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몇 세기에 걸쳐 아무쓸모 없는 불모의 땅으로 간주되어 오던 습지는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간척이나 매립, 토지 개량 공사 등으로 파괴되어왔다. 최근에서야 습지가 생물다양성의 보고(寶庫)로서 동·식물, 미생물 등의 주요 서식지로, 오염물질 정화, 홍수조절, 기후 조절, 교육 및 여가, 심미적 기능 등 환경적으로나 사회·문화 ·경제적으로 그 가치가 매우 높음을 인정받고 있다.
이러한 습지의 가치가 전 세계적으로 부각되면서 1971년, 이란의 람사(Ramsar)에서 ‘물새 서식지로서 특히 국제적으로 중요한 습지에 관한 협약’을 체결하고 국제적인 습지보호 활동을 시작했다. 1975년 12월에 발효된 동협약은 세계최초의 정부간 국제환경협약으로서 ‘람사협약’또는‘습지협약’으로 불리기도 한다. 가입국은 1곳 이상의 습지를 등록해야 하며, 지속적으로 그 습지를 보호해야 하는 의무를 갖는다.
우리나라는 1997년 7월에 101번째로 가입했고, 대암산 용늪(’97), 창녕 우포늪(’98), 신안 장도습지(’05), 순천만·보성만 갯벌(’06), 제주도물영아리오름(’06)의 5개소가 등록되어 있다. 참고로 ’07년 3월현재 전 세계 154개국에서 1,650개소 약1억4천9백만 ha의 습지가 등록되어 있다.
습지보전, 허와 실
우리나라는 1990년대 중반까지 습지에 대한 인식부족으로 국토의 확장과 식량자급을 위한 농지확보를 명분으로 갯벌에 대한 대규모 간척 및 매립이 이루어져 왔다. 대표적인 예가 세계 5대 갯벌중의 하나인 서해안 연안지역이다.
새만금간척사업으로 전북 군산과 부안을 연결하는 33km의 방조제 총면적 40,100ha 규모에 토지조성 면적 28,300ha, 담수호 면적 11,800ha가 목표다. 방조제 공사에만 14년 이상이 소요되는 사업으로 이미 방조제는 완성단계(’08년 목표)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이는 풍부한 영양염류와 서식환경이 제공되어온 갯벌이 사라짐을 의미하며 갯벌에 서식하고 있던 어류, 갑각류, 연체동물, 갯지렁이, 바다새 등 이 지역에서 서식하던 대부분의 동·식물을 사라지게 할 것이다. 그동안 이 사업을 둘러사고 국내외의 찬반 논란과 더불어 많은 환경단체로부터 각종 압력을 받아오기도 했으나, 우선 개발 논리에 밀려 계속될 전망이다.
이 같은 공유수면, 연안매립 사업은 비단 서해안뿐 아니라 남해안 일대에서도 시행되고 있다. 현재 마산시가 건설교통부 도시계획심의위에 제출한 ‘2020년 마산도시기본계획’에 따르면 창포만 1,980만㎡, 난포만 390만㎡의 연안 매립을 통해 창포만 공단과 난포만 조선단지를 조성하려고 하고 있다.
이보다 규모는 작으나 통영 장평·명정지역 공유수면 매립 등 남해안 일대에서도 꾸준히 연안지역은 매립·개발되고 있어 갯벌은 점차 그 자취를 감추고 있다. 이 같은 일련의 사례들은 람사협약에 가입하고, 습지보전법(1999년 2월시행)을 제정, 습지의 보전 최종 책임이 국가에 있음을 천명한 정부의 습지보전 정책에 대한 불신을 불러오기에 충분하다.
특히, 국제사회가 습지보존 및 복원을 위해 노력을 경주하고 있는 지금, 우리 정부가 국제적 약속을 지키기보다 당장 눈에 보이는 가치만을 중시, 개발 우선주의를 택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현행, 공유수면매립법에 의해 습지의 이용 결정은 주로 중앙 부처의 주도하에 이루어져 왔다. 환경부는 습지의 보전을 위해서 환경정책기본법에 따라 습지보호지역 내에서의 개발, 수자원 이용 및 하천의 이용·개발 등의 사업에 사전환경성검토 하는 등의 소극적 규제 수단만을 가지고 있어 향후 관련법 개정시에는 환경부가 습지보호를 위해 적극 개입하도록 하는 강력한 규제조항 삽입이 필요하다.
습지보호지역 지정, 문제점 많아
환경부는 습지보전을 위해 막대한 예산과 인력을 투입하고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개발이란 명목아래 습지파괴를 허가하는 상황이 아이러니하다. 습지보전법 시행과 동시에 환경부는 낙동강하구 등 4개 지역을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했다.
이후 ‘00년에 제주도 물영아리오름, ’02년에 화엄늪 두웅습지를, ’04년에 신불산 고산습지, 담양하천습지, 신안장도 산지습지, ’06년에 한강하구, 재약산 산들늪 등을 지정, 현재 총 12개소, 107.109㎢ 의 내륙습지를, 해양수산부는 ’01년 무안갯벌, ’02년 진도갯벌, ’03년에는 순천만갯벌, 보성·벌교갯벌, 옹진 장봉동갯벌, ’06년에 부안 줄포만갯벌 등 총 6개소, 142.228㎢의 연안습지를 지정하고 있다.
이처럼 습지를 연안, 내륙습지로 구분하고 관리주체를 환경부와 해수부로 분리하고 있고, 총괄적으로는 환경부가 관리토록 하고 있지만, 환경부 관계자는 람사등록 습지를 비롯해 습지보호지역 지정·보호에 관해서도 습지관리법에 의해 업무 영역이 분담되고 있다며, 갯벌쪽의 관리상황에 대한 답변을 회피했다.
한국습지학회 윤성윤은 운영위원장은 습지관리에서 가장 핵심은 습지관리를 총괄할 전담부서 설치와 인력 및 예산이라고 밝혔다. 윤 위원장은 “정부·지자체·NGO·학계·연구기관의 연구 및 보전활동을 지속적으로 적극 지원할 예산 및 인력확보가 가장 시급하다. 정부조직 내 총괄적으로 습지업무를 담당할 전담부서를 신설하고, 정식 국가습지연구기관이나 국가습지센타를 구축해 체계적인 정보수집, 관리및 유지해 나가야 한다”며 “현재 환경부 산하에 ‘국가습지보전관리사업단’이 있기는 하지만 이는 한시적으로 운영되는 것이기에 지속적으로 연구사업을 시행할 조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경상남도에서 람사준비기획의 일환으로 한국람사습지센타를 운영하고 있지만 이도 지자체의 적은 예산으로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어려움이 있다”면서, 정부의 보다 적극적인 개입을 촉구했다. 한편, 생태교육과 관광자원으로 이용 가능한 습지의 더 이상의 훼손을 방지하고 기존 훼손된 습지에 대해서도 외국 선진사례의 습지총량제 및 습지은행제도 도입을 통한 복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환경부는 지난 ’01년부터 3년간 GEF(지구환경금융)의 자금지원과 UNDP(국제연합개발계획)의 협력하에 국내 습지보전 기초 조사사업을 실시했다. 그 결과를 토대로 ’04년에는 UNDP와 협약을 체결해 국가습지보전사업을 추진하게 되었다. GEF와 우리나라가 사업비를 조성하고 환경부 안에 습지를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보전하기 위한 다양한 사업을 전개할 전담기구 국가습지보전사업단을 설치운영하고 있지만, 아직 활동은 미비한 실정이다.
우리나라는 현재,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된 습지 18개소 중 5개소만 람사협약 습지로 등록하고 있다. 이는 습지보전계획에 의한 1차조사(’00 ~ ’05)시 750여개로 조사된 습지수 대비 현재의 람사등록 습지는 터무니없이 적은 수다.
따라서 습지보전법에 의한 습지보호지역 보전계획도 습지보호지역 18개소에 대해서만 수립하여 감시원의 고용 배치, 주기적인 모니터링과 생태계 정밀조사, 습지보전 및 관리를 위한 각종 시설물 설치할 수 있기 때문에 비보호지역 중 주요 철새도래지 등 보전가치가 높은 많은 내륙 또는 연안습지들은 법적·제도적 보호장치없이 무방비상태로 훼손 위험에 노출되어 있으며 사라지고 있다.
자연환경보전연구소 서정수 소장은 “동해 쪽의 화진포, 송지호, 청초호, 경포호, 영랑호 등의 기수호는 고생물대 연구를 할 수 있는 중요 지표임에도 불구하고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되어 있지 않아 개발로 인한 훼손이 심화되고 있다”며, “특히, 청초호는 유원지 개발계획에 의해 이미 매립이 되었고, 수초대가 소멸하는 등 기수호 기능을 완전히 상실했다”고 정부의 습지보호지역지정과 관련 기수호(석호)가 누락되어 제대로 관리되지 못하고 실정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사실, 내륙 호수와 달리 바닷물과 강물이 섞인 기수호는 이웃나라 일본에서도 람사등록습지 33개소 중 7개소가 기수호에 해당할 정도로 다른 호소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자연환경적 특성을 지니고 있어 그 보전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따라서 우리 정부도 향후 습지보호지역을 확대 시 자연환경적 특성을 고려해 지정함으로써 보전가치가 높은 습지가 더 이상 훼손되지 않도록 고려해야 한다.
보전 對 개발, 정부의 입장을 분명히 해야
습지보전법 시행시 우리나라 습지관리가 정부 주도하에 체계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8년이 지난 지금, 우리의 습지보호정책은 아직 안정궤도에 진입하지 못하고 외부환경에 의해 흔들리며 삐걱거리고 있다. 정부는 습지보전정책이란 큰 틀안에서, 한쪽은 보호정책으로 이제 겨우 걸음마를 시작했는데, 다른 한쪽은 개발로 인한 경제적 효과가 중요하다며 좌우 살피지도 않고 앞만 보고 달려가는 것처럼 보여 불안하다.
특히, 지난 1995년 낙동강유역환경청이 세계적 철새도래지인 낙동강 을숙도 위를 관통하는 명지대교의 건설행위허가를 승인하여 습지보호구역내의 교량건설행위가 공익인지 아닌지에 대해 환경단체와 건설사, 정부 등 의견이 분분했다. 뿐만아니라 인근지역에서 진행중인 신항만공사로 인해 습지로서의 기능훼손은 물론 지역 자연생태계 변화에도 예상을 뛰어넘는 부작용이 초래되는 현상이 일고 있다.
환경부는 습지관련 정부부처와 협의를 통해 향후습지의 보전관리를 위한 정부차원의 정책조정 및 협조체제를 구축하고, 지역주민, 시민단체, 학계, 지자체, 외국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한 생태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등 적극적인 습지관리 노력이 필요하다.
환경올림픽으로 불리는 ‘람사협약 `제10차 당사국회의’가 다가오는 ’08년에 ‘건강한 습지, 건강한 인간’이란 주제로 일본 쿠시로시에 이어 아시아 두 번째로 우리나라 경상남도에서 개최된다. 정부가 1년 남짓 남은 행사준비에만 급급해할 것이 아니라 앞으로 습지보전을 위한 정부의 역할과 입장을 분명히 해야할 것이다. 이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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