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부처를 출입하는 기자의 개인적인 시선으로 바라본 몇 가지 예를 들어 보겠다. 물론 ‘신출나기’기자가 다른 집 담을 엿본 것으로 당사자들은 유념할 필요 없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도 무방할 것이다.
건교부는 역시 ‘잔뼈’가 굵다는 인상을 준다. 10여년전 건설부와 교통부라는 거대한 조직이 물리적인 합병을 통해 맺어진 만큼, 규모의 경제가 주는 인상도 강렬하다. 그러나 건교부의 ‘잔뼈’는 조직의 영향력에서 비롯된 것이라기보다 주택과 교통, 토지처럼 국민의 현실과 밀접한 관계에서 오는 ‘조건반사형 민원’으로 다져진 매커니즘으로 볼 수 있다.
그들은 사람을 다루는 일에 능해 문제가 발생하면 적어도 일단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법을 알고, 한 귀로 들으며 다른 한쪽으로는 상대방을 이해시키기 위한 전략을 수립할 줄 안다. 머릿속에서 도면을 그리고 골조를 신속히 올리는 일에 능통하다.
그런가하면 산자부는 어떠한가. 기자가 바라본 산자부 공무원은 한마디로 ‘개방형 세일즈맨’이다. 양 귀를 곧추 세우고 언제든 발로 뛸 준비가 돼있는 ‘맘 급한 마구의 말(馬)’처럼 활동적이다. 그러나 상공부 시절의 막강함에 대한 향수와, 권력에 대한 미련이 아직 남아있는지 부처로서 갖춰야할 이렇다할 ‘고집스러움’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출입 부처 중 해양수산부에 대한 인상도 빼놓을 수 없다. 유일하게 충정로에 마련된‘단독주택’에 홀로 거주중인 해수부는 와 닿는 이미지만 놓고 보면 정부의 ‘사랑채’나 ‘별채’같은 느낌이다. 물론 이것은 노무현 대통령이 한때 지휘하던 조직이라는 선입견이 크게 작용한 탓이다.
그러나 아직 해수부라는 조직속에는 노 대통령에서부터 단명한 최낙정 장관에 이르기까지 존재했던 다면평가제로 인해 상하관계에 사뭇 조심스러운 구석이 엿보인다. 언론을 대하는 태도도 대체로 소극적이다. 원하는 정보는 제공하지만 나서서 해명하거나 자신의 뜻을 관철시킬 의도는 없어 보인다. 좀 서운한 표현이겠지만 ‘맥’이 없어 보인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이렇듯 각 부처는 제각기 자기만의 독특한 태도와 성품으로 출입 기자를 맞는다.
전문기자를 대하는
환경부의 서늘한 시선
이제 나는 남의 담 기웃거리기를 그만두고 내가 현재 제집 마냥 드나드는 환경부에 대해 이야기할 참이다.
기자는 얼마전 산자부에서 환경부 대기보전국장으로 발령받은 김신종 국장의 말을 빌어 ‘우직한 소와 같다’거나 ‘투사(鬪士)기질’로 무장한 조직으로 환경부의 인상을 표현해야 할지 여간 고민스러운 게 아니다. 기자는 이에 앞서 전문기자를 대하는 환경부 공무원에 대한 불만을 먼저 토로하고자 한다.
환경부 공무원들은 기자가 다가서 이런저런 질문을 건네면 우선 딴전을 피기 일쑤다. 한마디로 전문지의 영향력과 파급효과를 과소평가 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어 불쾌한 마음마저 숨길 수 없을 때가 더러 있다.
나는 가슴에 손을 얹고 정작 누가 내일의 환경을 걱정하고 진실로 환경을 사랑하는지 냉담한 반응을 일삼는 그들에게 되묻고 싶다.
매일 아침, 공보실과 관계기관 및 지자체의 홍보실에서는 새벽에 도착한 신문의 관련 기사를 스크랩하느라 분주한 진풍경이 연출된다. 관련 여론을 수렴하고 해명기사를 작성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나는 그것까지 싸잡아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다. 중앙언론에 집착하여 그들이 환경전문지를 대하는 태도는 어떠한가 묻고 싶은 것이다.
물론 환경부 직원 전체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일부 관료는 자신의 소신과 철학을 전문지를 통해 전달할 줄 알며, 미처 이해하지 못해 생긴 오해의 부분을 친절하고 소상히 풀어 주기도 한다.
전문지는 그들만의 특성을 십분 발휘하여 어떠한 논문보다 더 훌륭하고 뛰어난 기사를 만들어, 때때로 부처를 옴짝달싹못하게 코너로 몰아부치기도 한다. 이것은 곽결호 장관이 전문지의 역할에 대해 언급하며 전문지의 실력을 인정한 부분이기도 하다.
환경전문지는 과장급이나 사무관의 책꽂이 한구석에 자리잡고 있으면 때때로 훌륭한 참고서가 되기도 하고, 부족한 부분을 챙겨주는 지침서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그들은 그 사실을 잘 모르고 있는 듯 하다. 아니, 알고 있다손 치더라도 별 관심이 없는 듯 하다.
덧붙여 국내의 내노라하는 중앙방송과 일간지의 보도 행태는 어떠한가. 스스로 환경보전을 위한 감시자의 역할을 자임하면서 되레 저널리즘에 심취해 전후맥락을 제대로 살피지도 않고 불신만을 부추기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이것은 전문지와 일간지의 보도방식의 차이이기도 하다. 일간지가 국민의 시선을 잠시 머물게 하는 몇 줄의 화젯거리를 찾는다면, 전문지는 병을 불러온 원인과 환부의 상태를 정밀진단하고, 치유를 위한 처방전 마련에 고심한다.
애써 공무원들이 전문지를 외면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것이다.
물론 이는 군소 언론사의 기자가 느끼는 일종의 소외감일 수도 있다. 또한 공무원과 기자사이에 서로가 드러내놓고 싶어하지 않는 속내의 연장선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전문지와 메이저언론에 똑같은 비중을 던져준 공무원이 얼마나 되는가. 스스로 자신에게 물어 자신 있는 자는 몇 안될 것이 확실하다.
종류를 불문하고 언론을 대하는 태도는 또 어떠한가. 곽결호 장관은 차관시절부터 언론과의 유대관계가 남달랐다. 그는 언론을 ‘의식’하는 관료라기보다, 언론을 제때 제대로 ‘이용’할 줄 아는 관료다. 그에 반해 하부라인은 언론을 적절히 활용할 줄 아는 마인드가 자리잡지 못한 느낌이다.
부족한 것은 말 그대로 ‘부족한’것이지 허물이나 흉이 아니다. 그것을 자꾸 은닉하려하고 합리화하려는 것이야말로 허물이자 곪아터져 가는 상처다. 언론을 대하는 태도가 자신에 차있고 개방적일수록 환부는 쉽게 아물고 재발하지 않는다. 정보는 비밀이 아니라 말 그대로 정보다.
그런데 그‘정보’가 제대로 된 루트가 아닌 비정상적 경로를 통해 제공되면 오해의 불씨가 되어 돌아온다. 보도된 내용으로 해명기사를 작성하기에 앞서, 올바르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 오해의 소지를 만들지 않도록 하는 게 우선이다.
소신으로 무장하면 언론은 이용 대상
기자는 집에서건 외부에서건 거리낌없이 수돗물을 그대로 마신다. 가까운 벗들이 의아하게 바라보면 그들은 그 자리에서 수돗물의 안전성에 대해 상당한 시간동안 움직이지 못하고 설교를 들어야 한다. 그것은 수돗물에 대한 맹신이 아니라, 환경언론에 몸담고 있는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요, 어려운 여건 속에서 제몫을 다하고 있는 수도인들에 대한 신뢰이자 몸가짐이다. 각종 기념식이나 준공식에서 주요인사들이 ‘수돗물마시기’식순을 갖는 것도 ‘보여주기’보다는 이 같은 연유에서 기인한 것으로 이해된다.
환경부는 신임 김신종 국장의 말을 빌어 ‘성장과 분배’라는 명제 하에 가장 투명한 정책을 펼쳐야 할 부처 중에 하나다.
이름이 잘 기억나지 않는 말단 공무원에서부터 장관에 이르기까지 제 역할에 대한 소신으로 무장하고 속내를 내보일 수 있을 때 터무니없는 오보(誤報)나 전후맥락을 이해하지 못한 속보가 예방될 것이다.
전문언론을 바라보는 시선도 분명 개선돼야 한다. 식약청은 비록 작년 정부평가에서 좋지 못한 성적을 올렸지만 청사건물에 전문출입기자실을 마련하고 있다. 그들은 일간지나 방송의 영향력에 앞서 전문지만이 해낼 수 있는 또 다른 힘의 논리를 간파하고 있다. 전문가 장관의 취임으로 새롭게 거듭나고 있는 환경부가 한층 쇄신된 안목으로 전문지를 주목하기 바란다.
이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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