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년 동안 당뇨를 앓아 온 김○○ 할아버지는 습관처럼 손끝에서 채혈한 뒤 센서가 내장된 ‘당뇨폰’에 소량의 혈액을 묻힌다. 최근 들어 협심증과 합병증까지 가세하는 통에 건강이 급격히 악화된 김 노인의 거친 호흡도 오늘은 예사롭지 않다.
같은 시간 수백 킬로 떨어진 서울의 K대학병원. 사실상 전 국민의 의료정보가 담긴 의료정보 센터에 이상신호가 감지된다. 그동안 심상치 않았던 김 노인의 건강상태가 이동통신 수단을 통해 실시간으로 도착하면서, 병원의 데이터 분석 장비가 ‘응급’ 진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당 수치와 호흡, 심전도 등의 정보를 확인하면서 상태를 예의주시하던 주치의는 김 노인과 가장 가까운 지역병원에 출동협조를 구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독거중인 환자의 집에 급파된 의료진은 바로 김 할아버지의 상태를 확인한 뒤 인근 병원으로 긴급 후송해 응급조치를 실시한다. 오지 마을에 고립된 김 노인이지만 이 모든 일은 이상 신호가 감지된 지 불과 30분 이내에 해결된다.
이동통신과 네트워크가 세운 병원‘u-헬스케어’
터무니없는 상상이 아니다. 불과 몇 년 뒤, 빠르면 내년부터 국민에게 혜택이 돌아갈 유비쿼터스 헬스케어(U-Healthcare)가 예고하는 있는 장면이다. ‘언제 어디서나’ 네트워크를 의식하지 않는 상태에서, 장소를 구애받지 않고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는 유비쿼터스 환경이 의료시장의 대변혁을 예고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당장 일일이 병원을 방문해 접수, 진단, 치료, 투약을 거듭하는 기존 오프라인 체계의 의료서비스가 모바일이나 인터넷을 통해 개인의 생활을 구애하지 않으면서 실시간으로 건강을 관리하고 치료하는 온라인 중심의 네트워크 서비스로 바뀌게 된다.
이는 시공간에 대한 서비스 체계의 변화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병이 발병한 뒤 사후진단과 치료를 통해 치유시키는 현 의료체계가 질병을 미연에 예방하고 실시간으로 관리해 주는 ‘사전방지형’으로 변하게 되는 것을 뜻한다. 그야말로 장소에 관계없이 24시간 건강을 체크 받고 바로 처방전을 받는 신개념 의료시장이 형성되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필연적으로 보건·의료 분야에 투자되는 어마어마한 사회적 비용이동을 불러 올 전망이다. 1:1진단 치료에 묶여있던 비용이 네트워크를 통한 상시 건강관리 시스템으로 서서히 이동하게 되는 것이다.
대학병원-이동통신사, 사활 건‘짝짓기’
때문에 유비쿼터스 헬스케어는 벌써부터 의료시장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탄탄한 연구기반과 인력풀, 다수의 고객을 확보하고 있는 대학종합병원과 이동통신사가 제각각 ‘짝짓기’를 통해 유비쿼터스 헬스케어 시장점령에 사활을 걸고 있다. 미래 의료시장에서 유비쿼터스 헬스케어가 가장 큰 수익모델이 될 것이란 전망이 의료계에서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발 빠른 움직임을 통해 시장 진입에 첫 깃발을 꽂은 곳은 고려대 U-healthcare 사업단과 SK텔레콤. 이들은 제약사와 공과대학, 네트윅사가 함께 의료 네크워크를 구성해 2회에 걸쳐 협정체결과 심포지움을 개최하며 본격적인 시장공략에 나서고 있다. 그런가 하면 신축병동 자체를 ‘유비쿼터스 병원’으로 통칭하며 주도권 몰이에 나서고 있는 대학병원도 있다.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은 21층 5만평 규모의 신축병원을 ‘U-Hospital’로 명명, 접수에서 진료까지 모든 운영 시스템을 네트워크로 연결했다. 연세대는 시장 진출을 위한 파트너로 KTF를 결정한 상태다. 이 밖에도 분당에 병원을 두고 있는 서울대 측이 KT와 원격진료 시범서비스를 가동하며 두 선두를 바짝 뒤쫓고 있다.
국민의 46% 만성질환자 ‘모바일이 건강증진에 날개를 달까?’
그렇다면 이토록 짧은 기간에 유비쿼터스 헬스케어가 기존 의료시장의 지각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정답은 둘째가라면 서러운 우리나라의 이동통신 보급과 전 국민의 46%가 고혈압이나 당뇨등의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병력에 있다. U-Healthcare 사업자체가 모바일과 웹을 매개로 환자의 상태를 실시간 모니터링을 해야 하는데 ‘1인 1통신기기’ 가입자 수 4천만을 바라보고 있는 우리나라의 통신인프라와 네트워크는 유비쿼터스 의료시장이 성장하기에 더없이 좋은 토양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당뇨, 고혈압, 비만, 치매 등의 만성질환을 하나쯤 앓고 있는 국민들의 병력은 지속적인 관리와 때를 놓치지 않는 적절한 치료를 요구하고 있어, 모바일을 기반으로 자유로운 활동이 가능한 U-healthcare와 더없이 이상적인 조건을 형성하고 있다.
이처럼 무한한 성장 잠재력을 지닌 ‘유비쿼터스 헬스케어’지만 넘어야 할 산도 없지 않다. 현행 보건복지부의 법제로는 원격진료를 법으로 금지하고 있어 전송된 결과를 통해 처방을 내리고 이에 대한 책임소재를 분명히 할 근거가 없다. 게다가 수천개의 병상을 확보하며 초대형화를 꾀하고 있는 현행 의료시장이 내원진단을 크게 줄이고 저비용 의료체계를 구축할 게 뻔한 ‘유비쿼터스’ 시대를 순순히 받아들이기만 할지도 미지수다.
‘유비쿼터스 의료시대’언제 현실화되나
전문가들은 기존 네트워크 인프라를 통해 빠른 속도로 유비쿼터스 시대가 도래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환자의 건강 상태를 체크할 수 있도록 센서기능이 내장된 통신기기가 출시되면 특별히 난제가 될 만한 요소도 없다는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당장 내년부터 이른바 ‘헬스폰’이 보급되기 시작하면 오는 ’08년까지 전체 휴대폰 10대중 1대 가량이 이에 해당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질환별 핸드폰 개발도 급물살을 타고 있다. 현재 개발이 완료된 당뇨폰을 비롯해 심전도폰, 요실금폰, 혈압폰, 초음파폰 등도 선보일 예정이다. 여기에 미용과 건강까지 챙길 수 있는 뷰티폰, 스트레스폰, 트레이닝폰, 다이어트폰, 치매환자폰도 머지않아 등장할 전망이다.
대형 병원들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이들은 환자를 총괄 관리할 수 있는 전산센터를 병원내에 구축해 개개인들로부터 송신되어진 자료를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지역 의료시설과 연계할 수 있는 전산망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U-Healthcare의 기틀이 다져지면 장기적으로 환자가 자각하지 않는 상태에서 수시로 건강을 체크하는 침대, 생활기기, 주택부문까지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취재 / 이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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