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전통·조약· 장사: 청 제국주의와 조선(1850~1910)' 발간

19세기 후반 조선-청의 관계를 조공 체제로 파악하는 기존의 통설을 뒤집은 새로운 시각
미국인 저자가 제삼자 입장에서 객관적이고 냉철하게 바라본 한중관계사
김한결 기자 | eco@ecomedia.co.kr | 입력 2021-12-08 10:3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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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디어= 김한결 기자] 한국학중앙연구원(이사장 유홍준)은 미국 브리검영대학교 역사학과 Kirk W. Larsen(커크 W. 라슨) 교수의 저서 「Tradition, Treaties, and Trade: Qing Imperalism and Chosŏn Korea, 1850~1910」 (Harvard East Asia Center, 2008년 출판)가 2018년 해외한국학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국문 번역판으로 발간됐다고 밝혔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은 2018년부터 ‘해외한국학 저서 번역’ 분야 지원을 통해 우수한 해외한국학 저서의 한국어 번역 및 출판을 지원해 한국학의 국내외 소통을 증진하고 있다.

이 책은 미국인인 저자가 제삼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이고 냉철하게 바라본 한중관계사이다. 19세기 후반의 한중 관계, 즉 조선과 청의 관계는 보통 전통적인 조공 체제가 적절히 운용된 사례로 언급된다. 그러나 저자는 기존의 통설을 뒤집고, 19세기 후반 조선에 대한 청의 전략과 성패가 근대 제국주의 국가의 행태를 모방한 것이었다고 주장한다. Kirk W. Larsen 교수는 청이 조선의 정책을 주도한 1880년대부터 1890년대 초까지 벌어진 일련의 사건을 상세히 묘사하기 위해 다양한 자료를 활용해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의 청(‘중국’)과 조선(‘한국’) 사이의 관계를 제삼자의 입장에서 심도 있게 다루었다. 특히 교역에 중점을 두어 19세기 후반의 한중 관계를 독창적이고 훌륭하게 재해석 했다는 평을 받았다.

조공 체제와 중화적 세계질서

이 책은 19세기 후반 조선이 취한 정책을 기존의 평가와는 다른 색다른 시각으로 재해석하고 있다. 저자는 청이 보수적으로 조공 체제나 존 킹 페어뱅크(John King Fairbank)가 주창한 ‘중화적 세계 질서’의 가치를 지키려고 했다는 일반적 견해를 강하게 거부한다. 그는 청 제국이 다양한 방식으로 제국의 안팎에 잇는 무수한 집단·국가·민족을 상대했고, 그들 중 다수가 중국 중심의 조공 체제라는 틀 안에 쉽게 적응하지 않았으므로, 단일한 중화적 세계 질서라는 개념이 허구라고 주장한다. 청은 세계의 다른 제국과 마찬가지로 거대한 다민족 제국을 운영하기 위해 여러 가지 복잡한 이념과 관행을 다양하게 활용했다. 그들은 제국의 경계를 표시하기 위해 근대적인 지도제작법을 활용했고, 청 제국 국경 안팎의 다양한 민족을 관찰하고 분류했으며, 확보한 영토의 지배를 공고히 하기 위해 집단 이주와 식민지 건설을 장려했다.

비공식 제국
저자는 19세기 후반 청 제국의 제국주의자들이 조선과 관계를 맺게 된 동기·전략·성공·실패가 세계사의 주류에서 벗어난다거나 예외적인 현상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종주국 중국과 속방(屬邦) 조선 사이의 전통적인 관계의 유지만큼이나 안보와 상업 등 다수의 다양한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청의 관료들은 유럽이 만든 ‘비공식 제국’(informal empire)과 불평등 조약의 틀을 활용해 조선에서 청의 권력을 확대하고 한반도에서 중국인의 상업적 이익을 증진하려고 노력했다. ‘비공식 제국’이란, 제국주의 세력이 군사적 위협을 바탕으로 영토의 직접적인 지배 없이 ‘불평등한’ 법적·제도적 장치를 통해 주로 경제적으로 한 나라를 지배하는 형태를 지칭한다. 저자도 인정하고 있듯이 이러한 청의 제국주의적 행태는 저자가 처음 주장한 것은 아니고 몇몇 학자들의 선행 연구의 기반 위에서 시작한 것이지만, 저자는 이들의 연구보다 훨씬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논리적으로 청의 제국주의적 행태를 설명한다.

조선에서 성과를 거둔 청의 조치

저자는 1880년대 이후의 청 제국이 결코 수구적인 존재가 아니며, 자국이 서양 제국에게 부당하게 당한 경험을 바탕으로 서양과의 협상 전략이라든가 시행착오를 겪었던 각종 개혁의 노하우를 조선에 전수해 주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런 호혜적 조치를 대표하는 사례로 전신선 가설과 해관(海關) 제도의 실시, 그리고 무이자 또는 저리의 차관 제공 등을 거론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청 제국이 자국의 이익을 확대하기 위한 여러 조치를 취한 바 있지만, 대체적으로 보면 청의 조치들은 조선의 재정과 개혁에 큰 도움이 됐다고 서술한다. 한국 독자의 입장에서 불편할 수 있지만, 당시 조선해관에서 거둬들인 수입이 조선 정부의 주요 재원이었다는 점에서 저자의 주장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조약, 국제법, 다자적 제국주의

청 제국은 때때로 서구식 국제법이라는 새로운 체계의 규정을 무시하거나 강력하게 저항했던 것처럼 묘사돼 왔다. 그러나 청의 정책 입안자들은 조선 문제에 관한 한, 오히려 조약과 국제법이 조선에서 자국민의 안전과 상업적 이익을 증진할 수 있는 유용한 도구라고 생각했다. 이미 서구의 법을 잘 이해한 청의 정치인들은 조약과 국제법을 활용해 조선에서 자국의 이익을 보호하려고 했다. 이들은 조계와 치외법권 등 서양 제국주의 세력이 청 제국에 행사한 불공평한 특권을 기꺼이 조선에 행사했다. 청은 이를 위해 ‘다자적 제국주의’(multilateral imperialism)를 도입했다. 조선에 조약항 체제를 처음 도입한 일본은 조선에서 일방적이고 배타적인 제국주의 통치를 시행하려고 했지만, 청은 이 다자적 제국주의를 통해 청일전쟁의 패배 전까지 일본의 시도를 효과적으로 무력화했다. 여러 서구 열강은 청이 주도한 다자적 제국주의와 불평등 조약을 통해 개항장의 설정, 최혜국 대우, 특혜 관세 및 무역 조건 등의 특권으로 무장한 채 직접적인 통치 없이 사실상 식민지로 전락한 조선을 경제적으로 지배했다. 청일전쟁 이후에도 영국 등은 몇 년 동안 청이 도입한 다자적 제국주의를 활용해 조선에서 일본의 폭주를 일부나마 견제할 수 있었다.

청의 상업 전쟁
19세기 후반의 조청 관계를 상업적인 관점에서 접근한 연구는 몇 차례 있었다. 그러나 기존의 연구는 조선해관 자료들을 분석한 통계에 의거해 양국 간의 무역 불균형 문제를 다룬다든가, 주요 수출품과 수입품 목록을 비교하는 등 대체로 피상적인 수준에 머물렀다. 하지만 저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책에서 중국 상인들의 조선 내 활동을 구체적인 에피소드와 함께 다양하게 조명하고 있다. 저자는 1920년대 당시에 조선에서 동순태호(同順泰號)를 운영하며 개인으로서는 가장 많은 세금을 낸 것으로 알려진 담걸생(譚傑生) 이야기, 중국 상인들이 조선 상품을 구매하러 조선 내지로 들어갔다가 도적 떼에게 습격당한 이야기, 중국 상인들이 이범진(李範晉) 형제로부터 토지를 구매했다가 벌어지는 소동 등 다양한 이야기를 소개한다. 저자에 따르면, 오늘날과 달리 19세기 말에는 일본 상인들이 오히려 모조품이나 조잡한 제품을 판매한 것으로 악명이 자자했고, 중국 상인들은 조선 민중에게 큰 호응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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