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원인 대부분이 인재·시설 노후화
화학물질은 양면성이 있다. 잘 이용하면 이익이 되지만 잘못하면 큰 피해를 입힐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DDT, PCBs, 다이옥신은 모두 초기에 유용했으나 큰 부작용을 초래한 화학물질이다. 특히 1960~1970년대 공업화로 전환되면서 화학물질이 우리나라 산업에 상당 부분 기여했으나, 그와 함께 화학사고도 상당히 증가했다. 최근 잦은 사고 발생으로 화학사고가 조명되고 있지만, 화학사고는 꾸준히 계속돼 왔다. 국내 화학사고 발생현황을 보면 매년 20여 건의 사고가 지속적으로 발생했다.
화학물질 누출사고 원인을 살펴보면 정전기·스파크를 제외하고 화학물질 취급 부주의, 기계의 오조작, 작업 절차 미준수, 안전 의식 미흡, 운전자 부주의 등 ‘인재’에 의한 사고가 대부분이다. 또한 화학물질 취급 시설의 노후화, 화학물질 유통량 증가 등으로 인해 화학사고 발생의 위험이 상존하고 있다. 국내 대부분의 화학산업 단지는 조성된 지 20년 이상 경과돼 노후화됨에 따라 그 관리가 쉽지 않은 실정이다.
정연만 환경부 차관은 “화학물질 시설을 전면적으로 손봐야 하는 시점이 지났다. 최근에 사고들은 시설 재투자 등 체계적인 관리가 이뤄지지 못함에 따라 원인이 누적되고 임계점에 도달하여 발생한 것”이라며 화학물질의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는 사전 예방적 화학물질 관리가 필요한 시점임을 밝혔다.
안일한 대응체제와 기업의 미숙한 대처
국내 화학사고에 대한 위기대응 능력의 부족함이 여실히 드러나면서 이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사고 발생 후 대응 체계상의 문제점을 보면 늑장대응과 비과학적인 판단, 늦은 주민대피, 이른 상황 해제가 가장 문제시 됐으며, 그밖에 초기대응 부적절, 피해지역 판정의 왜곡, 비전문성, 해당 피해지역주민과의 소통의 문제도 있었다. 작년 구미 불산 사고를 예로 들면 사고당시, 사고 발생 후 27분이 돼서야 동네 이장이 주민을 자체 대피시켰고, 1시간이 넘어서야 환경부에 접수돼 2시간 10분후 공식적인 주민대피가 이뤄졌다. 또한 가스누출 차단 시간은 사고 후 8시간이나 걸렸으며, 5명이 사망하고 18명 입원, 1만 3,000명이 검진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신속 정확한 대기 농도측정이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공기중 불산 농도는 측정되지 않았다.
이와 비교해 1987년 미국 텍사스주에서 발생한 화학사고를 보면 가스누출 차단 시간은 사고 후 8분이 걸렸으며, 주민대피는 20분 만에 800m이내 소개돼 결과적으로 사망자는 없었고, 95명이 입원, 939명은 병원치료를 받았다. 또한 공기 중 불산농도도 1시간 후 신속히 측정됐다. 이는 늑장대응과 비과학적인 판단, 전문성이 부재했던 국내 환경사고와 단적으로 비교되는 예다. 단국대 김민영 교수는 “국내와 해외 사고를 비교하면 우리나라의 유해화학물질에 대한 규정이 미흡하고, 사고당시 화학물질에 대한 수습관리 대책, 재난구조 시스템이 미흡함을 시사한다”며 국내 화학사고의 안일한 대응체제를 지적했다.
한편 기업 규제완화로 인한 사고 발생시 기업의 미숙한 대응력과 이미지 때문에 신고가 즉시 이뤄지지 않고 은폐되는 것도 문제되고 있다. 사고 전문 인력이 부족하고 환경사고가 잦은 업종의 전담 부분이나 녹색경영과 같은 투자양상이 사라짐에 따라 환경사고에 대한 관리가 소홀한 상황이며, 작업자들의 화학물질 관리 부주의도 심각한 수준이다.
정연만 차관은 “전문성을 갖추는 체계가 갖춰지지 않으면 사고는 계속 발생할 것”이라며 “사고 책임자에게 책임을 무는 법체계, 즉시 신고 되지 않을 경우 법적인 강화도 필요하다. 또 국가에서 보험, 기금을 만들어 사고시 체계적인 법체계가 전개될 수 있도록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아울러 기업 내 자발적인 안전체계가 필요하다. 정연만 차관은 “이제 다른 기업들도 환경사고의 안정성에 대해 체크하고 관리할 시점이 왔다. 앞으로는 잠시 환경문제가 안정화됐다고 해서 그만둬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부처 간 역할 수행 명확화 등 전면적인 개선 필요
그렇다면 국내 화학사고의 위기 대응의 문제점과 그 개선대책은 무엇이 있을까. 최근 화학사고가 발생할 경우 ‘부처 간 다툼’이 많이 노출되고 있다. 이는 4,500가지의 화학물질의 쓰임새에 따라 여러 부처에 관리하는 법률이 산재되어 있고, 소관부처가 중첩될 경우 주관부처가 모호해 그 관리가 잘 안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화학사고 대응 수습 주관부처의 정비로 해당물질을 관리하는 부처가 사고의 대응 수습 주관부처의 역할 수행하거나 부처 간 소관이 중첩되어 불분명한 경우 환경부 등으로 ‘일원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 사고대응·수습체계의 보완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사고현장 대응 책임성을 제고하고 임무를 명확히 하고, 상황보고·전파가 필요한 대상기관을 매뉴얼에 명시하여 보고누락을 방지하는 등 위기대응 매뉴얼 미비점을 보완해야 한다.
셋째, 위험물질 관련정보 연계 강화가 필요하다. 그동안 화학사고 대비 프로그램인 ‘화학사고대응정보시스템(CARIS)’의 현장 활용이 부족함에 보급형(초동대처용), 고급형(상황관리용)으로 ‘이원화’ 관리하여 활용성을 제고, 각 부처별 시스템을 연계·공유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갈 필요가 있다.
넷째, 화학사고 대응 전문성 제고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화학사고 대응 전문 교육과정 신설 및 설전훈련 강화를 통한 전문성 강화와 사고대응 장비 확충 및 최신화가 필요하다.
다섯째, 사업장 자체 안전관리 역량을 강화하고, 주민과의 의사소통 프로그램 개발, 보급이 필요하다. 그밖에 GPS와 GHS를 이용한 위험물질 운송관리강화 등 화학제품 안전관리를 강화해야 한다.
실질적 운용될 수 있는 법체계 갖춰야 할 것
한편 정연만 환경부 차관은 포럼에서 환경부가 관련 법률 입법 추진 현황으로 ‘화학사고 대응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과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 ‘화학제품 안전관리법’을 제정과, 유독물 관리의 국가사무화, 전문기관에 의한 취급시설 안전진단 실시, 유독물표시제 보완, 과태료 최고액 상향 등 ‘유해화학물질 관리법’을 개정을 국회에 제출해 추진 중이며, 올해 안에 법이 통과하도록 노력할 것임을 밝혔다.
정 차관은 “화학사고는 국민의 건강과 재산으로 직접 연결된다는 점에서 국가가 관리해야 한다. 계속 발생하는 화학사고에 대해 실질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법체계가 갖춰져야 할 것”이라며 “앞으로 큰 틀에서는 제도를 갖추고 문제점이 있을 때 보강하는 방식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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