도 실질적으로 극복하지 못했다.

따라서 두 번째로 강조하고자 하는 환경교육의 원칙은 창의성을 추구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 방법은 디자인, 즉 설계이다. 환경교육은 학습자들로 하여금 이 세계를 보다 지속가능하게 설계(창조)하고 운영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이러한 능력은 불가피하게 환경교육을 넘어서는 통합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건설교통부와 환경부를 통합하여 하나의 부서로 만들려고 했던 시도처럼, 관계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들 사이의 관계를 발견하고 우리 사회의 부분 부분을 재설계하는 실험과 도전이 필요하다.

모두들 입으로는 환경의 중요성을 말하지만, 최소한 우리 사회의 일부 집단은 환경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며,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환경을 무시하거나 나아가 아무런 거리낌없이 파괴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그들은 매우 강하고 놀라울 정도로 성실하며 세상을 움직일 수 있는 많은 무기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환경의 중요성을 믿는 사람들이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 그들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을 지 의심스럽다. 환경교육이 그들과의 싸움에서 환경진영이 승리할 가능성을 높이는데 기여할 수 있을까? 필자는 아주 작은 상상에서 그 싸움을 시작하고자 한다.

지속가능한 발전과 환경교육
우리나라에서도 지속가능한 발전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가고 있다. 당연히 환경교육에서도 이 문제가 화두이다. 지속가능한 사회란 어떤 사회인가? 우리는 그런 사회를 아직 살아본 적이 없고 구체적으로 어떤 사회일지 아직 잘 모른다. 뭐가 딱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게 될 것 같지도 않다. 따라서 먼저 알게 된 자가 아는 것을 모르는 자에게 가르치는 지식 전수와 사회화 과정으로서의 교육은 그 입지가 약해질 수밖에 없다.

앞으로 환경교육자는 학습자와 함께 우리 사회가 보다 지속가능하기 위해서 우리 사회를 어떻게 바꾸고 그와 동시에 우리 삶의 방식을 어떻게 다시 설계할 것인지를 물으면서 모르는 길을 찾아가는 역할을 하여야 한다. 그만큼 권위의 상실을 각오해야 하고, 열린 마음을 키워야 한다.

통합성과 창의성은 동전의 앞뒷면이다. 이러한 능력은 디자인 과정을 연습하고 실천에 옮기면서 획득되고 다듬어 질 수 있다. 소위 근대성(modernity)이라는 악마가 조각내 놓은 우리의 지식과 마음과 사회를 어떻게 다시 소통하여 연결되게 할 것인가? 그리고 자기 자신의 경쟁력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웃과 미래세대를 위해 안전과 건강과 행복을 위해 창의성을 발휘하게 할 것인가?

우리에게는 두 가지 능력이 다 필요하다. 스스로 자신의 삶을 굳세게 살아가는 능력과 다른 사람들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능력. 앞의 것이 경쟁력이라면 뒤의 것이 공생력이다. 경쟁력과 마찬가지로 공생력도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배우고 연마해야 하는 것이다. 무엇이 경쟁력이고 무엇이 공생력인가? 학원에서 가르치는 것은 경쟁력이고 학원에서 가르치지 않는 것은 공생력이다. 남을 무찌르는 것은 학원에서 가르치지만 남을 돌보고 배려하는 것을 가르치는 학원은 없다. 학원에서 가르치는 경쟁력을 학교에서까지 가르치면 우리는 공생력을 배울 곳이 없다.

가슴에 알을 품은 어미새가 둥지를 설계하듯이, 보다 세심하게 두루 살피면서 그리고 보다 간절하고 치열하게 우리는 우리 사회와 삶을 다시 설계해야 한다. 이것이 지금 우리의 환경교육이 학교 안팎에서 해야 할 첫 번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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