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백자의 혼을 잇는 白山 金正玉·牛湳 金璟植 父子

편집국 | eco@ecomedia.co.kr | 입력 2005-11-25 15:05:19
  • 글자크기
  • -
  • +
  • 인쇄
@P1@01@PE@

“그의 도자기를 보면 새삼 장인의 존재가치를 되새기게 된다. 조선백자의 전통이 단절되었음을 애석해 하는 사람들도 백산의 도자기를 보면 거기에 조선의 숨결이 스며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안도한다.”
(미술평론가 신항섭)

“선생의 작품에는 투박하면서도 예스러운 우리의 맛이 그대로 남아있다. 모든 것이 급속도로 실용성 위주로 상품화 되어가고 있는 오늘날 백산 김정옥 선생은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투박하면서도 예스러운 우리의 도자기를 만들어 낸다”
(시인·철학박사 석지현)

“김백산(김정옥 선생)은 정호다완이란 독자적 작품을 개발하였다는 정평을 받고 있으며 많은 종류의 백자와 분청사기는 성실한 인품이 융합된 작도의 필연적 귀결이라고 할 것이다”
(사회학자 박창희)

국내 최초의 도예명장이자 유일 사기장, 백산 김정옥(1941) 선생에게 쏟아진 각계의 찬사다.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장인을 만나는 일은 늘 조심스럽다. 각고의 노력과 장인정신으로 저마다의 독보적인 세계를 구축한 작가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혼탁한 세상의 중심에서 길들여진 정신이 자칫 그네들의 순결한 영역에 부지불식간 흠집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새재를 지나 진안리로 가는 길
@P2@02@PE@중요무형문화재 도예가 김정옥 선생을 만나러 가는 아침. 산맥의 허리를 타고 넘는 인공의 고속도로를 달리며 멀리보이는 문경새재 언저리에 속세의 번뇌는 잠시 내려놓기로 한다. 명작을 온전히 감상하는 법은 수용체인 그 자신이 무념무상의 정신적 ‘무균상태’가 되는 것이다. 선입견은 작품을 오독하는 첩경이자 작품의 진정성을 가로막는 장애물이기 때문이다. 청량감을 느끼게 하는 문경의 공기는 폐부를 씻어내기에 그만이다.
전통도자기의 올곧은 맥을 고집스럽게 이어오고 있는 경북 문경도요지, 일찍이 이곳은 자기의 재료가 되는 사토(沙土)와 땔감이 풍부해 한국민요(民窯)의 요람으로 명성을 떨쳤다. 밤을 잊은 도공들의 물레질소리, 불구덩이 속으로 빨려 들어간 바람의 현란한 불춤, 흙가마의 열기를 못 이겨 살갗위로 흐르는 땀방울이 머릿속에서 또 하나의 질그릇을 빚는다.
‘重要無形文化財105號沙器匠’ 취재팀은 조선백자의 산실을 알리는 입구 표석을 끼고 문경읍 진안리 ‘영남요’의 앞마당에 멈춰 선다.

‘자기(磁器)는 작가의 심성을 그대로 담는다’
조선 가마로는 유일하게 보존되고 있는 200년 전통의 재래식 ‘망댕이가마’가 꾸밈없고 소박한 모습을 드러냈다. 이곳이 바로 8代째 조선 백자의 혼을 계승해오고 있는 백산 김정옥 선생과 아들 김경식 부자의 작업실이다.
가을걷이가 끝나 을씨년스런 논밭에 영남요가 투박하게 엎드려 있는 형상이다. 이곳에 담장이 없는 이유는 명작의 본고장을 찾는 관람객에 대한 김 선생의 배려 때문이다. ‘자기(磁器)는 작가의 심성을 그대로 담는다’고 했던가.
마당까지 마중 나온 백산 김정옥 선생이 백자와 같은 얼굴로 외지인을 반갑게 맞는다. 씻는다고 씻고 온 서울사람의 가식이 이유 없이 부끄러워진다. 선생은 매사에 사심이 없고 정갈한 인품을 간직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지인들은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불같은 성격의 소유자”로 그의 숨은 면면을 소개한다.
김정옥 선생은 취재팀 일행을 선조들과 백산의 작품이 전시돼 있는 다실로 안내한다. 장인의 고집이 느껴지는 그의 투박한 손이 차(茶)를 우려내는 동안, 한옥을 닮은 다실로 여린 가을빛이 비춰 들어온다. 꾹 다문 그의 입가에 비로소 따스한 온기가 번져나간다. 우리는 아버지의 아버지, 그 아버지의 아버지로 연이어 오르는 한 가족의 계보에 목소리를 낮추고 귀를 기울인다.

7代를 이어온 조선백자의‘살아있는 혼’
@P3@04@PE@백산 김정옥 선생의 7대조 김취임으로부터 시작된 이 가족의 ‘맥 잇기’는 무려 2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오른다. 이후 김광균, 김영수, 김락집 선생으로 이어지다 김정옥 선생의 조부(祖父)인 김운희 선생은 조선시대에 유일한 경기도 광주 조선왕조 관요(官窯)를 통해 명성을 떨친다.
미술평론가 신항섭씨는 “이는 조선백자의 혈통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해석한 바 있다. 그 맥을 그대로 전수받은 백산의 선친 김교수 선생은 분청사기를 빚다가 1897년 관요가 폐정되면서 고향으로 돌아와 이름을 날렸다. 하지만 김교수 선생은 ‘사기점놈’으로 천대받던 시절을 떠올리며, 가업을 이어나가겠다는 막내아들을 못내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당시나이 18세, 중학교를 갓 졸업한 김정옥 선생은 농사와 선친의 가마일을 도우며 틈틈이 백자류와 각종 다기류를 만드는 법을 전수받았다. 그리고 흙을 만지기 시작한지 십여 년이 흐른 삼십대에 비로소 선조들의 숨결이 그대로 재현된 전통 자기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91년 도예부문 최초로 대한민국도예명장에 선정된 그는 전승공예대전에서 청화백자를 재현해 두 차례나 특별상을 받기도 했으며 ’96년에는 국내최초의 중요무형문화재 105호 ‘사기장’으로 인정받기에 이른다. 그러나 정작 그의 예술성을 알아 본 것은 일본이 먼저였다.
일본은 ’96년부터 매년 그의 전시회를 열어왔고 독일, 미국, 캐나다 등지의 유명 박물관에는 오래전부터 그의 작품이 상설 전시돼 왔다.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해서조차 김정옥 선생은 심욕이 없어 보인다.
그저 선조가 그래왔듯 “나는 언제나 묵묵히 숙명과 같은 길을 걸어갈 뿐”이란다. 그는 내년 2월말에 250여점의 작품을 출품하는 독일 전시회를 예정하고 있다.

옛것을 옛 방식으로 만들어내는‘작가주의’
작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김정옥 선생은 “내가 하는 일은 흙과 물을 잘 섞어 빚은 후 불과 바람을 전해주는 일로 사람의 역할이 작고 자연의 역할이 크다”고 겸손해 했다. 하지만 그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가히 ‘찬사’에 가깝다.
백산 김정옥 선생의 작품은 7대를 계승하면서 일구어온 영남요만의 특질이 그대로 묻어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의 가마는 가스와 기름을 때는 가마가 대부분인 이 시대에 아직도 적송(赤松)만을 태우는 것으로 유명하다. 어쩌면 그는 무욕의 흙과 불이 만들어내는 오묘한 창조의 세계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장인일 것이다.
‘옛것을 옛 방식’으로 만들어내는 작가주의적 고집, 조선도자기의 숨결까지 놓지 않겠다는 도예가(陶藝家)의 자존심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단순히 혈통만으로 그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려 들지 말라’고 주의를 준다.
대(代)를 거듭하면서 모질게 이어 온 것은 ‘답습된 비법’이 아니라는 의미다. 작품 속에 도공의 채취를 억지로 담으려 하지 않았던 선조들의 무명성(無名性)과 조선백자의 순결성, 이를 복원하고자 했던 백산 김정옥 선생의 피나는 노력이 작품의 숨은 ‘진정성’이기 때문이다.

영남요의 전통을 이어갈‘예비 사기장’김경식氏
@P3@03@PE@백산 김정옥 선생은 현재 외아들 내외와 함께 살고 있다. 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가문의 숙업을 이어갈 영남요의 8대손 차기 ‘사기장(沙器匠)’과 함께 한 지붕을 쓰고 있다. 하지만 김정옥 선생이 김경식 씨에게 특별히 전수해 주는 것은 없다. 그저 간간히 화두와 같은 말을 툭툭 던져주고, 그 자신이 스스로 터득하도록 무던히 지켜만 볼 뿐이다.
전통계승이란 단순히 기술을 습득하는 것만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란 걸 이 부자(父子)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아비의 그 아들’이란 말이 괜히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우남 김경식 씨는 전승공예대전 장려상 등을 수상하며 영남요의 전통을 이어가는 유망한 신예로 이미 독립된 도예가로의 길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선친의 작업을 어깨너머로 익히다 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육군 대위로 제대한 후 주저 없이 숙명 같은 도공의 길을 택했다. 이제 불혹의 나이에 접어든 그는 아비의 그늘을 벗어나려 하고 있다. 선친을 극복하지 못하고서 진정한 의미에서의 가업계승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도예 전문가들은 그의 이러한 의지가 서서히 결실을 맺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김경식 씨는 전통적인 청화백자 및 분청사기의 형태미는 물론이요 유약과 발색 그리고 문양 연구에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전통의 맥을 온전히 이어가면서도 전통의 현대화라는 과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호평하고 있다. 진정한 전통계승이란 기법이나 방법의 답습에 안주하지 않고 시대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해 시대감각을 반영해야 한다는 게 영남요 8대 예비 사기장의 생각이다.
전통 찻사발의 본향인 문경에서는 지난 5월 초, 국내외 전통도자기가 한 자리에 모이는 ‘2005 한국전통찻사발축제’가 열렸었다. 행사추진위원장과 촉망받는 출품작가로 자리를 나란히 했던 김정옥, 김경식 부자는 언뜻 보기에 ‘다르면서도 너무도 닮아’ 있었다. 때 묻지 않은 장인의 순결성과 전통과 현대의 맥이 맞닿는 지점에 ‘8代로 이어진 조선백자’의 멋이 빛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父 <白山 金正玉>
1941. 경북 문경시 문경읍 관음리 207번지 출생
父 김교수씨로부터 도예기법 일체 전수
1986. 향토문화상 수상
1987. 문경문화상 수상
1988. 제 13회 전승공예대전 특별상 외 4회 수상
1989. 일본 동경 경옥백화점 개인전 이후 수회 개최
1991. 법무부 장관상 수상
1991. 대한민국 도예명장 선정
1991. 노동부 장관상 수상
1992. 일본 나고야 명철백화점 개인전
1992. 경상북도 문화상 수상
1996. 대한민국 중요무형문화재 제 105호 사기장 지정
1996. 일본 대판 대한민국 총영사관 특별 초대전 개최
1996. 미국 스미스 소니언 국립박물관 상설전시
1997. 전승공예대전 심사위원
1998. 일본 동경 아세아 4개국(한, 중, 일, 호)
장인문화가회의 한국대표참가
1999. 캐나다 THE ROYAL ONTARIO MESEUM 상설전시
1999. 문경대학 초대 명예교수
2000. 전승공예대전 운영위원
2000. 대통령 표창
2001. 회갑기염 작품전 개최(조선일보 미술관)
2001. 미국 롱아일랜드 대학「동방의 빛」전시회 개최
2002. 회갑기념 흙과 함께한 나의 세월「도선불이」전시회 개최
2002. 민족예술대상 시상
2002. 전국 공예품 경진대회 심사위원 역임
2002. 명장 선정 심사위원 역임
2003. 03 Tea World Festival
2006. 독일전시회 예정

子 <牛湳 金璟植>
1967. 경북 문경시 관음리 출생
1988. 영진대학 산업디자인과 졸업
1995. 부친 중요무형문화재 제105호 사기장(沙器匠)으로부터 도예기법 전수
1999. 중요무형문화재 제105호 이수증 수여
2000. 부산 롯데백화점 전시회 개최
2000. 전승공예대전 장려상 수상(분청사기 어문장군병)
2001. 조선일보 미술관 전시회 개최
2002. 전승공예대전 입선(분청사기 연화문 편병)
2002. 일본 훗카이도 전시회 개최
2003. 전승공예대전 입선(백자북문호, 상감연화문 편병)

[저작권자ⓒ 이미디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카카오톡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 보내기
  • 글자크기
  • +
  • -
  • 인쇄
  • 내용복사
뉴스댓글 >

헤드라인

섹션별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

오늘의 핫 이슈

ECO 뉴스

more

환경신문고

more

HOT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