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락과 배달음식으로 식사를 해결하는 사람들. 오후 근무 땐 남들 퇴근시간인 오후 6시에 출근해서 남들 출근시간인 오전 9시에 퇴근하는 사람들. 찢어지는 열차 소리에 귀를 막고 취객, 노숙자와의 숨바꼭질에 쉴 틈이 없는 사람들…. 1일 평균 700여만 명이 넘는 승객이 이용하는 국민의 발 지하철. 그 지하철역에서 근무하는 역무원의 24시간은 고달프고 바람 잘 날이 없다. 1일 평균 13만 명이나 이용하는 3-6호선의 한 환승역에 근무하는 직원의 수는 고작 6명으로 과중한 업무를 피할 수 없다. 집에선 가장으로, 직장에선 노조원으로 빠듯한 업무 중에도 고객의 안전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일하고 있으며, 승객들의 컴플레인 해결사 역도 톡톡히 하고 있다. 우리 생활 가까이에 있으면서 베일에 가려있는 지하철 역무원들의 24시를 동행해봤다.
13만명 이용 환승역에 직원은 고작 6명에 불과
지하철 노조가 파업이라도 하면, 언제부터인가 정부나 언론은 입을 맞춘 듯이 시민을 볼모로 한 불법이라며 몰아붙였다. 그러면 노조에서는 각 지하철역이나 지하철 내에 그들의 현실을 모르는 처사라며 홍보지로 도배를 하다시피 하며 자기들의 주장을 폈다.
그러면 시민들은 불편을 겪기 일쑤였고, 빨간 띠를 두른 노조원들은 준법투쟁이라며 맞서왔다. 강성노조로 인식되어온 그들은 왜 연례행사처럼 해마다 파업을 벌일까?혹자는 역무원들의 보수나 근무환경이 적거나 열악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면 과연 그들은 국민이나 국가를 생각하지 않는 그저 욕심쟁이일 뿐인가?
3-6호선의 환승역인 K역의 역무원들은 오전 조와 오후 조로 나뉘어져 3개 조의 근무형태로 돌아간다. 3개 조라고 해 봤자 총원이 18명이니, 한 조에 6명씩 교대근무를 하고 있는 셈이다. 거기에 역사무실 내 상주하며 모니터링을 하는 직원을 제외하면, 실직절인 근무 인원은 5명이다.
그런데 하루 평균 이 역의 이용객이 13만 명이라고 하니 직원은 태부족이요, 과중한 업무에 시달릴 수 밖에 없다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기자와 잠깐 이야기를 나누는 와중에도 비상벨이 울렸다. 비상벨을 호출한 한 노인은 실버 카드를 꺼내기가 귀찮다며 비상게이트를 빨리 열어달라고 말했다.
"어르신 실버카드 찍고 들어오시면 됩니다"라는 직원의 말에 노인은 또다시 문이나 빨리 열어달라며 고함을 쳤다. 역무원은 할 수 없이 비상게이트를 열어주며 "이런 식의 호출은 비일비재이고, 일상이 되었다"며 씁쓸하게 웃어보였다. "평상시에는 비상게이트 호출 때문에 설명을 하느라 목이 쉴 정도"라고 역무원은 말했다.
노인의 호출에 이어 역사 업무가 진행됐다. 역사 내 자동티켓판매기의 현금을 회수해 일일이 수작업으로 돈을 분류하고 계수 작업 후 서류로 작성해 보고하는 업무였다. 일을 끝내고 나니까 점심시간인 12시가 됐다. 하지만 역무원들은 직원의 절대부족으로 인해 바깥으로 나가서 식사를 할 수 없다. 언제 비상상황이 닥쳐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한 달 평균 5~10명의 취객 때문에 경찰 출동
역무원들의 점심은 사무실 상주를 위한 주변 식당에서 주문한 배달음식이었다. "바빠서 점심을 못 먹을 때도 있어요"라는 말이 끝나자마자 역사 게이트에서 취객이 난동을 부린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게이트 입구의 취객은 출입문을 발로 차며 문을 열어달라고 욕설과 함께 소리를 질러댔다.
영하 10도 가까이 떨어지는 한겨울인데 외투도 입지 않고 난동과 함께 횡설수설하고 있는 50대 중반 취객과 역무원의 실랑이는 20여 분간이나 계속됐다. 역무원이 취객을 겨우 진정시킨 뒤 이유를 물었다. "밥과 술을 먹고 돈을 못 내서 외투를 식당에 맡겼다. 집에 갈 차비도 없다"라고 말한다.
그러자 역무원은 바쁜 가운데도 취객을 데리고 식당에 갔다. "아무리 식사를 하고 돈을 내지 못해도 그렇지, 이렇게 추운데 사람 옷을 뺏으면 어떡합니까"라며 취객의 점심값과 소주값으로 1만 3000원을 대신 지불하고 옷을 입혀 집으로 돌려보냈다.
입사한 지 20여 년인 이 직원은 "우리한테는 사법권이 없다. 인원이 부족해서 조치할 시간도 안 되고 권한도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경찰을 부르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고 말했다. 한 달 평균 이런 취객이 5~10명 정도 된다고 한다.
이후 비장애인들의 비상게이트 호출도 몇 번이나 이어졌다. 실버카드를 꺼내기 귀찮다는 노인부터 환승역의 행선지를 잘못 갈아탔다는 사람, 졸다가 역을 지나쳤다는 사람까지 다양했다. 역무원은 "요즘 저런 사람 많아요. 어떤 때는 화장실에 휴지 떨어졌다고 갔다 달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이 직원은 예전에 어이없었던 에피소드 한 가지를 소개해 줬다. "1986년 지하철에 삼각회전 게이트가 처음 생겼을 때 일입니다. 술 취한 노인의 주머니에 삼각회전대가 걸려 넘어져 피 흘리며 쓰러져 있는 걸 병원에 모시고 가 치료해 줬습니다. 나중에 노인 가족들이 나타나 내가 노인을 폭행했다고 고소를 하지 뭡니까?"
역무원들은 지하철의 소음으로 난청환자가 있다고 한다. 이 직원도 오랜 역무원 생활로 인해 청각이 악화돼 TV를 볼 때면 볼륨을 올린다. "스크린도어가 없는 시절에는 소음도 심했고 안내근무도 있었어요. 일종의 직업병이라고 할 수 있죠"라고 말했다.
승객 안전이 우리가 하는 가장 중요한 업무
지하철 역내에선 각종 안전사고가 도사리고 있다. 또한 조그마한 부주의가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 항상 긴장하고, 주기적인 화재 및 대테러 비상훈련을 실시한다. 실제로 2개월 전 이 역에서 화재가 발생했을 때 직접 소화기를 뿌려 화재를 초기에 진압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올해 잦은 열차사고에도 역무원들의 빠른 초동 대처로 부상자가 나오지 않은 경우가 있었다며 "승객 안전이 늘 우리가 하는 가장 중요한 업무"라고 역무원은 설명했다.
오후 6시가 되자 오전 9시부터 진행된 오전 조의 역무원들이 퇴근했다. 오전 조와 오후 조는 2~3주일에 한 번씩 돌아가면서 진행된다고 한다.
저녁 6시부터 시작된 오후 조의 일과는 다음날 오전 9시가 돼서 끝난다. 밤 12시가 넘어 막차가 끝나자 무인 티켓판매기에 있는 수입금을 수작업으로 분류해 계산하고 시설물을 체크하다보니 어느덧 새벽 2시가 됐다. 역무원들은 구내 순찰과 함께 나머지 잔업을 처리했다.
야간에도 쉴 틈이 없는 업무로 밤을 거의 새운 역무원에게 근무 중 보람을 느낄 때가 언제냐고 물었다. "요즘은 스크린도어가 설치돼 자살사고가 줄었지만, 이전엔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을 많이 구했어요. 선로 밑까지 뛰어 내려가 끌고 와서 살린 적도 있어요. 나중에 고맙다고 찾아온 사람도 있었습니다"라며 "우리의 일인데도 시각장애인들 안내해주고 고맙다는 인사 받고, 길 잃은 노인들이나 취객들 안전하게 집 찾아줄 때, 그리고 노트북, 현금 등을 지하철에 놓고 내린 승객들한테 다시 찾아줘 무척 고마워할 때 보람을 느끼죠."
하는 일도 별로 없는 것 같은데 파업을 하는 사람들, 남부럽지 않은 보수를 받는데도 욕심을 내는 사람들로 알고 있던 지하철 승무원이나 역무원들의 현실을 알고보니 그리 여유롭지 못했다. 더구나 내년엔 서울지하철공사와 도시철도공사가 통합할 예정이어서 뒤숭숭한 분위기도 엿보인다. 통합 후에도 인위적 인원감축은 없을 것이라고 합의를 한 상태지만, 걱정은 피할 수 없는가 보다.
마지막으로 이 역무원은 "4조 2교대 근무가 내년 2월부터 시행 예정이다. 하지만 직원 충원이 우선인데 거기에 맞는 인력이 없다"며 "직원들의 복리향상을 위해서는 인원 보충이 절실하다"고 말끝을 흐렸다.
[환경미디어 김진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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