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산의 시시닷컴> 산령山嶺을 넘으며 - 박찬

김한결 기자 | eco@ecomedia.co.kr | 입력 2021-03-16 11: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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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령山嶺을 넘으며 (박찬)

거기에 고개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바람 세차고 높은 수많은 사람들 이미 지나가 잘 닦여진 깊은 산에서

빠져나가는 고개만 넘으면 바다로 나가는 길이…

깊은 산과 드넓은 바다가 그렇듯 가까이 한 경계를 이루고 있다니…


살아온 삶에 무심했듯 지금 가쁜 숨을 몰아쉬며
넘는 고개에도 나는 무심했다 지금껏 그러한 곳이
있다는 것도 모르고 살아 왔다

 

고갯마루에 올라 가쁜 숨을 멈춘다

문득 돌아보면 이제는 아스라한 저편의 풍경들…

-『빨래궁전』, 바보새, 2005.

 


등산은 우리의 인생과 많이 닮았다.
인생은 한 번뿐이지만, 등산은 계속 갈 수 있는 것만 다를 뿐.

 
보통 깊은 산에 들면 봉우리를 여러 번 넘는다.
봉우리에 오르기 전 깔딱 고개가 있다.

그 고개를 넘으면 잠시 평탄한 길이 나타난다.


그 길도 잠시, 더 험준한 고개가 나타나기도 하고
고만고만한 고개를 넘을 때도 있다.


굽이굽이 고개를 넘다 보면 숨이 턱에 찬다.
힘들기 때문에 좌우와 뒤를 살피지 못한 채 앞만 바라보고 간다.


산에서 빠져나가는 고개에 올라서자 드넓은 바다가 발아래 펼쳐졌다.
그동안 살아온 삶에 무심했듯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넘는 고개에도 나는 무심했다.
지금껏 깊은 산과 드넓은 바다가 그렇듯 가까이 한 경계를 이루고 있는 것도
모르고 살아 왔으니까.


고갯마루에 올라 가쁜 숨을 내쉰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나는 방랑자요 등산가다. 나는 평지를 싫어하며 가만히 오래 앉아 있지 못한다. 사람은 방랑하고 높이 오를 때 자기 자신을 알게 된다.’고 했듯이 높은 고개에 올라 숨을 고르고 있노라니 문득 나 자신이 궁금해졌다.


생의 절반을 넘었는데도 아직 나는 나를 모르겠다.
나를 알려면 좀 더 깊은 산에 들어야할 것 같다. 갈 길이 멀다.


생의 중간쯤 되는 고갯마루에 올랐던 박찬 시인은 지금도 하늘나라에서 자기 자신을 찾았을까? 아니면 지금까지 방랑하면서 산령을 넘고 있을까?

 

글 박미산 / 사진 김석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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