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규제는 초기에 한 두 개의 법령을 통해 이루어지다가 오염현상의 심화와 규제원리의 다양화에 따라서 법령의 개수가 늘게 된다. 이를 두고 환경법령의 체계는 단수법주의에서 절충주의를 거쳐 복수법주의로 발전한다고 말한다.
1980년대 한국의 환경법령은 단수법 내지 절충주의를 채택하고 있었다. 이때의 법으로는 1963년에 제정된 공해방지법이 1977년말 전면 개정되어 환경보전법으로 새로이 시행되었고 독물 및 극물에 관한 법률이 1963년에, 오물청소법이 1961년말에 제정되어 시행되고 있었다.
1977년에 제정된 환경보전법은 1969년에 제정된 미국의 국가환경정책기본법(NEPA)과 각 오염분야별 규제법을 근간으로 해서 1970년대 초에 만들어진 일본의 공해대책기본법과 각 규제법령의 내용을 수렴, 한 법령의 각 장으로 분류해서 만든 종합 백과사전식 법령이다.
따라서 제1장 총칙에는 기본법에서 규제하던 내용을 넣고, 제2장에서는 배출시설 일반에 대한 사항을 규정하고, 나머지 장에서는 분야별 오염문제에 대한 규제사항을 규정하였다. 따라서, 규제대상인 배출업체에서는 관련되는 조항을 찾기 쉽고 개정사항에 대한 내용을 파악하기 편리하였으나, 규제당국의 입장에서는 오염규제원리가 다른 대기나 수질 그리고 폐기물 문제를 하나의 법령에서 동일한 규제상식을 통해 다루는 것의 한계가 노출되곤 했다.
더욱이 환경보전법이 모든 부서의 업무와 관련되다 보니 총괄적으로 관장하는 부서를 정할 수도 없어 편의적으로 법무관실에서 환경보전법령의 해석과 운용, 제쪾개정 업무를 담당한 결과, 정책을 수립하는 부서와 수단으로서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부서와의 괴리가 생길 수밖에 없었고 이는 각 실무국의 정책수립 기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따라서 증가하고 있는 환경규제의 수요에 맞추어 적절한 시기에 규제정책을 수립하고 법안을 만들기 위해서는 각각의 오염규제원리에 따라 분야별 환경규제법이 필요하게 되었고 이는 필연적으로 미국이나 일본의 복수법주의 채택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87년 초, 환경보전법 오염분야별 분리제정 방침 세워
환경청이 환경보전법을 오염분야별로 분리해서 제정하는 방침을 세운 것은 1987년 초였다. 재미도 없고 생색을 내기도 어려운 분법 작업에 관한 주도적 역할을 두고, 법무관실과 실무국간의 힘겨루기가 계속되었다. 물론 서로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닌 서로 맡지 않으려는 힘겨루기였다.
양쪽의 주장근거는 팽팽하였다. 법무관실 쪽에서는 어차피 법을 운용할 실무국이 내용을 작성하라는 주장이었고, 실무국에서는 법무관실이 분리되는 초안을 총괄적으로 작성하고 자신들은 의견만 주겠다는 주장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2년반을 끌어 온 분법작업은 초안에 대한 관계부처 의견을 묻고 있는 상태에서 답보상태였으나, 1989년 9월에 당시 이재창 청장(현재 국회의원)이 당시 청장 비서관인 본인을 법무관으로 임명하면서 급물살을 타게 되었다.
이미 사무관 시절에 법무관실에서 3년 반을 근무한 본인은 법무관 발령에 난색을 표명했으나, 당시 속개중인 정기국회에 6개 법안을 제출해서 통과시켜야 한다는 기관장의 강력한 의지표명에 속수무책이었다. 당시 야당이 환경청에서 작성한 초안이 관계부처의 강한 반대의견에 따라 내용이 완화되는 방향으로 수정되고 제정이 불투명해지자 환경청 당초안을 의원입법으로 제출하려는 시도가 있어 환경청장으로서는 그 사태를 보고만 있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부임당시 법무관실은 이미 분법작업은 물 건너갔다고 포기한 분위기였는 바, 이는 실무직원 두 명 중 한 명은 사무관 승진시험 준비로 유고, 다른 한 명은 지방환경감시대 업무지원차 유고, 사무실에는 사무관과 여직원만 남아 자리를 지키고 있는 형편이었다. 신임 법무관으로서 서둘러 직원들을 불러 현황을 파악해보니 갈 길은 아득하게 멀어 보였다.
6개 법령 단기간 동시조정 부담은 숱한 우여곡절 낳아
우선은 관계부처와의 이견조정을 끝내는 것이 급선무였다. 관계부처와의 이견이 있는 부분을 정리하여 각 실무국과 청·차장의 의견을 수합하여 받아들여 수정할 것은 수정하고 관철시킬 것은 상대방 부처를 설득해야 했다. 한 부처를 설득해 조정을 해 놓으면 다른 부처가 반발해서 다시 재협의를 해야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고, 6개의 법령을 정해진 짧은 시간에 동시에 조정해야 하는 부담은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현장에서 판단하고 설득하고 다시 들어와서는 실무국 직원들과 상관들을 설득해야 하는 날들이 20여일이 지난 후 가까스로 경제장관회의를 통과시킬 수 있었다.
다음은 법제처, 국무회의에 상정하기 위해서는 법제처의 법령심의를 거쳐야 하는데, 환경담당 법제관인 유병훈 법제관은 다음 회기에 상정하고자 법령검토를 시작도 하지 않은 것이었다. 마음이 급해진 본인은 조바심이 났지만, 이미 개회된 지 한 달 반이 지난 국회의 당 회기에 통과시키기 위해 6개의 법령을 갑자기 들이민다는 것이 무리한 부탁인 줄 너무나 잘 알고 있어 처분만을 기다릴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담당 법제관실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죽치고 앉아 버틴 지 3일, 오히려 유 법제관이 통사정을 하면서 자신을 좀 봐달라고 부탁을 하는 것이 아닌가? 저녁을 하면서 줄기찬 부탁과 설득 끝에 결국은 ‘해보자’는 약속을 받아냈고 법제처에서는 법령심의 업무를 다른 법제관에게 분담까지 시켜가면서 지원을 해 주었다.
당시 휴일이면 자기 집까지 직원을 데려가 법령검토 작업에 헌신적 노력을 해준 법제처 유병훈 법제관, 밤을 새워 법제관과 과장을 실무적으로 도왔던 김종민씨, 각 법령에 관계한 실무과장·사무관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힘을 모아 거의 기적에 가깝게 일을 진척시켜 환경정책 기본법을 비롯한 6개의 법령을 11월 중순 법제처 심의를 마치고 11월말 국무회의 심의를 완료하였다.
복잡·다양한 법령 체계적 조정·통합이 분법노력에 부응하는 일
이 법안들을 국회에 접수하여 상임위에 상정한 것이 12월 6일, 야당의원들의 의원입법안들과 같은 날에 상정되게 되었다. 결국 당시 정기국회에서는 상정만 하고 심의·검토는 다음해 임시국회로 넘겨져 환경정책기본법·대기환경보전법·수질환경보전법·소음진동규제법·유해화학물질관리법·환경오염피해분쟁조정법은 1990년 8월에 제정되었다.
이제 환경법령은 30여개에 이르고 있어 분법시의 본래 취지가 실종될 처지에 와 있다. 법령간의 일관성도 없고 너무 많은 법령이 너무 자주 바뀌다보니 관련 당사자조차 내용을 파악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제 과감히 너무 복잡하고 다양해진 법령을 통합하여 일관성 있는 법령체계를 갖추고 법령의 수요자이자 소비자인 배출업체와 국민들이 내용을 체계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조정하고 통합하는 것이 이러한 분법 작업에 심혈을 기울였던 당사자들의 노력과 기대에 부응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 선 룡
환경청 대기제도과, 환경청장 비서관을 거쳐 환경처 법무담당관, 지구환경과장, 정책총괄과장으로 일했고, 환경부 대기정책과장, 대통령비서실 파견근무를 한 바 있으며, 환경공무원교육원장, 공보관, 금강환경관리청장 역임하는 등 ’79년 5월부터 2000년 7월까지 22여년의 공직생활을 마감했다. 현재 (주)부강테크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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