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손 없는 내일, 생태계 없는 인간의 생존은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관객이 만장한 가운데 여기저기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드문드문 들리는 극장. 바로 그 시간, 대형 스크린에는 뭇 남성의 보호본능을 자극하기에 충분할 만큼 창백한 여인이 눈물짓는 애인의 무릎 위에서 마지막 한마디 “사랑…해…요”를 떠듬떠듬 마치고, 관객들의 훌쩍임이 흐느낌으로 변할 즈음 조용히 눈을 감는다는 70년대 멜로영화가 있었다.
계층의 두터운 벽을 어렵사리 극복했건만 천형과도 같은 백혈병을 극복하지 못한 젊은 남녀의 애절한 이야기가 당시 관객들은 눈물샘을 열어주었다. 하지만 말기 백혈병환자에게 특효라는 글리벡이 나온 요즘, 그런 영화는 비평가의 호된 질책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글리벡만이 아니다. 당뇨병으로 아버지를 여읜 40대 남성은 어려서부터 당뇨로 고생했지만 주위의 염려에도 불구하고 술 앞에서 꽤나 당당하다. 생명공학으로 만든 부작용 없는 인슐린을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심장병 수술도 그리 겁나지 않은 시대에 사는 우리는 앞으로 암도 대수롭지 않을 것으로 확신한다. 자신의 DNA로 만든 칩을 몸에 넣고 다니는 예방의료의 신기원이 채택되는 날이면 조기발견에 이어 완치까지 가능하다고 생명공학이 단언하고 있지 않은가. 다만 빈발할지 모르는 재발은 주의해야 할 것이다.
생명공학이 주장하는 인류는 과연 누구인가
배아복제로 줄기세포를 만들면 어떨까. 어떤 여성으로부터 기증된 건강한 난자를 입수하였다면 생명공학을 만나러 가야 한다. 난자 속에 있는 핵을 꺼낸 자리에 내 몸에서 빼낸 세포 속의 핵을 대신 집어넣고 체외분열을 유도하면, 그 난자는 내 몸에 전혀 부작용이 없는 각종 세포 조직이나 장기를 생산할 수 있다고 생명공학은 약속한다.
인슐린을 주사하는 구식이 아니라 아예 인슐린을 만드는 조직을 주입하고, 약해진 심장과 뇌에 싱싱한 세포를 얼마든지 보충할 수 있다. 이제 나이가 들어도 심장병이나 치매에 걸리지 않을 것이다. 다만 치료비가 걱정될 따름이다.
불치병과 난치병의 치료차원이 아니다. 노화된 조직과 장기를 때마다 교환해주는 맞춤의료 시대를 넘어 인류의 꿈인 수명연장이 실현되는 순간이다. 다만 아직 아쉬운 점이 없지 않다. 인류의 이상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생명공학 연구에 몰두해야 할 텐데 난자가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소 난자를 활용하자는 제안이 나타나더니 어느새 구체화되고 있다.
사람의 핵을 치환해서 넣은 소 난자를 줄기세포로 유도하여 인류의 불치병 난치병을 치료하고, 소 난자 줄기세포 연구로 획득한 완벽에 가까운 기술력을 사람 난자에 적용하여 성공확률이 매우 높은 장기 생산에 도입한다면? 인류복지는 이제 시간문제다. 다만 인류를 위해 희생될 그 나머지가 문제로 남겠지만, 무시하면 그만이다.
생명공학이 주장하는 인류는 과연 누구인가. 또 그 나머지는 무엇인가. 조상의 보살핌 속에 이 땅에 태어나 밥 먹고 살아가는 공동체 구성원들이 모두 인류에 해당하는가. 사람을 포함한 하늘 아래 삼라만상은 모두 자신의 가치를 타고났고 그물코 같은 생태계라는 공동체 안에서 서로 의존하며 살아가고 있는데, 유전자 조작을 통해 생태계의 질서를 교란하고 그것도 모자라 분명한 생명인 배아를 희생시키겠다는 생명공학은 도대체 어떤 인류의 복지를 추구하려는 것인가.
선조가 이제까지 그랬듯이, 아기 낳고 잘 키우려는 보편인류인가. 자신의 아이와 그 아이가 자라서 낳은 아이를 이어 사랑하는 보편인류는 후손의 생명을 희생시켜 자신의 생명을 이어가려 하지 않을 것이다. 후손이 건강하게 살아가야 하는 공동체의 질서를 교란하고 자신의 생명연장을 위해 후손의 생명을 제한하는 이른바 특수인류는 우리가 아침저녁으로 만나 안부를 서로 묻고 다정한 웃음을 주고받는 이웃과 같지 않을 공산이 크다. 그렇지 않고야 어떻게 감히 생태계를 교란하고 후손의 생명을 함부로 할 수 있나.
환경을 보전하려는 노력, 생명공학의 파고를 무너뜨릴 것
그들은 하늘도 두려워하지 않을 어떤 힘이 있을 것이다. 아마도 상상을 초월한 돈 또는 권력을 소유하고 있을지 모른다. 어쩌면 그 두 가지를 모두 소유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당연히 보편인류와 거리가 멀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희망을 가져야 한다. 인류복지로 포장된 생명공학의 파고가 제아무리 도도하더라도 의식 있는 시민들이 하나로 뭉친 힘은 능히 그 파고를 무너뜨릴 수 있다. 생명공학은 중앙집중적 공급자의 논리이기 때문이다. 특수인류의 배타적 이익을 도모하는 생명공학이지만, 보편인류에게 혜택이 골고루 돌아갈 것처럼 애드벌룬을 높게 올려 수많은 난자와 배아를 희생시키려 집요하고 조작된 유전자로 농작물과 식품을 생태계와 우리의 건강을 오염시키고 있지만, 소비자가 그 사실을 깨닫고 현명하게 대처한다면 그 파고가 후손에게 미치기 전에 차단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백혈병과 당뇨병이 발생되지 않는 환경과 생태계를 보전하려는 행동이 절실하다. 질병에 걸리지 않으면 약을 사먹을 일이 없다. 절제된 삶이 우리의 내일을 건강하게 안내할 것이다. 불행하게도 이미 병중이라면 전통 의약품부터 사용해보자. 대안이 없다면 조작된 유전자가 포함되지 않아 안전한 의약품을 조심스레 이용할 수밖에 없겠지만, 생태계를 어지럽혀 만든 의약품은 되도록 피하는 게 좋겠다.
내 노후와 자식의 건강을 위해 유전자조작 농산물과 식품을 사 먹지 말자. 표시제가 시작되었으니 조금만 조심하면 피할 수 있다. 그리고 생명공학이 외치는 인류복지의 이면을 똑바로 보자. 배아를 죽이고 무슨 명분으로 인류복지를 운운할 수 있나. 소의 난자에 사람의 핵을 넣은 반인반수의 행위를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나.
그런데,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어떻게 왜 행동해야 하는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불안하고 화도 난다. 그렇다면 자식 키우는 이들이여, 실상을 바로알자. 후손의 생명을 희생시킨다는데, 생태계를 교란한다는데, 자연의 섭리를 정면으로 거스르는데, 이런 문제를 그냥 두고 볼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절박한 심정으로 모여 앉아야 한다. 그리고 늦어버리기 전에 근본을 바로잡을 궁리를 찾아야 한다. 후손 없는 내일, 생태계 없는 인간의 생존은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근본이 부정되면, 후손도 내일도 그리고 우리 이웃의 생명과 그 존재 가치도 한 순간에 사라지는 게 아닌가.
박병상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 대표, 인천 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
[저작권자ⓒ 이미디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