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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원평야 <봄> |
평화와 생태가 공존하는 곳.
남과 북이 DMZ를 사이에 두고,
긴장 속에서 60년간 전쟁의 상흔을 간직한 채 삶을 지속하는 곳 강원도 철원.
우리나라 곡창지대인 철원평야가 사라지고 있다는 제보를 받고 달려가보지 않을 수 없었다.
서울에서 1시간 30여 분을 달려 도착한 곳은 경기도 최북단에 위치한 포천의 관인면사무소.
그곳에서 이철우 포천·연천 지역위원회 위원장을 만나 철원평야 답방에 나섰다.
| ▲ 철새들의 군무 |
“와~우, 장관이군요!”
철새의 비행이 하늘을 수놓았다. 도시에선 흔히 볼 수 없는 광경에 저절로 탄성이 나왔다. 매년 이맘때면 철새가 도래하는 곳이기도 해서 자주 목격된다는 새들의 군무를 넋 놓고 바라봤다. 때마침 우리 일행을 마중하는 듯한 반가움에 한동안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다가 좀처럼 만나기 힘들다는 재두루미 한 쌍도 발견했다.
| ▲ 철원평야의 재두루미 한 쌍 |
이곳은 겨울에도 땅속에서 따뜻한 물이 흘러나와 얼지 않고, 추수를 끝낸 평원의 낙곡으로 먹이가 풍부해 10월부터 시베리아로부터 철새들이 날아든다. 물론 철원 천통리 철새도래지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만큼 철새 보호를 위해 군데군데 세워둔 팻말이 눈에 띄었다.
“후손들에게 새들의 낙원을 물려줍시다.”
팻말에 눈길을 주는 우리 일행을 향해 이철우 위원장은 “철새도래지는 해마다 관광객들로 붐비는 곳이다. 그러나 최근 1~2년 사이 축사가 대거 난립하면서 까마귀가 더 많은 것 같다”며 “후손들에게 새들의 낙원을 물려주자고 외쳤던 지역민들조차 외지인들에게 농토를 내주는 형국이 됐다”며 혀를 끌끌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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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상절리(柱狀節理) |
한탄강 협곡에 숨은 비경(祕境)
철원은 강원도에 딸려 있으면서 서쪽은 경기도 장단과 경계가 맞닿아 있다. 철원에 경원선 철도가 놓인 것은 1914년. 서울과 원산·함흥을 잇는 철도가 생김으로써 이곳에서 생산되는 쌀·콩·명주실을 비롯해 동해안에서 나는 싱싱한 어(魚)자원들을 실어 나를 수 있었다. 그 뒤 1936년에는 경원선이 지나는 철원역에서 금강산의 장안사에 이르는 전기철도가 개통됐다.
강원도 철원을 거쳐 경기도 포천과 연천을 흘러 임진강과 만나는 한탄강과 마주했다. 약 27만 년 전 강원도 평강군 오리산에서 수차례 화산이 폭발하여 분출된 용암이 차가운 물과 바람, 공기에 식으면서 4~8각 기둥 모양으로 굳어졌고, 이 기둥들 틈으로 비와 물이 흐르면서 깎여나가 층을 이룬 현무암 협곡이 눈에 들어왔다.
| ▲ 직탕폭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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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석정 |
차에서 잠시 내려 둘러보기로 했다. 뜨거운 액체 용암이 식어서 굳을 때 부피가 수축하면서 돌기둥을 나란하게 세워 놓은 모양으로 발달했다고 하여 붙여진 주상절리(柱狀節理). 신비한 자연의 날것 그대로의 모습이 심오하기까지 하다.
환경부는 지질학적인 가치가 뛰어나 학술적 연구 차원에서 2015년에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했다. 아울러 2020년께 결정되는 세계지질공원 후보지로도 현재 유네스코 세계보물 지정을 신청해놓은 상태다. 한탄강 주류를 따라 형성된 곳곳에 지질명소가 많아 고고학적·역사적 의미가 클 뿐 아니라 강줄기가 DMZ를 관통해 그 일대 생태도 그대로 보전돼 있다.
“벼논에 악취 감시초소가 웬말?”
그러나 직탕폭포에서 백마고지로 향하는 동안 우리의 시야를 방해하는 건축물들이 즐비하게 펼쳐졌다. 추수를 끝낸 벼논에 사방이 툭 트여 있어야 당연하건만.
파란 판넬지붕의 무미건조한 축사들이 볼썽사납게 군락을 이루고 있다. 그것도 한두 동이 아니다. 마치 한 마을처럼 보였다. 엄청난 부조화요, 이질감이다. 논둑 길 군데군데 세워둔 ‘악취 감시초소’가 말해주듯 축사에서 나오는 오염의 심각성을 짐작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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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강산 가던 철로 |
이 위원장은 “기존의 축산농가는 극히 일부였으나 최근 몇 년 사이에 집중됐다. 오염은 총량제의 문제다. 도시 전체에 영향을 주고 있다. 마을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축사를 지어야 하는 규정이 있으나 대다수 건물이 제대로 폐수시설도 갖추고 있지 않아서 토양오염은 물론이고, 주변 민가까지 악취가 덮쳐 고통을 호소하는 민원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지역민들이 아닌 외부인들이 땅을 매입하고 축사를 지으면서 순식간에 불어난 현상이다. 지자체가 해결할 수 있는 한계를 넘었다”고 우려를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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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원평야 여기저기 들어선 축사들 |
축사가 생겨나면서 여기서 발생하는 악취와 폐수로 인한 환경오염이 가속화 하는 상황이란 얘기였다. 심지어는 오염으로 더 이상 농사를 짓기 어려워진 농가들도 분신처럼 아끼던 농토를 누군가 사주길 바라는 상황으로 내몰렸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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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피안사 |
조금을 더 달리자, 이름처럼 고즈넉한 마을 월하리(月下里) 너머로 백마고지가 눈에 들어왔다. 왼쪽 철책선 쪽으로 돌아보면 한국전쟁 때 폭격을 하도 맞아 삽술봉이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버렸다는 ‘아이스크림고지’도 볼 수 있었다.
| ▲ 백마고지 위령탑 오르는 길 |
남과 북을 잇는 요충지 ‘철원’
우리는 6·25전쟁 때 국군과 중공군이 서로 차지하려 치열한 전투를 벌인 백마고지에 차를 세웠다.
심한 포격으로 산등성이가 허옇게 벗겨져서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백마(白馬)가 쓰러져 누운 듯한 형상이라 붙여진 백마고지.
| ▲ 백마고지 전적비 |
중부 전선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는 ‘철의 삼각지대(철원·김화·평강)’의 하나인 철원평야와 서울을 연결하는 군사적 요충지로서, 당시 김종오(金鐘五) 소장이 지휘하는 국군 제9사단이 방어하고 있던 곳이다.
백마고지 위령탑으로 오르는 길 중턱에는 기념관이 있는데 당시의 전투상황을 짐작해볼 수 있는 유물이 전시돼 있다. 특히 길 양편으로 게양된 태극기 길을 오르자니 숙연함이 더했다.
차를 돌려 내려오면서 6.25 전쟁 때 북한이 노동당 당사로 사용했던 건물과 마주했다. 폭격을 맞아 축대만 남은 흉물스런 모습이 묘한 기분을 전한다.
| ▲ 노동당사 |
얼마쯤 달리자 봉화산이 눈에 들어왔다. 산세는 낮으나 사방팔방을 볼 수 있어 조선시대에 이곳에서 불을 피워 올려 소식을 알렸다는 곳. 봉화산에 오르면 철원평원을 훤히 내려다볼 수 있는데 최근 10여 년 전부터는 시설농업인 비닐하우스로 뒤덮였고, 최근에는 소, 돼지, 닭을 치는 축사들로 채워졌다.
이 위원장은 “멈춰 있는 경원선 철로를 다시 연결하고, 육로도 이제 트였는데 남과 북을 잇는 요충지인 철원을 이렇게 전략 없이 버려둬선 안 되겠다 싶었다”고 참았던 속내를 밝혔다. 그러면서 “아름다운 금강산으로 오를 수 있는 시작점인 DMZ를, 남과 북을 잇는 요충지 철원을, 관상동맥의 역할을 하는 한탄강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면서 확 트인 철원평야의 전망이 그립다고 했다.
한 발 건너 세워진 전봇대도 거추장스러운 모습 중 하나였다. 축사가 대거 들어서면서 전기를 끌어다 쓸 일이 많아졌다는 얘기다. 야생 조류들이 전선에 감전되는 희생도 잇따르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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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원군축사피해비상대책위원회의가 축사건립 반대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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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축사건립 반대시위를 벌이고 있는 포천지역민들 |
축사 인허가 “법적으로 문제없다?”
현재 포천시는 약 1,180여 개, 철원군은 770여 개의 농가가 들어서 있다. 문제는 가축사육제한조례 개정으로 인해 철원군에 새로운 축사들이 계속 유입되는 것이다.
집단 축사단지가 들어서면서 철원평야에 터를 잡고 살아가고 있는 인근 주민들의 삶에도 변화가 생겼다. 현대화된 축사시설이지만 지나친 축사 밀집으로 인해 악취농도가 높아지면서 민원이 빈발하고 있는 것. 철원군과 포천시는 악취감시초소를 설치해 합동 지도점검, 단속을 벌이고 있지만 큰 효과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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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축사에서 흘러나온 폐수를 포집하고 있다. |
근본적인 악취 해소를 위해 지역 주민들은 공동협의체를 구성해 다양한 활동을 지속해오고 있다.
얼마 전 발족한 ‘철원군축사피해비상대책위(이하 비대위)’는 철원군과 여러 차례 ‘축사 인허가’ 제한에 대해 협의해 왔으나 군은 ‘인허가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다가 최근(12월 23일), 올해 축산악취로 인한 집단민원과 관련해 건축업자가 동송읍 지역 내에 신청한 축사건축허가를 반려처분한 5건의 행정심판 청구건이 최근 강원도행정심판위원회에서 모두 기각결정이 내려졌다. 하지만 이것이 문제해결에 실마리가 돼줄지는 미지수다.
현재 군은 지역 내 축사시설에 대한 전수조사를 벌여 건축법에 의한 불법증축 위반 19건·개발행위 위반 56건을 적발하고, 축산악취 무단배출 신고인 포상제실시와 축산악취저감을 위한 중장기 계획을 수립하겠다는 약속만 받아놓은 상태다.
김동익 비대위 위원장은 “비약적인 관내 축사 난립으로 악취는 물론 건축상으로도 문제가 많다”며 “일부 축사는 철새도래지에 들어서 있고, 현재 가축 입식이 30~40% 정도인데, 100% 입식할 경우 악취로 인한 고통은 상상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곳은 상수원 보호지역과 거리가 얼마 되지도 않고 한탄강 원수 쪽에서 불과 1㎞ 남짓이다”고 설명했다.
또 지난 11월에 발대식을 가진 ‘포천관인면 환경·악취대책위(이하 대책위)’도 인접해 있는 강원도 철원군의 일방적인 축산행정을 질타했다. 철원군은 주거밀집지역 2㎞ 밖 지역에 축사설립이 가능하다는 군 조례에 따라 신규 축사를 인가했으나 동송읍 오지리에 들어선 축사 대다수가 경기 포천시 관인면과는 불과 200m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실정이다. 결국 강원도에서 나오는 악취와 오·폐수로 인한 피해를 고스란히 경기도 주민들이 떠안고 있는 셈이다.
박광복 대책위 사무국장은 “악취저감시설을 해서라도 대책을 세워달라는 요구를 군에 관철시키는 중”이라면서 “우량농토에, 게다가 경지정리까지 끝낸 논에 축사를 짓는 건 처음부터 잘못됐다. 국토계획법에 따라 가축사육제한지역이 아니라도 악취, 소음 등 환경상 피해 등으로 인한 학습권 보호 차원에서 허가취소 사례는 얼마든지 많다. 그런데도 철원이 유독 인허가가 많은 이유를 이해 못 하겠고, 전국적인 사례를 보더라도 허가를 취소해야 마땅하다”며 실제 축사 인허가취소 문건을 눈앞에 펼쳐 보였다. 이어서 그는 “지난여름 장마로 범람한 오·폐수가 강을 오염시켰다. 세계적인 지질공원으로 부상하는 지역이고, 한강 상류가 인접해 있는데 축사단지라니, 국토이용의 가장 큰 오점이 아닐 수 없다”며, “올해가 만세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이고, 3월에 기념탑을 세운다. 이렇게 중요한 역사적인 현장을 똥물 범벅이로 만들 셈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 ▲ 철원평야 <가을 황금들녘> |
지자체 ‘특단의 대책’ 필요
심지어는 군사 보호구역 내에도 축사가 들어서 있는 상황까지 전개되고 있다. 현재까지 포천시와 철원군은 각각의 입장으로 축사건립 반대시위를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지역민들은 이미 지자체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한계수위를 넘었다는 입장이다. 국가가 나서서 한반도의 문화재 보고 차원에서라도 방책을 세워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본래 축사는 농업의 같은 부류로 취급돼 개인소유의 땅이면 건축을 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정착이 아닌 기업형 시설투자여서 지역 주민들에게 땅값을 더 주고 사들이고 있어 상황은 심각해 보인다.
지자체는 개인 축사여서 이의사항이 아닌 주위환경 차원에서 허가를 안 내줄 수도 있지만, 개인이 행정소송을 낼 경우 허가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고 항변해왔다. 따라서 이제는 축산농가가 아닌 지역 환경을 보존하고 지켜야 할 철원군의 확고한 의지 표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판단이다.
이철우 위원장은 “지자체가 도시를 디자인하고자 하는 지속 가능한 계획개발이 없다는 게 문제다. 학교까지 악취가 번져 학생들의 학습권마저 박탈당할 처지라는 게 말이 돼나. 평화가 도래하는 시점이 아닌가. 세계 유일의 이데올로기가 대립한 극단적 비애를 여실히 보여주는 역사적 산실이다. 국가적인 자산 가치가 무궁무진하다. 이를 보전하고 가꿀 의무가 우리에게 있다. 역사적 학술 가치가 큰 청정지역 철원을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한다”며 도가 나서서 특단의 대책을 세워줄 것을 주문했다.
---------------<다음 호에서는 철원을 넘어 한반도 생태보고인 DMZ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해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한다.>
[환경미디어= 김명화/김한결 기자 공동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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