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오호리 245-7번지 해양연구원 산하 해양심층수연구센터. 간성방면 7번 국도에 떨어지기 시작하던 빗방울이 동해로 몰려가 해안선을 안개 속에 가둬놓는다. 서울출발 소요시간 2시간 50분, 최근 백두대간의 허리를 뚫어 개통한 3.69km의 미시령 장대터널을 거쳐 오면 고속도로를 타지 않고도 가장 빠르게 동해북부 지방에 닿을 수 있다.
국비 137억 원을 투입해 지난해 말 개소한 고성 심층수연구센터는 2,200평 부지에 건평 770평 규모로 연구개발동, 산업실험동, 수산실험동, 전시홍보관 등을 갖추고 있다. 국산 심층수 개발의 메카로 하루 1천 톤의 심해수를 퍼 올리는 이곳은 100여 미터의 백사장을 걸어 나가면 동해에 닿을 수 있는 곳에 입지해 있고, 인근 해역은 군사지역에 묶여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연구센터 옥상에서 바라보면 동남쪽으로 육지와 멀지 않게 무인섬 ‘죽도’가 조망되고 송지호 해수욕장이 인접해 있다. 센터로 연결된 두 개의 218mm 파이프는 수심 300, 500m의 동해바다를 향해 있다. 육지기준으로 죽도의 우측 편을 돌아 송지호 해변 백사장 수 미터 아래 묻혀있는 이들 관로가 최대 수심 수천 미터에서 용승(湧昇)한 심층수를 뽑아 올리고 있는 것이다.
심층수연구센터 본격 가동 수산·산업실험 한창
센터 본관 좌측에 위치한 수산실험동, 100여 평의 실험동 문을 열자 폭포수 아래 와 있는 듯 한기(寒氣)가 느껴진다. 5~6개의 약 1,000리터들이 수조로 연이어 심층수가 퍼 올려지고 있다. 수조 표면에는 심층수 특유의 저수온성 때문에 냉기가 피어올랐다.
실험동 내부는 흡사 인공 냉장실처럼 저온 상태가 유지되고 있다. 이러한 특성을 이용한다면 저온양식은 물론 장기적으로 온도차 발전까지 상용화하는 것도 허황된 얘기가 아니란 생각이 머릴 스쳤다.
‘15℃ 항온수조’로 명기된 또 다른 수조, 어림잡아 수백 마리의 연어(치어)가 물살을 따라 헤엄치고 있다. 서식수온이 10~27℃인 연어는 천천히 손이 시려올 만큼의 심해수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해양심층수의 4대 특성은 청정성, 저온성, 부영양성, 미네랄성으로 구분되는데, 연어양식은 심층수의 저온성과 부영양성을 검증해보는 손쉬운 방법의 하나다. 또 다른 ‘5℃ 항온수조’에서는 뚝지(도지)와 10℃이하에서 서식하는 킹크랩이 한창 심층수를 맛보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연구원들이 임의로 만들어 놓은 소형 수조의 몇몇 생물들이다. 300m 심해로 이어진 심층수 파이프를 따라 올라온 새우모양의 생물인데 이들의 정체는 아직 알려진 바가 없다. 국산 심층수 개발을 위한 첫 걸음이라고 하기엔 미약하지만 이 실험동은 심층수의 밝혀지지 않은 가능성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껍질을 벗는 국산 심층수의 실체
센터 본관 1층에 마련된 해수분석평가실험실. 통제구역이라고 표시된 문을 통과하자 두평 남짓한 무균실험실 안에서 가운으로 무장한 연구원들이 해수 분석시험에 한창이다. 심층수는 태양광이 도달하지 않는 최소 200m 이하의 심해에 존재하는 물로 염분 외에도 아직 밝혀지지 않은 미량원소나 각종 미네랄을 다량 함유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 성분의 정체를 알아내고 이로움을 밝혀내는 것은 심층수 개발의 중요 과제로 인식되고 있다. 센터의 한 연구원은 “아직 기자재가 완비되지 않아 동해 인근의 대학연구실과 산학 실험 장비를 빌려 쓰는 형편” 이라고 했다. 그러나 “심층수에 대한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규명이 시급하다”는 이들의 눈빛만은 예사롭지 않다.
또 다른 실험이 진행되고 있는 100여평 규모의 산업실험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파란 저수조(물탱크) 5~6개가 R/O여과설비(역삼투압 또는 극미세막 방식의 여과기)에 호스로 연결돼 있다. 전자현미경으로 8000배 확대해도 구멍을 찾기 힘들다는 RO막은 바닷물을 그대로 증류수 수준으로 걸러내 버린다.
때에 따라 N/F(미세세균까지 거를 수 있는 수준의 여과방식, R/O 방식보다 거름막이 크다)수준으로 여과정도를 조정할 수 있기 때문인지 장비의 표면에 ‘해양심층수 수질조정장치’라고 명명돼 있다.
RO는 해수에 함유된 무기염을 걸러 순수상태의 물을 추출해 내는 여과방식인데, 육상의 수자원이 부족해지면서 사막국가의 해수담수화 방법으로 애용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낙동강수계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부산광역시가 해수담수화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도서지역의 식수를 책임지고 있는 수자원공사가 육상 수자원의 대체 수원으로 장기적 안목에서 접근하고 있다.
이 때문에 수공은 센터 건립이후 상주 연구 인력을 파견하고 취수관 설치에 20억을 댔다. 육지에서 찾지 못한 답들을 이제 심연의 바다에서 찾는 시대가 온 것을 실감케 하는 대목이다.
바닷물이 상수도를 대체?
...심층수의 가능성 실험대 위에
얼핏 보아 인큐베이터를 떠올리게 하는 또 다른 시험장비 앞에서 다시 눈길이 멈춘다. 센터를 안내하던 연구원 비닐팩 안에 담긴 흰 가루를 내민다. 입자가 매우 고운 심층수추출 프리미엄 소금이다.
특유의 미네랄이 풍부하게 함유하고 있는 이 소금은 해외서 감칠맛 나는 특급요리에 비싼 값으로 팔리고 있다. ‘기능성을 띤 물’로만 알고 있던 심층수가 고부가 상품의 원료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심층수를 이용한 상업화 전략은 이미 검증을 끝낸 상태다. 지난해 말 심층수 실용화 위탁연구에 참여한 기업들은 연구센터가 제공한 심층수로 증류식 소주, 화장품, 간장, 녹차음료, 이온음료, 두부, 청주 등의 시제품으로 내놓았다. 심층수법이 통과된다면 제품을 출시하는 건 어디까지나 시간문제로 보인다.
취재팀은 센터가 제공한 500ml ‘먹는심층수’ 생수와 D사가 비매품으로 제조한 녹차음료를 직접 시음해 봤다. 부드럽고 천천히 혀끝을 감아도는 맛이 이채롭다. 대개 심층수는 경도가 높고 저온성을 띠며 미네랄 함량이 높다. 향후 과학적 효능이 규명된다면 심층수의 샘물시장 잠식도 무리가 아닐 성 싶다.
물론 이후의 관건은 산업화에 따른 경제성과 먹는 물로서의 안정성이다. 논란을 빚었던 수질관리는 환경부 ‘먹는물 관리법’ 테두리 안에서 가닦을 잡고 있고, 현재 기술로 당장 심층수를 취수·가공하는 것도 경제성 측면에서 전혀 무리가 따르지 않는다는 게 관계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수면위로 떠오른 심해의 자원
… 부가가치 높아
마침내 국산 해양심층수가 본격적으로 육상위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00년 해양수산부가 국책사업으로 지정, 본격적인 연구·개발에 착수한지 만 5년만의 결실이다. 8개 후보지 중 입지조건이 가장 좋은 것으로 판명돼 일찍이 센터건립이 낙점된 죽왕면 오호리 일대는 한국 심층수 개발의 현주소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일본과 미국의 심층수 연구개발이 이미 30여년을 훌쩍 넘기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관계자의 표현처럼 ‘늦었지만 선도 대열의 막차를 놓치지 않고 탄 셈’이다. 그러나 국산 심층수에 내건 기대와 추가적 검증이 시급한 잠재적 가치에 비해 우리의 걸음은 더디다.
정부입법으로 국회에 계류 중인 ‘심층수법(해양심층수의 개발 및 관리에관한 법률안)’은 오랫동안 활시위만 당긴 채 시행만을 고대하고 있다. 파행 없이 국회가 운영될 경우 올해 중 통과가 확실시 되고 있지만, 자칫 시기가 늦어져 시행령 및 시행규칙 제정 등 행정절차가 미뤄질 경우 내년 말에도 시중에서 국산 심층수를 구경하지 못할 수 있다.
해양기후의 특성상 취수관 개설 및 관로 매설은 6~9월 사이에만 가능한데, 내년중반기까지 취수 시설을 설치하지 못하면 꼬박 1년을 더 기다려야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게다가 수질관리 및 허가문제를 두고 해당 부처가 이견을 좁히기 위해 소요한 시간도 3년에 가깝다.
지난 ’04년 국가과학기술위원회는 ‘해양산업 경쟁력 강화와 자원고갈에 대비한 첨단 과학기술’로 요약되어진 ‘MT(Marine Technology)’ 개발계획을 통과시키며 국산 심층수 개발에 뒷심을 보탰다. 이후 두해 동안 국산심층수 개발을 위한 투자협정과 외자유치 시도가 계속됐고, 이 과정에서 서둘러 산업화를 시도하고자 했던 지자체와 법적 지위를 확고히 하고자 했던 정부간 갈등이 야기되기도 했다. 결국 지난 3월 고성군은 국내 기업과 해외투자사가 공동으로 투자한 200억의 종잣돈을 모아 현재는 민·관 합작 법인인 ‘강원심층수’의 법인설립과 사업자등록을 마친 상태다. 전문가들은 2010년까지 2조원 규모의 국산심층수 시장이 형성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골격 잡힌 심층수법
… 입법 완료돼야 민간개발
해양수산부가 올 2월 국회로 제출한 법률안은 심층수 취수해역 지정, 개발자 면허제 시행, 이용에 따른 사용료 및 부담금 부과, 먹는 심층수에 대한 수질관리 및 검사 등을 포괄적으로 담고 있다.
진통 끝에 탄생한 심층수법(안)의 주요내용을 살펴보면 우선 가장 쟁점사항이 됐던 수질관리 부문은 환경부의 ‘먹는물 관리법’을 준용토록 했다. 심층수가 취수되는 해역은 전문 수질검사기관으로부터 정기 수질검사를 받아야 하며, 먹는해양심층수를 제조하거나 수입하고자 하는 자는 해당 시·도지사에게 허가를 받아야 한다.
또 해양심층수개발 면허는 해양수산부장관이 면허계획에 의해 발급하되 허기가간은 20년으로 한정했다. 법률안은 해양심층수를 국가자원으로 보고 이를 취수하는 자에 대해 사용료를 물려 지방 재원으로 활용토록 하고 있다. 특히 먹는 해양심층수의 경우는 ‘해양심층수이용부담금’을 부과해 수산발전기금과 수질관리를 위해 사용토록 한다는 계획이다.
해양수산부의 한 관계자는 “수차례 부처 간의 의견을 모아 수질 관리는 물 관리에 대한 경험을 가진 환경부가, 개발 전반에 대한 관리는 해양수산부가 맡는 것이 합당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 며 “일부 사안들은 아직 추가적 논의가 필요한 부분들이 있다”고 말을 아꼈다. 기대가 컸던 때문이었을까, 가짜 심층수와 허위 효능이 먼저 유포되고 정부 주도의 개발계획이 일부 차질을 빚으며 국민들에게 ‘기대 반, 우려 반’의 인상을 남겼던 동해 해양 심층수 개발. 한동안 유보되는 듯 했던 심층수 산업화의 막바지 채비가 고성군 현장에서 끝나가고 있다. 심층수에 대한 근거 없는 과장과 폄훼를 배제한 상태에서 자연 그대로의 해양자원으로 바라보는 일은 이제 국민들과 관계자들의 몫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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