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은 (한국전통직업전문학교장)
화려한 ‘반가’ 기능적인 ‘민가’
가족 구성원에 맞는 주거형태 한옥의 구조는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두 가지 것으로 크게 분류될 수 있다. 사회적 지위와 재력을 고루 갖추었던 조선시대 상류층 주택의 큰 특징은 솟을 대문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적 여유가 있었던 사람들이 규모있게 지었으므로 주택의 장식에도 섬세한 신경을 많이 써 예술적인 가치가 있는 집들이다. 이러한 집을 반가라 한다. 그러나 신분이 낮은 농민이라도 재력이 있었으면 규모가 큰 중류 주택에 살았으며 사대부, 양반과 같은 상류층 중에도 경제력이 없거나 안빈낙도의 선비정신을 중히 여겼던 사람들은 검소한 서민 주택에서 살았다. 한편, 백성의 집이란 뜻이지만 일반적으로 중하류층의 일반 서민들이 살았던 집을 ‘민가(民家)’라 부른다. 민가의 형태는 지형적, 기후적 여건, 지방의 경제 상태 등에 따라 규모나 건물배치 방식이 달랐으며 특히 기후의 영향으로 지방마다 각기 다른 특색을 지닌다. 서민들은 경제적으로 풍요롭지 못했으므로 주택을 지을 때도 장식적인 면보다는 기능적인 면을 중시하여 대부분 방과 대청, 부엌으로 구성된 단순한 구조로 지었다.
신분과 남녀, 장유별로 분리
조선의 상류주택은 내외사상으로 여자들이 사용하는 ‘안’ 공간과 남자들이 사용하는 ‘밖’ 공간으로 구분이 되었다. ‘안’ 공간인 안채는 집안의 주인마님을 비롯한 여성들의 공간이며 주택의 안쪽에 위치했다. 가부장적 제도의 권위를 상징하는 사랑채는 ‘밖’ 공간으로 집안의 가부장과 장자를 비롯한 남자들이 글공부를 하거나 풍류를 즐기던 공간이었다. 그 외에도 상하 신분제도의 영향으로 공간을 다르게 배치하였다. 상(上)의 공간인 안채와 사랑채는 양반들이, 하 (下) 공간인 행랑채는 (줄행랑 대문 좌우로 연결하여 지어진 집) 대문간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하여 머슴들이 기거하는 공간이었다. 중문간 행랑채는 중(中)의 공간으로 중간 계층인 청지기가 거처하는 공간이었다. 상류주택은 신분과 남녀별, 장유별로 공간을 분리하여 대가족이 함께 어우러져 사는 당시의 가족생활을 고려한 공간 배치를 하였음을 알 수 있다.
한옥의 10가지 기능적 구분
안채 ‘안’공간인 안채는 집안의 주인마님을 비롯한 여성들의 공간으로 대문으로부터 가장 안쪽에 위치하였으며 보통 안방, 안대청, 건넌방, 부엌으로 구성된다. 안채의 안방은 조선시대 상류주택의 실내 공간 중에서도 상징적으로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었으며 출산, 임종 등 집안의 중요한 일이 이루어지던 여성들의 주된 생활공간이다.
위치상 대문으로부터 가장 안쪽인 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여성들의 사회생활을 꺼려하여 남편이나 친척 외에는 남자들을 만나지 못하도록 하는 등 여성과 외부의 출입을 제한하던 당시 사회상을 반영하는 공간배치라고 볼 수 있다. 사랑채와 달리 학문 탐구 등의 활동 공간이라기보다 가족들의 의식주를 전담하는 공간으로 의복과 침구류 보관을 위한 수납용 가구 등이 놓여 있다. 대청 안채의 안방과 건넌방, 사랑채의 사랑큰방 앞의 넓은 마루를 ‘대청’이라 칭한다. 대청은 조선시대 상류 주택의 의식과 권위를 표현하는 상징적인 공간이며 각각의 방을 연결하는 공간으로 오늘날 주택의 거실에 해당하는 공간이다. 여름철 분합문(들문)을 서까래 밑에 내려진 들쇠에 걸어 올려놓으면 이곳은 열린 공간, 생활의 중심이 되는 공간이 된다. 겨울철에는 분합문을 닫아 한기를 막고 대청공간을 아늑한 실내공간으로 만들기도 했다. 안채에 있는 것을 안대청이라 하며 사랑채에 면해 있으면 사랑대청이라 한다. 대청은 한여름의 무더위를 이기기 위해 현명하게 고안한 가옥의 구조라고 할 수 있는데 전면 또는 사방이 트여있어 엄밀히 말하면 실내라고 할 수 없다.
대청의 바닥은 상류주택에서 서민주택까지 가장 일반적으로 우물마루가 쓰여졌다.
방 전통주택에서 방은 열린 공간인 대청과 반대되는 폐쇄적인 의미를 지닌 개인적인 공간이다. 잠을 자고 식사를 하고 휴식을 취하는 전통가옥에서의 방은 잠을 잘 때는 침대대신 따뜻한 구들 방바닥 위에 이부자리를 펴고 자고 낮에는 의자대신 방석에 앉아 지내는 좌식생활을 하도록 되어있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 바닥에 바로 앉아서 생활하기 때문에 방을 늘 청결하게 유지하였으며 방의 내부는 모두 벽지나 천장지를 발랐고 바닥은 장판지로 마감했다.
부엌 불을 지펴서 각종 음식을 조리하는 공간인 부엌은 주로 여성들의 공간인 안채에 안방과 바로 인접하여 위치하였으나 일부 대가들의 집에는 반빗간이라 하여 별채로 독립시키기도 했다. 작업동선상 매우 불편한 구조를 지닌다는 단점을 가진다. 하지만 부엌 바닥을 일반적으로 방바닥보다 75~90 cm 정도 낮게 하여 아궁이에서 땐 불길을 방고래로 빨아들이도록 되어 있는 ‘온돌구조’는 세계에 자랑할 만한 것이다. 부엌에는 2~4개의 아궁이가 있었으며 불을 때는 아궁이 위 부뚜막에는 솥을 걸어 두었고 아궁이는 안방과 면한 벽 쪽에 설치하여 음식물을 조리하면서 동시에 방을 데우도록 했다. 부엌은 주택의 규모에 따라 안방과 건넌방에 각각 위치하는데 안방과 접한 부엌이 주된 조리 공간이었으며 건너 방 쪽은 물을 데우는데 쓰이는 등 보조적인 공간으로 이용 되었다.
찬방 찬마루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오늘날의 주택의 부엌방과 다용도실 정도에 해당하는 공간으로 반가나 중·상류 지방의 가옥에서 볼 수 있는 부엌과 인접한 공간이다. 부엌과는 문으로 연결되어 있어 부엌에서 조리된 음식을 이곳에서 상에 올려 안방, 사랑방 등으로 내갔으며 간단한 음식은 이곳에서 조리했다. 이곳에는 상을 차리는데 필요한 그릇, 식기 등이 마련되어 있으며 음식물을 보관하기 위한 창고로도 쓰였다.
사랑채 사랑채는 외부로부터 온 손님들에게 숙식을 대접하는 장소로 쓰이거나 이웃이나 친지들이 모여서 친목을 도모하고 집안 어른이 어린 자녀들에게 학문과 교양을 교육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사대부 남자들이 모여서 학문에 대해 열띤 토론을 하고 시를 짓거나 거문고 등의 악기를 연주하며 수준 높은 문화생활을 한 것도 이곳이었다. 당시 열린 문화공간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부유한 집안의 경우는 사랑채가 독립된 건물로 있었지만 일반적인 농가에서는 주로 대문 가까이의 바깥쪽 방을 사랑방으로 정해 남자들의 공간으로 사용했다. 사랑채는 보통 사랑대청과 사랑방으로 구성되며 부유한 집안은 누마루를 마련하며 한층 품위를 살렸던 것이다. 사랑방은 사랑채의 주요 공간으로 남자주인과 귀한 손님이 기거하는 공간이었다. 상류주택의 사랑방은 기거와 침식 외에도 독서, 예술 활동, 접대 등의 많은 행위가 이루어졌던 중요한 공간이다. 유학을 장려하여 문필문학을 존중하고 경전을 연구하는 풍조가 만연하였던 조선시대에는 사랑방문화가 발달했다. 금욕적 유교생활을 지향하는 선비의식의 영향으로 사랑방의 가구나 장식은 매우 간소하게 꾸며져 보통 몇 개의 방석과 작은 책상, 장롱과 책장, 문방소품 등으로 구성 되었다. 사당채 조상숭배의식의 정착과 함께 대문으로부터 가장 안쪽, 안채의 안대청 뒤쪽이나 사랑채 뒤쪽 제일 높은 곳에 ‘사당’이라는 의례 공간을 마련하기도 하였다. 보통 사당에는 4개의 신위를 모시는데 서쪽부터 고조의 신위, 증조의 신위, 할아버지의 신위를 모시며 마지막에 부모의 신위를 모시게 되는 것이다. 대개의 중상류 주택은 가묘법에 따라 사당을 건축하지만 사당이 없는 집도 있어 그런 집에서는 대청마루에 벽감을 설치하여 신위를 모셨던 것이다. 행랑채 전통주택은 상하 신분제도의 영향으로 공간을 다르게 배치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집안의 경우 안채와 사랑채 외에도 하인들이 기거하거나 곡식 등을 저장해두는 창고로서 쓰였던 행랑채가 따로 있었다. 하층민의 생활공간인 행랑채는 그 주택의 규모에 따라 ‘바깥 행랑채’만 또는 ‘중문간 행랑채’도 존재했던 것이다. 바깥행랑채는 대문간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하여 집안에서 가장 신분이 낮은 머슴들이 기거하는 공간이었으며 중문간 행랑채는 양반들이 기거하는 안채, 사랑채와의 중(中)의 공간으로 중간 계층인 청지기가 거처했다. 이들 공간들은 커다란 한 울타리 안에 작은 담장을 세우거나 채를 분리하여 구획했다. 별당채 규모가 있는 집안의 가옥에는 별당이 집의 뒤, 안채의 뒤쪽에 자리하고 있었으며 이용하는 사람에 따라 그 이름이 다르게 불렸다. 결혼 전의 딸들이 기거하는 별당은 ‘초당’으로 불렸다. 또한 결혼 전의 남자 아이들의 글공부를 위해 ‘서당’이 따로 마련되어 있는 집도 있었다. 곶간채 중상류층의 주택 중에서도 부유한 집안은 수십 칸 규모의 주택에서 살았다. 이들 ‘칸’수가 많은 전통주택에는 곶간채가 별도로 마련되어 있어 오래 저장해두어야 할 음식이나 여러 가지 생활용품들을 저장, 보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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