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산의 시시닷컴] 개기월식

글. 박미산 시인
사진. 김석종 작가
김한결 기자 | eco@ecomedia.co.kr | 입력 2022-02-08 14: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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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김석종 사진작가


개기월식


-문현숙

부뚜막에 고봉밥 한 그릇
흰 고무신 한 짝 비스듬히 세워놓고
밥물 끓어오르는 소릴 듣는
아부지
달이 보이지 않는다

촛농이 신발보다 높게 쌓인 밤
달그락달그락
어린 남매들이 생쥐처럼 둘러앉아
냄비 밥을 갉아먹다

언제 와?

담뱃불을 털고 있던 아부지가
소주잔을 들이키신다
교회 첨탑의 빨간 십자가보다 더 빨갛게
입술 바르고
외할머니 댁 가신 울 엄마


-『볼륨』, 달아실, 2021


이 시를 보는 순간 저의 유년기가 생각났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모두 먹고살기가 어려웠습니다.
특히 실향민들은 더욱 힘들었습니다.
엄마는 당장 내일 끼니 걱정으로 밤을 지새우는 적이 많았지요.
밤새 등잔 불 밑에서 종이에 풀칠을 해서 봉투를 만들거나
수출품을 뜨개질해도
식구들 입에 풀칠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이 시의 화자도 저의 유년기와 마찬가지로 넉넉지 못한 집안인 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부엌에서 밥물 끓어오르는 소릴 멍하니 듣다가
다 된 밥을 냄비째로 방에 가져옵니다.
어린 남매는 생쥐처럼 둘러앉아
냄비 밥을 갉아먹습니다.
배를 채운 남매는 아버지에게 엄마가 언제 오느냐고 묻습니다.
소주를 마실 수밖에 없는 무능한 가장인 아버지는 아무 말씀도 못하고 방문을 엽니다.
하늘은 태양빛을 완전히 차단한 지구의 본그림자(umbra)가 달을 덮으며
붉게 물들고 있습니다.
마치 엄마가 가난을 감추느라고 일부러 입술을 빨갛게 칠 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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