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가 인간 사회에 부여하는 의미는 크다. 철도는 근대 문명의 원동력이었으며 지역 간, 국가간 장벽을 해소하는 신호탄이었기 때문이다. 철도를 인체에 비유하여 혈맥이니, 대동맥이라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보름 후에는 개성 주변의 사업지구 부지에서 개성공단 착공식이 개최되었다. 서울에서 불과 70Km 거리에 위치한 개성직할시 일대 1,000만평의 부지에 공업단지 800만평과 배후도시 1,200만평을 건설한다는 것이다. 역사적인 6.15 남북 공동선언을 전후해 다소 서두른 감도 없진 않지만 이러한 서두름은 그 장면들을 바라보며 국민들이 느끼는 감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은 대북 교류사업을 자신의 생의 마지막 사업으로 알고 노구를 이끌고, 거기에 거액의 달러나 소떼들을 동반한 채 수 차례나 북한을 방문하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야당과 일부 국민들의 반대를 감수하면서 끝내 자신의 대북정책인 햇볕정책을 고수하였다. 그 결과로 국내 최대 기업인 현대는 경영에 커다란 타격을 입었고, 김대통령은 질타와 구설수를 무릅써야 했지만 무모하다고까지 했던 시도의 보람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정주영 회장이나 김대중 대통령의 시도에 대한 평가는 아직 내릴 단계가 아니다. 세월이 좀 더 지난 후 그야말로 명실상부한 통일이 되고, 통일에 대한 과실을 우리 모두 누릴 수 있을 때 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진정한 평가는 차후의 역사에 의해 이루어져야 하며 현재로서는 그 의의와 가치에 대해 섣불리 예단할 게 아닌 것이다. 어느 분야나 선구자는 구설수에 오르기 마련이고, 웃음거리가 되거나 손가락질 받는게 다반사 아니던가.
어떻든 말로만 듣고 노래로만 부르던 통일이 성큼 다가선 느낌이다. 아마도 내 생애 동안에 그야말로 남북의 철조망이 완전히 걷혀 사진으로만 보던 대동강과 모란봉이며, 천하 명산이라는 묘향산도 가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뿐인가. 강릉에서 유람선을 타고 해금강을 지나 원산의 명사십리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해안을 감상하게 될지도 모른다. 지금은 금강산 관광이 가능해졌지만 그 이전에는 고성의 통일전망대에서 기껏 망원경으로 해금강과 금강산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때 철조망 너머로 하얗게 빛나던 백사장과 쉬임 없이 몰려와 부서지던 동해의 푸른 물결, 그리고 비무장지대 여기저기 피어있던 흰색 찔레꽃은 아직도 눈에 선하기만 하다.
반면 언젠가 백두산 관광을 위해 압록강 변에 위치한 집안(集安市)에 머물렀을 때, 강 저편으로 바라보이던 북한 땅의 모습도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중국 쪽의 집안시는 비록 소도시라 하더라도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활기에 차 사람 사는 곳이라고 느끼게 해주는 반면, 강 건너 북녘 땅은 그야말로 적막강산이었다. 물론 그 안쪽에 산이 가로막혀 있기는 했지만 명색 국경지대라는 곳이 사람의 자취는 아예 찾아볼 수 없고 간간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차나 한 대씩 지나다니곤 할 뿐이었던 것이다. 백두산으로 향하면서 차창 너머로 멀리 보이던 북녘 땅의 모습도 별반 다를 게 없었다. 단편적인 모습일 수도 있겠지만 도대체가 생기가 보이지 않았고, 저 곳이 사람 사는 곳이며 우리의 북녘 땅이라는 감이 오질 않는 것이었다. 게다가 백두산으로 향하면서 간간이 마주치는 조선족들, 초라한 모습으로 북녘 사투리를 쓰며 이것저것 사달라고 졸라대는 조선족들도 이러한 나의 침체된 감정을 더욱 심화시키는 것이었다.
내가 정부의 관계 부처에 근무했거나 언론기관에 몸 담고 있어서 북한을 왕래할 수 있었다면 북한에 대한 인상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접할 수 있는 범위는 보통 사람의 한도 이내일 수밖에 없어서 북녘 땅에 대한 인상은 아직도 커다란 상흔처럼 가슴속에 남아있다. 따라서 이러한 북한이 표면적으로라도 조금씩 열리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반갑기 그지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북한이 오랫동안 미뤄왔던 철도 연결 숙원사업을 자신들의 핵 문제로 야기될지도 모를 국제적 고립을 벗어나기 위한 방편으로 시행한 것이라고 해도 어떻든 남북간의 철도는 연결되는 것이다.
이 국가 대동맥의 연결이 차후 어떤 부가가치를 가지게 될 지는 아무도 예상할 수 없을 것이다. 박정희 정부 때 아직은 시기상조라며 각계각층에서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반대하기도 했지만 과감하게 단행한 결과 우리 경제에 어떤 역할을 했는가. 북한이 자신들의 완전 고립을 방지하기 위한 비상탈출구 성격으로 철도 연결을 선택했다 해도 이 철도는 남북간의 인적, 물적 교류는 물론 통일을 앞당기는 큰 토대가 될지도 모른다. 그 뿐만이 아니다. 착공식을 가진 개성 공단과의 소요시간이 2시간 이내로 가능해져 개성 공단을 남북 간의 종합 경제 협력단지로 개발할 수 있으며, 이는 북한의 경제적 기반 마련과 국제 사회 동참의 계기가 되기도 할 것이다. 여기에 소식을 접할 때마다 우리의 가슴을 벅차게 하는 시베리아 횡단 철도와의 연계가 있다. 이 연계망까지 확실하게 구축할 수 있다면 우리 한반도는 동북아시아의 물류 중심지로 부상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는 것이다.
지금 국제 환경은 무서운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이 변화에 대비하고 적응하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으며 기껏해야 다른 국가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우리 민족도 남북이 합심 단결하여 무한 경쟁시대라 일컬어지는 국제 질서에 편승하고 위상을 높여가야 할 시점인데도 아직도 북한은 핵과 전쟁만을 담보로 하여 시대의 변화를 외면하고 고립을 자초하고 있다. 그 최대의 피해자는 북한과 남한, 어차피 우리 한 민족인 것이다.
지금 일본은 군사대국화를 향해 가속 페달을 밟고 있다. 그 정당성의 가장 큰 핑계는 북한의 위협이다. 그러나 그 뒤에는 미국의 용인과 독려가 있기에 일본은 절호의 찬스라 생각하고 그 동안 묶어 놓았던 제도적 족쇄를 풀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일본과 손을 잡고 군사력 증강과 외교적 역할 증대를 요구하고 있는 것은 첫째 목적이 차후 자신의 가장 큰 적대국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이고, 다음은 북한에 대한 위협이나 고립 정책에 동참시키기 위해서이다. 여기에 지금 당장 자신들의 점령, 관리하고 있는 이라크의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도움이 필요해서이기도 하다. 그러자 일본은 원님 덕에 나팔분다는 식으로 이를 빌미로 자신들의 자위대를 정식 군대인 국방군으로 바꾸고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인정하는 헌법 개정 초안을 마련했다. 그리고 '이라크 부흥 지원 특별조치법'을 통과시켜 2차 대전 후 처음으로 순수한 전투병을 중무장시켜 이라크에 파병하려 하고 있다. 일본은 태평양전쟁에서 미국에게 패한 후 정식 군대를 보유하지 않기로 헌법에 명시하고 자신들의 치안 유지만을 위한 자위대를 두었으나 현재 이 자위대는 명목상으로만 자위대일 뿐 세계에서 손꼽히는 전력을 갖추고 있다. 게다가 최근에는 아예 그 명칭마저 정식으로 국방군으로 바꾸고 집단적 자위권 행사라는 명목으로 해외 파병의 길을 트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미국은 어떤가. 비무장지대(DMZ) 부근에 주둔하고 있던 미국 2사단을 후방 지역으로 이전하고,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관할하던 미군도 철수시키려 하고 있다. 또한 항공모함과 수송기 등으로 구성된 이른바 타격여단(Striker Brigade)을 하와이의 진주만에 배치하려 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들은 북한과의 전쟁을 염두에 두고 자국민의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들이 과연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려 하고 있으며 우리 통일을 바라고 있는가하는 의심마저 든다.
국제 사회가 피도 눈물도 없으리만치 냉혹하다는 것은 새삼스러운 얘기가 아니다. 이라크 전쟁은 국제 관계가 힘만이 정의이며,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는 어떤 일이라도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현재로서는 미국이나 일본이 언제, 어떤식으로 나올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일본은 미국과의 전쟁에서 패해 폐허가 되었다가 우리의 6.25전쟁 특수로 도약의 계기를 마련했듯, 현재의 경제 위기를 탈피하기 위해 한반도 내에서의 전쟁을 은근히 고대하는지도 모른다. 전쟁이 일어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민족의 몫이고 이득은 주변 국가들이 보게 되는 것이다. 북한이 공격을 당하게 되면 그 분풀이 대상은 거의 남한일 수밖에 없고, 남한도 공격을 받고 가만히 있지만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또다시 미 군정기(軍政期)를 거치게 될 수도 있고 일본은 어부지리로 자신들의 성장의 계기로 삼으려 할 것이다.
북한은 국제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해야 한다. 미국이나 중국, 일본, 러시아등이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니다. 그들을 도울 수 있는 것도 우리고 그들을 살릴 수 있는 것도 같은 우리 민족이다. 레닌에 의해 촉발된 공산주의 이데올로기가 붕괴된 이후 동구 여러 나라들은 어떤 모습을 보였는가. 모두 같은 민족끼리 뭉쳐 새로운 국가로 독립하지 않았는가. 이처럼 핏줄은 영원하고 이데올로기는 한 순간 뿐인 것이다.
우리는 반만년이라는 기나긴 역사를 갖고 있다. 이 오천년 역사도 그저 평탄하게 흘러온 것이 아니고 잦은 외세의 침략에 시달리면서 민족의 동질성을 유지해 온 역사였다. 우리가 대국 중국의 변방에서, 그리고 야만적인 일본의 옆에서도 이처럼 오랜 역사를 유지해 올 수 있었던 것은 민족의 결집력이 그만큼 강했기 때문이다. 이 결집력은 중국의 수나라와 당나라에게 최대의 위협 세력이었던 고구려의 기질로 나타나기도 했고, 세계를 제패했던 몽고에 쉽게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저항하던 고려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아시아 대륙과 유럽의 일부까지 폭풍처럼 휩쓸었던 몽고군이었지만 정작 고려를 점령하는 데는 무려 30년이나 걸려야 했다. 그나마 삼별초 군은 남해안의 섬으로 도피하면서도 마지막까지 굴복하지 않아 정벌하는데 커다란 애를 먹기도 했다. 조선조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우리 민족은 또 어떤 모습을 보였는가, 농사짓고 일만 하던 민초들도 농기구를 들고 일어나 결사항전으로 외세의 침략에 대항하지 않았던가.
이러한 역사와 조상을 둔 후손들은 지금 반세기가 넘도록 화합하지 못하고 대치만 하며 서로의 국력을 낭비만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정치학자가 아니어서 그 원인과 해결 방안을 학술적으로 얘기할 수 없겠지만 이유야 어찌 되었든 우리는 뭉쳐서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긴 역사를 지켜온 우리 조상에 대한 도리이기도 하고 우리의 뒤를 이을 우리 후손들에 대한 의무이기도 하다. 우리 다음 세대까지 이처럼 토막난 조국을 물려줄 수 는 없는 노릇 아닌가.
남북 이산가족들의 상봉 장면을 보며 눈물만 닦지 말고, 우리의 눈물은 물론 그들의 눈물도 흐리지 않도록 해주어야 한다. 그들이 살면 얼마나 더 살겠는가. 그리고 배고픔을 견디지 못해 북한을 탈출하여 중국을 유랑하는 탈북자들, 휴전선 부근에서 눈을 부릅뜨고 이쪽을 노려보고 있는 북한 병사들도 우리 민족이다. 우리 모두 힘을 모아 이들을 민족 공동체로 끌어 들여 보살피고 고락을 함께 해서 번영과 발전의 조국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재)동암의학연구소 이사장 이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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