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당·대청 특별대책지역지정비화

의욕 찬 계획, 밀어붙이기는 역부족
취재부 | eco@ecomedia.co.kr | 입력 2005-05-18 14: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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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시도로 경험과 노하우 전무한 상태

팔당·대청 특별대책지역지정(안)의 부결
1990년은 환경청이 환경처로 격상된 해이다. 국무위원인 장관이 직접 환경행정을 총괄하고 책임지는 정부조직 체계를 갖춘 것이다.
이제 환경정책도 보건사회의 그늘아래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부처와 대등한 입장에서 주장하고 정책을 펴 나갈 수 있게 되었다.
바로 전 해인 1989년에 환경청은 팔당·대청호를 특별대책지역으로 지정하여 이곳의 수질악화를 방지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 계획은 국무총리가 위원장인 ‘환경보전위원회’에서 부결되고 말았다.
환경청으로서는 의욕에 찬 계획이었으나 밀어붙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관계부처의 장관들이 위원인 환경보전위원회에서 내무부장관이 지역주민의 이해를 대변하여 강력한 반대의견을 제기한 것이다.
팔당·대청호 주변지역 중 특별대책지역으로 지정하려는 지역은 매우 넓고 방대하다. 팔당호 대책지역의 경우 그 면적이 2,102㎦로서 경기도 7개 군 43읍·면이 포함되는 넓은 지역이며, 대청호 대책지역의 경우는 면적이 729㎦로서 충북 3개 군 11읍·면과 대전시 1개 구가 포함되는 지역이다.
특별대책지역지정으로 재산권이나 경제활동의 제한을 받게 되는 지역주민의 반대는 당연한 현상으로 나타나고, 이를 반영하여 시·군 자치단체장과 내무부가 반대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조직상 환경행정의 주무장관인 보건사회부장관은 관계부처를 설득하려는 노력도 환경청을 도우려는 의지와 절박함도 없었다. 차관급인 환경청장의 의욕만으로 통과시키기에는 힘에 부치었든 것이다. 환경청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낸 것이다.

재시도(再試圖)-단계적 접근
해가 바뀌면서 환경청은 환경처로 격상되고 중단된 팔당·대청호 특별대책지역 지정문제는 환경처의 가장 큰 현안문제가 되었다. 필자가 1990년 1월에 수질보전국장을 가면서 팔당·대청호특별대책지역 지정문제에 바로 부닥치게 되었다.
어느 날 환경처 출입기자단의 간사인 모 기자가 사무실로 찾아와 6개월 이내에 팔당·대청호 지역을 특별대책지역으로 지정하지 못하면 수질국장을 계속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충고 겸 압박을 가하는 것이 아닌가. 문제의 중요성과 시급성을 다시 일깨워주었다. 마음이 답답하고 쫓기는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사실 그 당시 환경공무원들은 환경오염방지를 위한 측정업무나 오염원의 지도단속업무에는 상당한 경험과 전문성을 갖고 있었으나, 일정한 지역을 대책지역으로 지정하여 종합관리하려는 정책은 처음 시도하는 일이며 축적된 경험과 노하우는 전무한 상태였다.
문제는 특별대책지역 지정 안(案)이 이미 부결된 이상 당초 안 그대로를 가지고 다시 환경보전위원회에 들고 가서는 설득력과 승산이 없는 것이 뻔하였다. 그렇다고 이 대책지역을 축소하여 새로운 안을 제시한다면 수질정책의 후퇴가 되니 여론의 비판이 반대편애 지역주민들의 강력한 반발이 있으니 이 과제는 양쪽의 비위를 다독이면서 진행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 생각되었다. 그래서 특별대책지역 지정에 앞서 몇 가지 조치를 취하는 단계적 접근을 시도하기로 하였다.

우선 청정지역(淸淨地域)으로 지정
우선 첫 단계로 대책지역의 구획선을 확정짓기로 하였다. 그래서 시도한 것이 특별대책지역으로 지정하려던 지역을 일괄하여 청정지역으로 확정하기로 하였다. 법에서 배출시설에 적용되는 배출 허용기준은 청정지역, 가지역, 나지역에 따라 강약을 달리 정하고 있는데 청정지역의 배출허용기준이 제일 엄격하게 설정되어 있다.
하천의 상류지역은 대게 청정지역으로 구분되어 있기 때문에 이 지역을 청정지역으로 지정하는데 별 무리가 없었다. 그리고 이 지역을 청정지역으로 지정하는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하여 특정수질유해물질배출시설 입지제한지역으로 고시하였다.
배출시설의 입지제한 군거 규정은 이미 수질환경보전법 제 10조에서 정하고 있으나 그 동안 이 규정을 활용한 사례는 없었다. 이 입지제한은 절차상 환경처장관의 일반적인 법집행 절차로 가능한 조치인 것이다.
지역주민으로서는 수도권의 상수원지역에 특정수질유해물질배출시설 설치를 제한한다는데 대하여 이를 반대할 명분이 없는 것이었다. 90년 4월에 배출시설 설치제한지역고시가 발표되어도 예상대로 지역에서 별 동요가 없었다.
더욱이나 이 고시가 발표된 후 언론으로부터 상당히 호의적인 평가를 받았다. 중요한 것은 89년에 추진하려든 특별대책지역의 구획선을 기정사실 시키는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권역 개념의 도입
이제는 대책내용을 다듬어 지역주민의 반발을 최소화하는 과제가 남았다. 사실 특별대책의 주요내용을 보면 일정규모 이상의 숙박·음식점과 대규모 축산시설의 입지제한 및 규제강화에 있었다. 지역주민의 반발을 줄이기 위하여 반대하는 시·군도 줄어들고 다루기가 쉬울 것이나 그렇게 하면 상수원보전정책의 후퇴라는 여론의 공격을 받을 것은 뻔한 일이었다.
이런 점을 조정하여 나온 아이디어가 바로 1권역과 2권역 개념이었다. 팔당호에 인접한 1권역에 대하여는 당초 안의 규제내용을 그대로 적용하고 팔당호에서는 유하(流下)거리가 먼 2권역에 대하여는 완화시킨 규제내용을 적용하는 아이디어인 것이다.
대책지역의 구획범위를 줄이는 것보다는 훨씬 설득력이 있었다. 이렇게 하여 90년 8월에 새로운 팔당·대청호특별대책이 환경보전위원회에서 통과하게 되었다. 물론 이대에도 내무부의 반대는 여전하였으나 반대는 강력하지 않았다.

주민설득
환경청시절부터 계류된 현안사항이고 여론의 주시를 받던 큰 매듭을 풀었다는 안도를 즐길 여유도 없이 어려움은 대책지역 지정이 확정된 이후에 더 컸다. 지역지정에 반발하는 지역주민의 집단행동 움직임이었다. 이 지역에 땅을 많이 가지고 있는 돈 많은 서울사람들이 문제를 일으킨다는 소문도 많았다.
현장으로 달려가 시·군도 별로 농민들을 모아 놓고 대책내용을 설명하고 설득하는데 온 정성을 쏟았다. 이 지역 주민들은 이미 군사보호구역, 자연보전권역, 수도권정비구역 등으로 인한 재산권 피해의식이 뿌리깊은 상황이었다.
또다시 무슨 지역 지정이라면 무조건 거부하는 입장이었다. 온갖 나쁜 소리도 감수하면서 정성스럽게 대응하는 우리의 태도를 어느 정도 받아주어 지역의 소요는 잠잠해 졌다. 이렇게 하여 팔당·대청호특별대책은 그 시동을 걸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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