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사업이 가져야 할 최소한의 윤리

환경연구소 소장 박병상
박병상 | eco@ecomedia.co.kr | 입력 2004-01-13 16:5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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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한 그린벨트의 주민들이 동네 공터에 긴급히 모였다. 그린벨트를 해제하라거나 개발을 허용해달라는 집회가 아니었다. 비가 내리면 줄줄 새는 화장실 지붕도 마음대로 고치지 못하는 주민들이 분노한 이유는 마을을 관통하는 송전탑 때문이었다.
작업복 입은 낯모르는 사람들이 측량할 때만 해도 별 일 아니려니 했다. 어느 날 느닷없이 들어온 포크레인이 숲을 파헤칠 때 설왕설래했어도 이처럼 분노하지 않았다. 자기는 모르는 일이라고 발뺌했던 포크레인 기사가 사라지더니 한밤중에 공사를 강행한 한국전력이 70만 킬로와트가 넘는 초대형 송전탑을 일렬로 늘어놓으면서 분노하게 된 것이다.
입만 열면 ‘국민기업’임을 강조하는 기업이 한국전력 아니던가. 모름지기 국민기업이라면 사업을 국민들과 합의하며 사업을 진행해야 하거늘, 합의로 출발한 사업일지라도 도중에 문제를 제기하는 시민들이 있다면 그들의 의견을 귀담아 들어야 당연하거늘, 한국전력은 어떻게 했던가. 설득이든 합의든 문제를 제기하는 시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투명한 절차를 받아야 옳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사업 계획을 알려주지 않고 슬며시 진행하다 들통나자 공사를 서두르고, 반대하는 사람들을 ‘지역이기주의자’로 몰아붙이지 않았던가. 이런 한국 전력의 이른바 관행은 국민기업의 행위와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전자파를 걱정하며 주택가를 관통하는 송전탑을 반대하는 과천시민들을 공사방해 운운하며 고발한 한국전력은 그린벨트 주민들을‘국가발전을 저해하는 불순세력’운운하며 송전탑을 세우는데 결국 성공했다.‘한수원’, 즉 한국전력의 자회사인 한국수력원자력은 어떤가. 공권력을 동원하며 반대하는 주민들을 예의 그 지역이기주의자로 몰아붙였고 손해배상 청구로 협박하는데 주저함이 없지 않은가. 영광 핵발전소와 영흥도 석탄화력발전소 건설 현장에서 거센 민원을 유발했던 한수원은 지금 부안에서 어떤 짓을 자행하고 있는가. 자신들에게 불리한 보고서를 왜곡하는 것은 물론, 납득할만한 절차 없이 진행하는 핵 폐기장을‘원전 수거물센터’로 개명하는 한수원은 과연 개과천선할 수 있을까.
새만금 제방 전진공사를 밤샘으로 강행하다 법원에 중지명령을 받은 농업기반공사는 공기업의 자세를 가지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을까. 공공사업을 진행하는 공기업이라면 시민들이 제기하는 문제에 성심 성의껏 답해야 할 책임이 있건만 납득할만한 답은커녕 보강공사를 핑계로 전진공사를 은밀히 벌이다 시민들에게 발각되지 않았던가. 서울외곽고속도로의 북한산 부근 터널공사를 강행하려는 한국도로공사는 어떤가. 문제가 제기되자 하던 공사를 중단하고 제기된 문제를 놓고 충분한 논의를 민주적으로 거쳤는가. 불교계에서 농성하는 지역 코앞까지 공사를 후다닥 해치우고 추가비용 운운하며 우회노선 불가를 고집하는 자세는 과연 공기업다웠나.
무소불위 군사정권 하에서 신체 불안을 느껴 아무 소리를 낼 수 없었던 시민들은 민주화 시대를 맞아 새만금 간척공사의 부당성을 제기했다. 농업기반공사가 진정한 공기업이라면 합법적 절차 운운할 게 아니라 다양한 시각을 가진 사람들과 민주적으로 모여 대안 충분히 모색해야 했다. 북한산국립공원의 터널공사에 문제를 제기한 순간부터 이해 당사자들과 터놓고 논의했다면 지금과 같은 사회적 갈등은 유발되지 않았다. 공공사업을 수행하는 공기업이라면 지역이기주의, 국가발전 저해, 공사방해, 공사비 상승들과 같은 판에 박은 말을 휘두르며 공권력을 동원하는 협박은 있을 수 없어야 하는 것이다,
공사 깃발을 정식으로 올리기도 전에 지가보상을 선행하여 주민갈등을 부추기는 건설부와 경인운하주식회사의 행위는 이번 국정감사에서 드러나고 감사원의 지적을 받았듯이 편법과 탈법의 온상이었다. 경인운하의 경제성을 부풀리기 위해 보고서 조작을 서슴지 않았다. 국책사업을 수행하는 공기업을 표방한 경인운하주식회사는 응분의 책임을 져야 마땅하지만 문제의 핵심은 건설부다. 문제점을 지적하는 시민단체를 지역이기주의자로 몰아붙이며 경인운하를 강행하려 했던 공무원은 옷을 벗어야 상식이다. 응분의 처벌도 감수해야 국가기관답다. 공기업과 공무원의 윤리가 그렇지 않은가.
경부고속전철의 천성산 관통을 반대하며 38일 단식과 38일 3,000배를 수행한 내원사 지율스님은 부산에서 무기한 단식을 다시 감수하기 시작했다. 옆구리가 뚫리면 산은 죽는다. 지하수맥이 내려가 소나무가 고사하는 남산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한 세대가 30년에 불과한 사람의 눈은 터널이 뚫린 산의 고통을 쉽게 느끼지 못한다. 뱀 개구리 사라진 남산에 새들마저 떠나버린 삭막한 남산은 천성산의 내일을 말해준다. 지율스님은 공포로 떠는 풀꽃과 벌레들이 사라질 천성산의 죽음을 외면할 수 없었다.
집권 초기 단식 풀기를 호소하며 지율스님에게 재검토를 약속했던 현 정권은 공사재개를 선언했다. 공동조사를 통해 공사개재를 결정했다는 명분을 내세우는 정부는 공동조사 결과는 물론 과정도 투명하게 밝히지 않는다. 조사단 구성의 공정성과 투명성도 설명하지 못한다. 지율스님을 비롯하여 천성산 터널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천성산 품에 기대는 뭇 생명가치를 대리하는 시민행동을 준비하고 있다. 어떤 연유에서 환경영향평가서 기록에 누락되었을지 모르지만, 우선 천성산에 풍부하게 깃든 꼬리치레도롱뇽을 대리해 법원에 보전을 호소하려 한다.
공공사업은 현 세대 뿐 아니라 후손의 생명과 재산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명제가 옳다면, 사람은 생태계의 자손이고 생태계가 건강하지 못하면 사람도 건강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면, 현재 시민사회에 갈등을 유발시키고 있는 공공사업은 재고되어야 한다. 정부든 공기업이든 자신의 존재 이유를 잊어서는 안 된다. 비구니 한 사람과 맺은 약속으로 생각하고 함부로 파기하며 터널공사를 강행하는 것이라면, 정부는 그 순간 스스로 자기의 존재이유를 망각하는 것이다. 시민은 물론 후손의 생명과 재산까지 공정하게 보호해야 할 민주주의 정부의 의무를 상실하는 게 아닌가.
현재 부산 천성산에서, 부안 새만금에서, 부안 위도에서, 인천 경인운하 예정지역에서,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북한산국립공원 터널 공사 지역에서, 그리고 여기저기에서 막무가내로 벌이는 공공사업은 국책사업이나 지방사업을 막론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시민들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도록 재검토되어야 한다. 그것이 공기업이 가져야 할 최소한의 윤리다.

(박병상, 인천 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 과학기술 민주화를 위한 모임 운영위원, 생명안전·윤리 연대모임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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