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디어= 황원희 기자]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협의체(IPCC)가 차기 핵심 기후과학 보고서 발간 일정을 둘러싼 회원국 간 이견을 끝내지 못하면서 협상이 중단됐다. 짐 스키아 IPCC 의장은 기후위기에 관한 최신 과학적 근거가 국제사회의 주요 의사결정에 제때 활용될 수 있도록 가능한 한 빨리 총회를 다시 열겠다고 밝혔다.
IPCC는 지난주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에서 열린 제65차 총회에서 제7차 평가보고서(AR7)의 세 개 실무그룹 보고서 발간 일정과 관련 예산을 논의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회의는 예정된 종료시간을 넘겨 이어졌고, 일부 소규모·기후취약국 대표단이 먼저 떠난 뒤 결국 중단됐다.
IPCC는 1988년 설립된 유엔 산하 기후과학 평가기구로, 전 세계 수천 명의 과학자가 자발적으로 참여해 기후변화의 원인과 영향, 적응 및 감축 방안을 종합 평가한다. 평가보고서는 각국의 기후정책과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협상의 핵심 과학적 근거로 활용된다. IPCC의 종합평가는 통상 5~7년 주기로 작성된다.
현재 진행 중인 제7차 평가주기에는 제1실무그룹의 ‘기후변화 과학적 근거’, 제2실무그룹의 ‘영향·적응·취약성’, 제3실무그룹의 기후변화 완화 보고서가 포함된다. 이들 세 보고서가 완성된 뒤 이를 종합한 AR7 종합보고서는 2029년 말까지 발표될 예정이다.
쟁점은 세 실무그룹 보고서의 발간 시점이다. 다수 국가는 세 보고서를 2028년까지 완료해 그해 열릴 유엔 기후총회와 ‘제2차 글로벌 스톡테이크(Global Stocktake)’에 최신 과학적 근거를 제공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글로벌 스톡테이크는 파리협정 이행 상황을 5년마다 평가하는 절차로, 각국의 온실가스 감축과 적응 노력이 장기목표에 부합하는지를 점검하는 핵심 과정이다. 2028년에는 두 번째 글로벌 스톡테이크가 마무리될 예정이다.
반면 중국과 인도,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 케냐 등 일부 국가는 일정 연장을 주장해 왔다. 이들은 개발도상국 연구자와 정부가 보고서 작성·검토 과정에 충분히 참여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며, 촘촘하게 이어지는 검토 일정이 자원이 부족한 국가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일부 실무그룹 보고서를 2029년까지 늦추자는 입장이다.
이 갈등은 이번 아디스아바바 회의에서 처음 불거진 것이 아니다. IPCC 회원국들은 중국 항저우와 페루 리마, 튀르키예 이스탄불, 태국 방콕 등 앞선 회의에서도 AR7 일정에 합의하지 못했다. IPCC 공식 문서에 따르면 회원국들은 이미 2025년 항저우 총회에서 서로 다른 일정안을 놓고 충돌했고, 이후 리마 총회에서도 장기 작업계획에 대한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지난 3월 방콕에서 열린 제64차 총회에서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당시 스키아 의장은 회의 결과를 두고 “실망스럽고 답답했다”고 평가했으며, 회원국 사이에 신뢰가 약해진 점도 일정 합의를 어렵게 만드는 요소라고 지적했다.
2028년 발간을 지지하는 국가들과 일부 과학자들은 보고서가 글로벌 스톡테이크 이후에 나오면 정책적 활용도가 크게 떨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번 AR7 작성에 참여하고 있는 과학자 117명도 공개서한을 통해 보고서 작업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들은 기후위기의 시급성에 대응하려면 국제사회의 결정이 “가장 이용 가능한 과학적 근거”에 기초해야 한다며, 정책결정을 뒷받침해야 할 평가가 그 결정 이후에 나온다면 본래 목적을 충분히 달성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들은 2028년 제2차 글로벌 스톡테이크를 중요한 정책 결정 시점으로 지목했다. 각국이 향후 감축정책과 국제협력 방향을 결정할 때 최신 기후과학 평가 없이 논의를 진행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반면 일정 연장을 요구하는 국가들은 단순히 보고서를 늦추려는 것이 아니라 IPCC 평가과정의 대표성과 형평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개발도상국은 보고서 초안 검토와 정부 의견수렴에 활용할 수 있는 전문인력과 행정자원이 상대적으로 제한돼 있어 짧은 일정이 실질적인 참여를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논리다.
실제로 IPCC 역시 최근 평가주기에서 지역·성별 대표성과 개발도상국 연구자 참여 확대를 주요 과제로 다루고 있다. 제7차 평가보고서 제1실무그룹 저자진의 경우 62개국에서 193명의 총괄주저자·주저자·검토편집자가 참여하며, 이 가운데 46%가 개발도상국 및 전환경제국 출신이다.
따라서 이번 갈등은 단순한 보고서 지연 문제가 아니라 정책 활용의 시급성과 과학평가 과정의 포용성 사이에서 어떤 균형을 잡을 것인가라는 문제로 볼 수 있다.
다만 일정 지연이 장기화될 경우 2028년 국제 기후정책 논의와 IPCC 최신 평가 사이에 공백이 발생할 가능성은 커진다. IPCC 보고서는 직접 정책을 처방하지는 않지만 각국 정부가 기후정책을 설계하고 국제협상에서 감축 수준을 판단할 때 공통된 과학적 기준 역할을 한다.
결국 IPCC가 풀어야 할 과제는 두 가지인 셈이다. 최신 기후과학을 2028년 글로벌 스톡테이크에 맞춰 제공해야 한다는 시급성과, 개발도상국과 기후취약국이 평가과정에 충분히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는 대표성 요구를 동시에 충족해야 한다.
특히 이번 논쟁은 기후과학 보고서가 단순한 연구성과물이 아니라 국제 기후정책의 시간표와 직접 연결돼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2028년 글로벌 스톡테이크 이전에 주요 평가가 나오느냐 이후에 나오느냐에 따라 최신 과학이 각국의 다음 정책 결정에 미치는 영향도 달라질 수 있어 추이가 주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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