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디어= 황원희 기자] 전기차와 에너지저장장치 보급 확대로 리튬이온배터리(LIB) 수요가 급증하는 가운데 생산 공정의 탈탄소화만으로는 배터리 공급망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 증가를 충분히 억제하기 어렵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배터리 크기를 줄이고 수명을 늘리며 공유 모빌리티를 확대하는 등 수요 측면 전략을 함께 적용해야 2050년까지 관련 배출량을 절반가량 줄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멜버른대학교 웬 리 부교수가 이끄는 국제 공동연구팀은 전기차와 밴, 버스, 트럭, 배터리에너지저장시스템(BESS)에 사용되는 리튬이온배터리의 수요와 공급망 배출을 2024년부터 2050년까지 모델링했다. 연구에는 중국과학원과 영국 셰필드대학교 연구진도 참여했으며, 결과는 학술지 원 어스(One Earth)에 게재됐다.
리튬이온배터리는 전기차와 재생에너지 확대에 필수적인 기술이지만, 원료 채굴과 정제, 소재·부품 생산, 셀 제조, 폐배터리 처리 과정에서 적지 않은 온실가스가 발생한다. 그동안 배터리 탈탄소화 연구는 주로 이 같은 공급망의 배출을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춰왔다.
이번 연구는 여기에 더해 ‘얼마나 많은 배터리가 실제로 필요한가’라는 수요 측면을 함께 분석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연구진의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전 세계 리튬이온배터리 수요는 2050년까지 현재보다 약 20배 늘어날 수 있다. 이에 따라 별도의 추가 감축 조치가 없을 경우 배터리 공급망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도 약 10배 증가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특히 2050년까지 글로벌 배터리 공급망에서 누적 약 190억~230억 톤의 이산화탄소환산량(CO₂eq)이 발생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공급 측면에서는 재생에너지 기반 전력 사용 확대, 저탄소 공정 도입, 배터리 화학 조성 변화, 폐배터리에서 원료를 회수하는 재활용 확대 등이 주요 감축 수단으로 분석됐다.
하지만 이 같은 생산 측면의 개선만으로는 배터리 수요 급증에 따른 전체 배출 증가를 상쇄하기에 충분하지 않았다.
리 부교수는 “청정 생산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수요 감소 역시 매우 큰 추가 감축 기회”라며 “배터리 크기 축소와 수명 연장, 공유 이동성 확대 등을 포함한 수요 측면 전략을 적용하면 2050년 예상 배출량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배터리 수요를 결정하는 요소로 배터리의 수와 크기, 사용수명, 교체 빈도 등을 함께 고려했다. 예를 들어 전기차의 주행거리를 필요 이상으로 늘리기 위해 대용량 배터리를 탑재할 경우 차량 한 대에 필요한 광물과 소재 사용량이 증가한다. 반대로 실제 사용 목적에 맞는 적정 크기의 배터리를 채택하면 동일한 이동서비스를 제공하면서도 필요한 배터리 용량 자체를 줄일 수 있다.
배터리 수명을 연장하는 것도 중요하다. 동일한 차량이나 에너지저장장치에서 배터리를 더 오래 사용할 수 있다면 신규 배터리 생산과 원료 채굴·정제에 필요한 자원과 에너지 사용량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전기차 공유나 차량 이용률을 높이는 사업모델 역시 전체 차량 수와 배터리 수요를 줄이는 수단으로 분석됐다.
연구진은 공급과 수요 측면의 강력한 감축 전략을 동시에 적용할 경우 2050년까지 배터리 공급망의 누적 배출량을 약 90억~120억 톤의 CO₂eq 수준으로 낮출 수 있다고 추산했다. 아무런 추가 조치를 취하지 않았을 때 예상되는 190억~230억 톤과 비교하면 약 절반 수준이다.
감축 기여도를 나눠 보면 생산공정 개선과 청정전력, 재활용 등 공급 측면 전략이 약 35억~47억 톤의 CO₂eq를 줄이고, 배터리 크기와 수명, 이용방식 등을 바꾸는 수요 측면 전략이 약 60억~70억 톤을 줄이는 것으로 분석됐다.
연구진은 이러한 감축 규모가 유럽연합(EU)과 같은 주요 경제권의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에 견줄 만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논문의 제1저자인 멜버른대학교 하이웨이 저우 연구원은 향후 연구에서는 지역별 차이를 보다 세밀하게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배터리 원료의 채굴·정제 방식과 전력원의 탄소집약도, 환경 부담 등이 국가와 지역마다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또 이러한 수요·공급 측면의 접근법을 풍력터빈과 태양광 패널 등 다른 청정에너지 공급망에도 적용할 수 있는지 검토할 계획이다.
이번 연구는 배터리 정책의 초점도 달라져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현재 많은 정책은 배터리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을 줄이고 재활용률을 높이는 데 집중돼 있다. 그러나 연구진은 앞으로는 배터리의 수명 연장과 적정 용량 설계, 이용률 향상, 세컨드라이프 활용 등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번 연구는 전기차와 에너지저장장치 확대가 곧바로 저탄소 전환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배터리 한 개를 더 친환경적으로 생산하는 것뿐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 얼마나 많은 배터리를 필요로 하는지까지 관리해야 공급망 배출을 실질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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