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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건강한 도시조성, 공무원과 시민의‘공동체정신’
항상 공해에 찌들어 있고 도시 안에서는 진정한 여유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삭막한 도시에서 살아가고 있는 나는 꿈의 도시란 어렸을 적에 보던 동화책에나 있을 법한 공간이라고 생각해왔다.
물론 유럽 선진국, 호주등과 같은 아름다운 도시들도 있겠지만, 이들과는 사뭇 다른 제3세계 국가, 즉 우리나라보다도 월등히 낮은 국민소득과 열악한 지방재정을 가진 브라질의 한 변방도시가 이러한 꿈의 도시를 일궈 냈다는 사실은 나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더욱이 이러한 꿈의 도시를 일궈내기까지의 과정은 이 책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감동을 느끼게 해주는데 충분했고 동시에 현재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도시와 비교하고 또 스스로를 반성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하였다.
꾸리찌바는‘각종 환경오염에 둘러싸여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하며 기계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서 기계적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들이 흔히 생각하는 삭막한 도시’라는 도시에 대한 통념을 원천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도시 그 자체가 편안한 보금자리이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도시에 대한 소망들을 실현시킬 수 있는 공간임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렇게 환경적으로 쾌적하고 건강한 도시를 일궈내는 데는 어느 선진국에서처럼 많은 자본을 투자하거나 우수한 인력이 가진 기술을 이용한 것이 아닌 공무원들과 시민들이 함께 노력하는 공동체의 의지가 그 원천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 원동력은 꾸리찌바의 전 시장인 자이메 리르네르 였다. 그는 물질적인 것보다는 시민들을 우선으로 생각하고 특히 소외된 계층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면서 개발보다는 환경을 우선시하는 철학아래 정책을 추진했다.
환경중심 ‘4차원 혁명’환경도시 재탄생 원천
이러한 방향에 초점을 두고 계획한 정책은 물리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혁명으로 일컬어지는 4차원의 혁명이다. 대중교통의 혁신적 통합, 도시와 공존하는 공업단지의 조성, 교육, 보건, 주택 등 복지 부분에 대한 투자, 역사와 문화유산의 보전을 통한 다양한 민족의 통합이 어우러져 진정한 인간의 삶을 보장하는 도시로 다시 태어나게 된 것이다.
특히, 여기서 내가 감명 깊게 읽은 부분은 바로 독창적인 교통체계의 건설이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지하철이 아닌‘땅 위의 지하철’이라고 불리는 버스, 원통형 정류장에 대해서는 그 독창성과 경제성, 효율성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사회적 요금’이라 하여 먼 거리를 가는 사람한테나 가까운 거리를 가는 사람한테나 같은 요금을 받는 요금체계가 만들어 졌는데 이것은 부유하지 못한 계층을 위한 요금체계라는 점에서, 그리고 이러한 요금체계가 빈민들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된 공무원들과 시민전체의 합의를 통해 이루어 졌다는 사실에서 뿌듯함과 잔잔한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러한 꾸리찌바의 교통시스템과 비교하여 볼 때 선진국의 교통시스템을 무분별하게 수입, 이식시키는 우리나라의 상황은 가히 우려할 만하다. 꾸리찌바 도시공사의 한 건축가는 열악한 지방재정 여건을 가지고 엄청난 투자재원이 소요되는 지하철, 경전철, 모노레일, 자기부상열차 등의 건설사업을 무리하게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라고 충고를 한 바가 있다. 이는 우리나라 광역자치단체 모두가 귀담아 들어야 할 뼈아픈 충고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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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건설사업…무리한 추진 ‘능사’ 아니다
이런 대규모 건설사업은 모두 국민의 세금에서 나오는 것인데 정치가들이나 공무원들은 자신들의 잇속만을 챙기려는 의도에서 각 지방여건을 생각해 보지도 않을뿐더러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심각하게 생각해 보지도 않는 탁상공론적인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많은데 한번쯤 깊이 생각하고 반성해야 할 부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꾸리찌바의 교통시스템 부분을 읽으면서 문득 내가 살던 고향인 창원이 생각이 났다. 지금도 방학만 되면 창원에 내려가 있곤 하는데 그럴 때 마다 인천이나 서울과는 정말 많이 다르다는 느낌을 받는다. 창원은 우리나라 초창기 계획도시로서 우선 도로가 시원스럽게 뻗어있고 공원이 많으며 무엇보다도 거리가 참 깨끗하고 나무가 많아 사람들이 살기에 좋은 도시라는 생각이 든다.
꾸리찌바의 도로와 우리나라의 특성을 함께 접목시킨 도시 중의 하나가 바로 창원이라는 것이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창원의 도로 역시 꾸리찌바의 그것처럼 시청 앞 광장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뻗어가는 선형이며, 더불어 시를 가로지르는 창원대로를 가지고 있다.
주요 도로는 바둑판처럼 연결되어 있고, 차량통행이 많은 교차로는 입체화해서 신호대기를 최소화했다. 꾸리찌바의 삼중도로처럼 일방통행은 아니지만 정체 시 우회할 도로가 삼중, 사중으로 주 도로와 함께 가고 있다. 비록 꾸리찌바와 비교하지는 못하지만 이번기회에 창원이라는 도시에 살고 있다는 것에 왠지 모를 자부심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꾸리찌바는 도심의 번화한 거리를 자동차 없는 거리로 만들기도 하였다. 일명 보행자몰이라고 하여 여기에서는 그 흔한 육교나 지하도를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다. 이는 바로 일반 시민들을 위하고 존경하는 마음에서 생겨난 것인데 이 역시 현재 우리나라 상황과 비교해 보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었다.
오래된 건축물, 오페라 극장 및 미술관으로 활용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언젠가 잡지에서 한국은 보행자보다는 운전자 우선인 교통체계를 가졌다는 한 외국인의 비판어린 글을 본적이 있다. 집밖에만 나가면 흔히 볼 수 있는 육교나 지하도들. 전에는 미처 인식하지 못했지만 새삼 이러한 것들은 진정 누구를 위한 것인가 하는 우려와 함께 안타까움이 앞섰다.
또 하나 책을 읽으면서 훌륭하다고 생각한 것은 꾸리찌바의 교육시스템 즉‘지혜의 등대’ 라고 불리는 사업이다. 특히 전인교육센터는 이 사업에 있어서 가장 탁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센터에서는 하루 8시간동안 무료로 모든 교육과 하루 세끼 식사까지 제공한다. 이 사업이 가지는 커다란 의미는 앞서 보았듯 이것도 유산자 즉, 가진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닌 무산자, 즉 가지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사업이라는 데에 있다고 할 것이다.
이밖에도 꾸리찌바는 환경친화적인 도시를 만들기 위해 ‘쓰레기 아닌 쓰레기 구매’라고 불리는 정책을 수행하기도 하였고, 시민들의 여가생활 공간을 위한 공원을 마련하고 자전거 도로, 공원과 같은 시설을 실제 이용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또한 건축물도 역사와 전통문화를 철저하게 지키는 차원에서 관리되고 있다. 오래된 건축물들을 폐가처럼 방치하지 않고 오페라 극장이나 미술관으로 활용하는 등 경제적인 방법으로 자연친화적인 도시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모습에서,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시민들을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우리가 본받아야 할 점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 제1세계 도시 조성위해 기울인 노력은?
시민들을 존경하고 특히 소외된 계층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또 존경하고 배려하는 마음에서 도시환경을 만들어 가고자 하는 리르네르 전 시장의 철학은 꾸리찌바의 공무원들과 시민들에게 자발적인 참여의 동기를 부여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훌륭한 한사람으로부터 시작된 이 꿈의 도시는 공무원들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는 탁상행정이 아닌 직접 도시문제를 발견하고 또 그 문제를 해결해 나가려는 의지와, 더불어 살아가려는 시민들의 공동체 의식을 바탕으로 한 모두의 노력에 의해 이루어 졌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점이 바로 세계 여러 나라가 그토록 많은 찬사를 보낼 수 있었던 힘이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제3세계에 사는 꾸리찌바 인들이지만 우리들은 제1세계 도시에 살고 있다.’라는 구절은 실로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이는 공감과 더불어 꾸리찌바보다 경제적으로 훨씬 높은 위치를 점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꾸리찌바와 비교할 때 진정으로 환경과 시민을 위하는 제1세계 도시를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가 하고 생각해 보게 한다.
경제발전이라는 명목 하에 환경파괴는 계속되고 부유한 사람들은 계속 부유하게 생활하지만 반면 더욱더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는 우리나라 도시들, 특히 이러한 도시발전에 막중한 책임을 맡고 있는, 하지만 정작 시민들보다는 자신들의 이해관계만 앞세우는 정치인들, 공무원들은 꾸리찌바라는 도시를 통해 배우고 반성해야 할 점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를 포함한 시민들도 더불어 사는 사회, 그리고 환경적으로 건전한 도시를 만들기 위한 의식개혁은 물론 실천에 직접 옮길 수 있는 자세도 함께 가져야 할 것이다. 도시계획, 도시행정에 있어 돈과 자본에의 지나친 의존보다는 창조적인 사고방식과 통합노력, 그리고 주민의 참여와 시민을 존중하는 참다운 지방정치가 우리가 진정으로 배워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꾸리찌바시가 꿈의 도시를 일궈내는 과정에서 마지막으로 느낀 점은 꿈의 도시, 즉 제1세계 도시를 이루어 내는 방법은 그리 어렵지도 그리 먼 곳에 있지도 않다는 것이다. 공무원과 정치인들은 물론 국민 모두가 창조성과 의지를 갖고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려는 생각에서 벗어나 시민 전체를 위하는 마음에서 환경친화적인 도시행정을 계획하고 실천해 나간다면 제2의 꾸리찌바는 어느 곳에서나 탄생될 수 있다는 믿음과 희망을 가져본다.
이 효 정 | 인하대학교 사회과학부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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