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훈 한국부식방식연구센터장 “부식방지 기술보다 중요한 것은 체계적인 관리”
주유소 지하탱크·배관부터 해양구조물까지…‘사후 수리’에서 ‘예측·감시’로 전환해야
금속 구조물과 시설물의 노후화가 빨라지면서 ‘부식’이 단순한 시설물 안전 문제를 넘어 환경오염과 자원·에너지 손실, 탄소배출 문제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특히 주유소 지하저장탱크와 배관처럼 땅속에 장기간 매설되는 시설은 부식이 진행되더라도 외부에서 확인하기 어려워 유류 누출과 토양·지하수 오염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국립한국해양대학교 이명훈 한국부식방식연구센터장(석좌교수)은 국내 부식방지 기술 자체는 상당한 수준에 있지만, 시설의 설계부터 폐기까지 전 생애주기를 아우르는 통합적인 부식관리체계(CMS)는 아직 충분히 정착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그가 제시하는 방향은 명확하다. 문제가 발생한 뒤 검사하고 수리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부식이 사고로 발전하기 전에 예측하고 감시하는 관리체계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 ▲ 이명훈 한국부식방식연구센터 연구소장 |
1968년 시작된 국내 부식방식 연구의 기반
한국부식방식연구센터는 1968년 고(故) 전대희 한국해양대학교 방식연구실을 근간으로 관련 연구가 축적되면서 발전해 왔다. 이후 1996년 9월 부식방식공학연구소로 창립됐으며, 현재는 한국해양대학교를 기반으로 부식방식 분야의 연구·시험·진단·설계·교육 등을 수행하고 있다.
센터는 금속·도금·코팅 및 도장 등 표면처리 소재의 개발 및 부식 메커니즘을 규명하고, 방식기술과 표면코팅 설계, 해양폭로 및 가속부식시험, 부식생성물 분석 등을 수행한다. 또한 각종 환경 중 시설물이나 장치 등에 대한 부식방식 진단 및 설계는 물론 AI와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한 부식·방식 모니터링 기술 개발도 주요 연구 분야 중 하나이다.
현재 조직은 센터의 대표인 이명훈 연구소장을 중심으로 자문위원회와 운영위원회, 사업기획부·연구교육부·국제협력부·산학협력부 등으로 구성돼 있다. 주요 연구 분야에는 해양환경과 시설구조물의 방식 설계·진단·평가, 부식방지 표면소재 개발, 기계·제품의 부식 신뢰성 평가, 전기화학·에너지소재 응용연구 등이 포함된다.
교수 및 전임연구원으로 이루어진 센터내 구성원들은 기본적으로 대학내 관련 대학원생 및 학부생의 연구-교육 지도는 물론 그동안 국가 및 공공 기관과 관련 기업 종사자를 대상으로 부식방식 교육을 실시해 왔으며, 전(재) 한국건설방식기술협회와 공동으로 방식관리사 약 1,500명 배출에도 기여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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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해양대학교 내 자리한 한국부식연구센터 전경 |
“국내 기술 수준 높지만…부식 ‘관리’는 아직 분절적”
Q. 한국부식방식연구센터의 역할과 특징은 무엇인가.
“우리나라 산업은 조선·해양, 전기전자, 철강, 토목·건축, 화공 등 다양한 분야에서 발전해왔고, 그만큼 강도 높은 철강 중심의 금속재료의 사용도 증가했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금속은 환경 중 반응하기 용이한 원자의 구조적 특성으로 인해 부식될 수밖에 없는 재료입니다.
부식은 시설물의 수명을 단축시키고 경제적 손실을 발생시키는 것은 물론 안전사고와 환경오염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특히 지하에 매설되는 주유탱크나 배관은 보수와 관리가 쉽지 않기 때문에 부식에 따른 파급효과가 더욱 클 수 있습니다.
센터는 지난 50여 년 동안 항만·해양, 전력·토목, 철강, 플랜트, 기계제품 등의 부식방식 설계와 시험, 연구개발, 진단·분석, 교육을 수행해왔습니다. 앞으로도 현장에서 실제로 필요한 부식방지 기술을 개발하고 적용하는 실용 연구기관으로써의 역할을 강화-기여하고자 합니다.”
Q. 국내 부식관리 수준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우리나라의 부식 손실은 한국부식방식학회 조사에서 GDP의 약 2.9%로 추정된 바 있습니다. 국내의 방식도장, 음극방식, 비파괴검사, 두께측정, 전기화학적 부식측정, 센서 및 원격모니터링 등 개별 기술은 상당히 발전해 있습니다. 문제는 기술 자체와 관리 수준은 별개라는 것입니다. 대규모 주요 인프라를 제외하면 많은 산업현장에서 부식관리가 시설별·기관별로 분절돼 있고, 문제가 발생한 이후 대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설계부터 시공, 운전, 부식 예측·진단, 검사, 보수, 수명예측, 폐기까지 연결하는 생애주기 관리가 필요합니다. 이제는 ‘부식이 발생하면 검사하고 수리한다’에서 ‘사고로 발전하기 전에 예측하고 감시한다’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주유소 부식, 토양·지하수 오염으로 이어질 수 있어
Q. 특히 주유소 지하탱크와 배관의 부식 문제를 어떻게 보는가.
“국내 주유소 관련 제도는 비교적 잘 갖춰져 있습니다. 토양환경보전법 시행 이후 토양오염도검사와 누출검사가 의무화됐고, 이중벽 탱크와 누설감지시설 기준도 마련됐습니다.
하지만 오래전에 매설된 노후 또는 폐업·휴지 주유소의 철강제 저장탱크와 배관은 여전히 부식에 취약할 수 있습니다.
현재의 누출검사는 기본적으로 ‘누출이 있는가’를 확인하는 방식입니다. 반면 부식이 어느 정도 진행됐고 앞으로 얼마나 위험한지를 예측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따라서 가능한 탱크나 배관에 음극방식 등을 적용-활용한 주기적인 방식전위 측정으로 용이하게 예측하고, 필요시기에 따라 초음파 두께측정 등 비파괴 진단을 병행할 필요가 있습니다. 장기적으로는 전국 주유소의 부식상황을 파악하는 ‘부식도(corrosion map)’ 구축도 체계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Q. 부식방지를 환경오염 예방정책과 연결해야 한다는 의미인가.
“그렇습니다. 환경오염이 발생한 이후 정화하는 것보다 부식 단계에서 누출을 차단하는 것이 비용과 환경 측면에서 효율적일 수 있습니다.
주유소 탱크나 배관의 부식으로 유류가 토양과 지하수로 유출되면 정화 범위가 확대되고 사회적 비용도 커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부식방지를 단순한 시설물 유지관리 기술이 아니라 토양오염 예방기술의 하나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토양환경보전법상의 부식·산화방지시설을 보다 적극적인 예방수단으로 활용하고, 음극방식이나 비파괴 진단기술 적용을 유도하는 제도도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부식방지 탄소중립·자원순환과 연결
Q. 부식방식 기술이 탄소중립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부식으로 시설물의 수명이 짧아지면 결국 새로운 철강과 자재를 생산해야 합니다. 철강 생산과 시설물의 재시공에는 상당한 에너지와 탄소배출이 발생합니다.
따라서 부식방식을 통해 시설물의 수명을 연장하면 신규 자원 투입과 유지보수에 필요한 에너지 사용을 줄일 수 있습니다.
특히 염분과 습기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선박, 항만시설, 해양플랜트 등에서는 예방적 방식관리가 자원절감과 탄소배출 저감, 해양오염 예방이라는 여러 효과로 연결될 수 있습니다.
앞으로는 방식기술의 탄소저감 효과를 전과정평가(LCA) 등을 통해 계량화하고, 총수명주기비용(LCC)을 고려한 방식설계를 확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좋은 기술 있어도 현장 적용되지 않으면 의미 없어
Q. 국내 부식방지 기술의 경쟁력과 현장 적용의 문제를 어떻게 보는가.
“국내 부식기술과 재료·표면처리 분야의 기초 연구 수준은 국제적으로도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고 봅니다. 오히려 문제는 기술의 적용과 확산입니다.
설계나 발주 단계에서 초기 비용만 비교하면 장기적으로 비용을 줄일 수 있는 방식기술이 채택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공공 발주에서 총수명주기비용을 고려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또 영세 주유소나 중소 시설관리자에게는 이중벽탱크 교체나 음극방식 설치 비용이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정책자금이나 세제지원 등과 단계적인 의무화 방안을 함께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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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명훈 한국부식방식연구센터장 |
국가공인 부식 전문인력·교육체계 필요
Q. 전문인력 부족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부식은 재료공학뿐 아니라 전기화학, 화학, 토목, 환경공학 등이 연결된 융합 분야입니다. 하지만 국내 일반 대학에서 부식공학을 독립적인 전공이나 과목으로 운영하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다.
국가공인 ‘부식방식 기사·진단사’와 같은 전문 자격체계를 마련하고, 부식 진단이나 음극보호 설계, 코팅검사 등의 전문성을 제도적으로 인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주유소 안전관리자나 위험물안전관리자, 토양환경 관련 종사자 등을 대상으로 매설구조물의 부식과 방식 및 점검-유지관리 등에 대한 실무교육이 중요합니다. 대학과 연구기관, 산업계가 함께 실제 매설탱크와 배관, 부식측정 장비 등을 활용하는 실증교육 체계를 구축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국가 차원의 부식관리 마스터플랜 마련해야”
Q. 정부에 제안하고 싶은 정책과 센터의 향후 역할은.
“개별 시설 단위의 사후관리만으로는 노후 인프라 증가 속도를 따라가기 어렵습니다.
우선 산업시설과 사회기반시설, 해양구조물 등을 아우르는 국가 부식관리 마스터플랜이 필요합니다. 환경부·산업부·국토부·해수부·소방청 등 관련 부처가 각자 관리하는 체계를 넘어 국가 차원의 관리전략을 마련할 필요가 있습니다.
전국 주유소와 저장탱크, 배관, 교량 등의 설치연도와 재질, 방식 여부 등을 통합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위험도가 높은 시설을 선제적으로 관리하는 체계도 필요합니다.
부식방지를 탄소중립과 순환경제의 정책수단으로 인정하고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 소장은 한국부식방식연구센터가 앞으로 환경·안전·산업 분야에서 현장 실증과 진단, 교육을 연결하는 역할을 수행하겠다고 밝혔다.
“센터는 축적해온 부식방지 기술을 산업현장에 접목하고, 단기적으로는 현장의 애로사항을 해결하면서 장기적으로는 부식방지 모니터링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구축하고자 합니다.
환경 분야에서는 주유소와 매설시설의 부식·누출·오염 연계 평가기술을, 안전 분야에서는 초음파·전기화학적 노후도 모니터링과 잔존수명 평가기술을 개발할 수 있습니다. 산업 분야에서는 AI 기반 부식 예측기술과 표준 진단·유지관리 매뉴얼 개발도 추진할 수 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전문인력 교육과 인증, 기술 실증과 데이터 관리까지 연결하는 국가 부식관리의 허브 역할을 하는 것이 연구센터의 방향입니다.”
한국부식방식연구센터가 제시하는 부식관리의 핵심은 결국 ‘수리’가 아니라 ‘예방’이다. 부식으로 인한 시설물 손상을 줄이는 것은 시설의 안전성을 높이는 동시에 토양·지하수와 해양오염을 예방하고, 새로운 자원과 에너지 투입을 줄이는 문제이기도 하다.
노후 산업시설과 사회기반시설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부식을 개별 시설의 유지관리 영역에만 머물게 할 것이 아니라 환경·안전·자원·에너지 정책을 연결하는 국가적 관리 대상으로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 센터의 제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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